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39)
이 반쪽짜리 아들부터가 어머니를 어머니로 대하지 못했는데, 왜 진짜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자책하는 건지.
‘망할.’
어머니가 붙잡은 손을 내려다봤다. 사실 붙잡았다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약한 힘이다. 그냥 손을 뒤로 빼기만 하면 바로 풀릴 정도로 약한 힘.
하지만 이상하지. 그렇게 약한 힘인데 왜 이렇게 강하게 느껴질까.
탈라한테 목을 졸렸을 때는 손목을 잘라서 튀었는데, 왜 지금은 이런 약한 힘에도 벗어나지 못할까.
이상한 일이다.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던 어머니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셨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 눈동자는 좌우로 흔들리며 방황했다.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잡으며 서글프게 우는데 차마 손을 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위로하기에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을 난감한 상황.
그 와중에 뒤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시녀장도 눈물을 흘리는 중인 것 같다. 앞뒤로 포위 당한 기분이다.
“어머니, 저는 괜찮습니다. 미안해하실 거 없어요.”
일단 이 상황을 방치하면 끔찍할 정도로 분위기가 떡락할 것이 뻔하기에 급히 입을 열어 어머니를 달랬다. 달랜다고 해봤자 나는 괜찮다는 뻔한 말이지만─ 지금은 아무 말이라도 해야 한다.
아니, 솔직히 괜찮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 내가 어머니에게 서운함을 느끼거나 학대를 받은 적도 없잖아.
“오랜만에 어머니를 뵈러 왔는데 울기만 하시면 제 마음도 좋지 않습니다.”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자 손등에 방울방울 떨어지던 눈물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들에게 미안해서 우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아들의 마음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멈추는 건 당연한 일일까? 코앞에서 지켜보는 나도 헷갈린다. 뭔가 협박하는 기분이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눈물이 완전히 멈췄는지 살며시 눈가를 닦는 어머니에게 슬쩍 입을 열었다. 집사장이 어머니가 식사를 할 수 있게 설득해달라고 했었지. 지금 타이밍이 아니면 도저히 말을 못 꺼낼 것 같다.
“아직 하지 않으셨습니다.”
시녀장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우물쭈물하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황급히 대답했다. 울고 쓰러지기를 반복해서 음식을 입에 대지 못했고, 물도 겨우 마시기 시작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환장할 노릇이다.
물론 어머니가 금식 중이라는 건 마법사와 집사장을 통해 들었지만, 어머니를 가까이서 보필하는 시녀장마저 인정하니 더욱 착잡했다.
“시녀장.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걸로 가져다주십시오.”
“나, 나는 괜찮─”
“저도 어머니와 같이 먹을 테니 2인분으로요.”
그 말에 어머니는 도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나도 먹겠다는 걸 만류하면 아들도 나란히 금식을 하게 되는 꼴이니까 도저히 말릴 수 없겠지.
아들이 스스로를 인질로 삼는 치사한 방법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방법을 써야 할 정도로 상황을 악화시킨 건 어머니 아닌가. 자업자득이다.
“예,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시녀장은 다시 없을 기회를 잡은 사람처럼 빠르게 침실을 나갔다.
거의 뛰다시피한 발걸음에서 그동안 시녀장이 겪었을 고초를 느낄 수 있었다.
시녀장은 흰죽 두 그릇을 가져왔다. 보통 서양에서 먹는 죽은 오트밀이 아니었나 싶지만, 이제 와서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기에는 너무 멀리 온 세계관이다. 사실 김밥이 튀어나와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리고 오트밀은 소화가 다소 힘든 음식 아니던가. 어머니의 상태를 생각하면 차라리 이게 낫다.
“조금 뜨겁습니다.”
시녀장에게 받은 죽을 숟가락으로 퍼서 몇 번 분 뒤, 어머니의 입가로 내밀었다.
아직도 손을 떨고 계신 걸 보니 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모양. 이런 상태로 숟가락을 쥔다면 분명 놓칠 테니, 내가 직접 먹여드리는 것이 맞다.
“괘, 괜찮단다. 내가 먹을 수 있으니 이리 주렴.”
“제가 안 괜찮습니다.”
민망한 듯 손을 뻗는 어머니에게 단호히 대답했다. 먹을 수 있기는 무슨. 아무리 봐도 이불 위에 죽이 쏟아지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는데.
“드시지요. 소가주님의 걱정이 크신 것 같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시녀장이 호응하고 나서야 숟가락을 입에 물었다. 그마저도 한참이나 망설이다 문 것이지만 먹긴 먹었으니 다행이다.
“온도는 괜찮습니까?”
“그래. 따뜻하니 먹기 좋구나.”
죽을 삼킨 어머니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더 드십시오. 적어도 한 그릇은 다 비우셔야죠.”
좋다고 하시니 딱 그 정도 온도에 맞춰서 다시 어머니께 내밀었다. 한 입만 주는 건 정 없지.
다행히 어머니도 먹을 때마다 사양할 생각은 없으신지, 두 번째부터는 묵묵히 받아먹으셨다. 민망한 기색은 그대로였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죄송합니다. 소집이 끝나자마자 왔어야 했는데.”
그렇게 그릇이 비어갈 때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들이라는 놈이 참전이 확정됐으면서 얼굴도 비추지 않아 죄송하다고.
출정하기 전에는 들를 생각이었다느니, 이미 가주와는 만났다느니─ 그런 말은 의미가 없다. 이미 어머니는 쓰러지지 않았나. 내 실수로 쓰러진 사람 앞에서 뻔뻔하게 변명을 하는 건 못 할 짓이다.
그리고 내 사과에 죽을 오물거리던 어머니는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정말, 정말 가야 하니?”
그래도 이미 눈물을 쏟아낸 직후라 그런지, 아니면 배가 따뜻해져서 진정이 된 건지 어머니의 반응은 아까보다 양호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펑펑 울던 때에 비하면 양호하단 거다. 지금도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으니까.
“아카데미에 있느라 바쁘잖니. 고, 곧 결혼도 해야 하고, 방학 때는 감찰부 일로도 바쁠 테고.”
필사적으로 이런저런 명분을 가져오는 어머니를 보니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사실 어머니도 알고 계실 거다. 내가 참전하는 건 막을 수 없는 일이라고, 아무리 내가 결혼을 앞두고 여러 일로 바쁘다지만 전쟁보다 위에 둘 수는 없다고.
그걸 알기에 어머니도 쓰러지신 거지. 내 참전 소식에, 그 참전을 막을 수 없다는 직감에 몸과 정신이 버티지 못한 거지.
“괜찮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종군 감찰관으로 가는 거지, 싸우러 가는 건 아닙니다.”
그렇기에 어머니에게도 뻔한 위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에 빠지는 건 불가능하니 안전하다는 어필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감찰관은 다른 사람이 가도 돼. 꼭 네가 가야 할 필요는 없단다.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닌데, 왜 네가…”
하지만 핵심을 꿰뚫는 말에 순간 몸이 굳고 말았다.
맞는 말이다. 황제가 비전투 감찰관을 원했다면 굳이 날 보낼 필요가 없다. 여차하면 전선에서 싸울 수 있는 전력을 보내기 위해, 유목민들을 압박하기 위해 나를 감찰관으로 임명한 거다.
“넌 지난 전쟁 때도 참전했으니 충분히 도리를 다 했단다. 차라리 작위를 반납하고 빠지면 안 되겠니?”
애처롭게 부탁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문득 가주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는 도리를 다 했으니 이번에는 빠져도 된다고 하던 가주, 작위를 반납하고 물러나라고 하던 가주. 과연 부부라 그런지 닮은 꼴이다. 어쩌면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일치한 것일 수도 있다.
“가주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번 전쟁에 참전할 필요는 없다고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어머니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가 권했으니 부디 따라 달라는 듯이.
그럴 분위기가 아니지만 웃음이 나올 뻔했다. 내 머릿속 가주의 이미지는 황실과 제국을 위해 자식도 써먹는 냉혈한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황제의 뜻을 거스르면서 아들을 전쟁에서 빼고자 한다.
그 격차에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격차 같은 건 없었다. 내 편견과 착각이었을 뿐.
“어머니와 가주님의 마음은 잘 압니다. 저를 걱정해주시는데 모를 수가 없죠.”
부드럽게 말을 잇자 어머니의 얼굴에는 희망이 차올랐다.
희망 가득한 표정을 보니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이어서 할 말은 그 희망을 완전히 엎어버리는 말인데.
“시녀장. 잠깐 나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필요하면 불러주십시오.”
희망에 찬 어머니와 달리 시녀장은 내 뜻이 굳건한 걸 눈치챘는지, 다소 어두운 안색으로 물러났다.
‘…얘기 할 때가 됐지.’
시녀장이 나간 걸 확인하고 다시 어머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 이제 얘기할 때다. 어머니에게도 헤카테랑 그 녀석들에 대한 얘기를 할 때가 됐다. 내가 북방에 가는 걸 납득시키려면 그 얘기도 반드시 해야 하니까.
“어머니.”
“그래, 말하렴.”
“저 몇 년 전에 결혼할 뻔했습니다.”
난데없는 발언에 어머니의 눈이 커졌다.
최대한 신중히 말을 이어갔다. 단어는 되도록 부드럽게, 상황은 가급적 간략하게 설명했다. 쓰러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어머니에게 너무 있는 그대로 말하면 다시 충격으로 기절할 수가 있다.
“제 친우들이, 연인이 그곳에서 쓰러졌습니다. 홀로 남은 저로서는 그곳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마무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옳은 선택이었다. 어떻게든 포장하여 한 말에도 어머니의 안색은 급격히 창백해졌으니까.
“그러니 어머니. 걱정은 감사하지만 저는 가야 합니다.”
슬쩍 어머니의 손을 잡았지만 어머니는 넋이 나간 것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말, 도움이 안 되는 어미구나.”
한참이 지나 겨우 보인 반응조차 자괴감 가득한 말이었다.
“아들이, 이런 고통을 겪은 걸, 몇 년 동안이나 모르고… 모른다는 걸 방패 삼아… 네가 속에 품은 응어리를 풀려는 걸 막고…”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애초에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 와중에도, 네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고… 엉망인 어미야.”
그런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어머니로서 아들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건 본능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나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조금씩 고개가 숙여졌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말에 어머니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어머니가 도움이 안 된다느니, 엉망이라느니.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진심이다. 어머니는 너무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다. 대토벌 전쟁은 유목민의 봉기로 일어난 재앙이고, 이번 참전 역시 유목민의 봉기와 황제의 지시로 일어난 일이다. 그 어디에도 어머니의 책임은 없다.
“…애초에, 어머니가 저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요.”
“무슨, 말이니?”
멍한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드는 어머니.
“어릴 적 제가 수련할 때 약초도 보내주시고 식사도 신경 써주셨잖습니까.”
놀란 듯 눈동자가 흔들리는 어머니에게 픽 웃음을 흘렸다.
“말로 표현하지만 않으셨을 뿐 언제나 저와 에리히를 챙겨주신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니, 말도 안 되지요.”
아직도 당황한 듯 아무 말도 못하는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저는 한 번도 어머니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도, 원망한 적도 없습니다.”
이것도 진심이다. 정확히는 이 육체의 진짜 주인이 가진 기억이 그랬다.
내가 빙의를 하고 얻게 된 기억, 이 몸이 가지고 있던 기억 그 어디에서도 가주와 어머니를 향한 원망은 없었다.
“그러니 부디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단호한 말에 품에서 격한 떨림이 느껴졌다.
가슴 부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