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18)
“올해로 백스물… 하나, 입니다.”
“아가 맞네!”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내 얼굴을 다시 격하게 만지기 시작하는 지인.
그 눈빛은 소공작을 보던 아이들의 눈빛과 흡사했다.
***
류티스의 사탕을 시작으로 라테르의 아이스크림, 타니안의 초콜릿, 아인테르의 초코 쿠키 등. 온갖 간식이 소공작에게 헌납됐다.
조공품이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환하게 웃는 소공작. 그 해맑은 미소에 일행들의 표정도 녹아내렸다. 제발, 제발 너는 이대로 자라주렴. 사춘기 때 흑화라도 하면 살론 공작가는 물론 제국이 비탄에 빠질 거야…
‘뭐지?’
그리고 그제야 이변을 눈치챌 수 있었다. 수십에 이르는 엘프들이 한곳에 몰려있는 모습. 심지어 우리가 구경했던 상점에 있던 엘프들도 우리를 지나쳐 그 엘프 밀집 구역으로 향했다.
진짜 뭐지. 싸움이라도 났나? 아니, 싸움이라고 하기에는 딱히 흉흉한 분위기는 아닌데?
‘하필 없을 때.’
엘프들이 집결하는 이상 사태. 동족과의 만남을 은근히 기대하던 마종공이 기뻐할 소식이지만, 정작 마종공은 자리를 비운 상태다.
일행들의 관심이 소공작에게 쏠렸을 때 마종공은 이종족 보호 구역에서만 파는 마법 재료가 있는지 확인하겠다며 독자 행동에 돌입했다. 사실 확인을 명분으로 동족을 만날 기대에 가득 찬 것 같아서 순순히 보내줬지만, 정작 마종공이 사라진 사이에 엘프들이 모일 줄 알았으면 잡아둘 걸 그랬다.
그래도 어쩌겠나. 아쉬워해도 사라진 사람이 돌아올 일은 없으니, 다른 사람이 대신 확인해야지.
“루이제. 나 잠깐만 구경 좀 하고 올게.”
그래서 옆에 있던 루이제에게 밀집 구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네. 다녀오세요.”
갑자기 혼자 움직인다는 말에 의아해하던 루이제도 엘프들이 옹기종기 모인 모습에 바로 납득했다. 저 모습은 누가 봐도 흥미가 갈만하지.
오히려 흥미로움 MAX인 광경에 루이제도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결국 혼자 움직였다. 싸움이 아니어도 부정적인 이유로 모인 거라면 단체로 구경하기 곤란하지 않나.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혼자 확인하는 게 낫다.
그리고 혼자 움직인 걸 진심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세상에, 정말 딸이야? 마법으로 장난치는 거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닮았지?”
“머리카락 좀 봐. 아리아드네가 저러고 다닐 때는 웃기기만 했는데, 어린애가 저러니 귀엽다.”
“다들 그만 만져! 애가 겁 먹으면 어쩌려고!”
한 엘프를 둘러싸고 호들갑을 떠는 엘프들. 마치 소공작을 둘러싼 부원들의 모습 같아 웃을 뻔했지만, 둘러싸인 엘프가 굉장히 낯이 익는 엘프다.
‘아니 뭔.’
마종공이다. 평소와 달리 바닥을 향한 귀, 딱딱하게 굳어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이 낯설지만 분명 마종공이다.
“아, 아가!”
‘아.’
무수히 많은 엘프들의 손길에 시달리던 마종공은 멍하니 있던 나를 발견했는지 절박하게 불렀다. 그러자 마종공을 둘러싼 엘프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는 건 당연한 일.
“아가? 얘, 혹시 저 애가 네 아들이니!?”
“세상에 세상에! 이제 백 조금 넘은 애가 아들까지 있다고?”
“아리아드네가… 벌써 할머니…? 걔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나는 대체…”
호칭으로 인한 사소한─ 아니, 치명적인 오해가 생겼다.
“작은 아가! 너도 이리 와보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덮치는 무수한 손길을 볼 수 있었다.
이게 뭐야 대체.
질문자는 수십이지만 아군 없이 홀로 답변해야 하는 쓸쓸함. 청문회를 경험한 적은 없지만 대충 이런 분위기일 것 같다. 다행히 나도 기억 안 나는 과거가 소환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아, 연인이라고?”
“아가라고 불러서 괜히 오해했잖니.”
거기다 오해도 빠르게 풀려서 분위기는 금세 풀어졌다.
“작은 애와 더 작은 애가 연인…”
“어쩜, 너무 귀엽다…”
그런데 이렇게 애 취급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청문회가 더 좋지 않을까? 나이 때문에 무시당하는 건 익숙하지만 이런 대접은 처음인데.
미칠 것 같다. 백이 넘은 마종공과 결혼 적령기 끄트머리에 걸쳐있는 내가 사이좋게 애 취급당하는 상황. 정신적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소공작, 네가 이런 기분이었니…? 다시는 애 취급하지 않을게. 미안하다.
“그런데 아리아드네는 어디 있니? 아무리 의젓한 애들이라도 그렇지, 애들만 돌아다니게 두면 어쩌자는 거야.”
그 와중에 한 금발 엘프가 팔짱을 끼며 말하자 마종공이 흠칫 몸을 떠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응? 너희만 두고? 걔도 참, 여기까지 왔으면 얼굴이라도 비추지.”
아쉽다는 기색이 역력한 엘프의 말에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그거 집에 돌아갔다는 말이 아니야.
“에넨의 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마종공의 대답에 소름 끼치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 그, 저어…”
다행히 탈룰라는 종족을 초월한 힘이 있다. 혹시 장수종들은 인간들과 사고방식이 달라서 죽음에 초탈했나 걱정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리아드네가, 떠났다고?”
그러나 저 금발 엘프 입장에서 마종공의 모친은 친구. 소식이 없던 친구가 갑자기 죽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괜찮을 사람은 없다.
그 충격은 다른 엘프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다들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인간에 비유하면 고등학교 졸업 후 소식이 없던 동창이 30대나 40대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기분일까? 감도 잡히지 않는다.
“저, 저기. 아가, 대체, 언제…?”
한 적발 엘프가 매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엘프들 입장에서 꼬꼬마인 마종공에게 ‘네 어머니 언제 죽었니?’ 라는 말을 묻는 건 망설여지겠지만, 그래도 친구가 언제 떠났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적어도 자기들 모르게 떠난 친우를 기리기 위해, 어쩌다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아야 한다.
“1277년 여름에─”
마종공의 말은 완성되지 못한 채 끊겨야 했다. 그 말을 듣던 적발 엘프가 와락 껴안았으니까.
눈물을 흘리며 마종공을 꽉 껴안고, 손으로는 등을 토닥이는 모습은 영락없이 우는 아이를 달래는 모습이었다. 정작 우는 건 엘프인데.
“101년 전? 저 아이, 이제 백스물 하나라고 하지 않았어?”
“스물이면 한창 사랑받을 나이인데, 어쩜 좋아…”
“아리아드네는 어떻고. 그런 핏덩이 같은 아이를 두고 눈을 감는다면 무슨 심정일지.”
순수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대화. 그러나 그 대화를 듣는 내 머리는 새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인간과 엘프의 수명 차이가 상당해서 인식 차이도 심각할 거라는 건 짐작했는데, 그게 이 정도였다고? 스물을 부모 품에서 애교 부릴 꼬마로 취급할 정도로?
‘미친.’
혼란스럽다. 심지어 엘프가 인간에 비해 느리게 자라는 것도 아니다. 순혈 엘프도 스물이면 육체적으로 장성한 나이 아닌가? 그런데도 애 취급을 해?
물론 내가 엘프들의 사회에서 산 것도 아니니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지만.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가장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엄마가 잃고, 그렇게 백 년을 홀로 살고…”
아무튼 눈물 섞인 위로에 마종공도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야 마종공이 이런 위로를 받을 일이 있었겠나. 마종공을 사랑하고 아껴줄 부친은 모친보다 먼저 떠나고, 모친도 부친을 따라가듯 병으로 쓰러졌다.
친구? 친구가 어른의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다. 가신? 정말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면 감히 공작을 동정하고 위로하지 못한다. 설령 가능했다고 해도 그 친구와 가신마저 마종공보다 먼저 죽었을 터.
결국 난생처음 겪는 어른들의 위로에 마종공도 조용히 엘프를 껴안았다.
관광객들이 찾는 상업 지구. 그 상업 지구에서 수십의 엘프가 한곳에 모여 있는 걸로도 시선을 끌기 충분한데, 다들 울적한 얼굴로 눈물을 흘린다? 도저히 외면하려고 해도 외면할 수 없는 광경이다.
“스, 스승님…?”
거기다 이미 루이제는 내가 엘프들 사이에 간 걸 아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엘프들이 훌쩍이기 시작하니 얼마나 당황했겠나.
그렇게 일행들을 끌고 다가온 루이제는 수십의 엘프들에게 토닥임과 둥개둥개를 받는 마종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 루이제.”
그리고 그런 루이제를 민망한 얼굴로 맞이하는 마종공. 스승의 위엄이 꺾일 위기였지만, 다행히 마종공의 위엄은 드높고도 드높기에 버틸 수 있었다.
“어머. 우리 아가 친구들이니?”
아닌가? 못 버티려나?
“인간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친구들도 사귀고, 기특하네.”
“그래? 난 애가 너무 빨리 철이 든 것 같아서 슬픈데.”
엘프들의 연이은 추가 대미지에 조용히 눈을 감고 말았다.
인간 사회에서는 최연장자이자 마법의 정점으로 존경받는 존재가 가여운 꼬마로 취급받는 세상이라니.
‘…보호 구역이라 다행이다.’
만약 엘프들이 보호 구역이 아닌 대륙 곳곳에 퍼져 있었다면 무슨 일이 터졌을지 두렵다.
다행히 마종공의 존엄과 명예는 지킬 수 있었다.
“세상에, 이 애 좀 봐. 엄청 작아.”
“태어난 지 얼마 안 됐나 봐. 귀엽다.”
애(백 살 넘음)을 능가하는 진짜 애(열 살)이 등장했으니까. 인간이 시고르자브종 강아지를 보면 귀여워하듯, 이 엘프들도 인간 아이가 등장하니 뜨거운 관심과 환호를 쏟아냈다. 다른 종족의 아이라는 건 귀여움 앞에 문제가 되지 않는 법이다.
“얘, 이거 먹어보겠니?”
마르게타의 손이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잡은 상태로 떨고 있는 소공작.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금발 엘프는 거대한 솜사탕을 소공작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분홍색 솜덩어리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 소공작은 황급히 표정을 가다듬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소공작 기준으로 가다듬은 거지, 다른 사람들 눈에는 거기서 거기였다.
“저, 전 살론 공작가의 소공작, 릴리아나 살론이에요! 꼬마가 아니에요!”
아무도 꼬마라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고, 소공작이나 되는 애가 처음 보는 엘프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하는 것부터 동심이 넘쳐흐르는 모습이다. 소공작만 그런 사실을 모른다는 게 안타까울 뿐.
아무튼 그런 소공작을 귀엽다는 듯 보던 금발 엘프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소공작님. 앞으로 이 땅을 다스리실 분에게 무례했네요. 사과의 선물이니 받아주시겠어요?”
인간도 아닌 이종족의 존대, 장차 이 땅을 다스릴 분이라는 립서비스. 덕분에 분기탱천하던 소공작의 기분은 급속도로 풀렸다. 심지어 탐스러운 분홍색 솜덩어리도 사과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했으니 기쁘겠지.
그렇게 반짝이는 눈으로 솜사탕을 입에 문 소공작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린 사이, 마종공을 끌어안았던 적발 엘프가 슬쩍 입을 열었다.
“우리 말고 다른 엘프들은 만났니?”
그 말에 마종공은 고개를 저었다. 공식적으로 제국 영토에서 이종족이 거주하는 곳은 보호 구역이 유일하고, 마종공이 보호 구역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 당연히 다른 엘프들을 볼 기회가 없었다.
“아니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라파엘라 님도 못 봤겠구나.”
그러고는 적발 엘프는 고민에 빠진 것처럼 턱을 매만졌다.
‘라파엘라가 누군데.’
고민하는 것도 좋지만 그게 누군지부터 말해주는 게 순서 아닐까. 마종공도 누구를 말하는지 몰라서 눈만 깜빡이고 있잖아.
그래도 본인의 실수를 알아챈 듯, 잠시 말이 없던 적발 엘프는 금세 입을 열었다.
“네 외할머니란다. 우리 엘프들의 대표인 장로님이기도 하고.”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