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23)
‘걱정 많았겠지.’
내 상처를 처음 본 건 마르게타가 아니다. 마종공이 마르게타보다 먼저 알았다.
대토벌 전쟁 이후 마종공과 연이 생겼고, 안면을 튼 김에 상처를 보여주며 치료가 가능한지 물어보기도 했다. 비록 다른 마법사들은 치료에 실패했지만 마법의 정점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으니까. 물론 불가능해서 지금까지 이러고 있는 거지만.
아무튼 마종공 입장에서는 자신도 지우지 못한 상처이자 연인의 몸에 남은 상처니 얼마나 마음에 걸렸겠나. 그런 상처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치유될 가능성을 보이니 기쁠 것이다.
“그럼! 그럼! 바로 가져갈게!”
“그래.”
그리고 그 기적적인 치유의 중심에 선 요정들. 두근거리는 기색이 역력하기에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사실 나도 두근거린다.
길고 긴 고통의 시간이었다. 영원한 푸른 하늘의 기운만 사라지면 상처는 그냥 평범한 상처가 되고, 마법이나 신성력으로 치유할 수 있다. 드디어 이 개 같은 상처하고도 안녕─
“옷, 거슬려. 옷부터 지우자.”
“그래, 그래.”
“지울게! 지울게!”
갑작스러운 말에 머리가 굳어버렸다. 애들아, 옷을 지우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그냥 이대로 가져가는 거 아니었어?
그러나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요정들의 날개가 반짝이더니, 상의가 점점 희미해지며 몸뚱아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과연. 완전히 벗기는 게 아니라 그냥 옷을 투명하게 만드는 거구나. 요정이라 그런지 신기한 마법을 쓰네.
“…….”
짧은 현실 부정을 끝내고 주변을 살피자, 당연하게도 만천하에 공개된 상처로 시선이 쏠렸다.
“아, 으, 어? 오, 오라버니…?”
그리고 파들파들 떠는 루이제를 보자마자 눈을 감고 말았다.
좆됐네 이거.
연인이 죄인으로 전락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오빠! 이, 이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빼액 소리를 치는 이리나.
“상처, 상처가, 저런 상처가 있는데,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패닉에 빠진 듯이 말을 더듬거리는 루이제.
“저런 몸으로 하늘을 갈랐다고?”
“아픈 기색을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여러 의미로 충격을 받았는지 빠르게 속삭이는 에리히와 류티스.
확실히 좆됐다. 최대한 숨기고 싶었던걸, 만약 공개하게 된다면 차근차근 순차적으로 공개하려고 했던 걸 너무 급작스럽게 까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옷이 서서히 희미해지는 걸 확인한 마르게타가 소공작의 눈을 빠르게 가렸다는 것. 열 살 아이가 보기에는 트라우마가 될만한 모습이니 정말 다행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만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라버니, 바다에서도 수영복이 아니라 평상복 차림이셨잖아요.”
루이제의 중얼거림에 이리나의 눈초리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거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구나. 사소한 것도 기억해줘서 고마운데, 지금은 몰랐어도 됐을 것 같다.
“두 분은 알고 계셨던 거에요?”
그리고 눈가를 닦은 이리나가 상대적으로 조용한 마르게타와 마종공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확한 지적에 둘이 움찔 몸을 떠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
“알기는 알았지만, 칼이 숨기는 일이니 제가 말하기 곤란했어요. 칼이 직접 말하는 게 옳은 것 같았어요.”
“상처가 크니 걱정하는 마음은 알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니란다. 고의로 상처를 자극하지만 않으면 생활에 지장이 없어.”
졸지에 함구를 한 꼴이 되어버린 마르게타와 마종공이 급히 사정을 설명했지만,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도 함구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루이제와 이리나의 안색은 여전히 어두웠다. 연인의 상처를 지금까지 몰랐다는 것에, 심지어 전부 모르던 것도 아니고 자기들만 몰랐다는 것에 충격이 큰 모양.
“오라버니가 아프신 줄 알았다면, 귀찮게 굴지 않았을 텐데… 반 대항전 때도 귀찮게 하고, 놀라갈 때도 끌고 다니고, 다른 일도 부탁하고…”
죄책감 가득한 루이제의 말에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나 그 정도로 환자는 아니야.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지만 않는 거지 생활에는 문제없어.
“인간, 우는 것 같아.”
“어쩌지? 어쩌지?”
“우리, 잘못했어?”
“엄마, 엄마…”
그 와중에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내 근처를 맴돌던 요정들은 내 머리카락에 숨어 오들오들 떨었다. 마치 자기들 때문에 사람들이 슬퍼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아니야, 너희는 잘못 없어. 내가 일을 이상하게 처리해서 그래. 다 내 업보야.
“그, 얘들아.”
그렇기에 용기를 내서 입을 열자 눈물 섞인 시선이 따가울 정도로 꽂혔다. 솔직히 조금 쫄았다.
“편하게 말하기 곤란한 문제라 지금까지 말하지 못했던 거야. 숨기려던 건 아니고, 언젠가는 말하려고 했어.”
그래도 눈물 어린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들키고 나서야 뒤늦게 하는 변명 같기는 하니까.
하지만 진심이다.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뭐 그리 자랑이라고 당당히 밝히겠나. 최대한 괜찮은 타이밍에, 졸속 진행이 아니라 신중히 밝히려고 했지만 일이 꼬이고 말았다. 걱정을 주지 않기 위해 타이밍을 재다가 걱정과 서러움을 동시에 주고 말았다.
“호텔에 돌아가면 내가 다 설명할 테니, 지금은 봐주면 안 될까?”
결국 설득이 아닌 기묘한 타협점을 제시했다. 여기서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는 부원들과 소공작 같은 외인도 있고, 애초에 장소도 썩 편한 곳이 아니지 않나.
그리고 은근슬쩍 떨고 있는 요정들을 보여주니 루이제와 이리나도 겨우겨우 납득할 수 있었다. 우리 문제에 다른 사람도 눈치를 보는 건 원치 않을 테니.
“꼭 설명해줘야 돼요.”
“알았어.”
대신 우리끼리 있으면 그만큼 오래 시달릴 것 같지만, 타이밍 조절에 실패한 업보라고 생각하자.
“…이제 나와도 돼.”
“응. 알았어, 알았어.”
쭈뼛쭈뼛 머리카락에서 나온 요정들이 내 상처에 손을 대더니 빛을 내기 시작했다.
조금 씁쓸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밖에서 했을 텐데.
“응? 으응?”
“이상해, 이상해.”
그렇게 멍하니 요정들을 내려다 보니, 반짝이던 요정들이 불안한 말을 꺼냈다.
뭔데, 이번에는 뭔데. 여기서 뭔가 잘못되면 뒷감당을 하는 건 나라고. 계속 이러면 우리 일심동체 관계에서 평범한 지지 관계로 내려오는 걸 검토할 수밖에 없어.
“하늘 아줌마, 여기 있었어.”
?
“그게 무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앞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뭘 해도 꼬이는 날인 것 같다. 아니면 야매로 신의 힘을 빼려는 수작이 걸려서 벌을 받는 거거나.
그리고 매우 높은 확률로 후자 같다.
‘망할.’
온통 순백만이 보였다. 단순히 눈앞이 새하얀 수준이 아니라, 내 몸 자체가 새하얀 공간에 떨어지고 말았다.
혹시 텔레포트라도 당한 건가 싶지만, 어떠한 마나 이동도 느껴지지 않을 걸 보면 텔레포트는 아니다. 아니, 애초에 이게 공간이 맞는지도 의심스럽다. 내가 어딘가에 떨어진 게 맞나? 감각도 영 이상한데, 육체가 아니라 정신만 어디 이상한 곳으로 끌려온 건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이야, 드디어 만났네?”
내 몸에 붙은 요정도,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전부 사라진 상황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존재.
“필멸자하고 만난 건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짙은 청발을 허리까지 기르고, 머리색과 비슷한 청안을 가진 여성. 북방에서 지겹도록 본 유목민들의 복장을 입은 여성.
“이거, 반갑다고 해야 하나?”
가죽 부대를 들고 씩 웃는 여성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이거 좀 심각하게 일이 꼬인 것 같다고.
간혹 본능적 행동이 이성적 판단보다 앞설 때가 있다. 그리고 이성보다 앞선 본능은 대개 생존 본능.
그렇기에 머리를 굴리지 않고 본능에 따라 행동했다.
“죄송합니다.”
웃음기 가득한 여성이 말을 잇기 전에 선수를 쳤다.
지금은 상황 파악보다 숙이는 게 먼저다. 괜히 우물쭈물거리면 크게 꼬인 일이 심각하게 꼬인 일로 진화할 수 있는 법. 비록 여성이 누구인지 인사도 나누지 못했지만, 듣지 않아도 뻔하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모르면 그게 머저리지.
물론 말로만 하는 사과는 진정성이 없기에 빠르게 대가리를 박았다. 토종식으로는 석고대죄, 물 건너 언어로는 도게자. 이런 성의는 보여야 진심이 보이지 않겠나.
“아핫! 시원시원하네!”
고개를 숙여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낄낄거리는 웃음 소리를 들으니 그럭저럭 만족한 모양이다. 그 만족이 사과에 대한 만족인지, 다짜고짜 대가리를 박는 쇼를 보인 것에 대한 만족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고개는 들어. 힘들게 만났는데 얼굴은 보고 얘기해야지.”
“죄송─”
“됐으니까 들어.”
명령에 가까운 말에 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 지금까지의 반응을 보니 ‘이 불신자 새끼야!’ 라며 다짜고짜 죽이려는 것 같지는 않다. 최소한 입을 털 시간은 주겠다는 아량이 보인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마자 보인 건 여성이 막 가죽 부대를 입에 댄 모습이었다.
‘아닌가?’
괜히 불안해진다. 호쾌한 목 넘김을 보니 술이라도 마시는 것 같은데, 하필 그 모습을 보니 빙의 전에 봤던 모 사극이 떠올랐다. 대화를 하려고 고개를 들라고 한 게 아니라 목을 치려고 들라 한 건가?
두렵다. 입안에 머금은 술을 내 얼굴에 날아올까 두렵다. 죽는 것도 싫지만 술로 미스트하면서 죽는 건 더 싫어.
“크으! 너도 마실래?”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 하긴, 남쪽 애들 입에는 안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런 공포를 아는지 모르는지 한 번 술을 권한 여성은 거절당하자마자 부대를 비웠다. 제법 큰 부대였는데 한 번에 비우고, 말술이구나.
아무튼 첫 만남부터 음주를 과시한 여성은 딱딱하게 굳은 나를 보더니 픽 웃음을 흘렸다.
“이미 아는 것 같지만 처음 보는 거니 인사는 할게. 너희들이 영원한 푸른 하늘이라고 부르는 존재야. 나름 하늘 신이지.”
짐작했던, 동시에 아니기를 바랐던 사실이 밝혀지자 슬쩍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요정들과 투닥거리다가 만난 존재니 혹시 콘스탄티나라는 신은 아닐까─ 하고 현실 도피도 했었는데, 역시 아니었다.
“신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이미 영락한 신격인데.”
노성이 아닌 웃음기 섞인 대답이었지만 오히려 죽을 맛이었다. 그 영락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게 나니까.
미치겠다. 차라리 화를 내면 짐작한 재앙이니 겸허히 감당할 텐데, 이건 예상도 못 한 분위기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신을 만날 거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크흐, 미안해하는 거야?”
그렇게 적절한 대답을 뱉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자 영원한 푸른 하늘은 다시 웃음을 흘렸다.
“고맙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