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25)
“…부활?”
그 대답에 장로가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영원한 푸른 하늘의 말대로 움직이는 처지라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일이 잘 풀린다면 세계수가 300년 정도 만에 다시 부활할 거다.
요정들이 자기 힘을 떼가면 죽는다고 하소연하던 영원한 푸른 하늘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었다.
“요정들이 힘을 가져가면 신성력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머무를 곳이 사라지지만, 네 몸에 있는 신성력을 한곳에 몰아넣으면 버틸 수 있어. 너도 내가 몸 안에 머무르면 좀 그렇잖아.”
순순히 나갈 테니 도움 좀 달라는 말. 물론 내 입장에서도 회복을 막는 힘이 사라지고, 존재도 몰랐던 불법 세입자가 사라진다면 좋은 일이기는 하다. 내 몸에 신이 있다는 걸 알면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갈 것 같으니까.
유일하게 걸리는 점이 있다면 신의 힘을 얻을 생각에 희희낙락하던 요정들을 배신하는 건데─
“네 몸에 있을 때 보니까, 세계수 흉내 내는 나무가 있더라고. 거기에 넣어주면 책임지고 세계수로 만들게. 그럼 요정들도 좋아할 거야.”
“그게 가능한 겁니까?”
“아무 나무나 세계수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 그런데 그 나무에는 성물이 주렁주렁 달려있었어. 그 정도면 가능해.”
아무래도 세계수 부활을 꿈꾸던 장로의 노력은 헛된 노력이 아닌 것 같다.
하긴, 세계수를 터전으로 삼던 요정들이 아직까지도 살아있다는 건 나름 세계수 흉내에 성공했다는 뜻이니까. 정작 본인은 새로운 요정이 태어나지 않는 것에 씁쓸해하지만, 다른 엘프들이라면 현상 유지조차 불가능했겠지.
“세계수가 부활하면 정령들이 문으로 쓸 거고, 요정들도 다시 태어나고, 콘스탄티나도 엘프들과 소통할 수 있어. 그러면 세계수를 중심으로 신성력이 오고 갈 테니, 거기서 조금만 가져가도 신으로 살아가는 데 문제없지.”
당당하게 중간 수수료를 떼 가겠다는 말을 했지만, 다름 아닌 세계수가 부활하는 일이다. 아예 독점도 아니고 수수료 정도야 콘스탄티나도 엘프들도 용인할 터. 아니, 어쩌면 세계수 부활 영웅이랍시고 수호신으로 섬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원한 푸른 하늘이 부탁한 대로 장로의 집 옆에 있던 나무에 손을 댔고─
‘형광 나무?’
내 몸에 있던 상처가 한 번 빛나더니, 이윽고 나무 전체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직 환한 낮인데도 ‘아, 이거 많이 빛나네.’ 라는 느낌이 팍 올 정도로.
“어? 어어어어?”
“빛나! 빛나!”
“이거, 하늘 아줌마 기운. 그런데, 엄마 기운도 있어!”
“엄마, 볼 수 있어? 우리 집, 다시 생겨?”
“와! 와!”
그리고 나무가 빛나기 무섭게 요정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신과 연관 없는 내가 보기에는 그저 빛나는 나무일 뿐이지만, 신의 힘이 민감한 요정들에게는 다른 점도 보이는 것 같다.
“어머니의, 기운?”
“이건, 놀랍군요. 일개 생물에 이 정도의 기운이라니.”
게다가 진짜 세계수를 봤을 장로, 성자인 타니안조차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단순히 설레발이나 오해라고 보기에는 모든 정황이 세계수의 부활을 가리키고 있다.
솔직히 많이 놀랐다. 신이 한 말이니 대충 믿기는 했지만, 불법 세입자로 영락한 신이라 일말의 불안감 정도는 있었으니까. 요정들에게 죽기 일보 직전이니 일단 생이라도 연명하려는 발버둥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불안감. 다행히 신은 영락했어도 신인 것 같다.
“아가, 이게 어떻게 된 거니?”
이제는 나무에 달려있던 성물들도 반짝이기 시작하자 마종공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손을 대자 빛을 낸 나무, 동요하기 시작한 요정과 엘프, 세계수 부활 운운하던 대화. 이런 걸 실시간으로 직관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면 감정이 없는 사람일 거다. 엘프가 아닌 나조차 흥미로운 일인데 엘프의 피가 흐르는 마종공은 오죽할까.
“신이 빌붙었어.”
“으, 으응?”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다. 나도 원리를 모르는데 무슨 말을 하겠나.
“인간! 고마워! 고마워!”
“은인, 우리 은인!”
“엄마한테 꼭 얘기할게! 정령 아저씨랑 아줌마들한테도 얘기할게!”
그래도 나한테 달려와 매달리는 요정들을 보니 일이 잘 풀렸다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 나도 고마워, 덕분에 앞으로 편하게 살겠네.
봐라, 신마저 나한테 고마워 하─?
‘뭐야 시발.’
머리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움찔하고 말았다.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있어?
– 크흐, 신 면전에 욕을 한 건 네가 처음일 거야.
여전히 머리에 울리는 영원한 푸른 하늘의 목소리에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나간 거 아니었습니까?’
일단 생각을 읽는 것 같으니 머릿속으로 추궁했다.
나간다며, 내 몸에서 나간다며. 이건 나간 게 아니라 내 몸 밖에 멀티를 펼친 거잖아.
– 나간 거 맞아. 그런데 네 몸 속에 3년 정도 머물러서, 아직 잔재가 좀 남은 것 같은데?
그리고 추궁 끝에 돌아온 답은 상당히 미묘했다. 이사는 갔지만 아직 전에 살던 집에 생활 흔적은 남았다는 말인가? 그건 도대체 어떻게 치우는 거냐.
– 길어도 사흘이면 잔재도 사라질 테니 걱정하지는 마. 고작 잔재 따위가 오래 남을 정도로 내 힘이 강하지는 않거든.
다행히 추가적인 추궁을 하기 전에 알아서 설명해줬다. 본인이 약하니 금방 끝날 거라는 이상한 근거기는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 넘어갈 수밖에.
– 그리고 이 나무, 생각보다 상태가 좋더라. 늦어도 10년이면 세계수가 될 거야. 엘프랑 요정한테 10년이면 찰나지.
‘장로한테도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이것도 다행인 소식이다. 구체적인 소요 시간까지 알게 된다면 장로도 요정들도 기뻐할 거다.
– …아무튼 정말 고마워. 네가 믿는 신도 아닌데 이렇게 도와줘서.
그 말에 마땅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딱히 영원한 푸른 하늘을 위해서가 아닌 내 편의를 위한 일이었다. 설령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내가 한 건 나무에 손을 댄 것이 고작이니 힘들 것도 없었고.
만약 내 몸에 깃든 것이 신이 아니라 카간이었다면 도와주기는커녕 진지하게 자폭을 고려했겠으나, 신은 어디까지나 신이지 않나. 세속의 군주처럼 아랫놈을 부릴 권리나 책임질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신앙에 응답하며 그 자리에 머무는 존재.
그렇기에 신에게는 딱히 유감이 없다. 이 덤덤함이 신과 직접 멱살 잡이를 하며 싸운 게 아니라 그런 건지, 아니면 내 정신세계가 특이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 아, 잔재까지 사라지면 상처도 회복할 수 있어. 이제는 저주가 아니라 성흔이라고 부를 수 있겠네.
오.
– 물론 에넨의 성흔과 달리 능력은 없어. 자기 몸 간수하기 힘든 신한테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사실 조금 바라기는 했다.
조용했던 장로의 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란스러워졌다.
자체 발광하는 세계수(진급 예정)에 홀려 몰려든 엘프들, 10년 안에 세계수가 부활한다는 소식에 너그러움이 폭발했는지 인간인 소공작과 놀아주는 요정들.
“자,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히 있으렴.”
“아, 예…”
“혹시 차는 좋아하니? 선조 때부터 엘프들이 재배하는 찻잎이 있단다.”
“주신다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그리고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나를 보는 장로 덕분에.
분명 1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외손녀의 연인이지만 인간, 상종하기 싫은 종족이지만 예비 외손녀사위라는 애매한 입장에 놓인 처지였다. 장로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는지 중립적으로 대했고.
그러나 장로에게 10년 안에 세계수가 부활한다는 말을 전하니 중립은 순식간에 일심동체 관계로 떡상했다. 인간이 한 말을 너무 곧이곧대로 믿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직접 세계수를 본 엘프로서 뭔가 짚이는 것이 있나 보지.
“후후, 그래. 오랜만에 손님도 많으니 힘 좀 써야겠구나.”
아무튼 나와 일심동체가 된 장로인지라 같이 온 일행을 향해서도 지극히 온화한 태도를 취했다.
엘프 장로의 대접을 받는 인간이라니,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일이다. 이런 경험을 했다는 것 자체로도 수학여행을 온 보람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고작 여행 1일 차지만.
‘…1일.’
머리가 어지럽다. 분명 많은 일을 겪은 것 같은데 아직도 1일 차라고?
‘몇 주는 지난 것 같은데.’
내일부터는 제발 평범한 일정을 보냈으면 좋겠다.
엘프 주거 지구에 들어왔을 때는 의아함과 약간의 경계가 담긴 시선을 받았으나, 나갈 때는 극진한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생각나면 또 오렴! 은인들은 언제나 환영이야!”
“인간 사회에서 살기 지치면 꼭 와! 자연에서 사는 것도 재밌어!”
엘프의 상징이자 목숨과도 같았던 세계수. 비록 젊은 엘프들이 세계수를 향해 품은 감정은 상대적으로 희미한 것 같지만, 그래도 엘프의 본능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니 세계수의 부활 소식에 함께 기뻐하고 웃을 수 있는 거겠지.
“은인, 은인! 또 봐, 또 봐!”
“꼭 은인 얘기할게! 엄마한테 할게!”
“정령 아저씨랑 아줌마한테도!”
“어, 고맙다.”
세계수에 대한 애착이 적은 젊은 엘프들도 저러니 요정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 자기들의 집이자 엄마와 소통할 수 있는 세계수의 부활이 임박하자, 요정들은 내 몸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말하는 걸 보니 보호 구역 밖까지 따라올 생각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살라고 하고 싶지만, 인간 사회에서 공작이라고 하니 그럴 수는 없겠지.”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단다.”
슬쩍 시선을 돌리자 장로와 작별 인사를 나누는 마종공이 보였다. 121년 만에 만난 외조모와 몇 시간 만에 헤어지는 건 가혹한 것 같으나, 이 세계에는 통신구가 있으니 괜찮다.
앉은 자리에서 즉석으로 외조모 전용 통신구를 만든 마종공은 그걸 선물로 건넸고, 어린 외손녀가 친히 만들어준 선물에 장로는 감동한 듯 밝게 웃었다. 심지어 마종공은 텔레포트도 가능하니까 정 보고 싶으면 쓱 와서 바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지.
“트릭시를 잘 부탁하마. 부탁하지 않아도 잘할 거라고 믿지만, 늙으면 괜한 걱정만 생기더구나.”
마종공과 포옹을 나눈 장로는 나에게도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걱정하시는 일 없게 하겠습니다.”
그 말에 장로는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다짐했다. 마종공과 결혼을 하면 장로와 다른 엘프들을 초대하기로. 만약 인간 사회에 나오는 게 꺼려진다고 하면 보호 구역에서도 결혼식을 올리자. 인간과 엘프의 결혼식이니 인간 사회에서 한 번, 엘프 사회에서 한 번 한다는 명분도 있으니 딱 좋네.
“작은 인간, 작은 인간, 다음에 봐.”
“응, 작은 인간. 재밌었어.”
“나, 나 안 작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나쁜 거야, 혼나.”
“이이이익…!”
그 와중에 요정들과 신나게 놀던 소공작이 여러 의미로 눈물의 이별을 하는 게 보였다.
그새 친해진 것 같아 다행이다. 미래에 이종족 보호 구역을 관리할 소공작이 요정들과 친하다면 좋은 일이니.
다시 관광객들이 모인 상업 지구에 도착하자 타니안이 슬쩍 입을 열었다.
“이종족 교구에 한동안 소란이 일겠군요.”
‘아.’
타니안은 아쉽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으나, 사실 웃으며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여차하면 교구 자체가 철수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대륙 주류 종교가 여명 교단인 것과 별개로 각 이종족들은 각자의 신을 믿으며 전통을 유지했다. 물론 아펠스의 화려한 패악질로 전통이 개박살 나며 신들과의 소통이 끊겼을 테지만, 이제 엘프들은 10년 안에 옛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상황.
타니안이 남들 기뻐하는데 홀로 심각한 분위기를 풍길 정도로 눈치 없는 새끼는 아니고, 세계수 자체도 여명 교단에서 중요시 한 나무기에 주거 지구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던 것 같지만, 이종족 보호 구역에 설치된 여명 교단 교구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일일 터.
“하하, 아무래도 교구장께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일러둬야겠습니다.”
웃음을 터뜨리는 타니안을 보니 조금 민망해졌다. 세계수를 부활시킨 것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부활시켰을 거니까.
하지만 어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