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06)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증인이 많은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정당한 대련 중에 생긴 부상이라면 다들 이해할 겁니다.”
그 와중에 타니안이 웃으며 꺼낸 말에 소름이 돋았다. 만약 내가 형과 대련하다가 피를 토하거나 사지가 부러지더라도, 부원들이 대련 중 생긴 일이라고 증언하겠다는 말.
물론 나도 대련 중에 다친다면 항의할 생각은 없기는 한데, 이미 기정사실로 생각 중이니 기분이 묘하다. 심지어 차기 성자가 버티고 있으니 형이 내 척추를 접어버리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대련은 아니다. 형이 동생을 눕힐 수는 없지.”
더 소름이 돋았다. 동생이 아니었다면 눕혔다는 건가? 어쩐지 그때 류티스를 아무 망설임 없이 기절시키더라.
“오, 그럼 저하고 하는 겁니까? 전 좋습니다!”
“대련 아니라고.”
단호한 형의 말에 부원들 사이에는 안도와 아쉬움이 동시에 내려앉았다. 안도는 혹시 형이 또 왕족 폭행을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하던 부원들, 아쉬움은 당연히 빨간 머리인 왕자 혼자.
“꼭 몸으로 부딪히는 것만 경험은 아니야. 눈으로 보는 것도 경험 아니겠냐.”
“맞는 말이구나. 오히려 제3자의 입장에서 고수의 실력을 보는 것이 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법이지.”
형의 말에 마종공은 루이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종공이 지지하니 급속도로 설득력이 높아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마법의 정점, 심지어 이미 제자를 기르고 있는 사람이 저렇게 말하니 어떻게 믿지 않겠나.
그래, 몇 번을 생각해도 마종공의 말이 맞다. 몸으로 체득하는 것도 실력 차이가 적당히 나야 가능한 거지, 너무 압도적이면 뭐에 맞았는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쓰러질 거다. 그냥 눈으로 검로를 보는 게 이득일 터.
“잠깐 검 좀 빌리자.”
“아, 여기.”
황급히 허리춤에 찬 검을 형에게 내밀었다. 어차피 대련용으로 준비한 양산형 검이라 중요한 것도 아니고, 오늘이 지나면 날만 좀 닦아낸 뒤 구석에 박아둘 생각이었다. 이 검 입장에서도 형의 손에 잡히는 걸 더 기뻐하겠지.
“제법 튼튼하네.”
날을 톡톡 건드린 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잡았다.
“솔직히 우리 격차가 좁은 건 아니지만, 너도 꾸준히 노력하면 내 수준까지는 올 거다. 나도 한 건 너도 할 수 있겠지.”
그러고는 왼발을 앞으로 내딛고 검을 든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마치 대련을 앞둔 기사가 상대에게 예를 표하는 것처럼.
“그러니 일단 내가 있는 곳을 목표로 삼아. 너무 먼 곳을 보면 헤맬 테니, 그 정도가 적당할 거야.”
그 말과 함께 형은 앞으로 내밀었던 손을 서서히 오른쪽으로 내렸다. 몸에서 대각선으로 뻗어 나온 팔, 지면을 향한 칼날. 올려치기 자세다.
확실히 크라시우스의 검술─ 아니, 모든 검술의 기본은 내려치기와 올려치기다. 기본 중의 기본부터 보여주려는 건가? 실망감보다는 오히려 두근거림이 컸다. 형은 나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나아간 무인, 그 무인의 기본은 어떻게 쌓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같은 마음이네.’
몇 걸음 뒤에 있던 류티스가 어느덧 내 옆까지 다가왔다. 형의 검로를 더 가까이서 보겠다는 듯이.
슬쩍 얼굴을 보니 드물게 웃음이 아닌 진지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역시 이놈이 기행은 잦아도 무인 정신이 강하기는 해.
“나도 이 기술을 보고 정진했어. 노력하면 언젠가는 저 경지에 이른다는 희망을 가졌지.”
심상치 않은 말에 몸이 굳고 말았다. 뭐지? 단순히 기본 동작을 보이면서 할 말은 아닌데? 거의 일생일대의 일격을 날리면서 꺼낼 말 아닌가?
동시에 형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아무리 검사가 마법사보다는 마나에 둔감하더라도, 결국 마나를 다루는 능력자. 코 앞에서 격렬한 마나 운용이 이루어진다면 모를 수 없다.
그리고 지금, 형에게서 그 격렬한 운용이 이루어졌다.
‘미친.’
느껴진다. 심장에서 폭발적으로 움직이는 마나, 그 마나가 형의 오른쪽 가슴으로 움직이며 2차적으로 폭발했고, 두 번이나 담금질 된 마나는 오른팔과 검을 집어삼키며 흉흉한 기운이 보였─
‘아니 뭐야.’
왜 마나가 육안으로 보이는 건데.
경악스럽다. 다른 사람, 특히 마종공의 반응을 살피고 싶지만 차마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조금이라도 놓치면 평생을 후회할 것만 같았다.
침묵 속에서 마나를 운용하던 형은 서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찢어지듯이 나는 굉음과 갈라지기 시작하는 땅.
마치 맹수를 보는 기분이었다. 느긋하게 사냥감을 쫓는 검, 검이 움직임에 따라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는 공간.
그렇게 평온히 검을 들어 올리던 형이 갑작스레 허공을 베어넘기는 순간─
‘…….’
모든 것을 잃었다.
눈을 떴지만 그저 새하얀 공간만이 펼쳐지고, 귀가 열려있지만 바람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피부는 마치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어떠한 감촉도 느끼지 못하였고, 코마저 단순한 풀 내음조차 느끼지 못했다.
마치 내 눈앞에 있는 세상이 사라진 듯한, 혹은 내가 세상에서 추방 당한 것 같은 기묘함.
그러나 그 기묘함은 찰나였다.
– ■■■■■■■─!!
세상과 동떨어진 나약한 존재를 강제로 잡아끄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다시금 감각이 돌아왔다.
“어떠냐?”
그리고 한 움큼의 피를 뱉은 형이 살짝 미소를 보이며 허공을 가리켰다.
형의 손짓을 따라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마자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대토벌 전쟁 당시, 역천자가 보였던 기술이다.”
그런 내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형은 설명을 이어갔다.
“그놈이 단순히 천명에 도전했다고 역천자라고 불린 건 아니야. 일개 천명 도전자에 불과했다면 그냥 정신병자고, 유목민을 결집하고 끝났다면 수완가 정도로 불렀겠지.”
들고 있던 검을 던지기라도 했는지 금속이 지면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나는 멍하니 하늘만을 응시했다.
“하늘을 모욕하고 순리를 뒤엎었기에, 인간으로서 하늘에 간섭했기에 역천자.”
그 말에 그저 교과서로만 본 역천자라는 존재가 경이롭고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역천자가 역천자라고 불렸던 전투. 그 전투에서 역천자가 제국군에게 보였던 재앙─”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경이로움은 형에게 이어졌다.
“제국군은 그 재앙을 멸세라고 불렀다.”
그 재앙을 따라 한 형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뭐, 입에 담기에는 재수 없는 이름이라 보통 하늘 베기라고 했지.”
다시 헛웃음이 나왔다. 하늘 베기라, 그만큼 직관적이고 확실한 이름도 없다.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는 허공, 푸른 창공에 흉측한 검은색으로 그어진 수 미터가량의 상처.
“…베였네.”
“하늘 베기니까.”
하늘이 찢어졌다.
***
와 씨.
‘이게 되네?’
나 자신에게 놀랐다. 전쟁 이후로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막힘없이 성공할 줄은 몰랐다. 실패하면 ‘역천자는 올려치기도 멋지게 했지.’ 라고 드리프트 할 준비도 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카간한테 칼빵 맞은 이후로는 감히 시도도 못했다. 조금만 발동을 걸려고 하면 몸에서 비명을 지르는데 어떻게 하겠나. 일단 몸 안의 마나를 증폭시키는 과정에서 내 몸이 터졌을 거다.
하지만 마종공의 포션을 먹으며 급속도로 건강이 회복됐고, 이제는 이론으로만 가능한 기행을 다시 재현할 수 있었다. 역시 마종공이야, 대단해.
‘괴물 새끼.’
다시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내며 입가를 닦았다. 속은 망가졌는지 계속 피가 올라오고, 에리히에게 빌린 검은 찬란한 빛을 내며 조각으로 변했다. 시발, 지금 보니 오른팔에는 감각이 없네. 신경이라도 끊어졌나?
아무튼 이걸 다시 재현하니 카간이 괴물 중의 괴물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원본보다 약하게 카피한, 그마저도 쓰고 나면 몸이 개판이 나는 기술이다. 이 업그레이드 버전을 카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다.
물론 허세일 가능성도 있지만, 겉으로 봐도 피를 줄줄 흘리는 나와 달리 그 새끼는 멀쩡한 모습을 보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대단하지?”
아직도 허공을 보고 있는 에리히에게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서서히 고개를 내리는 에리히의 얼굴에는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나도 처음 볼 때는 뭐 저런 새끼가 있나 했어. 아무리 봐도 사람 새끼가 할 일이 아닌데, 혹시 악신이 강림한 건가 했지.”
이건 진심이다. 여명 교단의 성서에는 에넨이 악신들을 대륙 북부에 봉인했다는 구절이 있는데, 하필 유목민들도 대륙 북부에 사는 놈들 아닌가. 어디서 악신 하나 데려와서 대장 삼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새끼도 일단은 인간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뒤틀린 의지로 버텼다.
…그냥 인간이 아니라 신의 사도였지만, 아무튼 카테고리는 인간이다.
“지금 네가 느끼는 감정. 그걸 호승심으로 돌려. 그러면 너도 나처럼 될 수 있을 거야.”
아마도.
“오, 오라버니이이이!”
멍하던 에리히의 눈에 빛이 돌아오는 사이, 침묵을 지키던 루이제가 황급히 달려왔다.
살짝 양심 고백을 하자면 루이제와 마종공이 있어서 더 힘을 낸 것도 있다. 가족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은 건 가장의 숙─
“파, 팔이!”
“어?”
울음기 섞인 루이제의 말에 팔을 확인하니 어느새 감각이 없던 오른팔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 신경이 끊긴 게 아니라 그냥 끊어져 있던 거구나…
“아, 아가! 괜찮니!?”
루이제와 함께 달려온 마종공이 떨리는 손으로 내 볼을 매만졌다.
당연히 괜찮다. 사지 중에 하나 사라지는 건 북방에서 일상이나 다름 없었다. 어차피 이 대륙의 마법과 신성력이면 사지 정도는 금방 붙으니까.
게다가 새로운 시대에 두고 왔다고 생각하면 썩 슬픈 일도 아니다. 에리히가 오늘 일로 자극을 받으면 팔 하나쯤이야.
괜한 짓을 했다. 그냥 에리히가 피를 좀 토하더라도 대련을 하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늘이 찢긴 것에 1차로 놀라고, 덩달아 찢긴 내 팔에 2차로 놀란 루이제와 마종공은 내 기행을 숨길 생각이 없는지 마르게타와 이리나에게도 공유했다. 덕분에 네 명을 하루 종일 달래느라 고생했지… 부상 자체는 타니안이 금방 치료했지만, 애석하게도 놀란 가슴은 치료할 수 없더라.
물론 거기까지는 괜찮다. 나였어도 눈 앞에서 연인의 사지가 터져 나가면 아무리 치료가 되더라도 경악했을 테니까. 이건 내가 너무 무신경했던 거니 오히려 반성할 일이다.
‘망할.’
진짜 문제는 그 뒤. 이 세상 소리가 아닌 듯한 소음과 하늘에 새겨진 상흔으로 인해 아카데미는 발칵 뒤집어졌다.
그리고 목격자가 많은 사건은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법.
[ 아카데미에서 발생한 소란과 관련하여 감찰관으로 상주 중인 감찰부장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자 하니, 조속히 제도로 복귀하라. ]
하루 만에 황태자의 소환 명령이 떨어졌다. 저 상세한 설명을 하라는 것이 왜 그딴 짓을 했는지 변명이라도 하라는 의미로 들린다면 기분 탓일까.
뭐, 기분 탓이 아니어도 괜찮다. 저번에 구금돼서 징계 스택 초기화됐으니까.
‘징계 한 번 정도야.’
원래 사람은 잃을 게 없을 때 당당하다.
하늘을 찢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