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3)
제 33화
눈물 젖은 시식회 – 3
고작 여섯이 만든 간식을 삼국 측에서 감당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감히 따로 식사를 하고 남는 배로 간식을 먹으려 했기에 감당하지 못한 것. 나약한 놈들. 끼니를 간식으로 때울 각오로 먹어야지, 그런 어줍잖은 마음으로 제과 동아리의 아성에 도전하다니.
물론 끼니로 때우는 내가 비정상이고, 삼국은 제과 동아리의 아성에 도전한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뺑소니를 당한 격이기는 하다. 그래서 암울한 눈빛으로 호소하는 빌라르의 말에 더 밀어붙이지 못한 거고.
결국 돌고 돌아 내가 간식 대다수를 처리하는 입장으로 복귀했다. 그래도 먹는 입이 조금이나마 늘었으니 이득이기는 하다. 그래, 그거면 된 거야. 난 만족해, 만족한다고.
비록 장관과 주기적으로 하는 화상 보고 중에도 쿠키를 씹어먹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만족한다.
– 그러고보니 곧 박람회 기간이었지.
“그걸 기억하고 계십니까?”
– 난 누구하고 달리 아카데미에 다녔었으니까.
“망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정도의 이야기가 오고 가다가, 박람회 이야기가 나오자 턱을 매만지며 말하는 장관.
박람회 때 오지도 않을 사람이 박람회 기간은 왜 알고 있나 했지만, 괜히 물어봤다가 태극권만 당했다. 아카데미 관련으로는 무슨 얘기를 하든 내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입장이다. 그걸 잠시 잊어버렸네.
참담한 심정에 다시 쿠키 하나를 집어 베어 물자 그 모습을 보던 장관이 입을 열었다.
– 너 쿠키 싫어하는 거 아니었냐?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내가 편식하지 않는 건 같이 야전에서 굴렀던 양반이라 잘 알 텐데. 입에 있던 쿠키를 대충 씹어서 삼켰다. 하필 먹고 있는데 말을 걸고 난리야.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굳이 찾아 먹지는 않는 거지.”
– 2년 전부터 입에도 안대던 놈이.
“각하.”
내 반응에 장관은 혀를 한 번 차더니 손을 휘저었다.
– 알았다, 알았어.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 내가 괜한 말을 했다.
“아닙니다. 제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 그걸 아는 새끼가.
잠시 어색한 침묵이 내려 앉았다. 나는 나대로 예민하게 반응해서 민망하고, 장관도 썩 좋지 않은 화제를 꺼내 머쓱하겠지. 사실 아직까지도 이렇게 반응할 일은 아닌데, 사람 감정이 마음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다가 박람회 얘기나 이어가기로 했다. 삼국 전력과 협력하기로 한 건 아직 말을 못했으니.
삼국 전력 일부를 부스 내로 불러들이기로 하고, 주요 인사 호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전했다. 그것들이 밖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주요 인사가 다치거나, 제국 귀족과 충돌하면 골치니까. 장관도 썩 괜찮은 조치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만 몇 번 끄덕였고.
– 다국적 동아리 부스라, 상상도 못한 박람회군.
“외국인 학생은 종종 있지 않았습니까? 이번처럼 고위직이 온 건 처음이지만.”
– 나 때는 외국인이 입학할 분위기가 아니었지.
훌륭한 라떼는 말이야 시전, 잘 들었습니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장관의 옛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렸다. 썩 중요한 내용은 아니니까. 장관도 별 생각 없이 언급한 말인 것 같고.
– 그럼 수고해라. 박람회 때 얼굴 비출 사람 꽤 많을 거다.
“예, 알겠습니다.”
– 행정부에서도 몇 명 찾아갈 거니 놀라지 말고.
“예?”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장관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렸다. 아니, 가장 중요한 걸 가장 마지막에 대충 말하면 어떡하냐고. 진짜 노망이 났나.
‘제발 어디 가서 돌연사 좀.’
오래 전부터 마음 속에 품은 소원이다.
다음날 동아리 시간에 2차 보고의 장이 열렸다. 유감스럽게도 내 보고는 장관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서.
“박람회 기간 동안 손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도움을 청해뒀다. 익숙한 얼굴이 올 테니 걱정하지는 말고.”
겉으로는 고문-부원이라는 관계지만, 실상은 내가 이것들의 뒤치다꺼리 하는 보모나 다름없기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알려줘야 한다. 이중보고라니, 정말 끔찍한 일이다.
아무튼 삼국 전력 일부가 동아리 부스에 참전한다는 얘기를 전달하니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루이제는 순전히 일손이 늘어나는 것에 기뻐했고, 에리히와 아인테르는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다. 문제는 나머지 셋.
루이제가 좋아하니 이의 제기를 하지는 않지만, 표정은 영 떨떠름해 보인다. 본인들의 (일방적)연애 사업이 꽃피는 곳에 아랫놈들이 있는 것이 신경 쓰이나 보지. 아니면 루이제와 붙어 있는 걸 조금이라도 방해할 수 있는 외부인 자체를 꺼리는 걸 수도 있고.
‘뭐든지 간에 미친 놈들인데.’
빌라르가 내 제안을 받기 전까지 얼마나 속을 앓았는지, 이 새끼들은 과연 알까. 아무리 태어날 때부터 아랫놈들이 NPC나 펫처럼 붙어있다지만, 조금 소중히 여겨줬으면 한다.
“무리한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겠다고 하신 분들이니, 우리가 쉬엄쉬엄 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다들 박람회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라.”
직설적으로 해석하면 부스 밖으로 기어나가지 말고 얌전히 처박혀 있으라는 의미다. 기껏 호위 전력도 불러 모았는데, 괜히 나갔다가 다치고 돌아오면 나나 빌라르나 정말 미칠지도 모른다.
“저희도 고대하던 박람회인데 설렁설렁 할 리가 없죠. 염려하지 마십시오!”
다행히 이 수준의 말은 알아 들었는지, 류티스를 필두로 부원들이 긍정의 반응을 보였다. 그래, 높은 신분인 것들이 이 정도 말도 알아듣지 못하면 곤란하지. 다행히 바닥 밑의 지하를 보여주지는 않는구나.
‘개같은 거.’
고작 이런 걸로 안도해야 하는 상황이 원망스럽다. 내가 대체 무슨 죄로 아카데미에서도 과장들 보는 기분을 겪어야 하는 건지. 적어도 감찰부에서는 차장이나 5과장이 있어서 버틸 만했는데.
씁쓸한 심정에 슬쩍 루이제를 향해 돌아가는 시선.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더니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화이팅 포즈를 취했다. 응, 그래. 화이팅…
나도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한쪽 팔로 화이팅 포즈를 취해줬다. 갈 곳 잃은 마음 속 분노가 허무하게 가라 앉았다.
“이제 시작하자. 계속 만들다 보니 손에 익었네.”
그리고 에리히의 말을 기점으로 다시 제과 공장이 가동됐다. 이럴 때 보면 부원이 여섯이라 다행이다. 다른 동아리들은 기본이 열이 넘던데, 여기도 그랬으면 버려야 하는 간식이 생겼겠지.
‘냄새 좋네.’
점점 실력이 늘어나기는 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역시 굴리면 성능 좋아지는 건 어느 분야나 똑같구나. 조금은 기뻐졌다.
삼국 측에 보낼 간식을 따로 빼고도 내가 먹어야 할 양이 평소보다 많이 남았다. 너희가 늘려야 하는 건 맛이지, 양이 아니야.
그러나 몹시 다행스럽게도, 이 끔찍할 정도로 쌓인 것들을 나와 함께 먹어줄 고마운 은인이 등장했다. 이번에도 빌라르를 일일 짬통으로 초대한 것은 아니다.
“칼 영식. 디저트를 좋아하는 편이었나요?”
어쩐 일인지 동아리 시간이 끝나고 방문한 마르게타. 책상에 가득 쌓인 간식을 보고 놀란 듯 눈이 크게 떠졌다.
“그건 아닙니다. 부원들이 만든 걸 버리기는 아까워서 제가 먹고 있었죠.”
내 대답을 들은 마르게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레 내 맞은편에 앉았다. 사실 간식에 환장하는 사람도 이런 양을 먹지는 않을 거다. 마르게타가 괜히 놀란 게 아니지.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칼 영식이 시간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
빙긋 웃으며 말하는 마르게타를 보며 내 고개가 조금 기울어졌다.
지금까지 마르게타는 오전에만 나를 만나러 왔다. 오후에는 내가 바쁠 테니 오전에 일을 처리하자는 것. 오후에도 동아리 시간을 제외하면 별일이 없지만, 마르게타는 그래도 내 오후 시간을 보장해줬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싫은 건 아니지만.’
입 밖으로 낸 말은 철저히 지키는 공녀가 무슨 일로 말을 번복하는지가 의문이다.
“예, 괜찮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이제 박람회가 코앞이니, 오후에도 칼 영식의 도움을 받을까 해서요. 급한 일은 아니니 거절해도 괜찮아요.”
칼 영식은 오전에 도와주는 걸로도 충분하니까요.
그렇게 덧붙이는 마르게타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급한 일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업무를 일찍 끝냈으면 하는 거겠지. 미리미리 일을 끝내야 변수가 터졌을 때 여유가 있으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려운 부탁도 아니군요. 괜찮습니다.”
“고마워요, 칼 영식.”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며 답하는 마르게타. 그런 마르게타를 보다가 시선이 저절로 책상에 쌓인 간식으로 내려갔다. 워낙 미친 존재감이라 어쩔 수가 없네.
‘흠.’
간식을 보다가 다시 마르게타, 그리고 다시 간식을 번갈아봤다. 이왕 온 손님인데 뭐라도 대접하는 것이 예의겠지.
“마르. 같이 드시겠습니까?”
“칼 영식이 만든 것도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아쉽네요.”
쿡쿡 웃는 마르게타를 보며 나도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 역할은 먹는 걸로도 충분하다. 여섯이 아닌 일곱이 만들기 시작하면 얼마나 개판이 터질지.
“그러면 칼 영식이 좋아하는 걸로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그 말에 루이제의 쿠키를 집으려다 잠시 망설였다. 내 입맛에는 이게 제일 맛있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까지 다른 시식자들의 반응을 보면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 마르게타에게 이걸 줘도 괜찮을까?
그러나 고민은 짧았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건 맞고, 혹시 마르게타의 입맛에도 맞을 수도 있으니까.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결국 루이제의 쿠키가 마르게타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표정 변화 없이 조용히, 우아하게 먹는 모습.
“괜찮네요.”
심지어 고개를 끄덕이며 평가하는 여유도 보였다. 그래, 역시 누군가의 입맛에는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괜히 기쁜 마음에 몇 개를 더 권하니, 마르게타도 거절하지 않고 계속 먹었다. 여전히 흔들림 없는 표정.
‘이게 정상이지.’
루이제의 사랑을 원하는 것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야 했다. 루이제에게 날선 충고를 한 마르게타가 아니라, 그 답없는 5인방이 말이다. 역시 원작 패거리가 모인 이 동아리가 비정상인 거다. 동아리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리니 이리도 정상적이고 마음이 평온한 것을.
“미안해요, 칼 영식. 제가 먼저 권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무리일 것 같네요.”
오랜만에 포근한 마음이 들어 생각보다 마르게타를 오래 붙들고 있었는지, 몇 개 더 받아먹은 마르게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조금 흥분했나.
“별 말씀을. 오히려 제가 실례를 저지른 것 같군요.”
외눈박이 소굴에서 두눈박이를 보니 너무 반가웠다.
***
그날 밤, 마르게타의 숙소.
침대에 엎드린 마르게타의 몸이 조금씩 움찔거리고 있다.
“흐끅, 흐으윽…”
동아리실에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지듯 엎드린 마르게타는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며 훌쩍였다.
욕심이었다. 칼과 더 오래 있고 싶은 욕심에 스스로 한 말을 어기며, 핑계를 대면서까지 오후에도 칼을 찾아갔다. 조금 부끄럽지만 칼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런 부끄러움은 감수할 수 있으니.
다행히 칼도 불만이 없어 보였고, 오히려 디저트를 권해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어떡해, 싫었나봐…!’
끔찍한 맛이었다. 웃는 얼굴로 계속 권하는 모습에 차마 거절하지도 못하고 계속 먹었다. 혹시 칼이 실망할까봐 맛이 없다는 표현도 못하고 필사적으로 표정을 가다듬었다.
먹으면서 온갖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한 말도 지키지 못한 못난 공녀를, 안 그래도 피곤한 감찰관을 괴롭히는 욕심 많은 공녀를 꾸짖으려고 이러는 게 아닐까? 그러니 이런 끔찍한 쿠키를 권하며 밀어내는 게 아닐까?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이 흘러가자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그래서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동아리실을 빠져나왔고.
욕심을 부리다가 괜히 미움만 산 것이 아닌가, 그런 결론에 도달하자 마르게타는 더욱 서러운 마음에 베개를 끌어안고 깊숙이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그 오해는 다음날 아침, 쭈뼛거리며 찾아온 마르게타를 칼이 웃으며 맞이해주자 봄날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마르게타 바렌티. 넘치는 자신감과 정비례하는 넘치는 감수성을 지닌 공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벌써 예선전의 마지막날입니다. 처음 공모전에 참가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과분한 관심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미 몇 번이나 독자님들께 감사를 표했지만, 이 감사는 평생을 해도 과하지 않기에 다시 감사드립니다!
이제 내일부터 본선에 진출할 작품들이 추려지기 시작하겠고, 어떤 작품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든, 저는 지금처럼 매일 1회씩 들고 독자님들 곁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