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53)
로판 속 공무원 353화(354/451)
위풍당당히 출정한 중부 방면군 소속 군단과 중부 지방군은 하블렘 공작령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개 같은 유목민들과 싸워야 할 장병들을 논스톱으로 북방에 보내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지 않나. 본격적으로 국경을 넘기 전에 휴식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북부와 서부 소속 병력은 이미 하블렘 공작령을 벗어나 국경 인근에서 주둔 중이라고 하니 오래 쉬지는 못하겠지만.
“다들 모였군.”
그렇게 장병들이 마지막일 것 같은 휴식을 취하는 사이, 고위 지휘관과 참모들은 전승공의 호출을 받아 전승공의 막사로 모였다.
‘나는 왜.’
그런데 수뇌부가 모인 자리에 나는 왜 끼어 있는지 모르겠다.불러서 오기는 왔는데,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나?
“감찰관은 폐하의 명을 받아 원정군의 상황을 살펴야 하는 입장이지. 그렇기에 감찰관 역시 호출했다.”
그런 의문을 눈치챘는지 전승공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리 황제가 명목상으로 떠넘긴 것이지만 감찰관은 감찰관이니 동석하라는 말.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각하.”
과분한 배려기에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솔직히 나는 전선에서 칼을 휘두르는 칼잡이지, 지휘관이나 참모와는 거리가 먼 입장이다. 회의에 참석해 봤자 딱히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없는 비전문가.
그럼에도 나를 부른 건 감찰관이라는 직함 때문도 있겠지만, 도르곤과 질긴 악연이 있는 나에게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함이겠지.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방금 북부 방면군 사령관의 보고가 올라왔다. 현재까지도 국경 부근에서 유목민은 보이지 않는다더군. 아군을 향한 선공을 포기하고 초원 깊숙한 곳으로 유도하기 위함이겠지.”
아무튼 수뇌부를 소집한 전승공은 곧바로 본론에 돌입했다.
원정군이 직접 북방까지 올라가 유목민을 잡아 죽여야 한다는 소식.유목민 토벌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북방에 진입해야 하니 그러려니 싶은 상황이지만─
“의외군요. 지금이야 북부와 서부의 군세가 뭉쳐있어 건드리기 힘들겠지만, 그 이전에는 습격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까?”
2군단장이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의 의문을 대변하여 입을 열었다.
아군이 북방으로 가야 하는 건 상수다. 유목민들도 행동이 거친 거지 머리가 나쁜 건 아니기에, 제국이 자기들 앞마당에 스스로 온다는 걸 알고 힘을 비축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제국이 유목민의 기병 전력을 위협적으로 여기는 것처럼 유목민은 제국의 물량을 경계한다. 2군단장의 말대로 대규모 병력이 뭉치기 전에 국경에서 난동을 부렸다면 그 물량을 조금이라도 갉아먹었을 텐데, 지금까지 가만히 있는다?
‘지난번에는 지랄견이 따로 없었는데.’
차라리 저번에도 잠잠했다면 ‘아, 이 새끼들 존버가 특기구나.’ 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지난 전쟁에서 그것들의 히트 앤 런으로 얼마나 고생했던가.
심지어 하블렘 공작령 이북은 북방을 개척한 평야 지대. 유목민이 깽판 치기에 딱 좋은 지역이다. 막말로 멀리서 화살 몇 번 날리고 튀어버리면 제국은 일방적으로 처맞으며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을 정도니.
그런데 그것들이 조용하다고 한다. 몸은 편할지언정 머리가 복잡해지는 소식이다.
‘내부가 생각보다 개판인가?’
순간 그런 생각마저 떠올랐다. 제국 입장에서는 혈압 오르는 히트 앤 런이지만, 그 히트 앤 런을 시도하는 유목민 입장에서도 여차하면 붙잡혀서 골로 가는 도박이다. 그냥 국경 부근 마을을 약탈한다면 모를까 수백, 수천의 군인들을 상대로 노는 건 많이 위험하지.
그러니 저번 전쟁 때는 카간이 내부를 꽉 잡고 있어서 카간의 명에 따라 자폭할 놈들이 많은 거였고, 아직 도르곤은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억지로 납득할 수는 있다.
아니, 그런데 그 새끼 칸이라고 자칭했잖아. 그 새끼가 내부 단속도 실패했으면서 칸이니 뭐니 떠들 정도로 헛바람 찬 놈은 아닌데?
‘진짜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역시 난 전략이나 전술과는 거리가 멀다.
“심문을 할 유목민조차 보이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아직 유목민 세력 내부에 혼란이 있거나, 이전보다 세력이 약화된 만큼 무리한 도발이 아닌 확실한 싸움을 원하거나.”
머리가 복잡한 건 전승공도 마찬가지인지 결국 정석적인 판단을 내렸다.
유감스럽지만 정말 방법이 없기는 하다. 뭐 정보가 있어야 추측을 하든가 말든가 하지, 정보를 쥐어짤 포로조차 없으니 어쩌겠나. 정보 없이 추측하면 그건 그냥 운에 맡긴 찍기고.
“5년 전에는 유목민의 습격으로 장병들의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북방에 진입해야 했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장병들의 부담이 줄어든 것은 고무적인 상황입니다.”
그렇게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전 호르펠트 백작이 입을 열었다.
조금 무책임한 말처럼 들리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적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수뇌부와 별개로 직접 싸워야 하는 장병들의 부담이 급감한 것은 사실이니.
“맞습니다. 놈들이 무슨 의도를 가졌든 결국 무력 충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장병들의 사기가 중요한 바, 그 사기를 바탕으로 적의 기세를 짓누르는 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전 호르펠트 백작에 이어 5군단장이 발언하자 전승공도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유목민들의 패를 모른다면 적어도 우리가 가진 패를 극대화하는 것이 맞으니까. 그것들이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만큼 최상의 컨디션으로 팰 준비를 해야 한다. 놈들이 무슨 함정을 준비하든 정면으로 뚫고 나가면 된다.
…물론 상대의 패를 완전히 잊으면 안 되겠지만.
***
과거 가아르 부족이 살던 터전.
지금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양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이나 한때 북방의 중심에 섰던 부족이 머무른 곳. 주둔지로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국경 부근에 제국군이 집결 중입니다. 칸께서 명하신 대로 최대한 거리를 벌린 상태로 정찰 중이기에 자세한 것은─”
“그 정도 규모의 군이 진군을 준비한다면 거리가 있어도 파악할 수 있다. 현재의 거리를 유지하라.”
“예, 칸.”
고개를 숙이고 막사를 나가는 케식을 보다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평온하다. 긴장감도, 희열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칸을 자칭하고 가아르 부족의 부활을 선언했을 때가 더욱 가슴 벅찼던 것 같다.
‘3년 만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전쟁이 끝나고 3년, 북방의 총의가 꺾이고 3년이 지났다.
그리고 3년 만에 다시 제국과 충돌하게 되었다. 나의 의지로, 북방을 이끈 영웅이 아닌 그 영웅의 뒤를 따른 나의 결단으로.
‘카간이시여.’
긴 역사 동안 한 번도 통합되지 못한 북방. 그 북방을 하나로 묶어 제국을 위협했던 유목민의 지도자.
유목민이 제국에게 일방적으로 소탕되는 존재가 아닌, 그저 짓밟히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천하에 알린 영웅.
오늘따라 그분이 더욱 그리워지는 날이다. 나 같은 가짜가 아닌 진정으로 위대한 전사를 보고 싶은 날이다.
“우리는 개로 살아왔다. 제국의 손짓에 좌우되고, 아무리 짖어도 목줄이 잡히면 엎드려야 하는 개로 살아왔다.”
5년 전, 군을 일으키기 직전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친히 내 잔에 술을 따라주시며 말씀하셨지.
“그들에게 우리는 말하는 개나 다름없다. 먹이를 던져주며 관리하고, 수가 많아지면 처리한다. 감히 목줄을 풀고 사람을 문다면 죽여야 하는 그런 짐승이다.”
담담하게 우리를 개라고 말하던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인지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당당하고 강인했던 그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다른 누구도 아닌 그분이 우리를 개라고 한다면, 누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을까.
“허나 개에게는 늑대의 피가 흐른다.”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나를 보며 그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으셨다.
“정주민이라는 개념이 없던 과거, 유목민이 대륙을 달리던 시절. 우리는 영원한 푸른 하늘 아래 용맹한 늑대처럼 달렸다. 우리의 시작은 늑대였다.”
“그러나 세월은 늑대가 달릴 수 있는 초원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끝내 늑대의 목에 목줄을 채웠다. 그로써 우리는 개가 되었지.”
그렇게 말한 그분은 하늘을 올려다보셨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르고도 푸르른 하늘을.
“늑대로 태어나 개가 되었다. 그러니 개로 살다 개로 죽으라는 법도 없지 않더냐.”
“우리의 선조, 우리의 역사, 우리의 자긍심은 이 피와 영혼에 흐르고 있다. 육체가 핍박받더라도 피와 영혼은 굴하지 않는다.”
그 말씀에 나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우리는 목줄을 벗고 다시금 늑대가 될 것이다. 발 앞에 엎드리는 개가 아닌,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늑대가.”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그분이라면 정말로 우리를 늑대로 만드실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가 늑대가 되는 날 올려다 볼 하늘은, 영원히 푸를 것이다.”
아마 수많은 전사들이 그날을 꿈꾸며 달리지 않았었나 싶다. 개가 아닌 늑대가 되기 위해, 그분의 곁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기 위해.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만─ 조금의 성과는 있었던 모양이다.
‘적어도 광견은 되는군.’
픽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이전보다 약해진 것을 알 텐데, 제국은 신속하게 대군을 동원했다. 우리를 나약하고 우스운 개로 여겼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지.
우리는 꿈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가능성을 보였다. 늑대가 되어 제국의 목을 물어뜯을 가능성, 더 이상 제국이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미래를.
꿈에 근접했던 때와 생각하면 처참하지만, 그래도 제법 괜찮은 성과 아닌가.
‘…광견이라.’
슬며시 눈을 감았다. 광견, 늑대보다는 못하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광견.
“나는 늑대가 되기 위해 달릴 것이다. 북방의 총의를 짊어지고, 심장이 터져 죽을 때까지 달릴 것이다.하지만 만일 내가 총의를 짊어지고 죽는다면 그 뒤는 너에게 맡기마.”
적어도 그분께서는 늑대로 살다 늑대로 죽으셨다. 그러나 부족한 나는 늑대라고 하기 부끄러운 개새끼에 불과하다. 그저 그분의 과분한 믿음과 의지를 물려받아 짖어대는 개새끼.
그리고 개새끼에게는 개새끼의 방식이 있는 법.
“실패하여 죽은 나와 다른 너의 방식으로 나아가거라.”
나의 동포, 우리의 북방을 위해 나만의 방식으로 나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