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13)
“저기, 오라버니.”
“응?”
류티스의 연애 운에 축복을 기원하는 사이, 루이제가 슬쩍 말을 걸었다.
“체네스에 뭐가 유명한지 아세요? 올해는 팸플릿이 없어서요.”
“아, 팸플릿.”
당연한 말이라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작년에는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혈안이 된 모 공작 때문에 팸플릿이 제작된 거지, 원래라면 없는 게 정상이다. 아카데미에서 수학여행을 온다고 팸플릿까지 만들면서 뿌리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황금공이 미친 거지.
“알긴 알지. 체네스도 나름 관광지니까.”
게다가 보야르든 체네스든 팸플릿 따위 없어도 찾아갈 수 있는 명소가 많다.
“일단 곡창 지대가 유명해.”
체네스 공작령은 제국을 넘어 대륙 제일의 곡창 지대를 소유 중이기에 지평선 가득한 논과 밭을 볼 수 있다. 만약 체네스 공작령에 흉작이 들면 대륙 전체에 아사자가 속출할 거라는 말도 있으니 그 웅장함은 말할 것도 없을 정도. 실제로 대륙 전체는 모르겠지만, 제국의 식량생산은 체네스에 대다수 의지하고 있는 판국이다.
“해안가에는 공중 함선 하나 박혀있고─”
그리고 흉물과 명물 사이에 걸쳐진 공중 함선(이었던 것). 아펠스 황제 중에 로망에 미친 놈이 있었는지, 아펠스에는 공중을 떠다니는 기동함대가 존재했다. 물론 로망은 비효율의 다른 말이기에 유지비 문제로 하나둘 사라졌고, 마지막 남은 함선은 크펠로펜과의 전쟁 때 운용했다가 연료 부족으로 추락했다. 머저리 새끼.
그딴 물건을 아직도 보존 중인 이유는 별거 없다. 그냥 비효율의 극치와 아펠스의 추함을 상징하는 물건이니 반면교사로 둔 거지.
“이종족 보호 구역도 있어.”
마지막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종족들을 보호하는 구역. 아펠스 치세 동안 멸종하다시피 한 이종족의 명맥이 겨우 이어지는 유일한 곳이자 크펠로펜 제국의 황제가 이종족의 맹우를 자처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
…말하고 보니 어째 관광 구역 느낌보다는 행정 구역 느낌인데? 공무원의 시선으로 봐서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래도 이 행정 구역스러운 라인업 중에도 흥미를 끄는 곳이 있었는지, 루이제의 눈이 반짝였다.
“이종족 보호 구역이요?”
“어. 엘프, 드워프, 인어, 수인… 온갖 이종족이 다 있어.”
덕분에 앞바다 인어, 옆 숲 엘프, 뒷산 드워프가 실현되는 곳이다. 잘 찾아보면 드래곤도 있을지 모르니 영지물의 로망이 살아 숨쉬는 곳. 이제 현명공이 기사 10만이나 사병 100만을 육성하면 완벽한 영지물이 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인간과 다른 종족들이 모여 산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자극된 건지 밝은 표정으로 내 설명을 듣던 루이제.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난 건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아.’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조용히 귀를 까딱이는 마종공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호기심은 제자만이 아니라 스승도 자극된 모양이다.
확실히 마종공 입장에서도 이종족 보호 구역이 신기하긴 하겠다. 모친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동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니까.
‘갈 일이 없었겠지.’
공작이 되기 전에는 모친이 생존 중이었으니 굳이 동족을 찾을 필요가 없고, 공작이 된 후에는 업무로 바쁘니 시간이 없고.
‘…꼭 데려가자.’
그렇게 생각하니 코 끝이 찡해진다. 평생 동족을 모르고 자란 엘프라니, 비극이잖아.
황금공의 성향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올해 수학여행지도 당연히 보야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고, 마르게타도 그랬고, 교장도 그랬다. 솔직히 아카데미 학생들 전부가 그랬을 거다.
그리고 황금공이 돈에 미친 양반이라는 건 제국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에 퍼진 사실이다. 칭호부터가 황금인데 모를 수가 있겠나.
그렇기에 빌라르 역시 올해도 보야르로 갈 거라고 방심하다가 난데없는 드리프트에 휘말리게 되었다.
“제가 제국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만, 체네스도 제법 매력적인 곳이라 들었습니다. 학생들 입장에서도 다양한 곳을 가봐야 견식이 넓어지겠지요.”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빌라르의 표정은 드리프트의 피해자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평온했다. 그동안의 경험 덕분에 수학여행지 변경 정도는 우습게 여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건지, 아니면 보야르나 체네스나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이유야 어떻든 빌라르를 비롯한 삼국 전력 측에서 순순히 수긍한다면 나야 편하지. 혹시 호위 대상이 잘못될까 덜덜 떠는 가련한 파견 공무원들이 ‘왜 체네스죠? 혹시 무슨 음모가 있는 건가요?’ 라고 발작했다면 얼마나 귀찮았겠나.
“게다가 현명공께서 감찰관님의 외숙모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체네스는 감찰관님께 익숙한 곳일 테니, 즐거운 여행이 될 거라 기대 중입니다.”
그래도 덤덤한 것과 의무를 다하는 건 별개의 문제. 호위 책임자인 빌라르 입장에서는 혹시 모를 가능성도 확인할 필요가 있기에 슬쩍 나와 현명공의 관계를 짚었다.
“하하,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영지에만 있었고 지금은 제도 생활을 하는 중이라 체네스에 갈 일은 드물었습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의혹이기에 빠르게 부정했다. 현명공과 접점이 있는 건 맞지만 딱히 수학여행지 선정에 개입한 건 아니라고. 내가 미쳤다고 제 발로 체네스에 가겠나.
다른 공작령도 가기 꺼려지는 건 매한가지지만 체네스는 특히 그렇다. 만약 보야르에서 일이 터지면 황금공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나, 체네스에서 일이 터지면 도움을 요청해야 할 상대가 현명공이잖아.
‘절대 안 되지.’
현명공의 능력과 별개로 현명공의 손을 빌리는 건 최대한 피해야 한다. 다른 공작들의 손을 빌리면 나도 다음에 공작의 요청을 들어주면 되는 평범한 거래가 되지만, 현명공에게 빚을 지면 기상천외한 보답을 해야 하니까.
“죠카, 죳까! 구러면 나 목말태워주쑤 있써!?”
“예?”
놀랍게도 감동 실화다. 예전에 업무 문제로 현명공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었는데, 너무 당당하고 명확한 요구에 정신이 나갈 뻔했었다.
그리고 그 뒤는 정말로 목말을 태워야 했다.
‘시발.’
그때의 수치심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좋게 생각하면 공작과의 친분을 과시할 수 있는 모습이기는 한데, 목말을 태워야 과시할 수 있는 친분이라면 없는 게 낫지 않을까? 애초에 현명공의 조카인 것도 침묵하는 상황에서 과시가 무슨 소용이야.
“그렇습니까? 이번 수학여행은 감찰관님께도 특별한 여행이 되겠군요.”
“예, 저도 기대가 큽니다.”
아무튼 내 말을 믿었는지 빌라르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특별한 여행이라는 말이 왜 이리 절절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특별하기는 하겠네.
삼국 전력 측이 체네스로 가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제 주인에게 손님이 얼마나 갈 거라고 알릴 시간이다.
수학여행지로 체네스가 선정된 것 자체가 황실의 의지기도 하니 딱히 알리지 않아도 무방하겠지만, 그래도 남의 영지에 가는 입장에서 이런 사소한 매너를 지키지 않으면 찍히는 법.
“─이상입니다. 자세한 명단은 따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 바쁠 텐데 신경 써줘서 고맙구나.
심지어 그 상대가 친척 겸 유일한 주당 억제기라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황제도 포기한 주당을 조금이나마 억제할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귀한데.
– 바로 전달해주마. 조카가 연락을 줬다는 걸 알면 기뻐할 거다.
“왜 자기한테 연락 안 했냐고 화낼 것 같습니다만.”
– 하하, 아마 그렇겠지.
진심 가득한 말에 웃음을 터뜨리는 외숙부. 이 타이밍에서는 아니라고 부정해줬으면 했다.
‘그래도 나중에 투정 듣는 게 낫겠지.’
외숙부의 웃음 소리를 들으니 착잡했지만 이게 맞다.
자기 영지에 타국 전력이 진입하는 사안은 영주에게 직접 얘기하는 게 옳지만, 업무 얘기를 현명공과 나누다가는 다른 길로 샐 가능성이 높다. 그럴 바에는 뒤늦게 소식을 들은 주당의 투정을 듣는 게 여러 의미로 이득.
게다가 외숙부는 심시티에 올인하는 현명공을 보좌하기 위해 외부와의 창구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않나. 조금 억지를 부리면 외숙부에게 연락하는 게 맞다.
–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에리히를 보겠구나. 그 아이는 영 볼 기회가 없었어.
그리고 업무 대화가 끝나자 사적인 주제를 꺼내는 외숙부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신년하례식에 참가해서 1년에 한 번은 볼 수 있는 가주와 어머니, 나와 달리 에리히는 평범한 귀족 자제다. 제 아무리 외숙부라도 현명공의 부군이라는 명함을 가진 이상 일개 자제를 보기 위해 먼 걸음을 하기는 힘들다. 정말 어지간한 일이 아닌 이상 만날 수가 없지.
물론 에리히가 체네스 공작령까지 찾아가면 외숙부와 외숙모가 반갑게 맞이해주겠지만, 애석하게도 에리히는 외숙모를 필사적으로 회피하는 입장이니 어쩌겠나. 꼬꼬마 에리히에게 트라우마를 심은 현명공의 업보다.
“같이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괜찮은 시간을 말씀해 주시면─”
– 아니, 내가 찾아갈 테니 쉬고 있거라. 다 큰 조카한테 못난 외숙모를 보일 수는 없으니.
그 말에 조용히 시선을 내리 깔았다. 에리히가 현명공을 보면 발작할 수도 있으니 자기 혼자 찾아가겠다는 말.
에리히, 도대체 얼마나 시달린 거냐. 외숙부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보통 사건이 아니었을 텐데.
‘나도 모르는 일이 있었나?’
궁금하지만 이상하게 딱히 알고 싶지는 않다. 세상에는 영원히 묻어둬야 할 비밀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 아무튼 지나가다 만난 것처럼 꾸밀 테니, 숙소에 도착하면 연─
– 이이이잉? 쟈기! 혼쟈서 모해?
– 아.
“아.”
분명 외숙부 혼자 있어야 할 방에 갑자기 난입한 새로운 목소리, 익숙한 주정.
망했네 이거.
***
팔이 부러지면 수학여행에 빠질 수 있을까? 아니, 부러져 봤자 타니안이 바로 치료하겠지.
그러면 고열에 시달리기? 아니야, 어설프게 아팠다가는 아픈 건 아픈 대로 난리고, 외숙모 연락에도 있는 대로 시달릴 거다. 아예 의식을 잃는 수준이 아닌 이상 필연적으로 외숙모에게 시달려야 한다.
‘돌겠네.’
침대에 누워 한숨을 내뱉었다. 왜 많고 많은 곳 중에 체네스지? 그냥 작년처럼 보야르에 가도 되고, 다른 공작령이라면 울켄이나 세르베트도 있잖아. 왜 하필 서쪽 끝에 있는 체네스야.
체네스가 관광지로 유명한 건 안다. 외숙모도 악독한 사람인 건 아니다. 오히려 볼 때마다 웃는 얼굴에 용돈도 잔뜩 쥐여준 편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 뭔가 좀 그랬다.
“우뤼 쟈근 죠카! 외숙모하고 뽑뽀!”
“으이이잉, 너무 기여워… 평섕 이모스비면 조케써…”
“옴뇸뇸뇸뇸뇸!”
…좀이 아니라 많이 그랬다. 어린 나이에도 외숙모가 나를 인형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진지하게 의심한 적이 있을 정도로.
– 외숙모가 너를 많이 귀여워하는 거니 너무 무서워하지는 말렴.
두려운 마음에 어머니와의 연락 중 슬쩍 수학여행에 관한 얘기를 꺼냈지만, 돌아오는 답은 절망스러웠다. 좋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결국 어머니도 외숙모를 어찌할 수 없다는 말.
왜 내가 아는 어른 중에는 정상이 없는지 모르겠다. 가주님은 너무 무뚝뚝하고, 외숙모는 너무 가볍다. 제발 중간지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없다.
‘인생…’
그래도 조금, 아주 조그마한 희망을 가지자면 나도 제국법으로는 성인이라는 것. 설마 아무리 외숙모라도 성인인 조카의 볼을 물고 빨겠나. 외숙모도 공작으로의 체면이 있다면─
아니, 사실 체면이 있다면 애초에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닐 것 같기는 한데.
그렇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외숙모를 피할 방법을 찾는 사이, 침대 옆 탁자에 뒀던 통신구가 반짝였다.
‘뭐지?’
뜬금없는 연락이라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 시간에 연락을 할 사람은 없는데?
그래도 밤 중에 연락을 한 걸 보면 중요한 용무일 테고, 설령 중요한 용무가 아니어도 상대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에리히입니─”
– 쟈근죠카아아아아아!
고막에 곧바로 꽂히는 것 같은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하필 외숙모 생각 중에 외숙모한테 연락이 오네. 나한테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힘이 있었나?
– 이 외숙모! 감동해써! 우리 쟈근좃캬, 이 외숙모하테 열락할려고 해따며?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