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29)
게다가 이 시간을 양보 받았다는 생각도 고쳐야 한다. 나도 양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건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고 실수를 인정한 마르게타와 마종공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반면 루이제와 이리나가 말하는 양보는 윗사람이 아량을 베풀어 하사하는 양보에 가깝다.
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돼. 결혼 순서로 부인 순서가 정해질지언정, 부인 사이에 상하관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누구보다 재밌게 놀고 돌아가야지. 그래야 앞으로 너희한테 뭔가 숨기는 일도 없을 거야.”
“…숨긴 건 오라버니도 마찬가지잖아요.”
다소 뾰로통한 루이제의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입이 닫히고 말았다.
내 적은 과거의 나구나. 이 개 같은 새끼, 좀 그럴 듯한 말을 하려고 하면 과거에 저지른 업보가 발목을 잡네.
“아까 보니까 옷도 팔더라고.”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루이제와 이리나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로 이길 수 없다면 행동이다.
“내가 새로 사줄게.”
“어, 네?”
“저기, 오빠? 왜 달리─”
일방적 통보와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 수영할 때 입고 있는 옷이면 아무튼 수영복 아니겠나.
그 뒤로 조금 혼났지만 그래도 웃는 얼굴로 놀 수 있었다.
***
감찰부장에게 세계수 사태에 대한 보고서를 올리라고 한 것이 어젯밤, 그리고 보고서가 올라온 것이 오늘 새벽. 시간을 보니 아마 자기 전에 작성하고 냅다 보낸 것 같다.
다른 보고서 같았으면 귀찮아서 대충 작성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번 사태는 최대한 빠른 보고가 중요하기에 납득했다. 오히려 상세하게 설명한다면서 며칠, 몇 주나 걸렸다면 속이 터졌을 터.
물론 빨리 보냈다고 속이 멀쩡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치겠군.’
기상과 동시에 습관적으로 확인한 통신구에는 감찰부장이 보낸 보고서가 있었고, 그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피로가 쌓여 헛것을 보는 게 아닌가 싶었으니까.
당연히 헛것 따위는 아니었다. 그저 정상적인 사고관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적혀있었을 뿐.
“전하. 괜찮으신가요? 아침부터 안색이 좋지 않으세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 있어서 그렇소. 피곤한 건 아니니 걱정 마시오.”
아침에 받은 충격은 결국 점심까지 이어졌다. 같이 식사를 하던 비가 걱정스레 물을 정도였으니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안색이 어떨지 예상이 됐다.
‘도대체가.’
그런 비를 향해 웃으며 대답했지만, 머리는 복잡하기 그지 없었다.
[ …대토벌 전쟁 중 역천자가 입힌 상처에 유목민의 신인 영원한 푸른 하늘의 기운이 깃들어 있었으며, 그 기운은 신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거대한 파편이었음. 현재까지 생존해 있던 요정과의 접촉으로 신의 의지와 짧은 소통이 가능했고, 신의 의지에 따라 엘프 종족의 장로가 관리하던 나무로 이전… ]
딱 필요한 정보만 담겼던 보고서였으나, 동시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보고서.
신? 신의 기운이 감찰부장에게 깃들었다고? 갑자기 그 기운과 소통을 해? 그걸 나무로 옮겨? 그랬더니 세계수가 부활을 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쭙잖은 변명을 들을 때의 감정이 아닌, 정말 상식이 이해하는 것을 거부할 때의 감정이었다.
‘갑자기 신이라니.’
혼란스럽다. 종교 전쟁에서 여명 교단이 승리하며 대부분의 신은 침묵했고, 아펠스가 이종족을 탄압함으로 몇 남지 않은 신과도 소통이 끊겼으며, 황혼 교단 토벌을 마지막으로 어떠한 이교도 남지 않게 됐다. 오직 에넨만이 존재하는 것이 작금의 대륙.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레 다른 신의 힘으로 세계수가 부활한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 애초에 믿기는 해야 하는가?
물론 신은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 신격 존재의 변덕으로 인한 우발적 사고인 경우, 그리고 감찰부장이 미쳐서 허위 보고서를 쓴 경우.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전자의 확률이 더 높─
“결혼 순서로 몇 번째인지 나뉜다면, 동시에 결혼을 해서 모두가 첫 번째가 되는 겁니다.”
…
‘흠.’
생각해 보니 이미 미친 전적이 있다. 후자의 가능성도 높아졌군.
‘부황께도 보고를 드려야 하는데.’
머리가 더욱 지끈거렸다. 이종족과 관련된 일이면 부황께도 보고를 드려야 하는 일이다. 이종족의 맹우인 크펠로펜의 황제가 세계수 부활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겠나.
그런데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 일을, 부황께 어떻게 보고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다행히 문제로 삼으실 일은 아니지.’
부황께서는 제국백에게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편이며, 제국을 위해 헌신한 상이군인들에게 자비로운 편이다. 감찰부장은 그 두 가지 전부에 해당하는 경우니 부황께서 따가운 눈초리로 보실 일은 없다.
거기다 과정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 결과는 황실과 제국에 이로운 일 아닌가. 부황께서도 고민 끝에 고개만 끄덕이고 넘어가실 터.
그래, 그러니 이대로 보고드리자. 만약 부황께서 의문을 표하시면 그때 감찰부장을 쪼고.
‘굳이 부를 필요는 없겠지.’
얼마 후면 대토벌 전쟁 종전 기념일. 그때 이루어지는 추모를 위해서라도 감찰부장은 제도에 오게 된다.
어차피 가만히 둬도 올 사람을 굳이 소환할 필요는 없다.
바다에서 데이트를 즐긴 둘째 날 이후, 아무런 소란이나 사건 없이 무난한 수학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사실 수학여행 중에 소란이 생기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 그냥 첫째 날이 많이 이상했던 거다.
딱 하나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게 있다면 일행에 소공작이 추가되었다는 점. 아무래도 보호 구역에서 겪었던 경험이 인상 깊었는지, 외숙부에게 은근슬쩍 더 나가서 놀고 싶다는 기색을 보였다고 한다.
방에서 책만 보던 딸이 스스로 나가고 싶어하는 모습에 외숙부는 당연히 기뻐했고─
“안녕하세요, 공녀님.”
“좋은 아침이에요, 소공작. 오늘도 잘 부탁해요.”
그 결과가 이것. 매일 아침마다 공작성으로 찾아가 소공작을 픽업하는 일정이 생기게 됐다.
딱히 불만은 없다. 만약 소공작이 리틀 현명공 같은 성격이었다면 죽음을 택했겠지만, 소공작은 살론 가를 가엾게 여긴 에넨이 내린 기적. 순하고 귀여운 꼬마와 놀아주는데 불만이 생길 리 없다. 오히려 다들 기꺼워하는 기색이었지.
“이른 아침부터 피곤할 텐데 부지런하구나. 가신들도 본받을 모습이야.”
부드럽게 미소 지은 마종공이 소공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소공작이 어떤 말을 좋아하는지 알기에, 소공작을 귀여워 할 때는 다들 이런 느낌으로 칭찬을 건네고 있다.
“소공작으로서 영지를 살피는 일이니까요!”
“후후, 그래. 장하구나.”
으쓱거리는 소공작을 따스한 눈빛으로 보는 마종공. 누가 보더라도 애 취급하는 기색이지만, 소공작도 마종공이 애 취급하는 건 넘어가는 편이다.
마종공 입장에서는 철혈공과 전승공도 아이인 판이니 일개 소공작인 자신을 칭찬해 주는 걸로도 감지덕지인 모양. 고집만 부리는 게 아니라 묘하게 현실 감각도 있다. 훌륭한 정치인이 되겠어.
“오늘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눈을 반짝이는 소공작을 보니 픽 웃음이 나왔다. 그제는 곡창지대에서 빵 만들기 체험, 어제는 인어들의 수중쇼 관람. 연달아 신나게 놀았으니 오늘도 기대가 되는 모양이다.
“우선 말부터 타도록 하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곳으로 갑시다.”
내 말에 소공작이 다소 시무룩한 표정으로 변했다. 말은 외숙부나 현명공과 함께 종종 탔을 테니 색다른 일은 아닐 터.
“정확히는 켄타우로스를 탈 예정입니다.”
그 말에 다시 활짝 웃었다. 역시 켄타우로스는 처음일 줄 알았다.
‘델류스한테 태우면 딱이겠네.’
델류스, 둘째 날에 타고 다녔던 가이드의 혼을 가진 켄타우로스. 다음에도 켄타우로스를 탈 예정이면 자기를 찾아달라고 통성명까지 하고 말았다. 문제가 있는 켄타우로스도 아니니 재탑승 의사는 충분.
게다가 싹싹하고 말 많은 켄타우로스와 세상이 궁금할 소공작을 붙여놓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다. 최고의 조합이겠네.
“오, 손님! 다시 보는군요! 반갑습니다!”
“와아…”
그리고 소공작은 델류스가 손을 흔드는 것을 보자마자 멍한 탄성을 내뱉었다.
마음에 든 것 같아 다행이다.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이대로 쭉 가면 프롬벨 호수가 나옵니다! 이종족 보호 구역 내에 흐르는 강과 이어져 있어서, 호기심 많은 인어들은 그 호수까지 간다고 하더군요! 물론 영민하신 소공작께서는 알고 계시겠지만요!”
“맞아요. 알고 있었어요!”
“역시 영민하십니다!”
소공작이 무서워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달리면서 친절하게 주변 지형을 설명해주는 델류스. 심지어 마지막에는 소공작의 기를 은근히 띄어주는 발언까지 하고 있다.
완벽하다. 접대의 스페셜리스트가 여기에 있었다. 켄타우로스가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황금공과 영혼의 듀오가 되었을 존재다.
“아, 가끔 어린 인어들은 호수에서 낚시를 하던 주민들에게 잡힌다고도 합니다!”
“그,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별거 없습니다! 앞으로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다시 풀어줍니다! 그러면 인어들이 감사의 의미로 호수에서 물고기 하나를 잡아다 선물로 준다고 하더군요! 낚시로는 잡기 힘든 귀한 걸로 줘서 주민들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인간과 이종족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절로 훈훈해진다. 아펠스였으면 부모 인어도 잡으려고 아이 인어를 인질로 잡았을 텐데.
“조금 말이 많죠?”
쉴 새 없이 떠드는 소공작과 델류스를 보고 있으니, 나를 태우고 있던 델류스의 여동생이 슬쩍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어서 오히려 좋군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요. 언니는 대화하는 걸 좋아해서 누군가를 태우면 입이 멈추질 않거든요.”
순간 빙의 전 세상에서 보던 말 많은 택시 기사들이 떠올랐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람과 만나는 것이 목적인 것 같던 사람들. 아무래도 델류스도 그쪽인 모양이다.
“사실 저희 조상 중에 크펠로펜에 합류해서 아펠스와 싸운 분이 계세요. 그래서인지 언니도 인간 손님이 타면 더 말이 많아지더라고요.”
“이런, 유공자 후손이셨군요.”
“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요?”
작게 웃음을 터뜨린 여동생은 그 뒤로도 이런저런 얘기를 꺼냈다.
이렇게 보면 이 여동생도 말이 많은 편인 것 같다. 하긴, 조상의 피가 언니에게만 흐르는 건 아니겠지. 당연한 모습이다.
“아참, 지옥문이라고 아세요? 드래곤 로드가 아펠스군을 향해 쏜 브레스 때문에 생긴 구덩이인데, 아직도 열기가 남아서 격리 구역이라고 하더라고요.”
뭐야 그거. 그건 나도 보고 싶어.
***
요즘드러 기분이 너무죠아!
“히히…”
지금쭘 죠카와 신나게 놀고이쑬 리리를생각하니 절루 웃음이 나온다. 우뤼 리리, 밖에서 노는거애 재미들려서 다행이야! 이 엄마, 너무 거쩡했는데!
물론 얌전하구 똑뿌러지는 리리도 조치만~ 그래도 그 나이애는 뛰어놀고그래야지! 그래야 건강하게 크는거야!
“역씨 머찐 죠카야!”
죠카덕에 리리가 재미께 놀쑤있고, 수항여행지가 체네쓰라 얼-마나 다행인지! 내년도 와쓰면 조케따!
그러니 추카와 기원의 위스키 원샷─!
“으잉?”
을 하려는찰나, 갑짜기 통신구가 반짝였다.
뭐지머지? 호옥씨 우뤼 죠카? 아니면 자근조캬? 어느쪼기든 이 외숙모는 대환영이야!
– 오랜만이오, 현명공.
“으잉?”
아니넹?
통쉰구룰 밧짜마자 죠카두리 아닌 얼굴이보엿따. 늘 입애 물고다니는 시가룰 손에든 반백머리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