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48)
흡족한 표정을 지은 카이타나 백작을 보니 이제는 경이로움까지 느껴졌다.
작위 수여 방식에 대해 묻고, 꼭 자기 부족 소속이 아니어도 된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는 다른 부족 휘하 씨족이나 씨족 규모로 떠도는 방랑자들이 카이타나 부족 소속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카이타나 백작의 세력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
‘작위 얘기를 듣자마자 거기까지 생각한다고?’
혹시 조상 중에 정주민이 있나?
카이타나 백작의 열렬한 배웅을 받으며 주둔지로 복귀하는 길.
“저기, 주인님.”
“응?”
무언가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던 4과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른 유목민들도 저렇습니까?”
의아함이 가득한 질문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면 내 상식을 부정하는 것 같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카이타나 백작의 존재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
칼 군이 카이타나 부족으로 떠난 시점부터 유목민의 공세가 더욱 거세졌다. 이미 전선에서 활동 중인 유목민은 마치 싸우다 죽겠다는 듯 움직였고, 호전적인 기세를 보이는 부족들도 하나둘 전선에 출현했다.
각 전선에서 들려오는 공세 소식. 전쟁 중에, 그것도 유목민을 상대로 저돌적인 공세가 펼쳐지는 건 당연한 일이나─
‘전부 따로 노는군.’
전선에 있는 모든 부족이 공세를 펼치는 건 아니다. 카이타나 부족처럼 제국에 투항할 의사를 보이는 부족들은 여전히 잠잠하다.
이상한 일이다. 유목민의 공세가 거세졌다면 칸을 자칭한 역도에게서 지시가 내려왔다는 의미. 아군의 전선을 압박하고 피해를 강요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일 터.
허나 수적으로 우위인 제국군에게 피해를 강요하려면 유목민도 전력을 다해 공세를 펼쳐야 한다. 누구는 싸우고, 누구는 구경하는 기이한 전선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배신자부터 정리하는 게 정상이다.’
전선에서 자리만 잡아먹는 부족들에게 귀환 명령을 내리거나, 아니면 토벌하는 것이 정상이다. 언제 제국 진영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부족들을 전선에 방치하면 공세를 펼치는 부족들이 포위당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러나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공세를 펼치는 부족들은 잠잠한 부족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물론 전선에서 물러난 변절 부족들도 있었다만, 호전적인 부족의 눈치를 봐서 물러나기보다는 카이타나 부족처럼 자신의 영역으로 와달라는 듯 과시하며 물러났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게 당당한 배신자가 있었나.’
혼란스럽다. 이번 전쟁 중에 상식이 몇 번이나 무너지는지 모르겠다. 적의 내분? 있을 수 있다. 강한 항복 의사 표현? 그 역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부 배신자가 당당히 돌아다니는 것과 그러한 배신자를 방치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혹시 다른 놈이 칸인가?’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우데스르 도르곤은 진작에 죽고 다른 야심가가 도르곤을 사칭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게 아니라면 이 기괴한 단합력과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 도르곤은 역천자의 유일한 혈육이자 후계자. 유목민을 규합할 상징이 되기에 충분한 위상과 능력을 가진 존재다. 제국도 그 위험도를 높게 평가하여 3년이나 추격했는데, 그런 위험 분자의 능력이 고작 이 정도라고?
차라리 지난 전쟁에서 도르곤이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면 모를까─ 도르곤은 서로 반목하던 반제국 부족 사이를 중재했다. 유능과 무능을 따지면 유능에 가까운 존재다.
만약 하늘이 찢어지는 걸 보지 못했다면 진지하게 도르곤이 아닌 자가 칸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각하. 감찰관이 복귀했습니다.”
혼란을 애써 억누르며 전선 상황을 갱신하던 중, 막사 안으로 들어온 기사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기사의 반응을 보니 칼 군이 어디 잘못돼서 돌아온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카이타나 부족과의 협상이 수월하게 끝났다는 거겠지.
그리고 칼 군이 가져온 지도를 보자마자 어지간히 수월했던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지도에 표시된 지역이 투항을 고려하는 부족의 영역입니다.”
“그렇군.”
많다. 모든 부족이 카이타나처럼 수천 규모는 아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많다.
“또한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족들도 많은데, 그중 제사장 역할을 수행하던 부족도 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아직 중립 진영이 남아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항복 의사가 뚜렷한 부족의 숫자도 상당한데, 이것보다 많은 부족들이 투항할 수도 있다고?
‘제사장?’
게다가 중립 진영에 제사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유목민의 2차 결집을 막기 위해 유목민이 믿던 이교는 철저한 소탕 대상이었다. 대제사장을 겸한 역천자는 물론 다른 제사장들도 추적 끝에 사살했고, 무수히 많은 신전도 파괴했다. 그만큼 제국은 이교를 짓밟았다.
그런데 짓밟힌 신앙의 제사장이 중립이라고 한다.
‘애매하군.’
제사장이 신앙이 짓밟힌 것에 대한 원망으로 주전파거나 모든 것을 잃어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반전파였다면 납득했을 거다.
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중립 진영이라는 건 그 부족 나름대로 고민할 것이 많다는 거겠지.
“이름은 바란디가 부족. 규모가 큰 것은 아니나, 역사가 길며 과거 역천자를 따르지 않은 부족들의 대표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칼 군의 말에 더욱 고민했다. 모든 제사장이 죽은 시점이니 유일한 신앙의 구심점, 유구한 역사, 역천자를 거부한 전적.
이 정도면 설령 주전파였어도 접촉했어야 할 부족이다. 단순한 유목민 토벌이 아닌 정복과 유지를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면 더더욱.
허나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이교를 인정해야 한다.’
신앙의 구심점을 포섭하면서 그 신앙을 버리라고 할 수는 없다. 바란디가 부족을 품에 안는 것은 그 영향력만 품는 것이 아닌 이교 전체를 품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어찌 천명을 받든 제국이 이교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쟁에 나선 장수는 군주의 명도 듣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물론 정말로 듣지 않으면 역적이나, 현장에서 활동 중인 지휘관이 후방의 군주보다 더욱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의 말이다. 그렇기에 제국군은 현장에 있는 사령관, 지휘관의 판단을 존중하는 편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이 정도 사안을 내 독단으로 결정하는 건 아무리 공작이어도 분수에 맞지 않은 일이다.
“귀한 정보를 가져왔군. 수고 많았다. 따로 호출하기 전까지는 쉬고 있도록.”
“예, 각하.”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는 칼 군을 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탐스러운 성배가 손에 들어왔거늘, 그 성배 안에 독까지 들어있다.
‘…폐하께 보고해야겠군.’
애석하게도 이건 현장에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
전승공의 보고가 올라왔다.
이미 수천 단위의 병력을 운용하는 부족이 투항했고, 그 외 여러 부족이 투항 의사를 보인다고 한다.
게다가 전부 죽은 줄 알았던 이교의 제사장이 명맥을 잇고 있으며, 주전도 반전도 아닌 애매한 입장을 표하고 있다고 한다.
…
‘이건 대체.’
무심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북방의 상황이… 이 정도로 개판이었나?
대토벌 전쟁 이후로 제국의 대북방 정보력은 완전히 무너졌다. 종전부터 현재까지 정보력 재건에 힘썼어도 이전의 절반 수준을 회복할까 말까인데, 그마저도 역천자의 혈육을 추적하느라 온전히 재건에 몰두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제국은 북방의 전력과 내부 상황에 대해 자세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역천자의 혈육이 칸을 자칭했으니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미지에서 오는 공포, 그나마 참고할 수 있는 경험은 제국의 천명이 사형 선고를 받기 직전까지 갔던 역천자의 발호. 느슨하게 대처한다면 제국과 천명을 포기한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이게 현실이었나.’
허나 미지라는 장막을 걷어내고 현실을 목도하니 다른 의미로 충격적이었다.
과연 지금의 북방을 단일 세력이라 말할 수 있는가. 내부 배신자가 버젓이 행동하고, 아무도 그 배신자를 처단하지 않는 상황이 과연 정상인가.
‘연합인가?’
아니, 그보다도 아래다. 차라리 연합이면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투쟁하거늘, 이것들은 목표조차 공유하지 않는다.
‘칸이라는 이름이 가벼운 것은 아닐 텐데.’
머리가 지끈거린다. 차라리 거대 부족의 부족장이 자신과 뜻이 맞는 일부 세력을 이끌고 봉기한 상황이라면 이해할 수 있으나, 역천자의 혈육은 칸을 자칭했다. 단순한 유력자와 칸은 차원이 다른 권위를 지닌다.
그런 권위를 내세우며 세력을 규합한 수완가가 내부 단속에 실패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내부 단속조차 못하는 자가 칸을 자칭하면 제국이 나설 것도 없이 유목민 선에서 몰락한다. 감히 네놈 따위가 우리 위에 설 자격이 있냐고 묻는 다른 부족들의 손에 무너진다.
실제로 유목민의 역사를 보면 칸을 자칭한 족장은 간혹 나타났다. 그 최후가 전부 같은 유목민 손에 죽은 것이라 중히 여기지 않았을 뿐.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나 개인의 아집이 아닌 역사가 말하고 있다. 칸을 자칭한 자가 맞이할 수 있는 미래는 딱 두 가지라고. 역천자처럼 모든 부족 위에 군림하여 재앙이 되거나, 자칭자들처럼 초원의 망령으로 전락하거나. 절대 지금의 칸처럼 엄격한 통제 없는 군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해할 수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버렸다. 그렇다면 현실 부정이 아닌 대처법을 생각하는 수밖에.
칸의 통제력이 허술하다면 그 틈을 노려 제국의 영향력을 넓혀야 한다. 그리고 제국에 고개 숙인 부족이 늘어날수록 이 기묘한 상황에 대해 추리할 수 있는 정보도 늘어날 터.
‘이교의 제사장이라.’
그런 의미에서 전승공이 보고한 바란디가 부족은 최우선 포섭 대상이다. 종교는 그저 종교에서 멈추지 않고, 일상생활에 녹아내리는 법이기에 유목민의 기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이교라는 것이 유일한 걸림돌이나─
‘영원한 푸른 하늘.’
문득 태자가 보고한 세계수 부활 사태가 떠올랐다.
아펠스의 만행으로 사라진 세계수가 크펠로펜 시기에 부활한 기념비적인 일이라 자세히 살펴봤었지. 그 원인이 에넨이 아닌 다른 신의 힘과 접촉한 감찰부장이라는 것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세계수 부활에 감찰부장이 얽힐 수 있나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실로 대제께서 보우하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북방의 신이 제국인을 통해 세계수를 부활시켰다.’
그렇다면 단순히 이교라고 탄압할 명분이 없다. 세계수는 여명 교단 입장에서도 중요한 존재이니.
결정을 내리자마자 통신구를 작동시켰다. 이 순간에도 전쟁은 지속 중이고, 제국의 장병들은 낯선 타지에서 피를 흘리고 있을 터. 종전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군주의 도리.
– 폐하의 미천한 종이 폐하께─
“리시우코 추기경을 부르도록. 긴히 할 말이 있다.”
고개를 숙이는 궁내성 장관의 말을 끊으며 바로 지시를 내렸다.
리시우코 추기경, 아우스엔 대교구의 수장으로서 제국에 존재하는 여명 교단 관계자 중 가장 큰 권한을 지닌 인물. 그자도 세계수 부활에 관한 전말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으니 설득은 빠를 것이다.
***
전승공의 호출을 받고 막사에 들어가자 카이타나 백작에게 받은 다단계 지─ 아니, 북방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항복 의사가 분명한 부족들의 영역이 표시된 충성의 증표.
“감찰관. 바란디가 부족의 영역에 대해서 들은 게 있는가?”
지도를 내려다 보며 입을 여는 전승공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