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36)
“꼭 직접 가야겠느냐? 폐하께서는 이번 북방 원정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으신다. 수많은 군사들이 북방을 향할 것이고, 용맹한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그 앞에 설 것이다. 칸을 자칭한 역도는 결국 제국의 칼날 앞에 쓰러질 터.”
그런 칼을 다시 설득했다. 칼이 거절한다고 ‘알겠다.’ 하고 넘어갈 것이라면 말도 꺼내지 않았다. 반드시 빼내겠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의 가르침을 부정하며 말을 꺼내는 것 아닌가.
게다가 이번 북방 원정은 칼 하나 빠진다고 무리가 올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 폐하께서는 다시 전승공을 원정군 사령관에 임명하실 것이며, 무수히 많은 원수와 군단장들을 동원할 것이다. 단순 규모만 보면 지난 전쟁과 비교해도 부족할 것이 없을 정도로.
그 대규모 원정군은 칼이 없어도 나아갈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친히 북방 정복을 선언하셨으니, 충정 가득한 귀족들이 일치단결하여 따르겠지요. 제가 가지 않아도 제국은 능히 승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제가 없는 승전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단호한 대답에 잠시 몸이 굳고 말았다.
본인이 없는 승전에는 의미가 없다? 역사적 순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싶다는 건가? 그런 명예욕이 있는 아이는 아니다. 아니면 아직 자신만이 북방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 아니, 그 역시 아니다.
“3년 전에 이루지 못한, 무수한 희생이 있었음에도 마무리 짓지 못한 재앙을 제 손으로 끝내야 합니다. 그게 홀로 죽지 못한 제가 수행해야 할 의무입니다.”
심상치 않은 말이다. 이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 전쟁을 끝낸 것이나 다름없는 이 아이가 왜 의무를 운운하는 것인가.
그리고 홀로 죽지 못했다는 건 대체─
‘…아물지조차 못했나.’
뒤늦게 이해했다. 칼이 무슨 마음으로 종군을 원하는지.
“네 죄가 아니다.”
그렇게 말하자 칼의 눈이 커졌다. 마치 의외인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이었다. 실로 비극적인 일이지. 그렇지만 네가 죄책감을 가져야 할 일은 분명 아니다.”
그러자 칼은 잠시 말이 없더니,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속이 얼마나 곪았을지 장담할 수 없는 대답이 나왔다.
***
가주가 있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조금, 아니, 많이 놀랐다. 설마 가주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그리고 나와 너 역시 최선을 다하였다. 크라시우스 가문은 황실에 받은 것, 그 이상으로 보답했다.”
“이제 홀몸도 아니지 않느냐.”
“네 죄가 아니다.”
‘하.’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가주의 진심을 절절하게 느꼈으니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그저 가문의 번영, 황실을 향한 충성, 제국의 영광을 최우선으로 두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 육체가 가진 기억이 있기에, 내가 빙의 후에 본 가주도 그 기억과 흡사하기에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혹시 착각하는 게 아닌가 알아볼 생각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가주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라 단정 지었으니까. 애초에 진짜 가족이 아닌 나는 가주가 무슨 성향이든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생각했으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건가.’
사실 가주가 냉혹하고 무뚝뚝한 사람이라는 편견은 지난 겨울에 깨졌다. 예비 며느리들의 선물에 기꺼이 보물 고블린으로 전직하고, 아내 몰래 낚시를 갔다가 털털 털리고. 그런 사람을 어찌 기계적이라 하겠나.
어쩌면 작년 추모 자리에서 눈치챌 수도 있었다. 에리히에게 성급하게 가지 말고, 여유를 가지며 수련하라는 조언을 줬던 그때. 내가 그때 더욱 깊게 생각했다면 진즉 가주의 속내를 알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난 내 눈을 가리고 마음을 닫았다. 가주에 대해 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가주가 좋은 사람이면 좋은 아비에게서 아들을 뺏은 놈이 되니까.’
그런 결론을 내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안타까운 일이었다. 실로 비극적인 일이지. 그렇지만 네가 죄책감을 가져야 할 일은 분명 아니다.”
“미치겠네.”
가주가 한 말이 다시 떠오르자 홀로 중얼거리고 말았다.
아무튼 생물학적인 부친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괜히 마음이 약해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바람이나 쐬러 갈까.’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방으로 가기 전,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북방으로 가기 전에, 마무리 짓지 못한 재앙을 끝내기 전에, 내 손으로 매듭을 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야 할 곳.
애석하게도 내 발로 가기에는 세 걸음에 한 번 붙잡힐 미래가 뻔하니 마종공에게 텔레포트를 부탁했다. 안 그래도 내가 전쟁에 간다는 사실에 침울해진 마종공을 부려 먹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반드시 가야 할 곳이니 어쩌겠나.
“민망하게 금방 다시 보네.”
그렇게 그 녀석들의 묘비 앞에 도착했다. 어째 무슨 일이 터지면 돌고 돌아 여기로 오게 된다. 아직도 이것들을 제외하면 친구라고 할 사람이 없기도 하고, 북방 관련 일이면 이 녀석들을 보지 않고 갈 수도 없고.
“오래는 못 있는다. 밖에 미래 아내가 기다려서.”
내 표정을 보고 심각함을 느낀 건지, 아니면 아직 헤카테에게 인사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건지 마종공은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정말 내 개인적 이유 때문에 마종공을 귀찮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할 뿐.
아무튼 묘비 앞에 주저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술은 없고, 기다리는 사람은 있으니 빠르게 용건만 말하고 돌아가자. 길게 있고 싶은 마음도 없긴 하지만.
“도르곤 그 새끼, 기어코 다시 기어 나왔다. 솔직히 어디 외지에서 죽기를 바랐는데 너무 양심 없는 바람이었나 봐.”
순간 픽 웃음이 나왔다. 2년 동안의 전쟁과 종전 후 3년 동안의 추격에서 살아남은 도르곤의 명줄에 감탄이 나왔으니까. 동시에 그딴 괴물 새끼가 스스로 죽기를 바란 내 양심에 어이가 없었으니까.
팔준마는 하나하나가 괴물이었지만 그 새끼는 독보적이었다. 무력이 압도적인 건 아니었고, 생존 본능과 대가리 굴리는 솜씨가 예술이었다. 오죽하면 다른 팔준마들은 전부 사살한 제국군이 그 새끼는 마지막까지 처리하지 못했겠나. 심지어 그 새끼는 카간의 친위대인 케식의 지휘관이기도 해서 더욱 잡기 힘들었다. 사천왕하고 같이 다니는 마왕 같은 새끼.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아니야. 지난 전쟁에서 반제국 부족은 철저히 밟았으니, 지금 집결한 세력은 하자가 좀 있지.”
지금의 제국도 하자가 있는 편이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좋은 것만 들어야 할 녀석들에게 부정적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전쟁에 참전하기로 했어. 그러면 도르곤을 죽이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거야.”
나와 도르곤의 악연은 깊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도르곤, 탈라와 기이할 정도로 자주 충돌했고, 그중 도르곤과는 종전까지 싸우고 싸우고 싸웠다. 그렇게 투닥였는데 나도 살아있고 그 새끼도 살아있다. 내가 놈을 죽일 수는 없어도, 그놈도 나를 죽일 실력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라는 자신이 있다. 카간과 팔준마가 없는 도르곤과 달리, 나에게는 내 손으로 부활시킨 묵광대, 꾸역꾸역 회복한 제국군, 황제가 북방 정복을 선언하며 북방으로 투입될 정예들이 수두룩하다. 받쳐주는 배경은 내가 더 우월하다.
그러니 죽일 수 있다. 길고 길었던 악연을 드디어 끝낼 수 있다.
“그 새끼를 죽이면, 나도 자격이 있는 거겠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닫았다.
그래, 자격. 내가 이 세상에 끌려온 이유를 해결하면, 이 세상의 주민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자격을 이룰 것이다.
‘그걸 위해 온 것일 테니.’
보통 빙의 소설을 보면 빙의자에게는 빙의 이유가 있다. 최종적으로 이루어야 할 목적이 있다. 그것이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든, 등장인물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든, 더 나은 결말을 위해서든, 그저 평화를 위해서든. 이유 없는 빙의는 없고, 목적 없는 삶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세계에 대해 잘 모른다. 원작도 보다 말았고, 먹다 뱉은 뒤로는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내가 이 세계에 온 이유도,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일개 고아가 귀족이 된 행운에 집중하고 즐거운 인생을 보낸다는 생각이나 했다.
하지만 일이 꼬이고 꼬여 전쟁에 참전하게 되고, 너희를 만나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카간을 죽이고,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지키고, 너희를 살리는 것. 그게 내가 이 세계에 온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밖에 없었지.’
미친 무력을 자랑하고, 누가 봐도 마왕 같은 포지션인 카간. 빙의자인 내가 그런 괴물을 상대하게 됐다면 아무리 봐도 세상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게 옳지 않겠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너희를, 빙의 이후로 처음으로 만든 인연인 너희를 마지막까지 살리고 함께 하는 것이 목표 아니겠나.
그러나 실패했다. 카간을 죽이고 전쟁은 끝냈지만 너희는 죽었다. 기껏 이룩한 평화도 도르곤이 도주하며 반쪽짜리 가짜 평화에서 멈췄다.
그때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빙의한 목적을 이루지 못한 놈이라고. 이 세계에 정착할 자격이 없는 외래종이라고. 남의 몸을 빼앗았으면서 결국은 실패한 버러지라고.
물론 다른 사람들은 나를 영웅이라고, 둘도 없을 위업을 달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겠냐.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너희를 구하지 못하고 홀로 죽지 못한 나 자신이 스스로를 버러지라고 생각하는데.
‘반쪽.’
나에게 그보다 어울리는 말은 없다. 반쪽 평화를 이루었기에 나 역시 반쪽이다. 부모와 동생에게서 가족을 빼앗은 반쪽, 친구라고 떠들었으면서 너희를 지키지 못한 반쪽, 처음으로 사랑한 연인에게 위안을 주지 못한 반쪽.
다른 세계에서 굴러들어 온 주제에, 그렇게 뻔뻔히 와놓고 목적도 이루지 못했으니 어찌 온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너희랑은 비교할 수 없는 반쪽.’
귀족이라는 환경, 명문 무가의 피가 흘러서 튼튼한 육체, 빙의 특전인지 정신 나간 회복력. 이런 요소들을 갖추고 있음에도 나는 부족했다. 그저 귀족으로 빙의한 삶을 즐기고 싶은, 아무런 목적도 꿈도 없던 나와 달리 너희는 빛났다.
평민 출신이었지만,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상처가 생기면 고통을 느끼는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너희는 각자의 사명을 품고 나아갔다. 가족을 위해, 신앙을 위해, 신념을 위해, 평화를 위해. 그저 낙하산 생활을 꿈꾸다 전쟁에 끌려온 나 같은 놈과는 달리 너희는 위대했다.
사실 그런 너희를 보고 처음에는 질투도 했었다. 빙의자인 내가 주인공일 텐데, 왜 나는 빛나지 못하고 너희가 빛날까. 그래서 수석 팀장이라는 직책을 받았을 때 제법 기뻤지. 내가 너희보다 뛰어나다고 인정 받은 기분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애새끼 같은 감정이지만.
‘너희는 6검이지.’
나란히 선 여섯 개의 묘비를 보다가 다시 웃음을 흘렸다. 6검, 제국을 지킨 여섯 개의 검. 너희에게 딱 맞는 이름이다. 그 영광에는 내가 낄 염치도 자격도 없다. 반쪽짜리가, 아무런 신념도 없이 우왕좌왕 거리고 끝내 무엇도 이루지 못한 놈이 끼기에는 너무 고귀한 이름이다.
그래서 7검이라는 이름을 사양했다. 나는 그 이름에 걸맞은 놈이 아니니까.
너희가 누릴 모든 영광을 홀로 죽지 못했다는 이유로 독점한 놈이니까.
아니, 어쩌면 원작에서는 살았을지도 모를 너희가, 나라는 불순물이 낀 변수로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오히려 죄인이지.”
씁쓸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나는 너희와 나란히 할 자격이 없는 죄인에 불과하다. 너희와 나란히 하고 싶었다면 차라리 그때 죽었어야 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살며시 묘비를 쓰다듬었다. 제라드, 올리버, 드레이크, 발터, 이드리드, 헤카테. 내가 살렸어야 할 내 친우들, 내 연인.
“…그런데 죄인이라도 살고 싶기는 하더라.”
슬쩍 입꼬리만 올리며 중얼거렸다. 무엇도 이루지 못한 나지만, 이 세계에서 불순물이자 외래종이나 마찬가지인 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고 싶었다. 홀로 죽지 못했지만 그래도 살아갔다.
그래서 연인이 여섯이나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세계에 있을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사람들이니, 이 육체가 쌓은 인연이 아닌─ 너희를 잃은 후의 내가 다시금 만든 인연이니.
그렇기에 나도 이 세계의 일원이라는 위안을 받고 싶어서, 모든 걸 잃은 나도 사랑을 받는다는 걸 느끼고 싶어서 연인을 만든 걸지도 모르겠다.
“정작 거기서 멈췄지만.”
이 세계의 일원이라는 걸 인정 받고 싶어 사귄 인연인데, 정작 그 이상 나아가기는 무섭더라. 더 나아가려고 하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속삭였다. 네가 이 세계의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을 자격이 있냐고.
겁을 먹은 거지. 트라우마인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나 같은 놈에게 고백을 해준 상대에게 변변한 애정 표현도 하지 않는 것. 이게 얼마나 실례되는 행동일까.
이 세계의 주민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연인들의 손을 잡았으면서 주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더 나아가지 않는다. 머저리도 이런 머저리가 없다.
“이제 달라져야지.”
작게 심호흡을 내쉬고 몸을 돌렸다. 이제 이 끔찍한 매듭을 풀 때가 왔다.
도르곤을 죽이고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겠다.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비록 너희는 지키지 못했지만 너희가 바란 평화를 내 손으로 이룩하겠다. 그러면 나도 나 스스로에게 묶은 속박을 벗어던질 수 있을 것 같다. 불순물이 아닌, 외래종이 아닌 당당한 이 세계의 주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반쪽이 아닌 어엿한 하나로.
아카데미로 복귀하기 전, 마지막으로 저택에 들렸다.
‘오랜만이네.’
정확히는 저택에 있던 창고를 찾았다. 이 안에 3년이나 박아둔 애병이 잠들어있으니까. 사실 애병이라고 부를 정도로 거창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오래 사용하고 가장 손에 맞는 무기─ 이렇게 생각하니 애병이 맞네.
아무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