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34)
“정복 자체는 진심이신 것 같습니다. 무언가 끌어내기 위한 명이 아닙니다.”
다른 부장들도 있기에 장관은 존대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장관의 말에 다른 부장들은 침음성을 흘렸다.
장관이 이번 소집령 전에 궁내성 장관의 소집을 받은 건 부장들도 알고 있을 거다. 황제의 공식 선포까지만 해도 ‘혹시 개꿀잼 몰카인가?’ 라며 행복 회로를 돌릴 일말의 가능성이 있었으나, 궁내성 장관의 언질을 받았을 장관마저 확답을 내니 그 가능성마저 사라졌다.
북방 정복 선언은 귀족들의 양보와 복종을 이끌기 위한 쇼가 아니다. 진심으로 제국의 목표가 됐다.
“제국이 지난 300년에 걸쳐 북방 영토를 개척한 적은 있으나, 그 개척 영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드넓은 곳이 북방입니다. 그런 영역을 정복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는지.”
아직도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징수부장의 말에 심의부장이 짧게 답변했다.
“영민하신 폐하께서 우리가 우려하는 문제를 고려치 않으셨겠습니까?”
겉으로만 보면 반박이나,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나도 모르겠다.’ 라는 씁쓸한 답변이었다. 징수부장 개인의 의견을 순식간에 우리의 의견으로 만들었으니까. 심의부장이 생각해도 북방 정복은 매우 힘든 일일 거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빙의 전 역사를 봐도 정주 국가가 유목민의 침략을 격퇴한 적은 있으나, 유목민의 본거지를 병합한 역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수도라는 명백한 약점이 존재하는 정주 국가와 달리 유목민은 명백한 거점이나 요충지가 없지 않나. 어디를 장악해야 정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거기 개똥땅이잖아. 정복해도 경제적 이득은커녕 매몰 비용만 장난 아니게 소모될 텐데? 제국이 괜히 북방을 조금씩 조금씩 개척했겠냐고.
“그 정복 말입니다만─”
징수부장과 심의부장의 떨떠름한 반응, 다른 부장들의 어두운 안색을 살핀 장관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직접 정복이 아닌 간접 영향권을 노리고 계십니다.”
“간접, 말입니까?”
징수부장의 반문에 장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간접 영향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건 대토벌 전쟁 이전 방식 아닌가?
고위직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정복 운운하고 그 정도로 멈추는 건 황제에게 곤란한 일이다. 귀족들에게 황제가 허풍을 쳤다는 인식을 줄 수 있으니까.
“어쩌면 애실론의 열세 번째 자리를 북방이 채울 수도 있습니다.”
‘아.’
그 말을 듣자마자 이해했다.
***
대회의실 인근의 접견실. 제국의 황제가 머무르기에는 부족한 곳이나, 부황께서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셨다.
부황께서 괜찮으시다니 어쩌겠나. 고귀한 곳에 황제가 머무는 것이 아니라, 황제가 머무는 곳이 곧 고귀한 곳일지니.
“태자.”
“예, 부황 폐하.”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군.”
담담한 부황의 한 마디에 흠칫 몸을 떨고 말았다.
최대한 자제했는데 부황의 눈에는 안절부절 못하는 애송이로 보인 모양이다. 내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부황의 안목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인지.
“…부족한 식견으로는 부황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워, 잠시 의문을 품었습니다.”
잠시 입을 다물다가 솔직히 속내를 털어냈다.
부황의 개전 선언은 이해할 수 있다. 지난 전쟁에서 패했으면서 다시 결집한 유목민들을 말로 설득했다면, 유목민이 제국을 우습게 볼 여지가 있다. 제2의 역천자를 노리는 유목민들은 무력으로 짓눌러야 한다.
그러나 토벌과 정복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토벌은 반제국 유목민을 소탕하고 발을 빼면 그만이나, 정복은 드넓고 황량한 북방을 제국이 관리하고 통제해야 한다. 거점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병력과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해야 하는 땅을 얻게 된다.
“태자의 의문은 지당하다. 그런 의문을 품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
부황은 후계자의 의문에 노여움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저 마땅한 의문이라고 소소한 치하를 하실 뿐.
“리브노만의 광명은 마땅히 북방을 덮을 것이나, 그것이 장병들의 피로써 이룩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부황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제국백들을 앞세워 개전을 선포한 부황께서 피로 이룩할 일은 아니라니, 그럼 대체 무엇으로 칸을 토벌하며 북방을 정복할 것인가.
차라리 부황께서 평화를 언급하셨다면 국경에 군단을 전면 배치하여 차가운 평화를 원하는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유목민이 남하하기에는 북방의 산악 지형과 요새를 뚫을 수 없을 거고, 제국은 그저 국경만 지키며 유목민에 대한 신경을 끈다. 그렇다면 이상하고 기묘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
‘그조차 아니다.’
허나 이미 귀족들 앞에서 개전을 선언한 순간부터 반쪽 평화는 불가능하다. 무조건 피를 봐야 한다.
“인간이 목숨조차 포기할 수 있는 때는 조국과 신앙, 가족의 안위가 걸렸을 때다.”
그렇게 침묵을 지키는 사이, 부황께서 다시 입을 여셨다.
“칸을 자칭한 역도가 규합한 세력은 과거 대토벌 전쟁에서 역천자에게 힘을 보태지 않은 부족이다. 그들에게는 유목민의 국가를 세우겠다는 신념도, 유목민의 신앙을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도 없다.”
그 말씀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역천자가 제국을 위기에 몰아넣었을 때, 반제국의 기치를 들어 올린 부족들이 얼마나 환호했겠나. 그런 와중에도 끝끝내 역천자에게 합류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유목민의 국가나 신앙, 제국에 대한 반감이 희미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남은 것은 가족이다. 가족의 안전, 거기에 개인의 이득이 포함된다면 그들은 기꺼이 제국의 품에 안길 것이다.”
단지 그들에게 제국은 멀고 칸이 가까웠을 뿐.
그렇게 덧붙인 부황은 다시 찻잔을 입에 대셨다.
‘제국은 멀고 칸은 가깝다.’
그리고 부황의 마지막 말씀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
밖에 있던 귀족들이 전부 대회의실로 복귀하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모습을 보였다. 다시 옥좌에 앉은 황제는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눈빛으로 귀족들을 둘러봤다. 마치 그 모습이 ‘시간을 줬으니 충성을 증명해라.’ 라는 압박으로 보인다면 기분 탓일까.
그리고 그 기분은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는지, 귀족들은 일제히 황제에게 사병과 군자금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제국의 안정과 천명의 굳건함을 보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놓겠다고 엎드렸다. 전쟁을 막을 수 없다면 최대한 황제의 눈에 들거나, 승전 지분을 주장할 발판을 마련해야 하니까.
“경의 충정은 실로 아름답다. 대제께서 경의 선조에게 베푼 은혜는 황실과 제국의 홍복이다.”
“경의 마음은 알겠으나, 애석하게도 경의 용맹한 병사들이 자리를 비우면 동방의 왕국들이 헛된 마음을 품을 것이다.”
“북방에서 용맹히 싸워야 할 장병들에게 먼 길을 오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경의 충정을 증명할 방법은 다양하니 서운치 말라.”
몰려드는 자진납세 속에서 황제는 여유롭게 취사선택을 했다. 가져가도 무방한 병력, 자리를 비우면 국경에 이상이 오는 병력, 병력보다는 자금을 더욱 받아야 하는 경우 등. 황제는 그 자리에서 막힘 없이 귀족들의 상납을 종합했다.
그럴수록 귀족들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으나, 어쩌겠나. 꼬우면 황제 해야지.
“뭇 신료들의 결의와 헌신에 황실 또한 보답해야 할 터. 전쟁성 장관은 북부 방면군은 물론, 서부 방면군과 중부 방면군의 참전을 염두에 두라.”
“예, 폐하.”
그 와중에 황제는 영주들의 사병으로 이루어진 지방군만이 아닌, 황제가 다루는 중앙군도 대대적으로 동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동부 왕국들과 대치하는 동부 방면군, 북방과 거리가 멀고 해군 위주인 남부 방면군을 제외한 모든 중앙군을 검토하며 원정군을 구축하라는 명. 정말 작정한 듯 불리는 규모에 기가 질릴 정도다. 단순 숫자만 보면 저번 전쟁과 비등하거나 그 이상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러 군단이 출정하는 만큼 종군 감찰관도 필요하겠지.”
그 말에 무심코 장관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저번 전쟁에서 종군 감찰관으로 참여한 건 당시 감찰부 4과장이었던 장관이었으니까.
물론 황제가 군을 믿지 못하여 감찰관을 붙인 건 아니다. 하나라도 많은 특수 전력, 동시에 북방에 보내도 타국이나 민간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전력을 보내기 위해 감찰관이라는 과거의 제도를 끄집어 온 것이다. 마침 장관은 감찰부 소속이자 작위 귀족이기에 종군 감찰관으로서 딱이었고.
그리고 그 감찰관 제도는 이번 전쟁에서도 써먹을 예정인 것 같다. 하긴, 어차피 작정하고 북방을 조지려면 최대한 많은 전력이 필요하─
“감찰부장 칼 크라시우스를 종군 감찰관에 명한다. 현재 감찰부장이 수행 중인 업무는 일시적으로 중단하며, 종군 감찰관 업무를 우선적으로 행하라.”
지…?
‘뭐야.’
거기서 내 이름이 왜 나와.
“폐,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종군 감찰관은 황실의 은혜를 받은 작위 귀족만이 가능한─”
“감찰부장이 지난 수년간 세운 공로는 매우 크다. 감찰부장 칼 크라시우스에게 황실 직할령인 위리디아를 하사하며, 동시에 위리디아 백작으로 임명한다. 이는 후손에게 작위를 물려줄 수 있는 계승 작위이다.”
사법성 장관의 태클에 황제는 망설임 없이 작위를 수여했다.
‘미친.’
아니 시발, 이게 대체 뭐야.
물론 도르곤을 쳐죽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다. 그래서 이번 소집령이 끝나면 내가 참전할 명분이 없나 찾을 생각이기는 했다.
그래도 이런 상황은 상상도 못 했다.
“칼 크라시우스 오브 위리디아. 종군 감찰관으로서 원정군의 이상을 살피며 북방의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지난 대토벌 전쟁에 참여한 백작이니 만큼 잘할 것이라 믿는다.”
황제의 말이 마치 확인 사살처럼 들렸다.
황제는 무려 세 방면군에서 병력을 차출해 원정군을 조직할 것이라 말하였고, (여론에 떠밀려) 충정과 의기가 폭발하게 된 귀족들은 스스로 사병과 군자금을 헌납했다. 때문에 이번 소집령은 황제의 원맨쇼이자 완전 승리로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번 북방 원정에서 제국군의 피해가 크더라도 황제의 군대만이 아니라 영주들의 군대까지 나락으로 갈 테니.
그렇게 완전 승리를 이룩한 황제가 퇴장했으니 눈 뜨고 코 베인 귀족들은 ‘인생 시발.’이라 중얼거리며 각자의 영지나 부서로 돌아가야 하나, 황제는 그 사소한 불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황제의 술수에 탈탈 털린 기억을 순식간에 날려버릴 사건이 소집령 막판에 터져버렸으니까.
“감찰부장의 공이 큰 것은 맞으나, 설마 백작위를 한 번에 받을 줄이야.”
“심지어 영지가 딸린 계승작이오. 물론 위리디아가 북부 변방 영지기는 하지만, 북방 원정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놀랍구려. 작위 귀족이 아닌 일개 자제가 능력을 입증하여 작위를 받다니.”
황제가 기습적으로 발표한 종군 감찰관과 백작위 하사에 대회의실의 귀족들은 퇴장도 하지 않고 술렁거렸다.
만약 자작, 남작 같은 하위 작위를 하사했다면 그러려니 넘어갔을 거다. 하다못해 계승이 아닌 단승 작위였다면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는 범위다. 그러나 명실상부한 고위 귀족인 백작위를 계승 작위로, 그것도 영지까지 붙여주며 하사했다.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망할.’
입술이 바짝 마르는 느낌이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제국백이 되는 나한테 백작위까지 줬다? 이건 진짜 어마어마한 공을 세웠거나, 미친 듯이 굴릴 예정일 때나 일어날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두 가지 경우에 모두 속하는 것 같고.
‘제국백도 몰랐다.’
힐끗 제국백들이 모인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개전 여론을 주도한 제국백들조차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황제가 작위 하사 문제는 굳이 상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건지, 아니면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라 상의할 시간도 없던 건지 모르겠다.
사실 어느 쪽이든 의미는 없다. 이미 황제가 작위를 하사한 순간부터 물릴 수 없는 일이지 않나.
“축하한다. 자식도 많을 텐데 물려줄 작위가 늘어났어.”
“아니, 그게 지금─”
그 와중에 장관이 도발을 날리길래 발끈할 뻔했으나,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린 장관을 보자마자 마음을 가라앉혔다. 표정을 보니 장관도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그럼에도 이 어색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억지로 농담을 건넨 거고.
그리고 입꼬리를 내린 장관은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속삭였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가. 그러면 폐하께 따로 언질을 받은 줄 알고 접근하지 못할 거다.”
“알겠습니다.”
등을 떠미는 장관과 고개를 끄덕이는 다른 부장들을 향해 감사의 목례를 하며 자리를 떴다.
그래, 장관의 말이 맞다. 모두가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홀로 여유롭게 퇴장한다면 황제와 감찰부장의 몰래 카메라라고 착각할 거다. 그렇다면 나한테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겠지.
눈치로 먹고사는 양반들이니 시간이 지나면 나도 피해자라는 걸 눈치채겠지만, 적어도 고위직 전원에게 시달리는 건 피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환장하겠네.’
대회의실을 나가자마자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일단 감찰부에 처박혀있든, 아니면 저택에 있든 몸을 숨겨야겠다.
망할, 나도 백작위 같은 걸 받게 될 줄은 몰랐다고.
저택에 들어가서 면회 사절 모드에 돌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공무원들이나 귀족들이 들어올 수 있는 청사보다는 문을 걸어 잠글 수 있는 저택이 더 안전하다.
물론 마종공에게는 통신구를 통해 저택에 숨었다고 알려줬고, 은신처를 알려주자마자 텔레포트로 달려왔다.
“아가, 이게 어떻게 된 거니? 종군 감찰관이라니, 아가가 왜!”
당황과 슬픔이 뒤섞인 마종공의 표정을 보니 조금은 감동이었다. 내가 백작위를 받았다는 것이 아닌,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반발하고 있으니까. 나를 이렇게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인생을 헛산 건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