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49)
“카이타나가 아닌 다른 부족과 접촉해야 가능성이 있겠군.”
“예, 각하. 애석하게도 그렇습니다.”
북방 선정 올해의 앞잡이인 카이타나 백작도 모든 부족의 위치를 꿰고 있는 건 아니다. 부족의 영역이라는 건 막말로 하루아침에 변할 수도 있는 것이라, 지속적인 교류가 없다면 타부족의 영역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카간이 힘 좀 쓴다는 부족과 함께 폭사하면서 북방에는 이주 대란이 터졌었다. 힘 좀 쓰는 부족의 영역은 북방에서도 알짜배기 영역이고, 그 알짜배기 부동산이 주인 없는 공백지로 변한 것이다. 뒤에서 팔짱 끼고 구경하던 부족들 입장에서는 하늘이 내린 기회겠지.
바란디가 부족은 하늘이 내린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딱히 바란디가 부족과 교류를 이어가지 않았던 카이타나 백작은 그대로 바란디가의 위치를 놓치고 말았다.
“다만 바란디가 부족이 전선으로 이동 중이라는 걸 다른 부족에게 들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카이타나 백작이 전쟁 초기에 확보한 정보가 있어서 다행이지. 그 정보 덕분에 바란디가 부족이 중립이라는 걸 파악했다고 한다.
신앙이 짓밟힌 제사장 부족이라면 당연히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왔을 텐데, 기이할 정도로 이동 속도가 느리다면 바란디가 부족이 아직 전쟁을 각오하지 못했다는 의미. 그렇다고 완전히 항복이라 보기에는 제국에게 어필도 하지 않는 상황이고.
“후방에 숨은 건 아니라 다행이군.”
무언가 고민하는 것 같던 전승공은 그 말을 듣고 안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확실히 ‘북방 어딘가에 숨어있을 부족 찾기’와 ‘언젠가 전선에 올 부족 찾기’는 난이도가 너무 심하게 차이 나지 않나.
“폐하께서는 이교라 할지라도 제국의 품에 들어오고자 한다면 마땅히 품으시겠다 하셨다.”
“폐하의 자비가 실로 바다와 같습니다.”
사실상 이교 신앙의 구심점인 바란디가 부족도 품겠다는 말에 본능적으로 입에서 찬양을 내뱉었다.
솔직히 국익을 중시하는 황제의 성격을 보면 이교여도 품을 거라고 짐작하기는 했으나, 에넨의 총애를 받아 천명을 받드는 크펠로펜의 황제가 이교를 거두는 건 부담이 큰 일이다. 그 부담을 기어코 감당했으니 신하로서 황제의 결단을 찬양해야 할 일.
“바란디가 부족이 전선에 출현하면 접촉하고자 하니, 감찰관도 알아두도록.”
“예, 각하.”
전승공에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바란디가 부족과 접촉한다면 카이타나 부족과 달리 난관이 많을 것이다. 일단 바란디가는 확고한 항복 의지가 없으며, 북방에 남은 최후의 제사장이니 신앙심이 출중할 터. 신앙을 화려하게 짓밟은 원흉인 나에게 썩 좋지 못한 감정을─
– 제사장? 그런 애 없는데. 다 죽었어.
아, 그건 다행이네. 그럼 신앙심 넘치는 사람은 없겠다.
…
‘예?’
뒤늦게 위화감을 느꼈다.
제사장이, 없어?
요정들을 피해 말을 걸던 영원한 푸른 하늘은 내가 북방에 진입하자 침묵 상태에 돌입했었다. 아무리 신이 인간에게 과도한 간섭을 하지 않는다지만, 자신의 신도였던 유목민들이 죽는 꼴을 가까이서 보기는 씁쓸하겠지. 애초에 영원한 푸른 하늘의 본진은 이제 세계수기도 하고.
그런 영원한 푸른 하늘이 침묵을 깨고 오랜만에 말을 걸었다.
– 제사장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나도 이렇게 영락하지는 않았겠지. 신전도 제사장도 없으니까 네 몸에서 지냈던 거야.
몹시 충격적인 소식과 함께.
생각해 보면 영원한 푸른 하늘과 처음 만났을 때 비슷한 얘기를 들은 것 같기는 하다. 망할, 왜 잊고 있었지? 신을 만났다는 충격에 기억력이 맛이 갔었나?
‘제사장이 전멸.’
아무튼 새로운 정보가 갱신되었으니 다시 머리를 굴렸다. 카간을 따르지 않았던 바란디가 부족의 제사장마저 죽었다면, 제국이 이교 신앙을 짓밟기 위해 전쟁에 관여하지 않은 제사장까지 기어코 죽였다는 의미다.
이러면 협상 난이도가 급등한다. 가만히 있던 자신들을 습격한 제국을 어떻게 믿─
– 아, 마지막 제사장은 자연사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편하게 늙어 죽었어.
‘…….’
정보가 다시 갱신됐다.
– 아들이 족장 자리랑 제사장 자리도 계승했는데… 계승 과정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제사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더라.
신전이 박살 나서 그런가? 라고 중얼거리는 영원한 푸른 하늘의 말에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환장하겠네.’
어째 요즘 들어 머리를 굴리는 족족 현실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
부족들의 당당한 탈주, 카이타나 백작의 화려한 앞잡이, 편히 살다가 명맥이 끊긴 마지막 제사장까지.
‘망할.’
북방은 진짜 마가 낀 건가, 사소한 거 하나하나까지 예측을 할 수가 없다.
***
어제 저녁은 양고기를 먹었으니, 오늘은 말고기가 좋을까?
“족장님, 이제 며칠 후면 전선에 도착합니다. 제국과 충돌할 수도 있다고요.”
그 와중에 술은 매일 마유주만 마시니 지겹기 짝이 없다. 제국에서 올라온 술은 귀하니 함부로 마실 수가 있어야지.
“어서 입장을 정해야 합니다! 제사장으로서 이교와 맞설 것인지, 아니면 대세를 따를 것인지!”
그래도 가끔은 귀한 걸 마셔도 좋지 않을까 싶다. 술은 마시라고 있는 거지, 장식품이 아니니─
“아버지!”
“듣고 있다.”
빼액 소리 치는 샤티를 향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하나뿐인 딸이 파들파들 떠는 걸 보면 조금 미안하지만, 애석하게도 샤티는 제사장이라는 이름에 너무 과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제사장은 개뿔.’
신전도, 신물도, 희망도, 미래도 잃은 신앙에 제사장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지난 전쟁에서 우리 부족은 아버지의 연로함을 이유로 중립을 지켰지만, 그렇다고 아예 관심을 끈 것은 아니다. 영원한 푸른 하늘의 사도이자 대제사장, 그리고 유목민을 최초로 통합한 카간. 그런 존재가 제국을 밀어붙이는데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사도는 신의 곁으로 갔다. 대제사장은 더 이상 이 땅에 신앙을 퍼뜨리지 못하고, 카간은 제국의 칼 앞에 무너졌다.
우리는 끝났다. 우리의 믿음, 신앙은 그날 무너진 것이다. 그러니 제사장이고 뭐고 부질없는 이름이지. 그런 상황에서 다른 놈들은 나를 제사장이라는 이유로 은근히 기대의 눈빛으로 보고 있다.
‘제사장은 목이 잘려도 부활하는 줄 아나.’
제국이 죽이겠다고 달려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다면 제사장이라는 직함을 포기할 수도 있으나, 애석하게도 우리 부족을 묶는 가장 큰 요소 역시 제사장이라는 이름이다. 덕분에 이 애물단지를 몇 년이나 달고 있었고.
그래서 미칠 노릇이다. 샤티의 말처럼 대세에 따르기에는 이 애물단지에 너무 매몰되었고, 다 죽은 신앙을 따르기에는 목숨이 아깝다.
‘인생 시발.’
아무리 생각해도 짜증 난다. 우리 부족 사람들이야 제사장이라는 권위로 뭉친 부족이니 이해할 수 있는데, 다른 부족 놈들은 왜 나한테 기대를 걸고 지랄이지? 내가 제사장이라고 어디 말 한 마리, 땅 한 뼘이라도 바치기를 했나?
‘카간이 살아 있었다면 입도 뻥긋 못했을 것들이.’
하여간 개 같은 인생이다.
유목민의 습격은 장병들에게 있어 재앙과 같은 일이다. 압도적인 기동력, 말에 올라타 일방적으로 내려다보는 위치, 일반적인 궁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정거리. 같은 기병이 아닌 이상─ 아니, 같은 기병이어도 상대하기 힘든 악마가 유목민이다.
기병 전력을 완전히 복구하지 못한 제국은 유목민에 대한 대책으로 기사와 마법사 같은 특수 전력을 동원하였으나, 애석하게도 모든 전투에 특수 전력을 투입할 수는 없다. 아무리 초인이어도 그 숫자와 체력은 한정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최대한 체력을 비축하며 결정적인 순간에만 투입해야 한다.
전술적으로는 옳은 일이다. 허나 반대로 말하면 결정적이지 않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전투 때는 특수 전력이라는 카운터가 없는 상황에서 유목민을 상대해야 한다는 의미. 장병들이 겪을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절망 속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발생한 전투. 전투가 끝나면 당연하다는 듯 보이는 머리를 잃은 시신. 심지어 말에 짓밟히기라도 했는지 사지조차 멀쩡하지 않았다.
“빌헬름.”
유목민이 물러난 전선을 둘러보는 사이, 게오르크의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다.
“자네, 이번에도 직접 싸웠군.”
추궁하는 듯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숨길 것도, 숨길 이유도 없는 일이니.
“지휘관으로서 장병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 이상한가?”
“일반 지휘관은 그럴 수 있지만 원수가 그러면 곤란하지.”
상식적인 말이지만 적어도 게오르크에게 들을 말은 아니다. 저놈도 지난 전쟁 때는 원수라는 직함을 달고 전선에서 싸운 놈이지 않나. 이제 와서 정상인인 척하는 꼴이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제노비아가 또 전선에서 싸울 거면 그냥 북방에서 죽으라고 하더군. 그러니 어쩌겠나, 작위도 없는 놈은 잠자코 따라야지.”
그런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게오르크는 헛기침을 하며 변명을 내뱉었다.
확실히 제노비아는 게오르크의 종군을 필사적으로 말렸었지. 겨우겨우 타협한 것이 종군은 하되, 지난번처럼 직접 싸우지는 말라는 것이었나. 저놈이 제노비아에게 작위만 물려준 것이 아니라 실권도 완전히 넘겼기에 생긴 일이다.
“자식한테 짐을 넘겼으니 휘둘리는 건 각오해야지.”
그 말에 차마 반박할 수 없었는지 게오르크도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
저놈이 은퇴에 성공한 것은 폐하의 의지이나, 결과적으로 딸에게 작위와 업무를 떠넘긴 건 맞다. 본인의 행동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다.
“아무튼 가장이라면 몸 좀 사리게. 안 그래도 부자가 나란히 종군 중이라 부인도 걱정이 많을 텐데, 자네가 다쳤다는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겠어.”
그 와중에 은근슬쩍 주제를 돌리려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틀린 말은 아니라 그저 미간만 찌푸렸다. 지금도 어깨에 화살이 박혀있으니까.
“무인에게 부상은 일상이지 않나.”
“하, 부인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인정하겠네.”
피식 웃음을 흘리는 게오르크를 보며 어깨에 박힌 화살을 뽑자 피가 울컥 쏟아졌다.
신경을 건드리기라도 했는지 팔의 감각이 이상해졌지만, 이 정도 부상은 마법이나 신성력만 있으면 금방 치료할 수 있다. 팔이 잘려도 붙일 수 있는데 신경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아무것도 아니다. 유목민을 상대로 처절하게 발버둥 치다가 죽었을 장병들을 생각하면 이깟 부상은 아무런 문제도 될 수 없다. 목숨에 비하면 매우 가벼운 대가다.
‘그럴듯한 방어시설이라도 있었다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제국은 꾸준히 진군하며 전선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유목민들이 성이나 요새를 가지고 있을 리는 만무하기에, 아군이 다른 지역을 점거하면 말뚝이나 돌, 흙주머니를 쌓아 만든 임시 방어선 정도가 유일한 방어시설이었다. 그런 걸 끼고 유목민의 습격을 막으니 장병들이 죽어 나가는 건 당연한 일.
그 당연함을 막기 위해 직접 전선에 나섰다. 내가 비록 원수지만 지휘는 다른 귀족이 맡아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지휘는 지휘를 할 수 있는 귀족에게 맡기고, 나는 전선에서 하나라도 많은 장병들을 살리는 게 맞지 않겠나.
지휘로서 장병들을 살릴 수 있는 귀족이 있다면 무력으로 살릴 수 있는 귀족도 있는 법이다.
“역시 전선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가 않아.”
그리고 어느새 쓰러진 장병들에게 시선을 돌린 게오르크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지휘부에 있으면 유목민이 쳐들어왔다, 전선은 이상 없다, 적의 공세가 거세졌다, 반격에 성공했다─ 그 한마디로 상황이 정리된다네. 듣기만 하면 쉬운 전쟁이 따로 없지.”
그리 말한 게오르크는 아직 눈을 감지 못한 장병에게 다가가 직접 눈을 감겨주었다.
“그래서 정신이 나갈 것 같네. 그곳에서 수십, 수백의 죽음은 작은 피해야. 그 정도 피해로 적을 격퇴했으면 훌륭하다고 말하고 있어.”
감정적인 말이지만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전투에서 전사자가 발생하더라도 전체적인 전쟁을 총괄하는 지휘부 입장에서는 작은 충돌, 사소한 피해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전선의 치열함과 별개로 지휘부의 인식은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나도 그 괴리감을 느꼈을 때는 미치는 줄 알았다. 아니,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저 참는 법을 배운 것이지.
“그렇다고 지금처럼 전선까지 오지 말게. 딸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그러나.”
“무인이 전선에 오는 것이 이상하나?”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게오르크의 모습에 픽 웃음을 흘렸다.
그렇기에 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저 저돌적인 놈이 지휘부에 가만히 있기를 바라는 건 맹수에게 육식을 금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애초에 전투가 끝난 전선이라면 제노비아와의 약속을 어기는 것도 아니니 눈 감아줄 수 있다.
“아, 그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