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32)
“하긴, 세르베트는 가까우니 운송도 쉬우니까요. 황금공께서 알면 아쉬워하겠어요.”
“후후, 황금공의 영지가 멀기는 하지만 그만큼 비옥한 영지잖니.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는 법이란다.”
소소한 잡담이 화제로 꺼내지자 부장님도 안색을 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괜찮은 척 하는 거지만, 지금은 그걸로도 충─
“아.”
순간 부장님의 품 속에서 미약한 빛이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누가 부장님의 통신구로 연락을 건 것 같다.
‘거의 왔는데…!’
짜증난다. 겨우 부장님의 안색이 풀리려고 했는데 누가 눈치도 없이.
– 부장님, 접니다!
그리고 부장님이 통신구를 작동하자마자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에 살며시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2과장이 범인이구나.
“무슨 일이야? 필요한 거 있으면 쓰고 보고하라고 했잖아.”
그런 2과장을 향해 부장님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그래, 이미 부장님은 2과장에게 자율권을 줬다. 그런데 정보를 찾으러 간다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하다니, 그러면 자율권을 준 의미가 없잖아.
– 급히 말씀드릴 게 생겼습니다!
조금 놀랐다. 2과장이 행동에 들어간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보고할 정보를 물었다고? 아무리 2과장이라도 그건 힘들 텐데.
“벌써 찾았다고?”
– 찾은 게 아니라 정보부에서 알려줬습니다! 통제 풀리기만 기다렸다가 일제히 뿌렸어요!
그 말에 부장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다른 부서가 먼저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정보부가 정보를 넘겼다는 건, 단 1초의 시간 낭비 없이 진행해야 할 중요 안건이 걸렸을 때뿐이니까. 심지어 그것이 모든 부서에 전달할 사안이라면 더더욱.
2과장도 사건의 심각함에 크게 망한 것을 직감했는지, 거칠게 정보를 내뱉었다.
– 북방에 유입된 물자에 공백이 있었던 거, 갑자기 대토벌 전쟁에 참전했던 부족의 잔당이 나타난 거… 그거 던전 때문이었습니다!
“뭐?”
– 그 미친 새끼들, 던전을 막사처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특무성이 갑자기 미쳐서 수색 중에 던전에 접근할 일은 없으니, 지금까지 몰랐던 겁니다!
생각도 못한 정보에 침묵이 내려 앉았다. 2과장의 말처럼 특무성이 미치지 않는 이상, 혹독한 북방을 수색하며 굳이 던전까지 건드릴 일은 없다. 심지어 북방은 넓고도 넓으니 어디에 이상한 곳에 던전이 생겨도 제국은 알 수 없다.
북방에 널린 던전의 숫자는 측정 불가. 그와 비례하여 그 던전에 숨었을 물자와 병력도 파악 불가.
– 특무성도 막 던전에서 나온 유목민들을 발견해서 겨우 알았답니다. 도대체 몇 개를 막사처럼 이용 중일지 감이 잡히지 않아 몸을 뺄 수밖에 없었죠.
부장님은 계속 말이 없었다. 북방, 정확히는 도르곤이 던전을 제 집처럼 사용하는 미친 방식을 썼다면 대토벌 전쟁의 실종자 대다수가 생존자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 역천자의 휘하에서 제국군을 괴롭힌 그 괴물들이 다시금 말을 타며 북방을 유린할 것이다.
– …그리고 방금 알게 된 건데, 궁내성 장관이 장관 전원을 소집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제국의회에 친히 행차하셨고요.
늦어도 오늘 안에는 큰 게 올 겁니다, 라고 덧붙이는 2과장의 말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
식사를 마치고 몇 시간 후, 2과장의 말처럼 큰 게 왔다.
소름끼치는 검붉은 색으로 반짝이는 통신구, 귀를 찢는 것 같은 불쾌한 경고음.
‘환장하겠네.’
통신구에 날아온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 칸 출현, 유목민 세력 집결 확인.백작위 이상 귀족, 부장급 이상 행정부 관료, 제국의회 의원 전원, 제국 지방법원장 이상 재판관, 군단장 이상 지휘관.
이상에 해당하는 인물은 즉각 제국의회 대회의실로 모일 것. ]
이 시발, 정보부 새끼들. 정보 전부 푼 거 아니었네.
칸이라는 말은 안 했잖아.
이미 대회의실에는 백이 넘는 인원들이 모여 있었다. 애초에 제국의회에 상주 중인 의원들만 서른이고, 근처에 있던 행정부 인원들도 순식간에 몰려왔을 테니 당연한 일.
그러나 무슨 사태가 터지면 빠르게 책임을 회피하고 제물을 마련하는 양반들이 모였음에도, 제 능력을 과시하여 승진할 욕심이 가득할 양반들이 모였음에도 대회의실은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
물론 이 역시 당연한 일이다. 이번 사태는 어지간한 소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사건이다. 괜히 입을 놀렸다가 꼬이기라도 하면 제물은 자신이 될 테고, 여론을 주도했다가 황제가 뒤엎는다면 정계에서 다시는 고개를 들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하나하나가 거물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자들임에도, 차마 이 사태를 주도하고 책임질 자신이 없기에 황제의 등장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떨어져야겠구나. 조심하렴.”
감찰부장과 공작이 동시에 입장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을 정도로 고요한 대회의실. 그런 대회의실을 빠르게 살핀 마종공은 내 귓가에 조심스레 속삭였다. 부디 이 지뢰밭에서 내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으며.
“걱정하지 마. 입 다물고 있을 거니까.”
농담 섞인 대답을 돌려주며 바로 등을 돌렸다. 나는 재무성 소속 인원들이 모인 곳으로, 마종공은 전승공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니.
“늦어서 죄송합니다.”
“됐다. 아직 안 온 사람이 더 많아.”
그리고 장관과 다른 부장들에게 사과를 건네자 장관은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나도 제도에 있던 중이라 바로 올 수 있던 거지, 제도가 아닌 지방에 있는 인원들은 텔레포트로 날아오느라 난리일 거다. 마탑도 마법사들을 사방에 뿌리느라 죽을 맛이겠지.
“우데스르 도르곤이 칸을 자칭했다. 특무성이 퇴각하면서 마지막으로 알아낸 정보야.”
“역시 그 새끼군요.”
다른 부장들과 목례를 한 뒤 장관의 옆에 앉자, 장관이 작은 목소리로 알려줬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정보를 처음 접했을 부대가 딱하게 느껴졌다. 일제 철수 명령을 받아 급하게 몸을 빼는 와중에 칸이 출현했다는 정보까지 확보했으니 얼마나 미칠 지경이었겠나. 일개 부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짐이었다.
다행히 무사히 제도에 복귀해서 보고도 제대로 한 모양이지만.
“일단 괜히 입 열지 말고 듣기만 해. 너나 나나 폐하의 명령이 없다면 전쟁에 관여할 입장이 아니니까.”
“압니다. 걱정 마십쇼.”
장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저번 대토벌 전쟁 참전자라도 나나 장관의 소속은 재무성이다. 전쟁성, 특무성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재무성 인사가 먼저 입을 여는 건 이상한 일. 황제가 친히 하문하는 게 아닌 이상 발언권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그렇게 대회의실의 침묵에 동참하는 사이, 소집령을 받은 인원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영지에서 급하게 올라온 공작들은 물론, 제국 전역에 퍼진 방면군 사령관과 군단장, 영주로서 떵떵거리는 귀족들, 법원을 담당하는 재판관들까지.
백 단위의 귀족들이 일제히 모이는 광경은 신년하례식이 아닌 이상 보기 힘든 광경이다. 심지어 모든 작위 귀족이 모이는 신년하례식과 달리, 이번 소집에는 철저히 고위직만 모였다. 지금만큼은 이 대회의실이 제국의 심장이자 두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명을 따르는 귀족들은 무릎을 꿇으라!”
모두 모였는지 더 이상 들어오는 사람이 없을 때쯤, 단상에 있던 궁내성 장관이 입을 열었다.
소집령을 내린 황제가 등장한다는 신호에 귀족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라.”
황제의 하명에 귀족들은 고개를 들었으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황제의 행차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 작위와 직책 과시. 황권을 중히 여기는 황제가 그 과정을 생략할 정도면 사태가 시급하다는 것이니.
아무튼 고개를 들자 단상에 마련된 옥좌에 앉은 황제, 그 뒤에 시립한 황태자와 아인테르가 보였다.
‘쟤도 불려왔네.’
딱딱하게 굳은 아인테르를 보니 절로 측은해졌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카데미에서 일상을 보내다 이런 일에 끌려오다니, 실권을 찾은 건 좋지만 의무도 너무 세게 수행하는 것 같다.
그래도 내다 버린 황족 시절보다는 좋을 거다. 힘내라.
“경들은 들으라. 황실과 제국을 위한 경들의 충정은 실로 천명을 수호함에 부족함이 없으나, 근래 일어난 소란은 경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천명을 위협했다.”
그 말에 안 그래도 고요하던 대회의실은 더욱 싸늘해졌다. 근래 일어난 소란─ 대토벌 전쟁과 황위 계승 분쟁이 제국의 국운을 뒤흔든 문제라는 건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알고 있으나, 그걸 황제가 직접 ‘우리 그때 망할 뻔했음.’ 이라고 공인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물론 에넨의 가호를 받아 천명을 바로 세운 대제의 보우함에, 선대로부터 이어진 유산과 경들의 충정 덕에 제국은 천명에 도전하는 적들을 처단했으나, 다시금 북방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금 천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발언. 황제는 이번 사태를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동시에 이러한 위기를 야기한 책임자들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도 보였다.
‘어디까지지?’
슬쩍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황제가 말한 위기는 자연재해 따위가 아니다. 대토벌 전쟁에서 생존한 카간의 혈육이 다시금 유목민 세력을 규합한 인재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재앙이다.
그러면 그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대토벌 전쟁에서 도르곤을 척살하지 못한 전승공? 지난 3년 동안 도르곤을 찾지 못한 특무성? 북방의 소란을 통제하지 못한 소르덴 변경백?
‘이건 못 막는다.’
안 그래도 강력한 황권을 자랑하는 황제인데 지금은 명분까지 확실하다.
황제는 자신의 정치력을 소모하며 제국 고위직 전원을 소집한 퍼포먼스를 보였고, 제국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공인한 상태다. 이 정도 판이 깔린 상태에서 황제가 책임을 묻는다면 제아무리 전승공이라도 실각을 각오해야 하고, 특무성은 수뇌부가 교체될 일이다.
그렇기에 감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평소라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냐고, 폐하의 심기를 거스른 역도들을 뿌리 뽑겠다고 충성을 과시해야 할 자들이 나와야 하나, 황제의 칼날이 어디까지 휘둘러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입을 여는 건 자신의 목도 제물로 삼아달라고 자청하는 꼴이다.
“소르덴 변경백.”
그리고 그 범위가 정해졌다.
“…예, 폐하.”
황제의 호명에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며 답한 중년 남성, 소르덴 변경백.
그 호명에 귀족들의 얼굴에는 안타까움과 안도가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가장 먼저 이름이 불렸다는 건 황제가 소르덴 변경백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여긴다는 것이며, 변경백이 최고 책임자라면 변경백 외에 다른 인물들이 엮일 일은 극히 적다.
“그대는 위로는 황실을 보필하며, 아래로는 신민들을 평안케 할 의무가 있다. 또한 국경을 지켜 제국의 안정에 힘쓸 책임이 크기에, 황실은 그 책임에 걸맞은 권한을 그대의 선조에게 수여했다.”
단순히 숫자만 보면 공작보다도 적은 변경백. 제국에 단 셋뿐인 변경의 왕. 국경의 소란에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는 이유로 파격적인 권한과 자유를 수여받고, 신년하례식에도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배려를 받는 변경백.
반대로 말하면 권한과 비례한 막대한 책임도 있으며, 변경백 관할에서 터진 일은 변경백이 무조건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대는 황실의 믿음에 부응하지 못했다.”
단호한 선고에 변경백은 더욱 고개를 숙였다. 소르덴 변경백은 북방을 책임지는 변경백. 북부 유일의 변경백인 그의 역할은 유목민을 통제하며 제국 북쪽 국경을 평안케 하는 것.
그러나 황제의 말처럼 소르덴 변경백은 그 역할에 실패했다. 유목민은 다시 결집하고, 국경은 제2의 카간을 우려해야 한다. 권한을 줬으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전대 소르덴 변경백도 역천자의 준동을 방지하지 못했으니, 짐의 실망이 크다.”
마치 전대 소르덴 변경백처럼.
“할 말이 있는가?”
“폐하의 과분한 신뢰에 보답하지 못하였으며, 제국과 신민의 안정을 지키는 귀족의 의무도 수행하지 못한 죄인입니다. 어찌 할 말이 있겠나이까. 그저 폐하의 판단에 겸허히 따르겠나이다.”
이미 소집령이 떨어진 순간부터 이러한 사태를 각오한 듯 소르덴 변경백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전대 소르덴 변경백은 유목민의 통합을 막지 못한 죄로 처형되었는데, 이제 그 아들도 같은 죄로 몰락하게 되었다.
“바르니오 엔니루아 오브 소르덴의 변경백 작위를 박탈하며, 엔니루아 가문에 수여한 변경백의 권한 역시 수거한다. 이제부터 소르덴 변경백령은 소르덴 백작령이라 칭한다.”
더 이상 너희 가문을 믿을 수 없다는 조치에 변경백─ 아니, 바르니오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엔니루아 가문의 과보다 공이 크고, 바르니오 엔니루아가 지난 대토벌 전쟁에 참전하여 세운 공이 결코 작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이 이상의 처벌은 없을 것이다. 작위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허락한다.”
이어지는 발언에 바르니오가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처형을 각오했으나 작위 박탈에서 끝났다. 비록 변경백이라는 특권은 수거되었으나 가문의 작위는 여전히 고위 귀족으로 통하는 백작위다. 이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허락된다면 가문도 조금은 휘청거릴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다.
한순간에 지옥에서 천국으로 떡상한 상황. 그래서인지 바르니오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죄인에게 크나큰 자비를 베풀어주시니 망극하고도 부끄러울 뿐입니다. 소신은 폐하께 실망을 드렸으나, 소신의 가문은 폐하의 자비와 신뢰에 영원히 부응하겠나이다.”
“엔니루아 백작가의 충정을 기대하겠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폐하, 만수무강하소서.”
그 말을 끝으로 바르니오는 허리를 숙이고 대회의실을 나갔다. 작위를 박탈 당한 그는 더 이상 소집령 대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
“정보부장은 북방의 소란에 대해 말하라.”
그렇게 바르니오의 퇴장을 보던 황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예, 폐하.”
갑작스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