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35)
“혹시 아가도 알고 있었니?”
“아니, 나도 몰랐어. 진짜야.”
눈매가 슬슬 날카로워지려는 마종공에게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전쟁에 참여할 생각이기는 했지만, 그런 나도 전쟁에 참여할 명분을 찾으려고 했다. 황제가 나까지 원정군에 포함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까. 이렇게 감찰관이니 작위니 떠안겨주며 원정군에 합류시킬 줄 누가 알았겠나.
“그럼 폐하께서 결정하신 일이구나.”
그렇게 중얼거린 마종공은 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고심에 빠졌다.
이번 일은 아무리 마종공이어도 저지할 수 없는 일이다. 황제가 제국과 천명의 위기를 인정하고, 여론 조작이 있었다지만 모든 고위직의 요청으로 개전을 선포한 상황. 이 국운을 건 전쟁에서 공작이 ‘우리 예비 남편은 빼주세요.’ 라고 하는 건 불가능한 일.
“걱정하지 마. 역천자를 상대하는 것도 아니잖아. 도르곤이 약한 건 아니지만 못 이길 놈은 아니야.”
침울한 표정을 지은 마종공을 위로하기 위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10만에 이르는 유목민, 세상에 둘도 없을 괴물인 카간, 도르곤과 비슷한 수준의 전투머신인 팔준마. 이 미친 상황 속에서도 제국은 끝내 승리했다.
그런데 지금은 10만은커녕 6만 정도고, 카간은 죽었으며, 팔준마도 도르곤만 남았다. 아무리 제국의 국력이 이전 같지 않다지만 북방은 더욱 약화된 입장이다. 내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올 일은 없─
“세상에 그 어떤 아내가 남편이 전쟁에 간다는데 안심하겠니.”
“미안해…”
미약한 원망이 섞인 말에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맞는 말이니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래, 안전한 전쟁 따위는 없다. 전쟁은 참여하지 않는 게 최선이고, 한 번 발을 들이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내가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나 하니 속이 터지겠지.
“역천자 때문에 영원히 상처를 달고 살 뻔했는데, 이제 겨우 그 상처를 지울 수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나야 전쟁으로 갈 생각이 가득해서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나도 뒷목을 잡고 거품을 물 일이다. 마종공이 강하다는 걸 알아도 만약 전쟁에 참전한다고 하면 당연히 걱정이 될 일.
그렇게 황제의 명이라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웃으며 보내줄 수도 없는 딜레마 속에서 어색한 침묵이 내려 앉았다.
“주인님, 계십니까?”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것은 노크와 함께 나를 찾는 집사의 목소리였다.
“집사? 무슨 일이야?”
불안하다. 잠깐 조용히 있고 싶으니 어지간하면 찾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내 말에 충실한 집사가 방까지 찾아올 정도다. 존나게 존나 큰일이 생긴 모양.
“타일글레헨 백작께서 오셨습니다.”
“아.”
진짜 큰일 맞네.
“백작께서는 주인님께서 바쁘시다면 다음에 오겠다고 하셨습니다만─”
“접견실로 안내해드려. 나도 바로 갈게.”
“알겠습니다.”
집사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면회 사절 상태라지만 부친인 가주의 면회까지 거절하는 건 난감한 일이다. 게다가 내가 저택에서 존버하는 사이, 가주가 황제에게 무슨 지시를 받았을 수도 있는 일. 만나서 나쁠 건 없다.
“베아트릭스, 같이 갈래?”
“…아니, 지금은 아가 혼자만 가는 게 좋겠구나.”
잠시 고민하던 마종공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지금 방문한 가주는 내 부친이자 마종공의 시아버지로 방문한 것이 아닌, 황제의 수족인 제국백으로서 방문했을 확률이 높으니까.
접견실로 가니 집사가 가주 앞에 막 찻잔을 두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왔구나.”
그리고 내가 온 것을 발견한 가주는 덤덤히 반겨줬다. 아니, 저걸 반겼다고 말할 수 있나 싶지만.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다. 나도 방금 막 앉은 참이니.”
부드럽지도, 그렇다고 딱딱하지도 않은 평탄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 가주. 그런 가주를 보며 맞은편에 앉으니, 집사는 빠르게 허리를 숙이고 사라졌다.
“축하한다. 너도 이제 어엿한 작위 귀족이구나.”
가주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작위에 대해 언급했다.
오히려 기꺼웠다. 작위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면 황제에게 무언가 듣고 전달하러 왔을 확률이 높다.
“과분한 은혜에 황송할 따름입니다.”
“폐하께서 합당하고 여기셨기에 하사하셨을 것이니, 과분하다 여길 필요는 없다.”
예의상 겸손을 표하자 가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많이 의외다. 폐하의 은혜에 더욱 보답해야 한다느니, 교만하지 말고 더욱 정진하라느니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아니면 백작위를 과한 은혜로 취급하면 황제의 판단이 틀렸다는 의미니 합당하다고 하는 건가? 그럴 듯한 이유다.
“하지만 반납하거라. 대회의실에서는 너무 놀라 입을 열지 못했다고 하면 될 거다.”
“예?”
난데없는 소리에 멍하니 반문을 하자, 가주는 의아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혹시 작위에 욕심이 생겼더냐?”
“아뇨,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욕심 같은 거 있을 리가 없다. 이미 나는 제국백 작위와 수도권 영지가 보장된 입장이고, 감찰부장이라는 딱지까지 붙어있다. 아무리 이번에 받은 위리디아 백작위가 계승 작위에 영지까지 있다지만, 솔직히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다.
“그러니 반납하거라. 황송하여 받을 수 없다고, 신뢰에는 감격스럽지만 그 신뢰에 부응하지 못할 죄송함에 감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라. 그러면 폐하께서도 종군 감찰관직을 거두실 터.”
‘아.’
그제야 가주의 진의를 알 수 있었다. 가주도 내가 전쟁에 나서는 걸 꺼려 하는 거다.
“가주님. 작위가 저에게 황송한 은혜인 것은 맞으나, 제국의 귀족으로서 마땅히 황실과 제국을 위해 봉─”
“너는 이미 충분히 헌신과 의무를 다했다. 그 누구도 너에게 그 이상의 희생을 요구할 수 없다.”
몸이 굳고 말았다. 방금 가주의 발언은 황제의 충견인 제국백이 할 말이 아니다. 무한한 충정과 헌신을 미덕으로 삼는 제국백이, 이 이상 헌신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것도 자신의 뒤를 이어 제국백 가문을 이끌 후계자에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가주의 폭탄선언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의 상식이나 경험을 생각하면, 가주는 이번 작위 하사에 당황했을지언정 기뻐해야 할 사람에 속한다.
물론 저번 겨울 방학 동안 영지에 머물면서 가주가 썩 냉철하지 않다거나, 어머니에게는 따뜻한 모습을 보이는 등 의외의 성향을 가졌다는 건 확인했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단순히 의외라는 말로 넘어갈 수 없다.
거의 30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황실의 충실한 수족으로 지낸 제국백이다. 타일글레헨 백작이 에이만카 대제가 임명한 초기 제국백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아들인 에이만카 2세 때에 제국백으로 임명된 유서 깊은 충신이다.
“너는 이미 충분히 헌신과 의무를 다했다. 그 누구도 너에게 그 이상의 희생을 요구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충신이 충성을 만류하는 발언을 했다. 자신의 뒤를 이어 제국백이 되어야 할 후계자에게.
‘뭐지?’
혼란스럽다.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혹시 떠보는 건가? 내가 불만을 가지고 있나 확인하라는 명령이라도 받은 건가?
황제나 가주나 이렇게 투박하고 노골적으로 떠보는 아마추어는 아니지만, 적어도 가주가 충성을 만류하는 것보다는 떠보는 것일 확률이 더 높다.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다. 가주로서 후계자에게 하는 말이니.”
그런 혼란을 눈치챘는지 가주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니, 그 말을 들으니까 더 미치겠는데. 떠보는 게 아니라 진심이라고?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국의 귀족으로서 폐하의 부름을 받아 종군하는 것도 영광 아니겠습니까.”
결국 머리를 굴리고 굴리다가 매우 평범하고 의례적인 대답을 내뱉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는 뻔한 대답이 무난하니까.
“아니, 희생이 맞다.”
그러나 가주는 작정을 했는지 다시 폭탄을 터뜨렸다.
“국내를 담당해야 할 감찰부가 북방으로 향했다. 기사가 아닌 관료에 불과한 네가 전선에서 검을 휘둘렀다. 제국과 천명을 위협한 역천자를 죽였다. 이것이 희생이 아니면 무엇이 희생이겠느냐.”
그렇게 말한 가주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동시에 미간은 미미하게 찌푸려진 것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크라시우스 가문은 언제나 충신이었지. 선조들은 황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보답은 언제나 결실을 맺었다. 그 누구도 의무와 헌신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알고 있다. 그 충성의 역사는 가주가 자랑스러워했고, 언제나 나와 에리히에게 강조했던 말이 아니었나.
그러니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거다. 충성, 충성, 더 큰 충성을 외치던 가주가 이제 와서 왜.
“그리고 나와 너 역시 최선을 다하였다. 크라시우스 가문은 황실에 받은 것, 그 이상으로 보답했다.”
그 단호한 말에 다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
칼의 표정에는 당혹스러움이 짙게 드러나 있었다. 이해한다. 내가 지금까지 칼과 에리히에게 가르친 마음가짐과 상반되는 발언이었으니.
허나 꼭 해야 할 말이었다. 겨우 안정을 되찾아가는 이 아이를 전장으로 보낼 바에는 내 말을 번복하는 게 옳다.
‘필요에 의한 충성이었다.’
애초에 황실과 제국백 가문 사이의 관계는 계약으로서 시작된 거다. 황실은 건국 초기, 극도로 불안정한 황권을 위하여 직속 봉신을 구성할 필요가 있었고, 평민 출신이 많았던 제국백 가문의 시조들은 정계에서의 입지를 위해 황실의 손을 잡았다. 그것이 300년 충성의 시작이다.
물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황실도 제국백도 굳건한 입지를 갖추었으나, 굳이 황실이 제국백을 팽할 이유도, 제국백이 황실에서 벗어날 이유도 없다. 오히려 300년이나 이어온 관계를 일방적으로 끊으면 다른 가문에게 ‘300년의 관계도 버리는 믿지 못할 상대.’ 라는 평을 받는다.
그렇기에 황실과 제국백은 계약이되 굳건하고, 굳건하지만 계약이다. 서로 떨어지면 손해기에, 충성을 바치면 이득이기에 이어진 관계다.
‘너를 포기하며 이을 관계는 아니다.’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일생에 도움이 되지 못한 아비가 무슨 염치로 그딴 말을 하겠나.
나에게 칼에 대한 걱정을 표할 자격은 없다. 그저 칼이 선택해야 할 답안을 언급할 뿐.
“그러니 무리할 필요는 없다. 작위만 사양하면 폐하께서도 억지로 너를 움직이지는 않으실 게야.”
반쯤은 희망 사항이지만, 가능성도 반 정도 내포한 말이다.
폐하께서는 이번 개전을 위해 다소 무리를 하신 상황이다. 행정부 고위직인 칼이 적당한 명분으로 작위 자체를 거절하면 폐하도 추가 조치를 취하기 난감하실 터.
대신 칼의 공백을 크라시우스 가문이 채워야겠지만, 그 정도는 기꺼이 할 수 있다. 아들을 전쟁으로 떠밀 바에는 가문의 역량을 소모하는 게 옳다.
“이제 홀몸도 아니지 않느냐.”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그래, 칼은 이제 혼자가 아니다. 지난 전쟁에서 친우를 잃고, 연인을 잃어 혼자가 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인연을 가질 수 있었다. 홀로 품은 상처를 조금씩 덜어놓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를 모든 것을 잃었던 지옥으로 다시 보낼 수는 없다. 이 아이에게도, 이 아이가 새롭게 만든 인연에게도 하지 못할 짓.
“가주님.”
침묵을 지키던 칼은 내 말에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썩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칼의 표정에는 혼란과 당황이 아닌 다른 감정이 나타났으니까.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단순히 내 제안에 따르기로 결정했다면 보일 수 없는 결연함이.
“선조들께서 황실의 은혜에 훌륭히 보답한 것은 압니다. 가주님은 물론, 저 역시 부족함은 없었다 생각하고요.”
한숨을 내쉴 뻔했다. 겉으로는 내 말에 동의하는 것이지만 본론을 먼저 말하는 귀족은 극히 적다. 지금의 동의는 자신의 뜻을 말하기 전, 상대의 체면을 위한 의례적인 동의일 뿐.
“그렇기에 더 이상 희생을 할 필요가 없다는 가주님의 말씀은 맞을 수도 있으나, 전 진심으로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저는 헌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