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16)
“외숙모 눈에는 아직 애인 것 같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지. 부모가 보기에 자식이 언제나 애인 것처럼 조카라고 다를 건 없으니까.”
즉 현명공과 에리히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는 저 과한 애정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말. 두렵기 짝이 없는 말이다.
‘힘내라.’
슬슬 뽀뽀를 넘어 볼을 빨리고 있는 에리히, 차마 짝사랑 상대의 외숙모 겸 공작을 밀어내지 못해서 어쩔 줄 모르는 세라, 같은 공작의 기행에 이마를 짚은 마종공. 계속 저쪽에 시선을 두면 내 멘탈도 손상될 것 같아 시선을 거두었다.
버텨라, 에리히. 네가 현명공을 계속 잡고 있어야 내가 산다.
“원, 너도 참. 여기까지 왔으면서 왜 숨는 거니?”
“예?”
그리고 난데없는 말에 다시 외숙부를 쳐다봤다.
“수, 숨은 거 아니에요.”
아래쪽에서 들리는 앳된 목소리에 금방 고개를 숙였지만.
그제야 외숙부 뒤에 딱 붙어 고개만 내밀고 있는 여아가 보였다. 외숙부를 닮은 갈색 머리에 현명공을 닮은 황금색 눈. 하지만 흐리멍덩한 취기만 보였던 현명공과 달리 똘망똘망하게 빛나는 눈동자.
…아.
‘얘가 소공작인가?’
직접 본 것은 처음이라 긴가민가하지만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부모의 특징을 제대로 물려받은 데다 외숙부한테 붙어있을 수 있는 아이면 소공작밖에 없지.
‘아직 애였네.’
조금 민망하다. 업무로 바빠서 강제 히키코모리가 된 칙칙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그냥 한창 커야 할 어린애였다. 외사촌 나이도 모르다니, 내가 진짜 친척들한테 관심이 없기는 하구나.
그렇게 멍하니 소공작을 내려다보니, 낯선 사람의 눈빛에 몸을 떨던 소공작이 당차게 외숙부 앞으로 나와 인사를 건넸다.
“살론 공작가의 릴리아나 살론입니다. 명성 높은 감찰부장을 보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평범한 인사에 살론 공작가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바짝 들어 내 눈을 피하지 않는 당돌함, 나이에 비해 또박또박한 발음, 제법 예의를 갖춘 정상적인 어투, 당연한 말이지만 누군가와 달리 취하지 않은 모습.
결정적으로 낯선 환경, 낯선 인물과의 인사가 무서운지 간헐적으로 몸을 떨면서도 최대한 담담함을 연기하려는 모습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기적이다.’
그 현명공에게서 이런 정상적인 딸이 나온 사실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물론 현명공 자체가 살론 공작가 내에서도 희대의 돌연변이에다 외숙부의 피도 섞였지만, 돌연변이의 유전자가 강력해서 자식에게도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좀 있었으니까.
“반갑습니다, 소공작. 크라시우스 백작가의 칼 크라시우스입니다.”
아무튼 어린 꼬마가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하여 정중히 악수를 청했다. 높이를 맞추기 위해 살짝 무릎을 구부리자 움찔하는 것이 보였지만, 애써 못 본 척했다.
말투를 보니 성숙한 티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였으니까. 여기서 애 취급하고 배려해주면 토라질 미래가 뻔하지.
“사촌 오빠가 상냥해서 다행이구나. 리리가 혼자라 걱정이 많았는데, 앞으로 든든하겠어.”
그러나 내 배려가 무색하게 외숙부는 소공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누가봐도 애 취급하는 기색에 소공작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떨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야 뭐, 애가 노는 장단에 잠깐 맞춰준다고 치지만 외숙부 입장에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딸이지 않나. 아마 이 애가 스물, 서른이 되더라도 외숙부 눈에는 귀여운 아기에 불과하겠지.
‘에리히 여자 버전.’
그렇게 생각하니 짠했다. 심지어 얘는 현명공하고 같이 살잖아. 볼이 남아나지를 않겠네.
‘아.’
얘 운다.
히끅거리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서글프게 울려 퍼졌다.
“나, 나… 처음으로, 흐윽─ 오빠들 봐서어… 잘 보이려, 고, 흐끄윽─ 한 건데에에에…”
소공작의 하소연에 외숙부는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소공작의 등을 토닥였다. 히끅거리는 소리가 뒤섞여 알아듣기 난해했지만, 대충 ‘당당하고 기품 있는 소공작 데뷔.’가 순식간에 ‘오빠들에게 인사하는 동생.’ 으로 전락해서 서러운 모양.
어쩐지 굳이 나를 감찰부장이라고 부르더라. 처음에는 어디서 내 직책을 주워 들었나 싶었는데, 혈연으로 치면 자기가 동생이니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거였구나.
‘애 맞네.’
목 끝까지 치솟은 말을 도로 삼켰다.
“흐이이잉… 리리이이이… 그러케 울면 이 엄마도 마으미아파아아…”
외숙부의 품에 안겨 훌쩍이는 소공작에게 현명공이 다가갔지만, 소공작은 필사적으로 현명공의 손길을 피했다.
이상하다. 분명 울린 건 외숙부인데 피하는 건 현명공이네. 쟤도 현명공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아는 건가…? 진짜 집에서 볼이 혹사당하는 모양이다.
“레이디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레이디를 아이로 취급하는 건 아무리 부모여도 실례죠.”
아무튼 작은 여아가 만든 소란을 따뜻한 눈으로 보고 있던 마종공이 입을 열었다. 어린애가 레이디 흉내를 내고 있으면 부모가 거기에 맞춰줘야지, 너무 귀엽게만 여기면 곤란하다는 충고.
“하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각하 덕에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군요.”
그 충고에 외숙부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소공작이 이렇게 서럽게 울 줄 알았다면 외숙부도 장단은 맞춰줬을 터.
그런데 하필 마종공이 나이 얘기를 하니 기분이 묘하다. 레이디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 어린아이도 레이디라는 거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100이 넘어도 레이디─
“으잉? 쟈기! 왜 마죵공하테 존대써?”
현명공의 말에 상념이 끊기고 말았다.
‘무슨.’
당혹감이 몰려왔다. 외숙부가 마종공한테 존대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오히려 마종공이 외숙부에게 반말을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공작의 배우자라는 걸 존중해서 상호 존대로 가는 건데…?
“마죵공~ 이제 우뤼 죠카며느리자나! 죠카며느리한테 존대쓰눈사라미 어디써!”
순간 귀를 의심했다. 외숙부의 눈이 커진 걸 보니 아마 외숙부도 같은 심정일 터.
아니, 그야 마종공이 내 연인이면 현명공과 외숙부 입장에서는 조카며느리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말을 놓는 건 좀.
‘…아닌가?’
생각해 보니 마종공은 가주와 어머니가 말을 편하게 하는 걸 은근히 바라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를 조카며느리라고 부르는 사람이 생기면 오히려 기뻐할 것 같긴 하다.
‘아니네.’
그리고 그 생각은 마종공의 표정을 보자마자 접고 말았다. 졸지에 저격을 당한 마종공은 굉장히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물론 마종공 입장에서 시어머니의 오빠 되는 사람이 자신을 편히 대하는 건 고무적인 소식이다. 그러나 그 오빠의 부인이 현명공인 걸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도 없는 일.
외숙부에게 반말을 허락하면 현명공에게도 허락해야 한다. 그렇다고 아예 금지하자니 영원히 외숙부에게 존대를 강요하는 상황이 된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필연적으로 잃어야 하는 기막힌 밸런스.
“헤헿. 죠카며누리~ 아프로 편하게 대해두대?”
“…….”
그 말에 마종공은 희대의 난제를 목도한 수학자의 표정을 지었다.
외숙부의 중재로 현명공이 마종공의 볼을 빠는 참사는 피했다. 외숙부가 없었으면 그 지경까지 갔을 확률이 높으니 제국의 평화는 외숙부가 지키고 있는 게 아닐까.
“아직 정식으로 부부가 된 것도 아닌데 벌써 편히 대하는 건 예의가 아니야.”
“히잉, 아라써…”
그 중재도 시간 벌이용 중재에 불과했지만, 아무튼 당장 참사가 터지는 건 막았으니 됐다.
“아 마따! 죠카!”
그래서 슬슬 헤어지려고 했는데, 최후의 순간까지 현명공이 입을 열었다.
“이쟤 어디 갈꺼야?”
“이왕 온 김에 보호 구역을 둘러보려고 합니다.”
다행히 평범한 질문이라 무난히 대답─
“그럼 우뤼 리리랑 가치노라줘!”
그렇게 말한 현명공은 외숙부 뒤에 찰싹 붙어있는 소공작을 들어 올리더니 나한테 내밀었다.
…
“예?”
“귀여운 리리~ 매애애앤날 방애서 책만일꾸… 이 외숙모 걱쩡대!”
아니, 건전하고 좋은 취미인데 그게 왜. 애초에 당신이 남을 걱정할 입장이냐.
“그런대 마침 든든하안~ 우리 죠카랑 죠캬며누리들도 이쓰니! 안심하구 맛낄수 있자나!”
그 말에 소공작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리리도 바깥 경험을 할 때가 되기는 했지.”
소공작이 유일하게 믿었을 외숙부의 배신에 떨림은 어느새 절망 수준으로 변했다.
그만해, 얘 또 울겠다.
아무리 사촌이라고 해도 열 살 꼬마를 낯선 사람들 사이에 던지는 건 너무하잖아.
홀로 남겨진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갈색 병아리를 보자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진짜 가버렸네.’
현명공의 제안과 외숙부의 지지로 인해 소공작은 순식간에 버려졌다. 아니, 공식적으로는 사촌들에게 맡겨진 거니 버려진 건 아니지만, 소공작 입장에서는 버려진 것과 다를 바 없으리라.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촌이면 남하고 다를 게 없잖아.
잔인한 일이다. 방에서 책을 읽는 걸 좋아하는 열 살 아이를 야생에 던지다니. 혹시 살론 공작가에서는 사자식 육아를 선호하는 건가? 그런데 정작 사자도 자기 새끼는 애지중지하는데.
“소─”
“흐이잇…”
일단 배신감과 절망감에 찌들어있을 소공작을 위로하기 위해 슬쩍 입을 열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서글펐다. 안 그래도 떨리던 몸이 더욱 진동하며 움츠러든 모습.
“솔직히 형 무표정일 때는 나도 무서워.”
‘망할.’
그리고 옆에서 에리히가 속삭이는 말에 비참함이 얹어졌다.
고의로 인상을 쓴 것도 아닌데 무섭다는 평을 다 듣네. 이게 디폴트 표정인데 너무한 거 아니냐고.
“소공─”
“흐으읏…!”
하지만 소공작에게 손을 뻗은 에리히에게도 같은 반응이 돌아오자 비참함 대신 흐뭇함이 몰려왔다. 나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다 무서워하는 거구나. 안심했다.
그러나 공평한 두려움보다는 차라리 나만 무서워하는 게 좋을 수도 있었다. 사촌 동생을 보살피는 것도 접촉이나 말을 거는 게 가능할 때 일이지, 둘만 있는 사촌이 나란히 공포의 대상이면 어떻게 보살피겠나.
‘어쩌지 이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지켜봐야 하나? 아니, 그러면 소공작이 패닉에 빠질 수도 있다. 무서운 사촌이 눈 앞에 있는 것과 그 사촌마저 사라지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니.
“처음 보는 사촌이라 많이 낯선 것 같네요.”
나와 에리히가 어색한 시선 교환을 하는 사이, 그 광경을 보던 마르게타가 살포시 웃으며 다가왔다.
소공작은 갑자기 다가오는 마르게타에게도 경계심을 보였지만, 다행히 나와 에리히에게 보였던 처량한 떨림보다는 양호한 반응이었다. 씁쓸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소공작 입장에서도 칙칙한 남자보다는 화사한 여자가 덜 무섭겠지.
“반가워요, 릴리아나 공녀. 바렌티 공작가의 마르게타 바렌티라고 해요.”
아무튼 마르게타는 소공작 앞에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춰졌다.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미는 모습이 아이를 돌봐주는 어린이집 교사 같다면 기분 탓일까.
“고, 공녀 아니에요. 소공작이에요…”
“어머, 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