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08)
솔직히 나도 타니안이 있어서 하늘 베기를 시도한 거지만, 그렇다고 혼나고 있는 상황에서 다 계획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오히려 다칠 줄 알면서도 그랬냐고 더 구박받겠지. 실수와 고의는 엄연히 다른 문제니까.
그렇게 마르게타의 감정 호소, 마종공의 팩트 폭력에 시달리다가 슬쩍 눈동자만 옆으로 굴렸다.
‘망할 놈들.’
그러자 자신은 관계없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물고 구석에 박혀있는 에리히와 류티스가 보였다.
저 둘도 이번 사태에 지분이 있다. 에리히는 나에게 가르침을 청했고, 류티스는 대련이 안되면 검로라도 보여달라는 말을 했다. 즉 사건의 원인 제공자나 다름없다는 뜻.
그러나 검로를 보여 준다면서 하늘을 벨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는 부원들의 옹호, 애초에 다들 내가 검을 휘두르는 걸 보고 싶어 말리기는커녕 단체로 구경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여 저 둘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없었다.
‘하여간 직감은 좋아서.’
물론 어디까지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지, 감정까지 털어낸 건 아니다. 사람의 이성과 감정이 언제나 일치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에리히나 류티스 중 하나라도 입을 잘못 놀렸다면 둘 다 집중포화를 당했겠지만, 그걸 잘 아는 두 사람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마 본능적으로 지금은 침묵을 지킬 때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류티스 저 새끼, 평소에도 저렇게 조용하면 좋─
“저기, 오빠.”
“어?”
갑작스러운 이리나의 목소리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혹시 황실에서 오빠한테 뭐라고 한 건 아니죠…?”
훌쩍이는 루이제를 토닥이던 이리나는 불안한 듯한 눈동자로 물었다.
타당한 의문이다. 아카데미 한복판에서 하늘을 가른 게 보통 일도 아니고, 이미 이리나는 내가 근신과 구금을 당한 걸 눈으로 본 증인이다. 이번에도 징계를 받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울만하지.
“괜찮아. 제국의 명예를 드높인 일이니 앞으로 후학들을 위해 힘써달라던데.”
황태자가 직접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대충 비슷한 의미다. 제국에 하늘을 베는 무인이 있다는 걸 증명했고, 그 무인이 아카데미에 있다면 마종공 때처럼 온갖 검사들이 몰려들 터. 그 검사들을 적당히 가르치는 시늉만 보이면 제국이 얻을 이득은 적지 않다.
“그, 그러면 또 하늘을 베는 거예요?”
그러나 이리나는 제국의 이득이 아닌 내 안위를 걱정했다.
“전부 가르칠 필요는 없으니까 어지간하면 그럴 일 없을 거야.”
“그럼 또 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그런 이리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덤덤히 답변했지만, 애석하게도 단어 선택을 잘못했다.
망할, 어지간이 아니라 평생이라고 할 걸 그랬나. 그래도 살면서 몇 번 정도는 더 할 것 같기는 한데. 괜히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가 어기는 것도 좀 그렇고.
“…최대한 안 쓰는 방향으로 노력할게.”
“오빠!”
빼액 소리치는 이리나를 애써 외면했다.
공무원은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사고를 치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양반이 있다.
– 야, 하늘 갈랐다며?
혹시 팔 말고 더 다친 곳이 있는지 확인하겠다며 옷을 벗기려던 연인들 사이에서 겨우 탈출하고 도착한 숙소. 그리고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장관에게서 연락이 왔다.
“벌써 들으셨습니까?”
– 그래. 어제부터 퇴역한 놈들한테서 연락이 오고 난리였다.
그 말에 본능적으로 시선을 내리 깔고 말았다. 퇴역한 양반들 중에 아카데미 근처에서 지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구나.
– 갑자기 무슨 일이냐? 전쟁 중에도 몇 번 안 썼던 놈이.
“전쟁 중이니까 더 못 썼죠. 딱 봐도 맞으면 골로 갈 기술을 준비 중인데, 그걸 기다려 주는 놈이 어디 있습니까?”
– 그건 그렇지.
낄낄거리는 장관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멸세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은 나와 도르곤을 제외해도 몇 명 정도가 더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용법은 전투가 붙기 직전에 상대의 사기를 저하시키기 위한 퍼포먼스용이지, 상대를 향해 날리는 경우는 극히 적었다. 아니, 그냥 없다고 보는 게 편하다.
멸세까지 날려야 할 정도면 존나 쎈 놈하고 혼신의 맞다이 중이라는 의미인데, 그런 놈을 앞에 두고 어떻게 기를 모아. 변신 중 공격하지 않는 건 마법소녀들 사이에서나 통하는 국룰이다.
“크라시우스 칼, 나와 너는 호각이다! 차라리 서로에게 최강의 일격을 날리고 마무리 짓는 게 어떠한가?”
“미친 새끼.”
물론 세상을 살다 보면 혼자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놈도 나오기 마련이다. 탈라 그 새끼, 도저히 결판이 나지 않으니까 서로 멸세 날리고 끝내는 건 어떻겠냐고 하더라.
존나 병신 같은 생각이었지. 그래서 바로 했고.
– 아무튼, 정말 무슨 일이었냐. 마종공 각하하고 부부 싸움이라도 한 거냐?”
“그…”
동생에게 보여주기 위해 했다는 말을 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어제부터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정확히는 형이 보였던 미친 기행만 떠오르고, 그 외에는 무엇도 생각나지 않았다. 옆에서 세라가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면 바닥과 하나가 되어 먼지처럼 붙어 있지 않았을까.
뛰어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확인 받고 싶어서, 언젠가 내가 도달할 도착지를 보고 싶어서. 그런 마음으로 형에게 가르침을 청했었다.
“너도 꾸준히 노력하면 내 수준까지는 올 거다. 나도 한 건 너도 할 수 있겠지.”
“하.”
형이 했던 말이 떠오르자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꾸준히 노력하면? 자기가 한 건 나도 할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노력으로 발전을 이룩하는 건 당연한 일이나, 노력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사람에게는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멸세라.’
계속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형은 하늘 베기라고 불렀지만 동시에 멸세라고도 불린 기술. 역천자가 역천자라고 불리게 된 이유.
멸세, 정말 직관적인 이름이다. 단순히 하늘을 베었기에 멸세인 건 아닌 것 같지만.
‘몇 명이나 무너졌을까.’
전쟁이라면 무수히 많은 검사가 모였을 거다. 검을 다루는 병사, 교양으로라도 익힌 지휘관, 혹은 검에 인생을 바친 기사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검사들이 멸세를 목격했을 거다.
그 순간, 얼마나 많은 검사들이 좌절하고 절망했겠나.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도달할 수 없는 영역. 같은 인간이라 부르기 부끄러운 수준의 격차를 보고 그 검사들의 세계는 부서졌을 거다. 그렇기에 멸세라는 이름은 소름 돋을 정도로 알맞은 이름이다.
‘할 수 있기는 무슨.’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도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형의 경지에는 도달할 수 없다. 같은 학생을 상대로도 확실한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놈이 어느 세월에 하늘을 베겠어.
‘무리야.’
목표를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너무 허황된 목표에 눈이 멀면 그릇된 길을 걷게 된다. 그렇기에 포기했다. 나는 형처럼 될 수 없다고.
그러니 제대로 된 목표를 설정하자. 나와 형은 같은 부모를 둔 형제, 같은 검술을 배운 동문. 형은 나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재능으로 하늘을 베었지만, 그래도 같은 피가 흐르는 나라면─
‘산 정도는 벨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을 멸망시키는 건 몰라도 도시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오히려 압도적인 정상을 보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인간에게 재능의 차이가 있다는 건 알았으나, 한계는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하늘을 벤 사람이 있는데 산이 대수냐.
‘힘내자.’
그렇게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형이 보인 위업에 좌절하지 말고 나만의 위업을 만들자고.
…그런데 솔직히 부럽기는 해. 나도 하늘… 갈라 보고 싶은데…
검 한 자루로 하늘을 베는 무인.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지 않을까?
역시 하늘을 베는 건 남자의 로망이다.
“고문 선생에게 한 번만 더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줄까?”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류티스를 보니 확실하다. 얘도 하늘 베기에 홀렸다.
“마종공 각하 이길 자신 있으면 해보던가.”
“쓰읍…”
하지만 현실적인 장벽을 언급하니 씁쓸한 표정으로 포기했다. 애석하게도 이제 하늘을 베는 건 형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형을 둘러싼 예비 형수들, 그 넷을 전부 설득해야 가능한 일이다. 설득하기 전에 형에게 하늘 베기를 청탁했다가는 분노한 형수들에게 납치당할 것이 뻔하지.
‘평생 못 보겠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마종공을 설득하는 모습은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다.
“아르메인에는 왜 이런 사람이 없는 거지…”
그 와중에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류티스의 말에 고개를 저을 뻔했다.
그런 사람이 나라마다 있으면 종말의 징조 아니냐.
마종공이 수십 년 동안 겪었을 연예인의 삶. 딱히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 요즘 들어 너무 절절히 느끼고 있다. 가련한 공무원에게 과한 관심은 독이거늘.
“감찰관님이 바쁘실 거라는 생각에 그간 교류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먼 곳에 계신 분도 아니고 아카데미에서 함께 지내는 사이인데 이리도 데면데면했다니, 부끄러울 따름이군요.”
당장 눈 앞에 있는 검술부 수석 교사의 태도만 봐도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물론 정중한 것은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애초에 나는 교장이나 교감, 더 쳐줘도 게르하르트 정도를 제외하면 아카데미 교직원과 만날 일 자체를 피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내가 먼저 접촉한 걸 제외하면 수석 교사 말처럼 어떤 교류도 없었지. 그야 교직원들 입장에서는 감찰 권한이 있는 상대를 만나기 두려울 테고, 나 역시 교직원들을 압박하는 모양새는 피해야 하니까.
하지만 하늘 베기와 황실의 공식 발표 이후로 검술부 교직원들은 동아리실에 수시로 방문하고 있다. 배정 수업이 없을 때는 무조건 오는 게 아닌가 싶은 수준으로.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석 교사의 업무가 막중한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저희가 자주 만났다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하하,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선봉장에 선 사람이 수석 교사기에 은근슬쩍 ‘너 이렇게 자주 와도 되는 거냐.’ 라는 말을 돌려서 했지만, 이해를 못 한 건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건지 수석 교사는 그저 웃으며 대답했다.
검에 인생을 바친 양반이라고 생각하면 전자일 확률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도 정말 검밖에 모르는 바보면 아카데미 수석 교사까지 오르지는 못했을 텐데…
‘마법사나 검사나.’
그동안 마법사들을 광기의 집합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잘못된 생각이었다. 마법사들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전부 그랬다.
아니, 어떻게 보면 마법사들보다 검사들이 더 심하다. 적어도 마법사들은 마종공한테 무작정 들이대지는 않았어. 좀 치밀하고 귀찮게 끈을 대려고 했지.
‘몸이 앞서는 사람들이라 그런가.’
제법 그럴 듯한 가설이다. 나름 머리를 쓰는 마법사들에 비해 검사들은 상대적으로 행동파니까.
“요즘 제 지인들에게도 온갖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제가 수석 교사가 된 것에도 시큰둥하던 녀석들이 아주 난리더군요.”
“오, 그렇습니까?”
“예. 덕분에 통신구가 수시로 울려서 잠도 제대로 못 잡니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던 중 너스레를 떠는 수석 교사의 얼굴에는 난감함보다 즐겁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업계 인물들 사이에서는 영광으로 여겨지는 아카데미 수석 교사. 그 자리를 차지했음에도 시큰둥한 지인이라면 친구가 아닌 라이벌이나 다른 파벌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인물들마저 고개를 숙이고 먼저 연락을 취한 것이니, 수석 교사 입장에서는 그보다 기쁜 일이 없을 터.
“다행히 저 역시 감찰관님의 위업을 두 눈으로 본 입장인지라, 오랜만에 연락을 준 지인들에게 해줄 말은 많더군요.”
그 말에 픽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건 숙이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넌 이런 거 못 봤지?’ 라며 상세히 티배깅을 했다는 말 아닌가.
“감찰관님께는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수석 교사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마 저 인사에는 경쟁 파벌에게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대한 감사, 동시에 검사로서 하늘 위의 경지를 보여준 것에 대한 감사가 담겨있겠지. 딱히 자기가 노력한 것도 아닌데 하루아침에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니 얼마나 기쁘겠나.
그리고 그 감사를 직접 찾아와 표했다는 걸로도 수석 교사는 평균 이상의 인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게 마음에 들어서 수석 교사가 뻔질나게 찾아와도 면회 거절 자체는 안 하고 있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