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22)
춘추전국시대처럼 난립했던 신 중 콘스탄티나라는 신은 초목의 신으로 숭배받았고, 엘프 종족의 어머니이자 세계수를 엘프들에게 하사한 신이기도 했다. 본인의 세력을 확장하기보다는 자연과 엘프들을 보듬은 온화한 신.
덕분에 에넨이 종교 승리를 찍어가는 과정에서 먼저 고개를 숙였고, 평화로운 승리로 인해 여명 교단에서도 콘스탄티나와 엘프에 관한 전통은 존중하며 윈-윈 관계가 되었다. 오죽하면 여명 교단도 세계수는 신의 유산이라며 아꼈을까.
“그 세계수를 통해 엘프들과 소통한 존재들이 정령과 요정입니다.”
요정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흥분한 타니안은 듣는 사람의 기가 질릴 정도로 설명을 쏟아냈다. 궁금한 내용이라 망정이지,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내용을 저 기세로 말했으면 도망쳤어.
“정령들은 세계수를 문으로 삼아 정령계에서 인간계로 나올 수 있었고, 요정들은 세계수의 가지에서 태어나 세계수를 집으로 삼았습니다.”
아무튼 타니안의 말에 따르면 세계수는 신의 축복이며, 세계수가 있던 시기는 신을 섬기는 생물이 인간들과 공존했던 아름다운 시대라고 한다.
확실히 사제들 입장에서는 신이 남긴 나무를 통해 신과 가까운 생물들과 공존할 수 있다면 꿈같은 일이기는 할 거다. 신의 존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니.
그런데─
“세계수는 예전에 불타지 않았나?”
“…….”
라테르의 말에 기쁜 듯 입을 열던 타니안이 침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펠스 말기에 화려하게 불탄 세계수. 비록 에넨이 아닌 다른 신이 남긴 유산이라지만, 여명 교단 입장에서는 평화롭게 패배를 인정한 신이 남긴 유산이기도 하다.
즉 여명 교단의 승리와 관용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한데, 그걸 아펠스 제국이 불태워버렸다. 덕분에 당대 교황이 아펠스 황제에게 파문을 날렸다지. 신성교국이 아펠스를 멸망시킨 크펠로펜에 우호적인 이유기도 하고.
“그 만행으로 인해 정령들은 인간계에 나타나지 못하고, 요정들도 터전을 잃어 멸종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게 말한 타니안은 자신의 어깨에 매달린 요정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러자 타니안의 손가락을 붙잡고 볼을 부비는 요정.
전설 속 존재의 애정 표현에 타니안의 표정이 급격히 녹아내렸다. 작아서 그런지 귀엽기는 하네.
“잘 알고 있구나.”
그리고 잠자코 듣고 있던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수가 불타며 정령들은 모습을 감추고, 요정들은 터전을 잃었단다. 그날 이후로 새로운 요정들은 태어나지 못했지.”
요정을 바라보는 장로는 마치 자연재해로 집을 잃은 고아들을 보는 표정을 지었다. 안타까움과 측은함이 가득한 표정.
“원래라면 저 아이들도 쓰러지는 것이 맞지만, 다행히 임시 터전을 만들 수 있었단다.”
“세계수를 재현했다는 겁니까?”
손가락으로 요정들과 놀아주던 타니안이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만약 세계수가 다시 생겼다면 놀라운 일이기는 하─
“정령이 문으로 삼지도, 새로운 요정들이 태어나지도 못하니 재현이라고 하기는 부끄러운 수준이지. 딱 남아있는 요정들이 살아갈 수 있는 수준이야.”
단호한 대답에 다시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신이 준 선물을 필멸자가 만들 수는 없겠지. 당연한 일이다.
“신께서 남기신 성물을 나무에 붙여서 억지로 세계수 흉내를 내고 있지. 부족한 신성력으로 겨우 버티던 아이들이니, 신의 기운이 짙은 사람이 반가울 수밖에.”
구체적인 사연을 들으니 타니안에게 붙어있는 요정들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고아원에서 배부르게 먹지 못하던 애들이 음식 기부를 온 어른을 환영한다는 말 아닌가.
‘불쌍하게도.’
이게 다 아펠스 때문이다. 애꿎은 세계수는 왜 태우고 난리야.
타니안과 장로의 설명이 끝나자 요정들을 보는 일행의 눈빛이 급격히 온화해졌다. 생긴 것도 작고 귀여워서 호감을 사기 쉬운데 비운의 과거도 있다? 감수성을 자극하기 딱이다.
하지만 요정들은 아무에게나 손을 허락하지 않았다. 성자인 타니안의 손길에는 환장했으나, 신성력도 없는 일반인의 손길은 이리저리 피해 다닐 정도로.
“저는 싫은가 봐요.”
덕분에 요정에게 거부당한 루이제가 풀이 죽었지만 어쩌겠나. 사실 인간 때문에 봉변을 당한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
─라고 위로하려고 했다.
“응? 으으응?”
요정 하나가 내 근처에서 얼쩡거리기 전까지는.
루이제의 손길을 새침하게 피한 요정은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정작 손을 뻗으면 피하고, 손을 거두면 다시 다가오더라.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하고 밀당하는 것도 아니고.
“오라버니는 좋아하는 건가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부럽다는 듯 중얼거리는 루이제에게 살짝 고개를 저었다. 좋아했다면 타니안처럼 달라붙었겠지, 이렇게 거리만 재겠나.
그렇게 한참이나 주위를 맴돌던 요정이 나를 가리키며 외쳤다.
“하늘 아줌마! 하늘 아줌마!”
?
‘아줌마?’
혼란스럽다. 혹시 요정들은 성별을 바꿔 부르는 버릇이 있나?
그러나 의문을 풀기도 전에 요정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아줌마? 아줌마?”
“진짜? 진짜?”
“나, 아줌마, 오랜만!”
좀 많이 꽂혔다.
타니안 근처를 맴돌던, 심지어 몸에 앉아있던 요정들까지 나에게 날아왔다. 갑자기 열이 넘는 것들이 달려오니 당혹스러울 지경. 아까 타니안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아줌마, 맞아. 진짜 아줌마 기운, 맞아.”
그리고 나에게 하늘 아줌마라고 했던 요정은 진작에 내 옷에 달라붙었다.
“아이들한테 인기가 많네요? 좋은 아빠가 되겠어요.”
“하하…”
누구도 예상 못한 상황이라 마르게타가 어색한 농담을 건넸다. 마르게타도 루이제처럼 요정을 만지려다가 실패했는데, 미약한 질투가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여기, 몸에, 있어. 아줌마 기운, 있어!”
그러거나 말거나 내 가슴팍을 툭툭 두드리며 칭얼거리는 요정.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었다.
온몸이 놀이터로 전락한 타니안과 달리 몸 쪽에만 관심을 보이는 요정들, 신의 힘에 민감한 요정들이 하늘이라고 언급하는 걸 보면─
‘영원한 푸른 하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다. 내가 신과 연관이 있는 건 그거밖에 없다.
‘아줌마…’
영원한 푸른 하늘, 여신이었구나. 하늘의 신이 여성체인 건 조금 의외네. 대충 우라노스나 제우스 같은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편견이었다.
“아줌마 기운, 깃든 거 아니야. 뗄 수 있어.”
“머무는 기운, 머무는 기운.”
“가질까? 가질까?”
그 와중에 요정들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대화가 오고 갔다.
신의 기운을 뗄 수 있다고? 전문 사제가 치료하려다가 피만 토하고 끝난 일을?
‘진짜?’
상상도 못한 곳에서 찾아온 행운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긴, 요정이면 신과 밀접한 존재 아닌가. 일개 필멸자와는 급이 다르니, 필멸자가 하지 못한 일을 가뿐히 할 수도 있다.
“얘들아, 갑자기 무슨 소리니?”
인간을 피하는 요정들이 누가 봐도 사제가 아닌 사람에게 붙은 모습. 그 광경을 멍하니 보던 장로는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 황급히 다가와 요정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 하늘 아줌마 기운 있어, 우리, 가져갈 수 있어.”
그런 장로를 향해 떼를 쓰듯 재잘거리는 요정.
“그런데, 우리, 줄 거 없어. 엄마가,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대가를 주라고 했어.”
“우리, 아무 것도 없어, 전부 탔어.”
“엄마, 엄마 말 못 지켜. 엄마, 보고 싶어…”
“엄마, 엄마…”
“얘, 얘들아?”
그리고 투정이 어느새 엄마를 찾는 눈물로 변하자 장로도 어쩔 줄 몰라했다. 요정의 엄마라면 세계수거나 콘스탄티나라는 신을 말하는 것 같은데, 어느 쪽이든 만나기 힘든 것들이니까.
“저기.”
아무튼 졸지에 눈물을 터뜨리는 요정들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내가 얘네한테 엄마는 못 줘도 다른 건 줄 수 있다.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도 된다.”
그 말에 서럽게 울던 요정들이 눈을 동그랗게 쳐다보며 날개를 파닥였다.
“진짜? 진짜?”
“가져도 돼? 전부? 전부?”
“그래.”
진심이다. 오히려 내가 대가를 줄 수도 있으니 제발 가져가기만 해줘.
영원한 푸른 하늘이 용서해 주는 걸 기다릴 바에는 요정들한테 신세 지는 게 낫지.
오늘 처음 봤지만 오늘부로 요정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앞으로 요정과 나는 일심동체로, 요정에 대한 핍박과 괄시는 제국 감찰부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 반박할 경우 나와 결투다.
“고마워! 고마워!”
“하늘 아줌마 기운, 좋아. 우리 오랜만에, 배부를 거야.”
“착한 인간! 착한 인간!”
내 몸에 낙인처럼 남아있는 영원한 푸른 하늘의 기운. 가져갈 수 있다면 무상으로 가져가도 된다고 하니, 요정들은 내 근처를 빙글빙글 돌며 기쁨을 표했다.
심지어 몇몇은 내 머리카락에 매달리거나 어깨에 앉더라. 타니안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손길을 피하던 걸 생각하면 극상의 감사 표현 같다.
‘이렇게 착한 애들을.’
재잘거리는 요정들을 보니 아펠스에 대한 증오가 치솟았다. 이리도 순진무구하고 올바른 아이들을 멸종 위기까지 몰다니, 정녕 사람 새끼가 맞냐.
아펠스, 넌 멸망하는 게 마땅한 국가였다.
“저기, 칼? 하늘 아줌마의 기운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나 기쁨에 가득 찬 요정들과 달리 다른 사람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정황상 요정들이 나에게 깃든 신의 힘을 탐내는 것 같은데, 나는 사제는커녕 신실한 신도도 아니지 않나.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에서는 도저히 짚이는 것이 없을 터.
“북방에서 이교와 얽힐 일이 있었습니다. 유목민들은 하늘 신을 섬기더군요. 그걸 말하는 것 같습니다.”
슬쩍 가슴을 두드리며 말하니,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마르게타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게타는 예전에 상처를 봤으니 이 정도만 말해도 알아들었을 터.
“아, 네, 그런 거군요.”
상처를 떠올렸는지 잠깐 어두운 안색이었던 마르게타는 곧바로 표정을 가다듬으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상처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많은 만큼 길게 끌기에는 곤란한 주제기는 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마르게타만 납득했을 뿐이지,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의문인 얼굴이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요정들이 해결해 줄 것 같구나.”
마종공이 은근슬쩍 대화가 이어질 여지를 차단했다. 저렇게 결론을 내려버리면 더 캐묻기 민망하기는 하지.
그런 마종공을 향해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감사를 표하자 마종공도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