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38)
“그리고 부인께서 소가주님을 꼭 봐야겠다고, 제발 불러와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저 부탁이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을 눈물이 담겼을지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슬슬 해가 저물어가고 학생들도 하나둘 모습을 감추는 시간. 평소였다면 나 역시 진작 숙소로 돌아가 쉬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밖을 떠돌고 있었다.
“…어머니, 쓰러지셨어.”
동아리 시간이 끝난 직후에 에리히가 조심스레 꺼낸 말. 그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는 건 2황자 정도 되는 인성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다. 내가 지난 전쟁에 참전했을 때도 어머니는 크게 걱정하고 시름에 잠겼다고 들었다. 그런데 종전 3년 만에 다시 남편과 아들이 나란히 전쟁에 참전한다? 아무리 멘탈이 튼튼한 사람이어도 패닉에 빠질 만한 일이다.
그래도 혼절까지 갈 줄은 몰랐지만. 아니, 이런 건 내성이 생길 수 없는 일이니 당연한 건가?
“유모도 난감해하더라. 어머니가 우는 와중에도 형을 찾으니 부르기는 해야겠고, 그렇다고 형이 한가한 것도 아니니 말을 꺼내기는 힘들고. 오죽하면 나한테 부탁했겠어.”
머리를 긁적이던 에리히의 말이 떠올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가 쓰러지며 나를 찾기 전에 알아서 영지에 갔어야 했다. 아무리 어머니 곁에 가주가 있었어도, 전쟁 전에는 찾아갈 생각이 있었어도 가장 먼저 가야 했다. 반쪽짜리 아들이고 나발이고 어머니 입장에서 나는 온전한 아들이지 않나.
가주가 나를 아들로 생각하는 것처럼.
‘망할.’
요즘 들어 매일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다. 이 지끈거림의 대다수가 자업자득 같다는 게 애석할 따름.
그렇게 한참이나 숙소 앞을 서성이는 사이, 가문에서 온 마법사가 텔레포트를 통해 나타났다.
“소가주님. 모시러 왔습니다.”
“그래.”
집사장에게 급하게 연락하여 요청한 마법사. 바로 옆에 대륙 최고의 마법사가 있으니 굳이 가문의 마법사를 요청할 필요는 없지만, 이번 일은 아들인 나 홀로 가야 할 일이라 가문의 마법사를 불렀다.
괜히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마종공이나 다른 연인들에게 말하면 안 그래도 속이 타들어갈 사람들에게 확인 사살을 날리는 꼴이다. 걱정거리는 나 하나로 족하지.
“어머니는 어떠신가.”
텔레포트를 준비 중인 마법사에게 슬쩍 말을 건네자, 마법사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다행히 제가 출발하기 직전에 눈을 뜨셨습니다만, 물만 마시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그 말에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적어도 탈수는 피했지만 딱 탈수만 피한 상황이다. 얘기를 들어 보면 꽤 오랜 시간 공복이신 것 같은데.
“많이 기다리시겠군. 어서 가지.”
“예.”
끝없이 몰려오는 걱정을 털어내고 마법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걱정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빨리 얼굴을 비춰야 한다.
영주성 정문에 도착하자마자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소가주의 등장에 허리를 숙이는 시종들이나 경례를 하는 기사들마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충 손만 휘저으며 인사를 받아줄 정도로.
물론 가문의 사용인들도 안주인의 혼절에 비상사태라 그런지 나한테 크게 신경 쓰는 기색은 없었다. 그 모습에 더욱 속이 답답했다.
“소가주님!”
“집사장.”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장이 급하게 달려왔다.
“딱, 딱 맞게 오셨습니다. 부인께서 방금 막 일어나셨─”
“바로 가지. 침실에 계신가?”
“예, 예!”
가주와 소가주가 나란히 제도 지박령이라 영지의 업무 대다수를 처리하는 집사장. 과중한 업무와 그에 비례하는 능력을 지닌 집사장이기에 언제나 굳건하고 평온한 모습을 유지했지만, 그런 집사장마저 말을 더듬으며 당혹스러운 기색을 여과 없이 보였다.
‘딱 맞게라.’
집사장의 말에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늦었다. 딱 맞게 왔다는 말을 들으려면 지금이 아니라 진작에 왔어야 했다.
“소가주님. 부인께서는 막 의식을 되찾으신 상황이라, 아마 소가주님을 보면 감정을 가다듬으실 수 없을 겁니다. 지금 부인을 달랠 수 있는 건 소가주님뿐이니…”
옆에서 쉴 새 없이 설명하는 집사장에게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요약하면 어머니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니 무슨 모습을 봐도 동요하지 말고, 최대한 달래라는 말 아닌가.
충분이 이해했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 온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부인께서 간단한 식사라도 하실 수 있게 설득을 부탁드립니다.”
“꼭 그러도록 하지.”
내 대답에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는 집사장.
미치겠다. 아들이 나서서 식사를 설득해야 하다니, 대체 얼마나 피폐해진 거야.
***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제 눈물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니아, 식사를 안 할 거면 물이라도 제대로 마셔야 할 거 아니야.”
“생각 없어…”
라우라의 말에 갈라진 목소리로 겨우 답했다. 고개를 저을 힘도, 입을 열 힘도 나지 않는다. 그냥 다시 누워서 잠이나 자고 싶을 정도로.
게다가 이미 마실 만큼 마셨다. 세 잔이나 마셨으면 괜찮겠지.
“네가 마신 거보다 쏟은 게 더 많을걸? 빨리 안 마셔?”
헛소리 하지 말라는 반응에 라우라가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라우라가 크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 머리를 강제로 돌린다거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내 몸 상태가 썩 좋지 않기에 라우라도 자제하는 모양.
“칼도 올 텐데, 그런 모습으로 반겨줄 거야? 곧 전쟁터로 갈 아들한테 초췌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대신 무엇보다 확실한 방법으로 설득을 시도했다.
“칼이, 온다고?”
슬며시 고개를 라우라 쪽으로 돌렸다. 칼이, 정말 그 아이가 온다고?
“그래. 아까 집사장이 마법사를 아카데미로 보냈대. 텔레포트면 금방이니 곧 오겠지.”
그렇게 말한 라우라는 내게 물 잔을 내밀었다. 마치 네가 이 얘기를 듣고도 안 마실 자신이 있느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실게.”
당연히 없다. 어미로서 자식에게 아픈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않나.
“아.”
“아.”
하지만 물 잔을 입에 대려던 찰나에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 이불 위에 떨어트려 깨지지는 않았지만, 이불은 완전히 젖어버렸다.
춥다. 이제 여름인데 왜 이렇게 추운 건지.
“세라가 나으니까 이젠 네가 문제네.”
어이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라우라의 말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사실 나만큼 라우라도 힘들 텐데. 칼을 자기 자식처럼 아낀 라우라가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는데.
“금방 새 이불─”
– 똑똑
“어머니, 칼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라우라의 말을 끊으며 들리는 칼의 목소리에 나와 라우라의 시선이 동시에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보던 라우라는 황급히 젖은 이불을 들어올렸다.
“소, 소가주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시녀장? 안에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부인께서 옷을 갈아입고 계셔서!”
이상한 변명을 내뱉은 라우라는 빠르게 젖은 이불을 구석에 박아 넣고 예비용 이불을 나에게 던졌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던 나지만, 지금만큼은 빠르게 이불을 덮었다. 내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왔을 칼에게 젖은 이불을 덮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이제 들어오셔도 됩니다.”
내가 이불을 덮는 걸 확인하자마자 칼을 향해 말하는 라우라.
하지만 묘하게 다급한 기색이 느껴졌던 라우라의 목소리에 의문을 느낀 건지, 칼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스르륵 열리는 문과 조심스레 들어오는 칼. 급히 달려왔는지 조금 헝크러진 머리에 걱정 가득한 얼굴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상하다. 더 이상 나올 눈물도 없는 줄 알았는데 칼을 보니 다시 눈물이 나왔다.
‘걱정만 끼치고.’
물론 내가 왜 이러는지 잘 알고 있다.
자괴감이 들었으니까. 곧 전쟁터로 떠나야 하는 건 칼인데, 울고 싶은 건 오히려 칼일 텐데, 위로를 받아야 하는 것도 칼인데 이 어미 같지도 않은 어미가 아들의 슬픔을 빼앗고 있으니까. 어미로서 아들을 위로하고 다독이기는커녕, 아들이 걱정하게 만들고 아들 앞에서 눈물이나 보이고 있으니까.
“어머니, 괜찮으십니까?”
지금도 그렇다. 이 못난 어미도 어미로 여겨주는 것인지, 칼은 나에게 다가와 안부부터 물어줬다.
“칼…”
“네, 어머니. 저 여기 있습니다.”
“칼, 칼… 내 아가…”
계속 칼의 이름만 부르며 칼의 손을 잡았다.
꺼칠하다. 수련에 몰두하느라, 전쟁에 참전하느라, 감찰부장으로서 지내느라 고생한 손. 고귀한 가문의 태생이면서 너무나도 고생한 이 손.
그리고 그 손을 잡고 나서야 문득 떠올렸다. 내가 이 아이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준 것이 얼마 만일까. 아니, 있기는 있었을까?
“미안하다, 미안하구나, 너무, 너무 미안해…”
눈물이 방울방울 칼의 손등에 떨어졌다. 이럴 자격이 없다는 걸 알면서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이럴 수록 칼만 곤란하게 만든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어미가, 아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못 되고…!”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나 전쟁에 끌려가는 아들. 그런 아들에게 나는 대체 무엇을 해주었나.
만약, 아주 만약, 그래서는 안 되지만 정말로 만약에─ 오늘을 마지막으로 칼을 볼 수 없다면, 나는 칼에게 좋은 어미로서 남을 수 있을까? 이 아이의 기억에 나는 좋은 어미일까?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기절하듯 잠에 들었을 때는 칼이 잘못되는 꿈까지 꿨다.
그렇기에 칼의 손을 꽉 잡았다. 이 손을 놓치면 칼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날 것 같았다.
***
난감하다. 집사장이 허둥거렸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어머니 상태가 많이 심각하기는 하구나.
내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는 어머니.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어머니. 언제나 300년 크라시우스 가문의 안주인이자 귀족의 모습을 보인 어머니가 이렇게 감정을 토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어미가, 아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못 되고…!”
아마 어머니가 가슴에 숨겨뒀을 말. 그 말을 듣고 나니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