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33)
모든 책임은 바르니오가 짊어지고 갔기에 더 이상 칼이 휘둘릴 일은 없다. 책임 규명은 끝났다.
“가아르 부족의 족장이었던 가아르 우데스르 바타르의 아들, 우데스르 도르곤이 칸을 자칭했습니다.”
지금부터가 진짜다.
책임을 짊어지고 사라진 바르니오를 제외하면 가장 먼저 황제에게 지목을 당한 사람. 심지어 첫 발언이 칸의 등장.
졸지에 어마어마한 타이틀과 무수한 시선을 받게 된 정보부장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평소에는 정보부 집무실에 홀로 박혀있어서 그런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사람이나, 지금은 사안이 사안이라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폐하께옵서도 아시다시피, 지난 유목민 세력의 결집과 봉기는 가아르 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에 역천자를 토벌한 이후 가아르 부족의 근거지를 철저히 소탕했습니다.”
길고 긴 역사 중 단 한 번도 통합되지 못한 유목민. 그런 유목민을 가아르 부족이 최초로 통합했기에 제국 입장에서는 가아르 부족을 철저히 소탕할 필요가 있었다. 나도 그 소탕 과정에서 쥐불놀이 좀 했을 정도로 정말 화려하게 털었었지.
“그러나 역천자의 혈육인 우데스르 도르곤과 실종되었던 케식을 중심으로 가아르 부족이 부활하였고, 주변 부족을 제압하며 빠르게 세력을 규합했습니다. 푸른 발톱 기사단이 퇴각 중 확보한 정보이며 정보부에서는 확실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확실하다는 장담, 모든 고위직이 보는 앞에서 황제에게 올리는 보고. 그렇다면 정보부장의 말처럼 도르곤이 세력을 규합하고 칸을 자칭한 건 찌라시 수준이 아닌 진실이라고 봐야 한다.
설령 칸 자칭까지 가지는 않았더라도 5년 전처럼 단일 세력의 조짐이 보이는 건 확실하다.
‘그것들인가.’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도르곤이 규합했다는 부족이 어떤 놈들인지 짐작이 되니까.
카간이 북방의 친제국 부족을 싹 털어버리기는 했다만, 자신에게 합류하지 않은 모든 부족을 박살 낸 건 아니다. 애매한 중립 부족, 전투에 시큰둥해서 굳이 회유할 필요가 없는 부족 등. 약간 제3 진영 취급되는 부족들은 카간의 손길에서 벗어났다. 명목상 카간의 휘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후방에서 논 일종의 예비군 포지션.
당연한 일이다. 당장 카간이 규합한 반제국 세력도 그 내부를 보면 사이가 더러운 부족들이 넘쳐났는데, 거기서 포섭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인 부족까지 추가한다? 아무리 카간이어도 미치지.
‘그때 처리했어야 했는데.’
그리고 종전 후, 제국은 그 제3 진영 부족들을 장악하지 못했다. 카간 세력이었었다는 명목으로 소탕하지도, 북방 영향력을 위한 적극적인 포섭도 하지 못했다. 당시 제국의 여력은 어느 쪽을 택하든 성공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을 테니.
그 결과가 이거다. 제국이 골골거리는 사이 도르곤은 빠르게 제3 진영 부족들을 다시 묶었고, 제국을 위협할 규모를 확보했다.
“또한 우데스르 도르곤이 규합한 세력은 5만에서 7만 정도로─”
“정보부장.”
언짢은 듯한 황제의 부름에 정보부장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유목민 2만을 평야에서 상대하려면 못해도 군단 다섯 개는 필요하다. 정확히 말하라.”
그 말에 정보부장은 망설이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송구하오나 폐하, 지난 대토벌 전쟁 이후로 북방에 뻗은 제국의 눈과 귀 대다수가 사라졌기에 이전과 달리 각 부족의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던전에 잠복한 잔당들의 규모 역시 장담할 수 없습니다.”
신하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황제 앞에서 인정한 상황. 이 기적적이고 숨 막히는 상황에 황제의 눈썹이 꿈틀거렸으나 다시 가라앉았다.
솔직히 대토벌 전쟁 때문에 제국의 대북방 정보력이 개박살 난 건 사실이니까. 황제가 엄격하기는 해도 불가능한 일로 쪼는 미치광이는 아니다. 오히려 대략적인 정보라도 물고 온 정보부를 치하해야 할 일이다.
“…부족한 소신이 판단하옵건대, 6만 아래일 확률은 극히 적습니다.”
“그러한가.”
게다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정보부장의 첨언에 황제의 목소리도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2만의 오차 범위가 1만으로 줄어들었다. 1만이라는 오차 범위도 작은 건 아니나, 이보다 아래로 줄이려면 정보가 아닌 찍기를 동원해야 한다.
“전쟁성 장관.”
“예, 폐하.”
정보부장의 보고를 들은 황제는 전쟁성 장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기병 복구는 어느 정도로 진행되었는가.”
“충용무쌍함은 이전과 비교에도 부족함이 없고 그 규모도 7할까지 회복하였으나, 훈련도는 유목민에 미치지 못합니다.”
황공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전쟁성 장관의 답에 황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역시 황제도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이기에 넘어가는 것일 터.
기병이 어디 창 쥐여주고 말 한 마리 붙이면 완성되는 병과던가. 정말 피와 눈물이 흐르는 훈련, 말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러야 진정한 기병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가 유목민이라면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그러나 기병을 제외한 다른 전력은 이전의 규모를 회복하였습니다.”
“전쟁성 장관의 노고가 실로 크다.”
나름 고무적인 정보지만 황제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어디까지나 규모를 회복한 것이지, 그 훈련도를 재현했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전쟁성 장관도 그저 황제의 심기를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한 말이겠지.
아무튼 보고를 받는 형식으로 대회의실에 모인 고위직 전원에게 정보를 공유한 황제는 그 후로 침묵을 지켰다. 북방에 결집된 유목민의 숫자를 듣고, 유목민을 상대하기 위한 필수 병과인 기병의 규모를 확인. 누가 봐도 전쟁을 준비하는 문답에 귀족들도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전쟁이 시작되면 어느 정도의 사병을 동원해야 하는가, 군수물자는 얼마나 확보해야 하는가, 군량은 과연 충분한가. 아마 그런 생각으로 머리가 바삐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철혈공.”
“대토벌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복구하기 위해 다수의 자재가 북부로 향했습니다. 군수물자 생산으로 사용할 자재가 상대적으로 부족했기에─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장기전에는 난항이 있을 것입니다.”
“현명공.”
“대제께서 보우하심에 작년은 풍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연이은 구휼로 비축분 자체는 적기에, 철혈공처럼 장기전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침묵을 깬 황제는 두 공작을 불렀고, 그 부름만으로도 철혈공과 현명공은 즉시 황제가 원하는 답을 돌려줬다.
그 와중에 현명공의 목소리에서 아무런 취기가 느껴지지 않아 귀족들 사이에 다시 동요가 퍼졌다. 취기 여부로 위기 등급을 파악할 수 있다니, 저게 사람 맞냐.
‘미치겠네.’
물론 지금은 현명공이 멀쩡한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전쟁성 장관과 두 공작의 보고는 제국의 상황도 썩 좋지 않음을 뜻하니까.
제국은 올해 신년하례식을 화려히 진행하며 이전의 상처를 회복했음을 과시했다. 대토벌 전쟁과 황위 계승 분쟁으로 피를 흘린 제국이지만, 이제는 이전의 성세를 회복했다고 귀족들에게 내보였다.
그런데 그거 사실 반쯤은 허세다.
‘3년 만에 완전히 지울 상처는 아니었지.’
제국의 상황을 비유하자면 복싱을 12라운드까지 뛰다가 피도 토하고 뼈도 부러지고 뇌진탕도 살짝 스쳐 지나간 환자다.
일단 침대에 누워서 골골거리던 제국이 상처를 회복하고 일어난 건 맞다. 전쟁 전 역량도 제법 되찾았고. 그래도 막 병상에서 일어난 환자한테 ‘님 다시 복싱 뛰실?’ 이라고 하는 건 미친 짓 아닌가. 지금의 제국이 딱 그렇다. 하라고 하면 할 수는 있는데, 여기서 무리하면 이기든 지든 후폭풍은 각오해야 한다.
‘우리 정상 영업합니다.’ 라는 플래카드를 건 다 무너져 가는 식당. 그것보다 조금 양호한 것이 작금의 제국이다. 식당처럼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게 다행이네.
“폐하. 한 말씀 올리는 것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동요하던 귀족들 사이에서 한 중년 남성이 발언권을 청했다.
“허한다.”
“폐하 만세,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황제의 허락에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는 남성.
‘의장?’
제국의회 의장인 바르돈 백작. 황제의 그림자이자 수족, 거수기로 활동하는 제국백이 고위직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독자적인 발언을 청했다. 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 다른 귀족들의 시선도 일제히 의장에게 꽂혔다.
과연 의장의 독자적 발언인가, 그도 아니라면 사전에 황제와 모의한 연기인가.
“폐하, 작금의 제국에 여러 족쇄가 달린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제국은 움직여야 합니다.”
“제국이 여의치 않음을 인정하면서 움직여야 한다니. 의장, 무슨 의미인가.”
“역천자의 최후를 잊은 듯한 역도들에게 단호히 피와 위엄을 보이셔야 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제국백들이 하나둘 발언권을 청했다. 당연히 황제는 전부 허락했다.
“폐하, 제국 역사에 고난은 많았으나 끝내 승리한 것은 제국이었습니다. 지금의 고난 역시 그저 제국 역사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제국이 과거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북방의 역도들은 기고만장할 것입니다. 그때는 더욱 많은 피와 눈물을 각오해야 할 터. 폐하, 제국은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폐하. 충용무쌍한 폐하의 장병들과 황실의 은혜를 입은 신하들이 오직 폐하의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제히 쏟아지는 개전 요구에 고요했던 대회의실은 어느새 북방의 교만과 역심을 성토하는 장소로 변했다.
‘후자였네.’
그리고 그런 제국백들을 보며 한 걸음 물러난 의장과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는 황제.
그래, 제국백이 자기 의견 따위를 말할 리가 없지. 당연히 황제하고 짜고 치는 판이구나.
– …그리고 방금 알게 된 건데, 궁내성 장관이 장관 전원을 소집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제국의회에 친히 행차하셨고요.
문득 2과장의 보고가 떠올랐다. 소집령을 때리기 전에 무슨 일로 의회에 방문하나 싶었는데, 그때부터 황제는 개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을 눈치챈 다른 귀족들도 조금씩 이 성토의 장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표정은 일그러졌으나 저 일그러짐이 북방에 대한 분노 때문만은 아니리라.
“이리 충성심 넘치는 신료들이 많으니 짐은 실로 복받은 황제다.”
그 말이 결정타였다. 제국백의 분탕질로 귀족들의 여론은 개전으로 변했다. 이제 황제가 개전을 선언한다면 ‘제국의 상황이 여의치 않음에도 전쟁을 일으킨 황제’에서 ‘충성스러운 신하들의 자발적 개전 요청을 받아들인 황제’로 변모한다.
요약하면 이번 전쟁에 참여해서 손해를 입을 귀족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 하여간 정치질이 숨 쉬듯 자연스러운 양반이다.
“경들의 말이 옳다. 제국은 언제나 굳건하였으며, 어떠한 난관과 마주하더라도 끝내 서있는 것은 제국이었다. 칸 또한 천명을 받든 짐의 눈으로는 그저 제후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게 선포한 황제는 옥좌에서 일어났다. 황제가 몸을 일으킴에 귀족들, 뒤에 시립하고 있던 황태자와 아인테르마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천명을 모르는 자들에게 천명을 보이며, 위엄을 부정하는 자들에게 위엄을 세우겠다.”
노구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기 힘든 우렁찬 목소리가 대회의실을 울렸다.
“제국의 품에서 벗어난 북방을, 천하의 어버이를 모르는 유목민들을 마땅히 올바른 질서에 넣으리라.”
?
‘어?’
잠깐, 뭐요?
이상하다. 어째 단순한 토벌 명령이 아닌 것 같다. 제국의 품에서 벗어나? 올바른 질서에 넣어?
“이 대륙의 남쪽 끝부터 북쪽 끝까지. 마땅히 리브노만의 광명이 비칠 것이다.”
아무리 들어도 단순한 토벌 의지가 아니다. 북방을 정복하기 위한 선언이다.
“황제 폐하 만세! 리브노만 만세!”
“크펠로펜이여 영원하라!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하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이 분위기에서 잘못 입 열면 바로 역적이다.
제국백을 이용하여 개전 여론을 이끌어 낸 황제는 단순한 유목민 토벌이 아닌 북방 정복을 선언했다. 토벌을 목적으로 군을 움직여도 귀족들 사이에 동요가 퍼질 텐데, 토벌을 아득히 능가하는 정복을 전략적 목표로 삼은 상황. 아무리 여론에 휩쓸린 귀족들이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경들의 충정은 실로 후세에 남을 만한 것이다. 짐 또한 이 아름다운 충정에 감격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폐하, 그건 좀.’ 이라고 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미 여론은 개전이다. 심지어 황제의 독단이 아닌 귀족들의 자발적 요청이다. 여기서 황제를 만류했다가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한, 황제를 능멸한 역적이 되고 만다.
“제국의 충용무쌍한 장병들을 북방으로 보내는 일을 가볍게 처리할 수는 없는 바. 상세한 원정군 조직에 관하여 논할 필요가 있다. 갑작스러운 소집에 급히 달려온 충신들이 많으니, 그에 관한 논의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하도록 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황제는 몸을 돌렸다. 폭탄을 떨궈서 귀족들을 패닉에 몰아넣은 후, 북방 정복을 위한 원정군 조직을 상수로 만들며 시간을 주었다.
이제 귀족들이 택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다. 자신들의 사병까지 포함되어 조직될 원정군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제국의 천명이 더욱 굳건해지는 것에 기여하는 것. 원정군이 패배하면 황권의 추락이고 나발이고 그냥 제국이 망하는 거다. 귀족들이 지금의 권세를 누리려면 제국도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귀족들은 심각한 얼굴로 홀로 사색에 잠기거나, 여럿이 뭉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여론을 뒤엎는 것은 불가능하니 승률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 중이겠지.
“야.”
“예?’
그런 귀족들의 모습을 보는 사이, 장관이 내 어깨를 건드렸다.
“잠깐 나와라. 여기 있기는 많이 답답하니까.”
다른 부장들과 함께 대회의실을 나가는 장관. 몸을 돌리기 전 보였던 표정은 혼란과 막막함, 미묘한 빡침이 뒤섞여 있었다.
이건 괜히 사족을 붙이면 영혼까지 털릴 일이다. 순순히 따라 나가자. 솔직히 나도 수백이 모인 곳에서 숙덕거리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대회의실 밖에는 이미 여러 귀족, 혹은 관료들이 뭉친 덩어리가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교양 넘치는 귀족들이 저렇게 대놓고 모습을 보이며 의논하는 건 드문 일이나, 지금은 파벌 싸움이 아닌 제국 전체의 일을 논할 때다. 누가 듣든지 말든지 별 의미가 없는 상황.
덕분에 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