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45)
분명 위압감을 느껴야 할 모습이지만 오히려 만족감이 들었다.
“네놈도 왔는가.”
웃음이 나왔다. 이 하늘 아래, 감히 하늘을 벨 수 있는 건 오직 둘뿐이다.
둘 중 하나는 나다. 그리고 방금 베인 하늘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니 누가 베었는지 뻔하지 않나.
“크라시우스 칼.”
북방의 총의를 꺾은 자, 위대한 그분의 질주를 끝낸 자.
“그래, 네놈이라면 올 줄 알았다.”
내가 네놈을 원하는 것처럼 네놈도 나를 원하겠지. 그렇다면 당연히 북방으로 올 것이라 믿었다.
실로 다행이다. 이 지겨운 인연을 드디어 마무리 지을 수 있을 테니.
‘내 끝은 네놈만이 맺을 수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크라시우스 칼.
도르곤의 벨튀 사건은 무난히 마무리되었다. 적이 하늘을 찢었다는 것에 공포를 느낀 사람들도 있었지만 곧바로 받아치기에 성공해서 그런지 공포는 환호로 바뀌었다. 적군에 하늘을 베는 강자가 있다고? 아군에도 비슷한 강자가 있으면 되는 문제 아닌가.
전승공도 떡락할 뻔한 사기를 떡상시킨 것에 만족했는지 미소를 지을 정도였다. 사석이라면 모를까 군을 이끌 때는 엄격하기 그지없는 사람인데, 그런 전승공이 주둔지에서 미소를 보일 정도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 걸까.
‘좋아할 만하긴 하지.’
사실 지난 전쟁에서 전승공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미소가 아니라 기립박수를 쳐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이야 나도 하늘 베기가 가능하니 즉각 반격에 성공했지만, 대토벌 전쟁 초기에 하늘을 벨 수 있었던 건 카간뿐이었다. 즉 카간이 하늘을 베면 아군의 사기 하락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는 말.
전승공의 머릿속에는 그 극악의 상황 속에서 병력을 지휘한 기억이 남아 있을 터. 그렇기에 이번 반격은 가슴 따뜻해지는 일일 것이다.
“히트라 부족의 영역에서 작은 충돌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혼란을 막은 전승공은 주둔지 설치가 끝나자마자 인근 영역을 점거하기 시작했고, 내 호위 역을 맡은 4과장은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나에게 전달해줬다.
“그래? 거기서 살던 부족이라도 있었나?”
“부족보다는 씨족에 가까운 규모였습니다. 게다가 도주하던 유목민들이 화살을 몇 번 쏜 것이 전부라 충돌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라고 합니다.”
유목민의 습격도 아닌 원주민들을 쫓아낸 작업. 그렇다면 정말 충돌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수준이다. 제국군도 영역 점거에 집중하느라 추격에 집중하지 않았을 테니.
덕분에 아직까지 전투라고 할 일은 생기지 않았으나, 앞으로 지금의 평화가 그리울 정도로 충돌이 발생할 거다.
“멸망한 부족의 터전까지 내려왔다면 근처에도 다른 부족들이 깔렸겠네.”
그 말에 4과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넓고 넓은 북방에서 굳이 멸망한 부족의 터전, 그것도 제국과 인접한 곳까지 내려와 정착했다면 그 주변에는 여유 공간이 없다는 말이다. 아마 힘 좀 쓰는 부족들이 장악하고 있어서 차마 끼어들 수 없었겠지.
그렇다면 영역을 조금씩 넓히려는 제국과 영역을 지키려는 부족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거다. 아니면 인근 부족이 먼저 공격할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피가 흐른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내일부터는 같이 사령부에 있자고. 전해 듣는 것보다는 직접 듣는 게 낫지.”
“예, 주인님.”
다부진 대답에 몇 번 입을 달싹이다 도로 다물고 말았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주인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도 그러면 곤란하니까.
일단 특무성 소속 전력이 황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주인으로 여긴다는 것도 문제기는 한데, 연인 사이에 주인님이라는 말이 오고 간다는 것도 만만치 않게 문제다. 아마 들키면 감찰부장이 아니라 귀축부장이었냐는 수군거림이 퍼지겠지.
‘…실수할 애는 아니지.’
그럼에도 입을 다문 건 4과장을 믿기 때문이다. 4과장이 나를 곤란하게 할 애는 아니니 남들 앞에서도 주인님이라고 하지는 않을 거다.
그렇게 믿는다.
전승공이 지정한 영역을 전부 점거한 것을 기점으로 동시다발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아직 만 단위의 병력이 충돌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아침에는 유목민의 습격으로 기상나팔이 울리고, 점심에는 제국군이 근처 부족 영역으로 진군하고, 저녁에는 한창 투닥이다 잘 놀다 갑니다─ 라며 서로 물러나는 상황이다. 이런 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수뇌부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키르아 전선에 800명 가량의 유목민이 출현했습니다. 과거 도르곤과 함께 실종됐던 후투스 바기아가 지휘 중입니다.”
“라르킨 부족의 영역 남부를 점령하였으나, 저항이 거세 대치 중입니다. 현장에서는 마법사단의 동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수티오 전선에서 케식의 깃발이 보인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대대적인 공세가 없는 것으로 보아, 케식 중 일부가 지휘관으로 온 것 같습니다.”
정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사령부.’
일개 팀장으로 활동했던 때에는 전승공의 호출이 있었을 때나 방문할 수 있었던 사령부. 지금은 그 사령부에 지박령처럼 머물고 있어서 그런지 온갖 정보를 직관 중이다.
많이 색다른 경험이기는 하다. 수백, 혹은 천에 이르는 병력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가 순식간에 밀려들고, 그 병력을 상대하기 위한 대응도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고작 말 한마디에 수백, 수천의 운명이 결정되는 장소.
생각해 보면 군부 고위직 중에는 호전적인 사람보다 딱딱하고 냉정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지금까지는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감성이 풍부하면 버티기 힘들겠지.’
손짓 한 번, 말 한마디에 무수히 많은 생명이 갈려나가는데 감성이 풍부하다? 자기 멘탈이 먼저 깨지겠지. 특히 병사들과 자주 접하는 현장 지휘관일수록 더더욱.
…아니, 현장 지휘관도 명령하는 쪽보다는 갈려나가는 쪽에 포함되려나? 잘 모르겠다.
“각하, 카이타나 부족이 히트라 전선으로 남하 중입니다! 규모는 3천!”
그렇게 멍하니 참모들의 보고를 듣는 사이, 한 참모의 다급한 외침에 전승공의 시선이 움직였다.
‘3천?’
덩달아 내 시선도 그 참모에게 향했다.
3천이면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연합 세력이면 모를까, 단일 부족이 이끌기에는 꽤 많은 숫자니까. 이건 지난 전쟁 때도 나름 네임드 부족만 동원할 수 있는 수치였다.
‘카이타나…’
일단 나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참모가 알고 있는 걸 보면 최근 정찰을 통해 물고 온 정보 같고, 그렇다면 지난 전쟁에서 중립으로 관망하던 제3진영 부족인 모양.
기가 막힐 노릇이다. 카간이 반제국 부족들을 이끌 때도 어디서 10만이나 긁어왔나 치가 떨렸는데, 수천을 동원할 수 있는 부족이 더 남아있었다. 저것들까지 카간에게 합류했다면 전쟁은 더 미쳐 돌아갔겠지.
그런데 지금은 그 부족이 남하 중이네?
‘망할.’
썩 좋은 소식은 아니다. 저런 부족이 도르곤 휘하에 몇 개만 더 있다면 최소치인 6만이 아닌 7만은 규합했을 가능성이 높다.
“히트라에 주둔 중인 마법사단에게 전하라. 카이타나 부족이 사정거리에 진입하면 일제히 공격하라고.”
“예, 각하!”
적의 규모가 크니 명치에 죽창부터 박으라는 명령에 참모는 황급히 통신구를 들었다.
3천이라는 숫자 자체도 문제지만, 카이타나 부족이 이미 히트라 전선에서 어슬렁거릴 유목민과 합류하면 위협적인 숫자가 된다. 게다가 카이타나 부족이 아닌 다른 부족들도 남하 중이라면 1만을 돌파할 수도 있는 노릇.
‘평야에서 1만이라.’
소름이 돋는 일이다. 히트라 영역은 썩 큰 편이 아니라 주둔 중인 병력도 상대적으로 적고, 요새화도 그다지 진행되지 못했다.
물론 1만이 모이는 건 어디까지나 최악의 경우다. 수뇌부가 바보도 아니고 적들이 뭉치는 걸 구경만 하겠나. 지금도 열심히 북방을 휘저으며 각 부족의 연계를 막는 중이니, 도르곤이 총공세를 펼치는 게 아닌 이상 갑자기 1만이 뭉칠 일은 없다.
그래도 유목민 3천이 약한 건 아니지. 최대한 피해 없이 격퇴하기를.
일단 피해는 없었다.
“충돌이 없었다?”
그리고 성과도 없었다.
“예. 과시하듯 주변을 배회하기는 했으나, 그뿐이었습니다. 탐색전조차 없이 거리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전승공의 의문 섞인 물음에 참모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령부에 모인 다른 참모나 지휘관들도 그 보고가 의아했는지 각자 턱을 매만지거나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히트라에 주둔 중인 병력을 붙잡기 위해 온 것 아닙니까? 근처에 수천의 유목민이 있다면 먼저 움직이기 곤란하죠.”
“일리가 있기는 하네만, 굳이 히트라를? 차라리 조금 더 보태서 바키르아 전선을 묶는 게 효율적일 텐데?”
기껏 최대 규모를 이끌고 위풍당당히 남하한 주제에 아무런 충돌 없이 대치 상태를 유지. 이 기묘한 현상에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대치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니다. 전투가 무슨 포켓몬 배틀도 아니고, 눈이 마주쳤다고 바로 붙으면 그건 그냥 미친놈 아니겠나. 적당한 때를 노리며 대기하는 것도 당연히 병법의 일종이다.
하지만 단순 대치를 넘어 아무런 충돌도 없는 건 이상한 게 맞다. 압도적인 기동력으로 쿡쿡 찌르고, 무슨 신발장에 러브레터 넣는 학생처럼 화살도 끊임없이 날려주는 게 유목민이다. 대치와 별개로 무력 도발은 숨 쉬듯 하는 개새끼들이다.
“이해할 수가 없군.”
전승공이 그 심정을 대변하듯 중얼거렸다. 국경에서 대기 중인 원정군을 건드리지 않은 것도 이상한데, 이제는 전쟁 중인 상황에서도 이변이 터졌다.
사실 적이 조용하면 아군에게 좋은 것인데, 지랄견인 유목민이 절대 조용할 리 없다는 기묘한 믿음으로 인해 수뇌부가 혼란에 빠졌다. 설마 그걸 노리고 이러는 건가? 그렇다면 대단하긴 한데.
“…우선 카이타나 부족이 버티고 있는 이상, 히트라에 주둔 중인 아군의 움직임도 봉쇄되었습니다. 히트라 주둔군만으로 선공을 걸 수도, 그렇다고 자리를 비울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 와중에 찝찝하다는 듯 입을 여는 한 참모의 말에 전승공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참모가 한 말처럼 굳이 히트라를 견제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으나, 의도가 어떻든 히트라가 묶였다는 결과는 변함이 없다. 뭐, 다른 전선은 다른 부족이 담당하기로 했나 보지.
그렇게 카이타나 부족이 ‘나, 강림.’을 시전 중인 히트라에 대해서는 수비 태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그거 말고 방법이 없기도 하고.
그렇게 다음날.
“이번에도 충돌은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어제와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다음날.
“유목민 대여섯 명이 진영을 나와 근처를 맴돌기는 했으나, 화살만 몇 번 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피해는?”
“없습니다. 애초에 사정거리조차 아니었습니다.”
또 다시 다음날.
“카이타나 부족의 주술사들이 광역 주술을 사용했습니다만─ 이번에도 사정거리 밖에서 시전하여 아군의 피해는 없었습니다.”
“…….”
무려 닷새 연속 무사고 기록에 전승공은 말을 잃고 말았다.
차라리 다른 전선도 고요하면 유목민 진영에서 눈치를 보는 건가 싶을 텐데, 다른 전선은 피 터지게 싸우는 중이고.
‘이 새끼들 뭐지?’
진짜 뭐지? 혹시 유목민 사이에 일일 퀘스트로 전쟁 참가라도 있나? 그래서 딱 출석만 하는 거고?
혼란스럽다. 나름 웅장했던 등장과 달리 실속은 없는 행동. 그저 보여주기 가득한─
…
‘보여주기?’
잠깐 카이타나 부족에 대한 정보를 다시 떠올렸다. 카간에게 흠뻑 빠진 반제국 부족과 달리 중립을 지켰던 제3진영 출신인 부족. 도르곤이 칸을 자칭하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낸 히키코모리 부족.
그런 주제에 그 무거운 덩치를 이끌고 꾸역꾸역 전선까지 내려오고, 자신을 보고 있을 제국군에게 덩치를 과시하며 대치하는 놈들.
‘이 새끼.’
라인 찾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