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42)
그런데 이거 어쩌냐. 걱정해 주는 교장에게 말하기에는 조금 미안한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어제 재무성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전쟁이 길어지거나 저에게 문제가 생기면, 저를 대신해서 1과장이 감찰관으로 올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교장이 흠칫하는 것이 보였다. 겨우 익숙해진 감찰관을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오는 것도 문제인데, 하필 그게 고문 담당인 1과장. 교장 입장에서는 정신이 아찔할 일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내 공백을 채우려면 같은 부장, 혹은 장관이 직접 나서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내 연인이자 부원들과 조금이라도 접점이 있는 1과장이 오는 거지.
“아카데미 졸업생이 감찰관으로 온 다라. 색다른 경험입니다.”
“하하, 그도 그렇겠군요.”
순간 교장의 머릿속에서 1과장의 학창 생활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지만, 애써 신경 쓰지 않았다.
“1과장이 감찰관으로 오게 된다면 제가 잘 말해두겠습니다. 전쟁 중에도 연락 정도는 가능하니까요.”
물론 최선은 방학 중에 전쟁이 끝나는 건데, 저번 전쟁은 2년이나 끌어서 장담을 못 하겠다. 괜한 말로 교장을 기대하게 할 수는 없으니 1과장 파견은 상수로 두자.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포위를 당하고 말았다.
“칼, 꼭 몸조심 해야 돼요. 무리하지 말고, 식사도 제때하고… 또, 또 뭐가 있지?”
“잠도 제대로 주무시고요.”
“아, 맞아요. 잠도 중요하죠.”
이제 집으로 돌아갈 연인들과 부원들. 그 사이에서 난 집이 아닌 전쟁터로 갈 놈이기에 온갖 걱정과 격려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걱정하는 말이 뭔가 이상한데. 이거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 같은 발언 아니냐.
“저도 제 몸을 소중히 챙기는 편이니 걱정마십쇼.”
아무튼 걱정을 하는 건 맞으니 최대한 밝게 대답했다. 이제 종전까지는 보지 못할 텐데, 괜히 어두운 표정으로 걱정을 끼칠 필요는─
“그랬으면서 그런 상처를 달고 있었어요?”
“우리 그 말은 이제 안 하기로 했잖아…”
이리나의 명치 쪽 강력한 직구에 할 말을 잃을 뻔했다. 이 타이밍에 그런 말은 반칙이야.
그래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이리나를 보니 본능적으로 고개가 숙여졌다. 사실 반칙은 상처 얘기를 꺼낸 이리나가 아니라 그딴 상처를 달고 있는 내가 한 게 아닐까? 반성하자.
“…이미 있는 상처는 어쩔 수 없지만, 또 다치고 오면 안 돼요. 아셨죠?”
“물론이지.”
그렇기에 약간 물기 섞인 이리나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내가 그딴 상처를 달고 있던 것도 카간 때문이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절대 그럴 수가 없다. 이렇게 말하니 뭔가 플래그 같지만 상식적으로 한 시대에 카간 같은 새끼가 또 나오면 그게 말이 되냐.
이번에는 무사히 돌아올 거라고 확신한다. 이건 복선이 아닌 상식 문제다.
“늦어도 올해 안에는 다시 봤으면 좋겠군요. 무운을 빕니다, 고문 선생.”
“그래, 고맙다.”
그 와중에 류티스의 입에서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사가 나와 감동하고 말았다. 이런 걸로 감동하면 안 되는데.
“난 영지에서 따로 인사할게.”
그리고 자기 인사를 받고 싶으면 출정 전에 영지에 오라는 에리히의 말에 픽 웃고 말았다.
어차피 갈 예정이었지만 저런 말을 들으면 무조건 가야지.
***
부황의 명에 따라 지방군을 지휘할 원수들을 임명했다. 이미 부황께서 정한 타일글레헨 백작과 전 호르펠트 백작, 그리고 북부의 사프리 백작과 서부의 라비르제 후작.
‘다루기에 딱이다.’
부황께서 갑작스레 원수 임명권을 넘긴 이유는 알고 있다. 내가 직접 원수로 임명하여 내 색을 입히라는 의미겠지.
그렇기에 사프리 백작과 라비르제 후작으로 정했다. 둘의 영지는 각각 하블렘 공작령, 체네스 공작령과 붙어있을 정도의 요충지. 내 손에 넣는다면 득이 되면 득이 되지, 실이 될 건 없다.
심지어 사프리 백작과 라비르제 후작은 직접 종군할 정도로 열의가 넘치는 인물들이다. 거기다 사교계에서 다소 중립에 가까운 입장을 가진 귀족이기도 하고. 이 정도면 임명하지 않는 것이 실례 아닌가.
‘중앙군은 신경 쓸 것 없겠고.’
그리고 직접 원수감을 찾아야 했던 지방군과 달리 중앙군은 수월했다. 서부 방면군에서는 이미 8군단장이 원수로 임명되었으며, 북부 방면군은 방면군 사령관이 직접 지휘를 맡았다.
남은 건 중부 방면군인데, 이마저도 최연장자인 2군단장이 출정하기로 했으니 문제없다. 나이에 걸맞은 능력도 소유하고 있으니 더더욱.
‘많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상 원수 역할을 수행할 북부 방면군 사령관까지 포함하면 원수만 일곱. 겨우 3년 전에 전쟁을 끝낸 제국이 다시 원수를 일곱이나 투입할 정도의 대군을 일으켰다.
물론 이 대군의 목적은 진지하게 유목민을 절멸하는 것이 아닌, 그저 존재 자체로 위압감을 주는 것이다. 중앙군과 지방군을 합해 25만이 넘는 병력. 6만에서 7만에 지나지 않는 유목민 입장에서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터.
게다가 감찰부장도 종군한다. 유목민의 사기를 뒤흔들 수 있는 요소는 전부 투입한 셈이다.
“유목민이 제국을 두려워한다면 그 두려움의 결정체는 감찰부장이다. 설령 전승공이라도 그들에게 존재만으로 압박을 주지 못한다.”
문득 부황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감찰부장의 무력이 아닌 상징에 주목하여 종군 감찰관에 임명했다는 말씀. 무력을 써야 한다면 단호히 써야 하나, 싸우지 않고 이기는 최선의 방안을 이끌 수 있는 것은 감찰부장뿐이라던 말씀.
‘맞는 말이지.’
유목민이라는 집단이 존속한다면 영원히 잊힐 수 없는 존재가 역천자이며, 그런 역천자를 꺾은 재앙이 감찰부장이다. 유목민이 역천자를 동경하고 경외하는 만큼 감찰부장을 향한 두려움도 커질 것이다.
부디 우리가 예측하는 것보다 감찰부장의 효과가 더욱 크기를. 전쟁은 빠르게 끝날수록 좋으니까.
‘…황손이 태어나기 전에 끝나기를 바란다면 욕심인가.’
첫아이의 탄생이 피에 얼룩진 탄생이라면 아비로서 슬플 것 같지만─ 그렇다고 무리하게 종전을 요구하면 애꿎은 장병들만 죽어나갈 일.
그러니 에넨과 대제께 맡기도록 하자. 그 아이를 보우하신다면 피와 눈물이 아닌 함성과 축하 속에서 태어나게 하실 터이니.
***
마종공과 함께 제도에 도착하자마자 감찰부로 출근했다. 출정이 임박했으니 부장으로서 최소한의 조치는 해야 하고, 내가 없는 사이에 원정군에 대한 정보가 왔을 수도 있다.
‘방금 왔네.’
그리고 예상대로 원정군에 대한 자료가 도착했다. 그것도 오늘 아침에 도착한 따끈따끈한 정보가.
[ 대북방 원정군 확정안중부 방면군 휘하 2군단, 3군단, 5군단.
서부 방면군 휘하 8군단, 11군단, 12군단.
북부 방면군 휘하 7군단, 15군단, 17군단, 23군단, 24군단, 26군단.
이상 중앙군 12개 군단 참전.
또한 중부, 서부, 북부 대영주 중심의 지방군 약 10만 참전.
원정군은 제국군 부사령관 겸 대원수, 리히터 뉘렌 오브 하블렘 공작을 총사령관으로 삼는다.
북부 방면군 사령관, 발타라스 윈테스로 하여금 북부 방면군 소속 군단을 지휘케 한다.
제2군단장, 라만 모겐스 오브 누드르일 자작을 원수로 삼아 중부 방면군 소속 군단을 지휘케 한다.
제8군단장, 에버트 보나트라를 원수로 삼아 서부 방면군 소속 군단을 지휘케 한다.
제국의회 의원, 빌헬름 크라시우스 오브 타일글레헨 백작을 원수로 삼아 중부 지방군 절반을 지휘케 한다.
게오르크 히덴을 원수로 삼아 중부 지방군 절반을 지휘케 한다.
파트레시아 케일론 오브 사프리 백작을 원수로 삼아 북부 지방군을 지휘케 한다.
마라멘토 디고 오브 라비르제 후작을 원수로 삼아 서부 지방군을 지휘케 한다.
… ]
‘오.’
완전히 확정된 원정군을 보니 감탄이 나왔다. 황제가 소집령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이길래 짐작은 했는데, 정말 이전 전쟁과 비슷한 수준의 병력을 동원했다.
게다가 제국군 부사령관인 전승공을 필두로 원수, 혹은 그에 준하는 인물만 일곱.
‘작정했네.’
지금만큼은 주머니에 있는 후작 인장이 가볍게 느껴질 정도다.
중앙군 15만, 지방군 10만, 원수로 임명된 귀족만 여섯. 동쪽 국경에서 활동한다면 동부 왕국들이 일제히 발작할 수준의 병력이 편성되었다.
이렇게 보면 정주 국가 입장에서 유목민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유목민 세력은 많아봤자 7만 정도가 모일 거라고 추측 중인데, 제국은 그 3배를 아득히 넘는 25만을 모았다. 최소치인 6만을 기준으로 잡으면 무려 4배인 병력. 이 정도면 싸우기도 전에 이겼다고 보는 게 옳다.
정말 유목민이 상대만 아니었어도 이겼다고 확신할 수 있는 전쟁인데…
‘망할 말쟁이 새끼들.’
6, 7만의 유목민 전력은 전부 기병일 것이라는 게 문제다. 개 같은 유목민 놈들, 정정당당히 뚜벅이 상태로 붙는 게 도리 아니냐.
그래도 고무적인 사실은 이 기병 전력 차이가 귀찮은 문제일지언정, 메꾸는 것이 불가능한 사안까지는 아니다. 애초에 군인이 아닌 나조차 우려하는 문제를 황제나 군부가 놓쳤을 리는 없으니까.
[ …각 군단 및 지방군 소속 특수 전력과 별개로 특무성 소속 기사단 14개, 마법사단 8개, 그외 16개의 무력 부대 참전. ]원정군 확정안 뒷부분에 적힌 특수 전력 편성에 관한 정보. 황제가 소중히 키워온 특무성 전력이 무려 38개나 원정군에 포함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보기만 해도 든든해지는 숫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기병은 보병을 압도하지만 특수 전력은 병과를 초월한 괴물이다. 아무리 기병이라도 잘 키운 기사나 마법사 앞에서는 그저 움직이는 허수아비에 불과할 정도. 그리고 제국은 기병 전력이 부족한 거지, 특수 전력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다.
물론 북방에도 기사와 마법사 같은 특수 전력이 존재하지만 어지간한 것들은 지난 전쟁에서 죽었다.
‘어째 다 하나씩 하자가 있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스운 일이다. 제국은 기병 전력이 맛이 갔고, 북방은 특수 전력이 맛이 갔다. 서로가 사지 하나는 부러진 상태로 전쟁에 나서는 상황.
전쟁은 병신 둘이 붙어서 덜 병신인 쪽이 이기는 게임이라던데,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맞는 말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제국이 덜 병신이라는 게 다행이지.
출정식 당일. 아슬아슬하게 최소한의 일을 처리하고 영지에 방문했으나, 당연하게도 영지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가문의 범위로 보면 가주와 후계자가 나란히 종군하는 것이고, 영지 전체로 봐도 상당한 영민들이 지방군으로서 참전하는 상황이다. 막말로 가족, 친구, 이웃이 죽으러 가는 건데 분위기가 밝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않나.
“어서 오렴. 날도 더운데 불편한 곳은 없니?”
“저야 워낙 건강하니 멀쩡하죠.”
그래도 그 칙칙한 분위기 속에서 어머니는 최대한 밝은 얼굴로 맞이해주셨다. 이제 전쟁터로 갈 아들 앞에서 어두운 표정을 보일 수는 없다는 것처럼.
“반가운 얼굴도 왔구나.”
“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머님.”
부드러운 어머니의 인사에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4과장.
딱딱하게 긴장한 듯한 모습에 어머니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4과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 토닥임에 4과장은 황송하다는 듯 허리까지 숙였지만, 그만큼 어머니를 존경한다는 것일 테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오랜만에 보는 게 출정 전 인사라니.”
그리고 그런 4과장을 향해 어머니는 씁쓸히 중얼거리셨다.
확실히 어머니 입장에서는 며느리(중 하나)가 전쟁에 참전하기 전에 인사하러 온 것이니 마음이 편치 않을 거다. 남편, 아들에 이어 며느리까지 종군. 이렇게 야박한 운명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무성 전력이 대거 투입된 상황에서 묵광대 혼자 빠질 명분은 없다. 심지어 묵광대의 전신인 감찰부 4과는 지난 대토벌 전쟁에서 활약한 부서. 그 상징성이 어마어마하다. 빠지는 게 더 이상하지.
“너무 걱정은 마십시오. 페넬리아도 저처럼 직접 싸우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지, 어머니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소식이 있어 조심스레 위로를 건넸다.
묵광대가 상징성 때문에 참전하기는 했으나 동시에 그 상징성으로 인해 나와 붙어 다니게 됐다. 명목상으로는 종군 감찰관 호위, 실질적 이유는 내가 몸담았던 4과를 나와 붙여서 유목민이 느낄 부담을 더욱 크게 하기 위한 조치.
그렇기에 묵광대는 나처럼 전선보다는 본진에 대기할 가능성이 높다. 대신 내가 전선으로 간다면 같이 싸우겠지만, 솔직히 나랑 묵광대가 뭉치면 도르곤이 나타나는 게 아닌 이상 다칠 일도 없다.
“전쟁은 가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그래도 그건 다행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