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43)
어머니도 그 말에 마음이 조금은 놓였는지 아까보다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셨다.
“꼭, 꼭 무사히 돌아오렴. 나는 너희가 건강히 돌아온다면 더 바랄 게 없단다.”
그러고는 나와 4과장을 끌어안으며 작게 속삭이셨다. 제국을 위한 헌신과 의무를 중시하는 귀족이 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 어머니는 백작부인이 아닌 한 명의 어머니이자 시어머니로서 우리를 안은 것이다. 마치 지난 번의 가주처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머니의 걱정에 4과장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부모를 잃은 4과장으로서는 자신을 자식처럼 걱정하는 어머니의 말에 크게 감동한 모양.
“작은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꼭 그러렴.”
4과장의 확답에 빙그레 미소를 짓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는 유감스럽지만, 둘의 대화를 지켜본 입장으로서 둘 사이에 사소한 오해가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나와 4과장이 싸우는 일 없이 무사히 돌아오라는 의미로 한 말일 거다. 공을 세우지 못해도 상관 없으니 제발 사지 멀쩡히 돌아오라는 희망.
그런데 4과장의 결연한 분위기를 보니, 4과장은 어머니의 말을 조금 다르게 해석한 것 같다.
‘다치기 전에 죽이면 상처가 없기는 하겠지.’
압도적인 무력으로 상대를 순식간에 죽여버리면 자기가 다치지 않는다는 기묘한 해석. 4과장은 졸지에 시어머니에게 승리의 주문을 듣게 된 상황이다. 그러니 저런 결연한 분위기를 보이는 거고.
…그런데 딱히 틀린 해석은 아닌 것 같다. 다치기 전에 죽이면 문제 없는 거 맞지. 아무렴.
“부인. 막 오신 분들을 계속 밖에 세워두는 건 곤란하지 않을는지.”
“아.”
그런 와중에 어머니의 뒤에 있던 시녀장이 작게 속삭였고, 어머니는 흠칫 몸을 떨었다.
어쩌다 보니 곧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는 것처럼 포옹도 하고 격려도 했지만 우리는 방금 온 입장이다.
“이, 일단 들어오렴. 아, 식사는 했니?”
“아뇨, 아직.”
사실 하고 왔지만 이 상황에서 아니라고 하면 어머니가 더욱 난감해 할 것 같았다.
딱 식사만 하고 제도 인근 원정군 집결지로 향했다. 가주는 이미 제도에서 출정을 준비 중이고, 어머니도 나를 오래 붙들고 있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저 가기 전에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밥이라도 같이 먹고 싶었을 뿐.
혹시 식사 중에 눈물을 보이시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저번에 전부 우셨는지 이번에는 멀쩡하시더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무사히 다녀와. 형이라면 어디에 가든 멀쩡히 돌아올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고.”
“고맙다. 아, 시간 되면 호르펠트 백작한테 연락이라도 해봐. 전 호르펠트 백작도 종군하기로 했으니 심란할 거야.”
그리고 식사 직후, 에리히의 순수한 응원에 나도 적절한 조언을 던지고 떠났다.
전쟁 직전 상황에서 동생의 연애에 조언을 주는 꼴도 우습지만, 이건 에리히를 위한 조언이 아닌 호르펠트 백작을 위한 조언이다. 안 그래도 눈치와 지능이 멸망한 놈을 마음에 품어서 마음 고생이 심할 텐데, 부친의 종군까지 겹치며 얼마나 속이 타겠나.
이건 사람을 살리기 위한 조언이다… 부디 호르펠트 백작이 에리히의 연락에 기뻐하기를.
“무슨 생각 하냐?”
“제 조카는 몇 명일까 하는 생각이요.”
그렇게 속으로 호르펠트 백작의 멘탈을 걱정하는 사이, 퉁명스러운 장관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뭔가 이상한 대답이지만 에리히의 눈치에 따라 내 조카도 결정되니 틀린 말은 아니겠지.
“허, 참. 난 네 자식 숫자가 더 궁금한데.”
“뭐, 스물이 넘거나 아래거나 둘 중 하나겠죠.”
해탈한 듯한 대답에 장관이 빵 터지는 게 보였지만 무시했다.
“그럼 사지 멀쩡히 돌아와라. 네가 잘못되면 미래의 관료 20명이 사라지는 꼴이니.”
“아니 씹, 남의 자식 진로 멋대로 결정하지 마십쇼!”
하지만 이번 발언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 미친 인간이 누구 자식을 노예로 만들어. 내 자식들은 돈 많은 백수로 만들 거라고.
“충용무쌍한 장병들의 모습을 보니 실로 제국의 천명이 굳건함을 알 수 있도다.”
아비의 마음을 담아 쌍욕을 내뱉으려는 찰나, 단상 위에 오른 황제의 목소리가 집결지에 울려 퍼졌다. 아티팩트를 사용했는지 드넓은 평야에 우렁차게 울리는 목소리.
본격적인 출정식이 시작되려는 모습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망할, 조금만 빨리 욕 박을걸.
“제국은 도전하는 위치가 아닌 도전을 받는 위치였다. 300년 제국 역사 동안, 제국은 무수한 도전을 받아왔다.”
황태자와 궁내성 장관, 전승공의 보필을 받으며 당당히 단상 위에 서있는 황제. 제국의 주인이 말하는 제국의 역사.
“위대한 선조들은 그 도전을 물리치며 나아갔다. 어떠한 증오도, 어떠한 분노도, 어떠한 애원도 제국의 진군을 멈출 수 없었다. 감히 제국에 도전한 적들은 그저 제국이라는 거인에게 짓밟혀 사라져갔다.”
담담한, 그러나 언제나 승리한 제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강조하는 황제. 그 발언에 집결지의 분위기는 고요하게 타올랐다.
“이제 우리가 선조들의 뒤를 이어 나아갈 차례다. 우리의 선조가 그런 것처럼, 단호히 제국의 적을 짓밟아 천명이 굳건함을 보일 것이다.”
그 분위기를 눈치챈 듯 황제는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그저 할 말만 하는 황제의 성격상 매우 드문 퍼포먼스.
“나아가라, 나아가라, 대륙의 남쪽 끝부터 북쪽 끝까지. 광명이 비추는 이 대륙의 모든 곳을 향해.”
황제의 손짓, 그리고 제국민이라면 모를 수 없는 국가 한 소절. 단순한 행위에 불과했지만 이미 고조된 병사들이 폭발하기에는 충분했다.
“””나아가라, 나아가라, 대륙의 남쪽 끝부터 북쪽 끝까지! 광명이 비추는 이 대륙의 모든 곳을 향해!”””
“””지배하라, 지배하라, 드높은 가리온드산에서 드넓은 대양까지! 천명에 고개 숙이는 모든 자들 위에!”””
전쟁을 앞둔 병사들의 합창.
이 합창이 타오르는 애국심의 증거인지, 아니면 전쟁을 앞둔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발악인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 황제는 명했고, 귀족들은 따르고, 병사들은 환호했다.
그저 그것뿐이다.
위풍당당히 출정한 중부 방면군 소속 군단과 중부 지방군은 하블렘 공작령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개 같은 유목민들과 싸워야 할 장병들을 논스톱으로 북방에 보내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지 않나. 본격적으로 국경을 넘기 전에 휴식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북부와 서부 소속 병력은 이미 하블렘 공작령을 벗어나 국경 인근에서 주둔 중이라고 하니 오래 쉬지는 못하겠지만.
“다들 모였군.”
그렇게 장병들이 마지막일 것 같은 휴식을 취하는 사이, 고위 지휘관과 참모들은 전승공의 호출을 받아 전승공의 막사로 모였다.
‘나는 왜.’
그런데 수뇌부가 모인 자리에 나는 왜 끼어 있는지 모르겠다. 불러서 오기는 왔는데,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나?
“감찰관은 폐하의 명을 받아 원정군의 상황을 살펴야 하는 입장이지. 그렇기에 감찰관 역시 호출했다.”
그런 의문을 눈치챘는지 전승공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리 황제가 명목상으로 떠넘긴 것이지만 감찰관은 감찰관이니 동석하라는 말.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각하.”
과분한 배려기에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솔직히 나는 전선에서 칼을 휘두르는 칼잡이지, 지휘관이나 참모와는 거리가 먼 입장이다. 회의에 참석해 봤자 딱히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없는 비전문가.
그럼에도 나를 부른 건 감찰관이라는 직함 때문도 있겠지만, 도르곤과 질긴 악연이 있는 나에게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함이겠지.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방금 북부 방면군 사령관의 보고가 올라왔다. 현재까지도 국경 부근에서 유목민은 보이지 않는다더군. 아군을 향한 선공을 포기하고 초원 깊숙한 곳으로 유도하기 위함이겠지.”
아무튼 수뇌부를 소집한 전승공은 곧바로 본론에 돌입했다.
원정군이 직접 북방까지 올라가 유목민을 잡아 죽여야 한다는 소식. 유목민 토벌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북방에 진입해야 하니 그러려니 싶은 상황이지만─
“의외군요. 지금이야 북부와 서부의 군세가 뭉쳐있어 건드리기 힘들겠지만, 그 이전에는 습격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까?”
2군단장이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의 의문을 대변하여 입을 열었다.
아군이 북방으로 가야 하는 건 상수다. 유목민들도 행동이 거친 거지 머리가 나쁜 건 아니기에, 제국이 자기들 앞마당에 스스로 온다는 걸 알고 힘을 비축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제국이 유목민의 기병 전력을 위협적으로 여기는 것처럼 유목민은 제국의 물량을 경계한다. 2군단장의 말대로 대규모 병력이 뭉치기 전에 국경에서 난동을 부렸다면 그 물량을 조금이라도 갉아먹었을 텐데, 지금까지 가만히 있는다?
‘지난 번에는 지랄견이 따로 없었는데.’
차라리 저번에도 잠잠했다면 ‘아, 이 새끼들 존버가 특기구나.’ 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지난 전쟁에서 그것들의 히트 앤 런으로 얼마나 고생했던가.
심지어 하블렘 공작령 이북은 북방을 개척한 평야 지대. 유목민이 깽판 치기에 딱 좋은 지역이다. 막말로 멀리서 화살 몇 번 날리고 튀어버리면 제국은 일방적으로 처맞으며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을 정도니.
그런데 그것들이 조용하다고 한다. 몸은 편할지언정 머리가 복잡해지는 소식이다.
‘내부가 생각보다 개판인가?’
순간 그런 생각마저 떠올랐다. 제국 입장에서는 혈압 오르는 히트 앤 런이지만, 그 히트 앤 런을 시도하는 유목민 입장에서도 여차하면 붙잡혀서 골로 가는 도박이다. 그냥 국경 부근 마을을 약탈한다면 모를까 수백, 수천의 군인들을 상대로 노는 건 많이 위험하지.
그러니 저번 전쟁 때는 카간이 내부를 꽉 잡고 있어서 카간의 명에 따라 자폭할 놈들이 많은 거였고, 아직 도르곤은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억지로 납득할 수는 있다.
아니, 그런데 그 새끼 칸이라고 자칭했잖아. 그 새끼가 내부 단속도 실패했으면서 칸이니 뭐니 떠들 정도로 헛바람 찬 놈은 아닌데?
‘진짜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역시 난 전략이나 전술과는 거리가 멀다.
“심문을 할 유목민조차 보이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아직 유목민 세력 내부에 혼란이 있거나, 이전보다 세력이 약화된 만큼 무리한 도발이 아닌 확실한 싸움을 원하거나.”
머리가 복잡한 건 전승공도 마찬가지인지 결국 정석적인 판단을 내렸다.
유감스럽지만 정말 방법이 없기는 하다. 뭐 정보가 있어야 추측을 하든가 말든가 하지, 정보를 쥐어짤 포로조차 없으니 어쩌겠나. 정보 없이 추측하면 그건 그냥 운에 맡긴 찍기고.
“5년 전에는 유목민의 습격으로 장병들의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북방에 진입해야 했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장병들의 부담이 줄어든 것은 고무적인 상황입니다.”
그렇게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전 호르펠트 백작이 입을 열었다.
조금 무책임한 말처럼 들리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적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수뇌부와 별개로 직접 싸워야 하는 장병들의 부담이 급감한 것은 사실이니.
“맞습니다. 놈들이 무슨 의도를 가졌든 결국 무력 충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장병들의 사기가 중요한 바, 그 사기를 바탕으로 적의 기세를 짓누르는 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전 호르펠트 백작에 이어 5군단장이 발언하자 전승공도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유목민들의 패를 모른다면 적어도 우리가 가진 패를 극대화하는 것이 맞으니까. 그것들이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만큼 최상의 컨디션으로 팰 준비를 해야 한다. 놈들이 무슨 함정을 준비하든 정면으로 뚫고 나가면 된다.
…물론 상대의 패를 완전히 잊으면 안 되겠지만.
***
과거 가아르 부족이 살던 터전.
지금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양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이나 한때 북방의 중심에 섰던 부족이 머무른 곳. 주둔지로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국경 부근에 제국군이 집결 중입니다. 칸께서 명하신 대로 최대한 거리를 벌린 상태로 정찰 중이기에 자세한 것은─”
“그 정도 규모의 군이 진군을 준비한다면 거리가 있어도 파악할 수 있다. 현재의 거리를 유지하라.”
“예, 칸.”
고개를 숙이고 막사를 나가는 케식을 보다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평온하다. 긴장감도, 희열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칸을 자칭하고 가아르 부족의 부활을 선언했을 때가 더욱 가슴 벅찼던 것 같다.
‘3년 만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전쟁이 끝나고 3년, 북방의 총의가 꺾이고 3년이 지났다.
그리고 3년 만에 다시 제국과 충돌하게 되었다. 나의 의지로, 북방을 이끈 영웅이 아닌 그 영웅의 뒤를 따른 나의 결단으로.
‘카간이시여.’
긴 역사 동안 한 번도 통합되지 못한 북방. 그 북방을 하나로 묶어 제국을 위협했던 유목민의 지도자.
유목민이 제국에게 일방적으로 소탕되는 존재가 아닌, 그저 짓밟히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천하에 알린 영웅.
오늘따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