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52)
로판 속 공무원 352화(353/451)
중앙군 15만, 지방군 10만, 원수로 임명된 귀족만 여섯. 동쪽 국경에서 활동한다면 동부 왕국들이 일제히 발작할 수준의 병력이 편성되었다.
이렇게 보면 정주 국가 입장에서 유목민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유목민 세력은 많아봤자 7만 정도가 모일 거라고 추측 중인데, 제국은 그 3배를 아득히 넘는 25만을 모았다. 최소치인 6만을 기준으로 잡으면 무려 4배인 병력. 이 정도면 싸우기도 전에 이겼다고 보는 게 옳다.
정말 유목민이 상대만 아니었어도 이겼다고 확신할 수 있는 전쟁인데…
‘망할 말쟁이 새끼들.’
6, 7만의 유목민 전력은 전부 기병일 것이라는 게 문제다. 개 같은 유목민 놈들, 정정당당히 뚜벅이 상태로 붙는 게 도리 아니냐.
그래도 고무적인 사실은 이 기병 전력 차이가 귀찮은 문제일지언정, 메꾸는 것이 불가능한 사안까지는 아니다. 애초에 군인이 아닌 나조차 우려하는 문제를 황제나 군부가 놓쳤을 리는 없으니까.
[ …각 군단 및 지방군 소속 특수 전력과 별개로 특무성 소속 기사단 14개, 마법사단 8개, 그외 16개의 무력 부대 참전. ]원정군 확정안 뒷부분에 적힌 특수 전력 편성에 관한 정보. 황제가 소중히 키워온 특무성 전력이 무려 38개나 원정군에 포함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보기만 해도 든든해지는 숫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기병은 보병을 압도하지만 특수 전력은 병과를 초월한 괴물이다. 아무리 기병이라도 잘 키운 기사나 마법사 앞에서는 그저 움직이는 허수아비에 불과할 정도.그리고 제국은 기병 전력이 부족한 거지, 특수 전력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다.
물론 북방에도 기사와 마법사 같은 특수 전력이 존재하지만 어지간한 것들은 지난 전쟁에서 죽었다.
‘어째 다 하나씩 하자가 있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스운 일이다. 제국은 기병 전력이 맛이 갔고, 북방은 특수 전력이 맛이 갔다. 서로가 사지 하나는 부러진 상태로 전쟁에 나서는 상황.
전쟁은 병신 둘이 붙어서 덜 병신인 쪽이 이기는 게임이라던데,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맞는 말이다.객관적으로 볼 때 제국이 덜 병신이라는 게 다행이지.
출정식 당일. 아슬아슬하게 최소한의 일을 처리하고 영지에 방문했으나, 당연하게도 영지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가문의 범위로 보면 가주와 후계자가 나란히 종군하는 것이고, 영지 전체로 봐도 상당한 영민들이 지방군으로서 참전하는 상황이다. 막말로 가족, 친구, 이웃이 죽으러 가는 건데 분위기가 밝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않나.
“어서 오렴. 날도 더운데 불편한 곳은 없니?”
“저야 워낙 건강하니 멀쩡하죠.”
그래도 그 칙칙한 분위기 속에서 어머니는 최대한 밝은 얼굴로 맞이해주셨다. 이제 전쟁터로 갈 아들 앞에서 어두운 표정을 보일 수는 없다는 것처럼.
“반가운 얼굴도 왔구나.”
“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머님.”
부드러운 어머니의 인사에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4과장.
딱딱하게 긴장한 듯한 모습에 어머니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4과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 토닥임에 4과장은 황송하다는 듯 허리까지 숙였지만, 그만큼 어머니를 존경한다는 것일 테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오랜만에 보는 게 출정 전 인사라니.”
그리고 그런 4과장을 향해 어머니는 씁쓸히 중얼거리셨다.
확실히 어머니 입장에서는 며느리(중 하나)가 전쟁에 참전하기 전에 인사하러 온 것이니 마음이 편치 않을 거다. 남편, 아들에 이어 며느리까지 종군. 이렇게 야박한 운명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무성 전력이 대거 투입된 상황에서 묵광대 혼자 빠질 명분은 없다. 심지어 묵광대의 전신인 감찰부 4과는 지난 대토벌 전쟁에서 활약한 부서. 그 상징성이 어마어마하다. 빠지는 게 더 이상하지.
“너무 걱정은 마십시오. 페넬리아도 저처럼 직접 싸우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지, 어머니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소식이 있어 조심스레 위로를 건넸다.
묵광대가 상징성 때문에 참전하기는 했으나 동시에 그 상징성으로 인해 나와 붙어 다니게 됐다. 명목상으로는 종군 감찰관 호위, 실질적 이유는 내가 몸담았던 4과를 나와 붙여서 유목민이 느낄 부담을 더욱 크게 하기 위한 조치.
그렇기에 묵광대는 나처럼 전선보다는 본진에 대기할 가능성이 높다. 대신 내가 전선으로 간다면 같이 싸우겠지만, 솔직히 나랑 묵광대가 뭉치면 도르곤이 나타나는 게 아닌 이상 다칠 일도 없다.
“전쟁은 가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그래도 그건 다행이구나.”
어머니도 그 말에 마음이 조금은 놓였는지 아까보다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셨다.
“꼭, 꼭 무사히 돌아오렴. 나는 너희가 건강히 돌아온다면 더 바랄 게 없단다.”
그러고는 나와 4과장을 끌어안으며 작게 속삭이셨다. 제국을 위한 헌신과 의무를 중시하는 귀족이 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 어머니는 백작부인이 아닌 한 명의 어머니이자 시어머니로서 우리를 안은 것이다. 마치 지난 번의 가주처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머니의 걱정에 4과장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부모를 잃은 4과장으로서는 자신을 자식처럼 걱정하는 어머니의 말에 크게 감동한 모양.
“작은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꼭 그러렴.”
4과장의 확답에 빙그레 미소를 짓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는 유감스럽지만, 둘의 대화를 지켜본 입장으로서 둘 사이에 사소한 오해가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나와 4과장이 싸우는 일 없이 무사히 돌아오라는 의미로 한 말일 거다. 공을 세우지 못해도 상관 없으니 제발 사지 멀쩡히 돌아오라는 희망.
그런데 4과장의 결연한 분위기를 보니, 4과장은 어머니의 말을 조금 다르게 해석한 것 같다.
‘다치기 전에 죽이면 상처가 없기는 하겠지.’
압도적인 무력으로 상대를 순식간에 죽여버리면 자기가 다치지 않는다는 기묘한 해석. 4과장은 졸지에 시어머니에게 승리의 주문을 듣게 된 상황이다. 그러니 저런 결연한 분위기를 보이는 거고.
…그런데 딱히 틀린 해석은 아닌 것 같다. 다치기 전에 죽이면 문제 없는 거 맞지. 아무렴.
“부인. 막 오신 분들을 계속 밖에 세워두는 건 곤란하지 않을는지.”
“아.”
그런 와중에 어머니의 뒤에 있던 시녀장이 작게 속삭였고, 어머니는 흠칫 몸을 떨었다.
어쩌다 보니 곧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는 것처럼 포옹도 하고 격려도 했지만 우리는 방금 온 입장이다.
“이, 일단 들어오렴. 아, 식사는 했니?”
“아뇨, 아직.”
사실 하고 왔지만 이 상황에서 아니라고 하면 어머니가 더욱 난감해 할 것 같았다.
딱 식사만 하고 제도 인근 원정군 집결지로 향했다. 가주는 이미 제도에서 출정을 준비 중이고, 어머니도 나를 오래 붙들고 있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저 가기 전에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밥이라도 같이 먹고 싶었을 뿐.
혹시 식사 중에 눈물을 보이시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저번에 전부 우셨는지 이번에는 멀쩡하시더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무사히 다녀와. 형이라면 어디에 가든 멀쩡히 돌아올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고.”
“고맙다. 아, 시간 되면 호르펠트 백작한테 연락이라도 해봐. 전 호르펠트 백작도 종군하기로 했으니 심란할 거야.”
그리고 식사 직후, 에리히의 순수한 응원에 나도 적절한 조언을 던지고 떠났다.
전쟁 직전 상황에서 동생의 연애에 조언을 주는 꼴도 우습지만, 이건 에리히를 위한 조언이 아닌 호르펠트 백작을 위한 조언이다. 안 그래도 눈치와 지능이 멸망한 놈을 마음에 품어서 마음 고생이 심할 텐데, 부친의 종군까지 겹치며 얼마나 속이 타겠나.
이건 사람을 살리기 위한 조언이다… 부디 호르펠트 백작이 에리히의 연락에 기뻐하기를.
“무슨 생각 하냐?”
“제 조카는 몇 명일까 하는 생각이요.”
그렇게 속으로 호르펠트 백작의 멘탈을 걱정하는 사이, 퉁명스러운 장관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뭔가 이상한 대답이지만 에리히의 눈치에 따라 내 조카도 결정되니 틀린 말은 아니겠지.
“허, 참. 난 네 자식 숫자가 더 궁금한데.”
“뭐, 스물이 넘거나 아래거나 둘 중 하나겠죠.”
해탈한 듯한 대답에 장관이 빵 터지는 게 보였지만 무시했다.
“그럼 사지 멀쩡히 돌아와라. 네가 잘못되면 미래의 관료 20명이 사라지는 꼴이니.”
“아니 씹, 남의 자식 진로 멋대로 결정하지 마십쇼!”
하지만 이번 발언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 미친 인간이 누구 자식을 노예로 만들어. 내 자식들은 돈 많은 백수로 만들 거라고.
“충용무쌍한 장병들의 모습을 보니 실로 제국의 천명이 굳건함을 알 수 있도다.”
아비의 마음을 담아 쌍욕을 내뱉으려는 찰나, 단상 위에 오른 황제의 목소리가 집결지에 울려 퍼졌다. 아티팩트를 사용했는지 드넓은 평야에 우렁차게 울리는 목소리.
본격적인 출정식이 시작되려는 모습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망할, 조금만 빨리 욕 박을걸.
“제국은 도전하는 위치가 아닌 도전을 받는 위치였다. 300년 제국 역사 동안, 제국은 무수한 도전을 받아왔다.”
황태자와 궁내성 장관, 전승공의 보필을 받으며 당당히 단상 위에 서있는 황제. 제국의 주인이 말하는 제국의 역사.
“위대한 선조들은 그 도전을 물리치며 나아갔다. 어떠한 증오도, 어떠한 분노도, 어떠한 애원도 제국의 진군을 멈출 수 없었다. 감히 제국에 도전한 적들은 그저 제국이라는 거인에게 짓밟혀 사라져갔다.”
담담한, 그러나 언제나 승리한 제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강조하는 황제. 그 발언에 집결지의 분위기는 고요하게 타올랐다.
“이제 우리가 선조들의 뒤를 이어 나아갈 차례다. 우리의 선조가 그런 것처럼, 단호히 제국의 적을 짓밟아 천명이 굳건함을 보일 것이다.”
그 분위기를 눈치챈 듯 황제는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그저 할 말만 하는 황제의 성격상 매우 드문 퍼포먼스.
“나아가라, 나아가라, 대륙의 남쪽 끝부터 북쪽 끝까지. 광명이 비추는 이 대륙의 모든 곳을 향해.”
황제의 손짓, 그리고 제국민이라면 모를 수 없는 국가 한 소절. 단순한 행위에 불과했지만 이미 고조된 병사들이 폭발하기에는 충분했다.
“””나아가라, 나아가라, 대륙의 남쪽 끝부터 북쪽 끝까지! 광명이 비추는 이 대륙의 모든 곳을 향해!”””
“””지배하라, 지배하라, 드높은 가리온드산에서 드넓은 대양까지! 천명에 고개 숙이는 모든 자들 위에!”””
전쟁을 앞둔 병사들의 합창.
이 합창이 타오르는 애국심의 증거인지, 아니면 전쟁을 앞둔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발악인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황제는 명했고, 귀족들은 따르고, 병사들은 환호했다.
그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