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27)
“오라버니.”
“응?”
내 사과를 듣자마자 먼저 입을 연 것은 루이제였다.
“그러면 지금은 괜찮으신 거예요? 요정들이 신의 기운이라고 한 게 상처를 말한 거 아니에요?”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질문과 함께.
“맞아. 역천자가 믿던 신의 힘이 상처에 박혀있었어. 이제는 괜찮으니 걱정 마.”
고개를 끄덕이자 루이제는 안심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치료도 불가능한 상처와 요정들이 말한 신의 힘. 그 두 가지 정보가 합쳐지니 루이제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겠지. 혹시 신의 저주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물론 처음에는 저주가 맞았다. 어쩌다 보니 불법 건축물로 전락해서 지금은 퇴거 조치까지 취한 상태지만.
“요정들 덕에 힘도 뺐으니 조만간 상처도 회복할 수 있을 거야.”
“저, 정말요?”
“정말이니?”
그 말에는 잠자코 있던 마르게타와 마종공까지 반응할 정도였다. 내 상처에 대해서 오래 알고 있던 만큼 걱정도 더 컸을 테니 당연한 반응.
그리고 분위기는 급격하게 ‘상처를 숨긴 것에 대한 청문’이 아닌 ‘상처 회복에 대한 축하’로 흘러갔다.
살았다…!
***
상처를 입었지만 생활에는 지장이 없고, 알려주기에는 걱정을 살 것 같아 적당한 시기를 노렸다는 오빠의 해명.
그 해명을 듣고 나니 납득할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납득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오빠의 입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알게 된 것을 생각하면 다소 아쉽지만, 내가 오빠라면 어땠을지 생각하니 탓하기도 어려웠다.
‘나라도 그랬겠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은 최대한 미루고 싶은 게, 누군가를 걱정 끼치는 건 피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오빠라고 다를 건 없었을 거다.
심정도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설명과 사과까지 했는데 더 추궁해봤자 뭐가 달라질까. 그냥 오빠만 더 난감해 하지 않을까?
‘…지금은 넘어가자.’
그래서 세계수에 대한 질문도 넘어가기로 했다. 요정들이 오빠에게 신의 힘을 가져가겠다고 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가져가는 것에 성공한 건 아니다. 기운이 무겁다며 칭얼거리는 요정이 있었으니 그건 확실하다.
“너네 엄마 다시 볼 수도 있어.”
그 후에 오빠는 무언가 아는 것처럼 요정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이었고, 그 결과는 충격적이어서 누구도 오빠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눈앞에서 세계수가 부활할 기세인데 이성적으로 ‘어떻게 했느냐’를 따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엘프들의 장로와 여명 교단의 성자도 세계수에만 집중한 판국이었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당장 말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겠지.’
그리고 상처는 오빠 개인의 일이지만, 세계수는 제국을 넘어 대륙 전체가 술렁일 문제다. 그런 거대한 일을 오빠가 독자적으로 행했을 리는 없으니 황실과 논의를 거쳤겠지. 그런 만큼 관료가 아닌 우리에게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섭섭하지는 않다. 요룬 가문 내에서도 정말 중요한 계약이면 철저하게 함구하잖아. 오빠는 단순한 계약을 넘어 국가적 일을 수행한 것이니 당연히 설명할 수 없을 거야.
‘오빠가 잘못될 일도 없으니 됐어.’
결정적으로 세계수 부활은 오빠의 명성에 도움이 될 일이지, 피해가 갈 일은 아니다. 나중에 들어도 문제 없는 일.
그러니 재촉하지 말고 기다리자. 괜히 국가적 일에 의문을 표하면 오빠만 난감해지니 언젠가 오빠가 직접 말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자.
“상처에 있던 힘이 세계수로 갔으니 이제 회복도 가능하지. 아, 세계수에 대한 건 다음에 설명할게.”
그 말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오빠도 우리한테 숨기고 싶어서 숨기는 건 아니구나.
***
강제 상처 커밍아웃으로 인한 청문회는 따뜻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되었다. 내 팔자에 비해 착한 인연들을 만난 것 같아 너무 기쁘다…
“산토리아에는 마차가 아니라 켄타우로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대.”
“그건 좀 어색하겠다.”
“그치? 사람으로 치면 업혀서 다니는 거잖아.”
루이제와 이리나가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난 정말 착한 인연들을 만났다.
우르르 몰려다녔던 어제와 달리 나와 루이제, 이리나 셋으로만 구성된 파티. 마르게타와 마종공의 양보가 없다면 절대 불가능한 파티지만, 그 양보가 일어났다.
“제가 실수를 한 건 맞으니까요. 아무리 함부로 말할 주제가 아니었다지만, 저였어도 서운했을 거예요.”
“나도 부끄럽구나. 아이들을 따돌린 거나 다름없으니 반성할 일이야.”
자신들이 실수를 했으니 오붓한 데이트 시간을 양보하겠다는 빅-딜. 분명 둘 입장에서도 여행 시간을 포기하는 건 아쉬운 일일 테지만, 그럼에도 예비 가족 사이의 정을 중요시하여 큰 결단을 내린 거다.
감동적이다. 부인이 여럿이면 서로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경우도 있다던데, 난 권모술수는커녕 배려와 화합이 넘치니 얼마나 복을 받은 걸까. 그런 복을 상대로 엠바고를 걸었다고 생각하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타보자. 어디서 그런 경험을 하겠어.”
그러나 고개를 들 수 없다고 침묵으로 일관하면 이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꼴. 켄타우로스와 마차 중 어느 걸 고를까 고민하는 둘에게 슬쩍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그럴까요?”
그리고 경험이라는 말에 홀렸는지 고심에 빠진 루이제.
“셋이 동시에 탈 수 있는 크기면 좋겠는데…”
바로 동의하며 진지하게 중얼거리는 이리나.
마음은 알겠지만 하나에 셋이 타는 건 무리 아닐까. 아무리 켄타우로스라도 결국 말인데, 말 하나에 성인 셋이 타는 건 가혹 행위야.
내가 이종족을 우습게 봤구나.
“하하! 제가 덩치가 커서 셋 정도는 가능합니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우렁찬 웃음소리를 내는 여성 켄타우로스. 확실히 근처에 있는 다른 켄타우로스들과 확연한 격차가 보인다.
“물론 그 이상은 힘들지만요!”
나름의 농담인 듯 사족을 붙이며 웃었지만,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제 있었던 청문회가 아니었다면 셋이 아닌 다섯이 왔을 테니까.
‘알면서 돌려 까는 건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순간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혹시 이종족들에게도 0.5 황금공 전설이 퍼진 게 아닌가 하는 피해망상.
그래, 나 연인 많아서 차 하나에 전부 못 태우는 그런 새끼다. 그래도 나보다 두 배인 양반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자, 서로 사랑하는 만큼 꽈아아아아악 붙어 앉으십쇼!”
아무튼 꼬리로 안장을 찰싹찰싹 내려치는 켄타우로스의 말에 따라 조심스레 안장에 앉았다.
“…얘들아?”
“꽈, 꽉 붙으라고 해서요!”
“이렇게 앉는 게 안전할 것 같아서…”
내 앞에 앉아 내 몸을 등받이처럼 삼은 루이제, 내 뒤에 앉아 꽉 껴안은 이리나.
둘 중 하나만 했다면 일반적인 연인의 승마 자세였겠지만, 동시에 하니 뭐라 표현하기 애매한 모습이었다.
“보기 좋군요! 부럽습니다!”
그 꼴을 보면서도 웃는 얼굴로 칭찬을 하는 켄타우로스.
실로 훌륭한 자본주의의 화신이다.
대륙 제일의 곡창지대가 존재하는 체네스 공작령인만큼, 체네스 공작령 대부분은 드넓은 평야 지대다. 오죽하면 어지간한 소국의 평야보다 체네스 공작령의 평야가 더 넓다는 말까지 있을까. 과장이 아닌 진짜일 것 같아 더 무서운 말이다.
아무튼 드넓은 평야, 광활한 지평선, 푸릇푸릇 한 잔디. 체네스 공작령은 북방과 비견될 정도로 말이 달리기 좋은 환경이다.
“손님들! 어떻습니까! 체네스의 평야는 제국의 보물 중 하나라고 합니다!”
너무 좋은 환경이라 문제인 것 같지만.
“멋지네요. 정말 보물 같아요.”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입니다!”
가장 앞에 앉은 루이제의 대답에 우렁찬 웃음을 터뜨린 켄타우로스. 그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루이제도 작게 미소를 지었다.
성인을 셋이나 태우고도 아무렇지 않게 달리는 켄타우로스. 사실 대부분의 이종족들은 이종족 보호 구역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않기에 보호 구역 밖에서 활동하는 이종족은 매우 독특한 존재다. 심지어 단순한 야외 활동이 아닌 드라이버로 활동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사람들은 밤에 움직이는 걸 꺼려 하지만, 밤에는 밤만의 운치가 있습니다! 밤하늘에 박힌 별을 보며 홀로 달리는 것도 색다른 매력이 있죠!”
하지만 우리를 태우고 쉴 새 없이 떠드는 켄타우로스를 보니, 이 켄타우로스는 천직을 찾은 것 같았다. 달리는 거 좋아하고 말하는 거 좋아하는데 그 둘을 동시에 하면서 돈까지 번다? 최고 아니겠나.
“아쉽지만 저희는 말을 다루는 입장이라서요. 밤에 하늘을 보며 달리는 건 조금 위험하죠.”
“이런! 제가 그걸 생각하지 못했군요! 사과의 의미로 밤에 오신다면 무료로 태워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승마가 취미인 이리나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켄타우로스는 안타깝다는 듯 탄식을 터뜨렸다.
그 와중에 무료 서비스는 뭔데. 장사 좀 할 줄 아는 녀석인가?
“아, 손님들! 괜찮으시다면 바다에 가시겠습니까? 추가 요금을 내시면 바다까지 갈 수 있습니다!”
‘오.’
그 말에 흥미가 돋았다. 산토리아에서 바다까지는 제법 먼데, 거기까지 가준다고?
“저희야 좋지만, 바다까지 달리기에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괜찮습니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면 되니까요!”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대답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긴, 여기가 어디 시골 구석도 아니고 관광지 겸 공작령인 곳인데 텔레포트 마법진 정도는 있겠지.
“마법진이요? 그거 이용료 비싸지 않나요?”
그리고 마법진이라는 단어에 루이제가 걱정스레 입을 열었지만, 켄타우로스는 여전히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지금 공작님은 저 같은 켄타우로스들과 계약을 맺어서, 손님을 태우는 중에는 싸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자세하게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신기한 정보를 얻었다.
공작과 이종족 사이의 계약. 아무리 이종족 보호 구역을 관리하는 체네스 공작이라도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아이디어일 텐데, 현명공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천재와 광인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술만 안 마시면 정말 완벽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현명공은 디버프를 맞은 게 확실하다. 취하지 않은 현명공은 신도 감당할 수 없는 천재일 테니까…
졸지에 예정에도 없던 바다에 가게 됐지만 어차피 딱히 갈 곳도 없었으니 불만은 없다. 게다가 켄타우로스를 탑승 중인 덕에 일반적인 마법진 사용 비용보다 싸게 오기도 했고.
“으, 모래사장은 언제 밟아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바다에 도착하자 시종일관 웃는 낯이었던 켄타우로스가 처음으로 인상을 찡그리는 일이 있기는 했으나, 탑승하고 있는 사람이 봐도 힘들게 걷는 것이 보여서 납득했다. 사람을 태운 상태에서 발이 계속 빠지니 불편한 모양.
“아, 저 함선이 아펠스가 운용했다던 공중 함선입니다!”
그럼에도 금방 웃는 얼굴로 가이드 역할을 하는 걸 보면 켄타우로스계의 황금공이 따로 없다.
“아마 정식 이름은 아펠스의 영광이었나, 그랬을 겁니다! 그 영광이 땅에 처박힌 걸 보니 재밌지 않습니까?”
“확실히 우스운 일이군요.”
공감이 되는 말이기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대륙에서 함선에 군주나 나라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암묵적인 금기다. 괜히 황제 이름을 붙였다가 침몰하면 서로 민망하지 않나.
그러나 아펠스는 패기 넘치게 황제도 아닌 국가의 이름, 그것도 영광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 그 결과가 땅에 처박힌 영광. 어찌 보면 본인들의 미래를 예언한 것일 수도 있다.
“설명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모래에서 걷는 건 피곤해 보이시는데, 잠시 쉬고 계시겠습니까?”
아펠스의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