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11)
“괜찮다. 두 번 정도 쓰니 감이 잡히더군. 조절만 잘 하면 무사히 끝날 거다.”
그러니 무난한 답을 돌려줬다. 그래, 괜히 욕심부리지 말고 위력만 조절하면 강화 성법 선에서 마무리할 수 있다.
‘시발.’
생각해 보니 빡치네. 상처만 없었어도 강화 성법이니 사지 폭발이니 걱정하지 않고 쓸 수 있었을 텐데. 위력 면에서도 원본을 따라잡는 건 무리지만, 적어도 오늘 쓴 하늘 베기보다도 강하게 쓸 수 있을 거다.
안 되겠다. 영원한 푸른 하늘에게 하는 기도를 하루 다섯 번으로 늘려야겠어.
팔이 터져가며 이룩한 위업에 높으신 분도 감동한 모양이다.
– 수고 많았네, 감찰부장.
“과찬이십니다. 제국의 위엄에 순응한 객들을 어찌 홀대하겠습니까.”
타니안에게 치료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태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보고가 올라가는 속도를 생각하면 거의 바로 연락을 건 수준.
– 하하, 그렇지. 제국이 어찌 순응한 자들을 홀대하겠는가. 감찰부장의 말이 옳다.
그리고 예의상 한 말에 바로 웃음을 터뜨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좋을만하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에르네스토 아카데미가 제국에 방문하여 항복 선언을 한 것도 기뻐할 일이기는 하지만, 제국에 마종공이 있는 순간부터 피할 수 없는 결말이기도 했다. 심지어 유벤 연합왕국은 제국과 거리도 멀고, 연합왕국이라는 특이한 체제로 인해 그리 위협적인 국가도 아니다.
반면 아르메인 왕국은 다르다. 제국이 기회가 되면 아르메인을 꿇리려 하는 것처럼 아르메인도 제국을 깎아내릴 틈만 노리고 있고, 마종공이라는 압도적 우위가 있는 마법계와 달리 검술계에는 아르메인이 제국에 항복할 요인이 없었다. 게다가 아르메인은 국경을 접한 국가. 카간 등장 이전에는 북방의 소란이 아르메인과의 신경전을 뜻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랬던 아르메인이 제국의 우위를 인정했다. 양위가 임박한 황태자 입장에서는 즉위 전부터 경쟁국이 엎드린 상태니 얼마나 기쁘겠나.
– 그러나 객들을 만족스럽게 대접한 것은 감찰부장의 능력이지. 황실은 감찰부장의 변함없는 헌신과 충정을 기억한다.
“황송하옵니다.”
평범한 공치사지만 괜히 불안하다. 헌신과 충정이 뛰어나니 영원히 부려먹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럴 거라면 그냥 잊어줬으면 좋겠다. 괜히 고위직에서 굴러서 황실한테 얼굴도 기억되고 이름도 각인되고… 역시 감찰부장 자리는 내 팔자가 아니었다.
– 이제 손님들을 대접하는 건 교장이 할 일. 감찰부장은 편히 쉬도록 하게.
“예, 전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연락이 끊어졌다.
이상하네. 분명 공치사를 위한 연락이었을 텐데 마지막에 남는 건 종신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다.
하여간 대단한 개새끼야.
***
제국 아카데미가 준비해 준 숙소에 도착한 후, 학생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거나 연무장으로 향했다.
나 역시 배정된 방으로 향하며 학생들의 얼굴을 살펴보니 딱 두 종류로 나뉘어 있었다. 하늘이 찢어진 광경에 넋을 잃고 회의감을 가진 학생과 인간이 이룩한 위업을 보고 호승심에 불타오르는 학생. 부디 전자인 학생들도 마음을 다잡아 회의감을 열정으로 불태웠으면 한다.
교감으로서 당장이라도 그 과정을 도와주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 사실이었군요.
“예.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아카데미에 남은 교장에게 연락을 걸었고, 씁쓸하기 짝이 없는 보고를 올렸다. 제국의 무인이 하늘을 가른 건 사실이었다고.
– 감찰부장이 하늘을 베기 전에 성법을 받았다고 했는데, 혹시 강화 성법입니까?
잠시 말이 없던 교장은 실로 타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나도 감찰부장이 차기 성자에게 받은 건 강화 성법이라고 생각한다.
“교장께서는 강화 성법을 받았다고 하늘을 가르실 수 있으십니까?”
그러나 강화 성법이면 뭐 어쩌겠나. 다른 사람들이 강화 성법을 받는다고 하늘을 가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전쟁에 나서는 무인이 강화 성법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 그냥 확인을 위해 물은 겁니다. 관료들은 세세한 것까지 알아야 만족하더군요.
교장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내 대답에 쓴웃음을 지었다. 하여간 관료 놈들, 현장은 모르는 것들이 깐깐한 건 더럽게 깐깐해서.
– 학생들은 어떻습니까?
“벽 앞에 주저앉은 학생들도 있지만, 넘고자 하는 학생들이 더 많았습니다.”
– 다행이군요.
행정부에 보고할 내용을 작성하던 교장은 그 말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로벤스 아카데미의 교장직이 정치적 관례에 따라 임명되는 직책이라지만, 그 근본은 교육자. 미래를 이끌어 갈 학생들이 좌절보다 정진을 택했다면 기뻐할 사람이다.
아무튼 한참이나 질문을 하던 교장은 보고서를 전부 작성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 먼 곳까지 가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행정부도 이 정도면 만족할 테니, 적당히 쉬시다가 복귀하십시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락이 끊기며 빛을 잃은 통신구를 보다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뉘었다.
착잡하다. 검사로서는 검을 든 자가 도달할 수 있는 지고의 경지를 견식 할 수 있어서 기쁘지만, 아르메인인으로서는 제국에 하늘을 베는 무인이 출현했다는 것이 공포스럽다. 그렇지 않아도 유목민과의 전쟁에서 입은 상처를 회복하고 있는 제국 아닌가. 그런 제국에 상징적인 무인이 나타났다면 국경을 접한 아르메인 입장에서 우려스러운 일이다.
그나마 감찰부장은 군부가 아닌 행정부 소속이라는 게 다행이지만, 그깟 소속 따위 얼마든지 옮길 수 있다.
‘무는 개는 짖지 않는 법이지.’
그래도 희망은 있다. 제국이 진심으로 아르메인과의 전쟁을 노렸다면 이런 과시 없이 기습적으로 공격했을 거다. 그게 더 효과적이니까.
공개적인 선언, 로벤스 아카데미의 방문 허가. 이 정도면 제국이 전쟁으로 인한 서열 정리가 아닌 아르메인의 외교적 양보로 만족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야만 한다. 만약 제국이 진심으로 전쟁을 택하고 감찰부장이 최전선에 선다면 철혈공 때의 악몽이 재현될 것이다.
***
역시 마법사만 미친 게 아니라 검사도 미친 것이 확실하다.
“형. 이번에 안 다친 거 맞지?”
“그래.”
“그러면 고문 선생, 앞으로도 종종 써주실 수 있는 겁니까?”
“모른다.”
그 두루뭉술한 대답에 에리히와 류티스가 눈에 띄게 실망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건 오히려 너희를 위한 대답이다.
세상에 영원한 거짓말은 없다. 내 꼬이고 꼬인 팔자를 생각하면 확신할 수 있다.
‘들키면 같이 망한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팔이 내부에서 터진 걸 들키거나, 누군가의 요청으로 하늘을 베었다가 부상을 입으면 눈이 뒤집힐 사람이 넷이나 된다. 그러면 그 사람들의 분노가 어디로 갈까.
이미 나에게 붙어서 앵콜쇼를 외치는 두 남자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몇 있다. 육체가 안전하다고 믿는 지금도 경계태세가 가득한데 안전 보장마저 무너지면 어떻게 되겠냐. 바로 나도 죽고 너희도 죽는 거야. 어쩌면 황태자도 같이 죽는 거고.
“너무 자주 하면 사람들이 신기해하지 않더라고.”
“뭐야 그게.”
이해하려고 하지 마. 마음으로 받아들여.
솔직히 두 번이나 보여줬으면 할 만큼 했지 뭐.
로벤스 아카데미의 방문을 기점으로 제국 아카데미도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일단 연무장에 뿌리박은 인원 중 검술부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물론 로벤스 아카데미가 방문하기 전에도 하늘을 가르기는 했지만, 당시 학생들은 하늘이 갈라진 결과만 봤지 내가 검을 휘두르는 과정을 본 건 아니지 않나. 그러나 이번에는 소문을 듣고 몰려온 학생들이 과정까지 직접 보게 되면서 인간이 하늘을 베었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덕분에 호승심을 가득 충전한 학생들은 연무장에서 살다시피 했고, 눈이 뒤집힌 검술부 학생들에게 밀린 마법부 학생들은 쌍욕을 내뱉으며 도서관으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감찰관님.”
“어, 그래.”
“감찰관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 그래. 좋은 아침이다.”
그리고 호승심과 함께 존경심도 불타올랐는지 나에게 말을 거는 학생들도 급격히 늘어났다. 그 학생들의 9할 이상이 검술부 소속인 건 말할 것도 없고.
낯설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전까지는 내가 학생들의 어그로를 끌게 되더라도 멀리서 지켜보거나 에리히를 통해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이제는 학생들이 랜덤 인카운터처럼 불쑥 튀어나와 말을 걸었다.
다행히 눈이 마주쳤다고 배틀 페이즈로 돌입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지양하던 내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 민간인이 과도하게 말을 걸면 공무원은 신경쇠약에 시달리게 된다.
‘밀어낼 수도 없고.’
차라리 악성 민간인이면 피하기라도 할 텐데, 순수한 꿈나무들이라 외면할 수도 없었다. 탐욕이나 질투 없이 그저 존경이 가득한 눈으로 인사를 건네는데 어찌 야박하게 대하겠나. 평판 관리를 떠나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 인기가 많으면 좋은 거 아니에요? 부장님 보고 감찰부에 들어오려는 학생들이 늘어날 것 같은데요?
“너 천재냐?”
그런 한탄을 담아 1과장에게 연락을 거니 상상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 내가 동경의 대상이 되면 가만히 있어도 신규 공무원들이 줄줄이 오는 거잖아. 당장 마탑만 봐도 마종공에게 홀려 모이는 마법사들로 가득 찬 상황이니, 감찰부도 마탑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동 채집.’
감동의 눈물이 흐를 것 같다. 직접 돌아다니며 추천장을 뿌리지 않아도 알아서 모이는 인력. 감히 꿈에서도 바라지 못한 기적이다.
– 앞으로는 편하겠네요. 어지간히 야망 있는 애거나 미친 애가 아니면 감찰부에는 잘 안 왔는뎅.
“그걸 부장 앞에서 말하는 건 너무하지 않니?”
– 그치만 사실인데 어떡해요.
왜 구박하냐는 듯이 입술을 삐죽이는 1과장. 당장이라도 입술을 꼬집고 싶은 모습이지만 슬프게도 1과장의 말이 맞다.
감찰부의 역할과 권위는 상당하지만, 그에 비례하는 업무 강도와 책임으로 인해 출세 욕구에 찌들거나 미친놈이 아니면 오기 힘든 곳이다. 특히 내가 감찰부장이 되고 한바탕 칼춤을 춘 이후로는 더더욱.
정확히는 커리어 쌓기용으로 감찰부를 찍먹하는 애들은 좀 있지만, 뼈까지 묻는 애들이 적다. 좀 쓸만하다 싶으면 다른 부서로 런하더라.
‘개 같은 놈들.’
좀 키웠다 싶으면 귀신같이 탈주하는 나뭇잎 마을 새끼들. 그 탈주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대책 중 하나가 추천장이었지.
물론 추천장의 기본 역할은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인재를 발굴하는 거지만, 까놓고 말하면 일종의 낙인이기도 하다. 내 추천장 들고 감찰부에 들어왔으면서 다른 부서로 튄다? 양심이 있으면 그런 짓 못하지, 아암.
– 그런데 부장님.
“응?”
그렇게 추천장 없이도 뼈를 묻을 인력들이 늘어날 거라는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사이, 1과장이 슬쩍 입을 열었다.
– 몸은 괜찮은 거 맞죠?
그리고 드물게도 조심스러운 질문에 픽 웃음이 나왔다. 어느 정도 사정을 아는 애라 그런지 걱정 먼저 하는구나.
“괜찮아. 일이 터졌으면 베아트릭스가 가만히 있었겠어?”
– 하긴. 그건 그렇네요.
진심으로 납득했는지 1과장의 얼굴에 맴돌았던 불안과 걱정은 순식간에 지워졌다.
1과장을 포함한 간부들은 내 몸에 카간의 칼빵이 남아있다는 걸 안다. 딱히 자랑거리는 아니라 직접 보여준 건 아니지만, 부장이 된 직후에는 몇 번 치료를 받으러 갔으니까.
감찰부 내부 반대파와 2황자파를 족치느라 바쁜 와중에도 꼬박꼬박 치료를 받으러 가는 부장. 아무리 주변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아, 저 새끼 보통 중상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 정도는 들게 된다. 그런 놈이 갑자기 하늘을 베니 뭐니 시끄러우니 당연히 걱정이 될 수밖에.
“뭐, 무슨 일이 생겨도 차기 성자랑 대륙 제일 마법사가 있는데 걱정할 게 있겠냐.”
– 솔직히 제도보다 안전한 것 같기는 하네요.
“그렇지?”
성법 끝판왕과 마법 끝판왕이 버티는 곳에서 회복 불가 판정을 받으려면 즉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카간도 저승에 있는 판국에 누가 나를 한방에 보내겠나. 그건 도르곤이 와도 안 될걸.
– 그래도 앞으로는 미리 얘기 좀 해주세요. 갑자기 부장님이 하늘을 벴다고 해서 엄청 놀랐다구요.
그 말에 잠시 말없이 1과장을 바라봤다. 애써 밝은 척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씁쓸함과 서운함이 느껴졌으니.
그래, 1과장 입장에서는 충분히 서운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연인이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는데 그 소식을 당사자가 아닌 소문을 통해 들었다니, 서운함을 느끼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건 내 실수가 맞다. 당장 옆에 수 틀리면 마법으로 엎어버릴 최종 보스가 버티고 있어서 제도에 있는 1과장에게까지 생각이 닿지 않았다.
“미안해. 앞으로는 바로 얘기할게.”
– 알면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