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54)
로판 속 공무원 354화(355/451)
하블렘 공작령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한 중부 군세는 국경 부근으로 이동하였고, 국경에서 대기 중이던 두 파츠와 합체하여 완전체를 이루었다. 이 25만이라는 숫자의 원정군이 국경에 모이느라 얼마나 많은 자금이 소모됐는지는 생각하지 말자. 원래 전쟁은 돈 먹는 심연 아니겠나.
그런데 좀 무섭긴 하네. 고작 이동만 했음에도 적지 않은 지출이 생겼는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면 얼마나 많은 돈이 쓰레기처럼 사용될까.
‘직업병인가.’
예전이었다면 전쟁을 앞두고 돈 걱정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도 나름 재무성 간부기는 한가보다.
그리고 예산 짜느라 피를 토했을 장관을 생각하니 살짝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지난 전쟁 때는 현장에서 뛰던 무인이 이제는 재무성 장관으로서 예산 편성이라. 역시 사람 앞날은 모르는 거야.
“감찰관님. 각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알겠다. 바로 가지.”
막사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제국 영토가 아닌 북방으로 넘어가는 상황. 마침 원정군 수뇌부 전원이 한곳에 모이기도 했으니, 이 회의가 제국 영토에서 진행하는 마지막 회의가 될 거다.
다시 제국에 돌아왔을 때는 승전 기념 연회를 준비하는 회의가 열리기를.
저번 회의와 달리 북부, 서부 소속 수뇌부도 참가한지라 원정군 사령관인 전승공의 막사조차 비좁게 느껴졌다. 혹시 몇 명은 앉지 못하고 서있어야 하나 걱정이 될 정도로.
물론 인원 계산에 실패할 정도로 전승공의 측근들이 무능한 건 아니기에 전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다들 기다리느라 수고 많았다. 당장이라도 국경을 넘고 싶은 의기 넘치는 장병들이 많을 텐데, 잘 통제했어.”
“과찬이십니다, 각하.”
아무튼 상석에 앉은 전승공은 국경에서 대기하였던 북부, 서부 군세의 노고를 치하했고, 북부 방면군 사령관이 대표로 대답했다.
그저 멍하니 대기한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으나─ 언제 유목민의 히트 앤 런이 시작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리고 전공과 전리품을 얻을 생각에 흥분했을 지휘관이나 장병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아무 소음 없이 통제를 이룬 건 치하할 만한 일이다.
당연히 제국의 군법은 지엄하다. 그러나 인간 다섯이 모이면 하나는 쓰레기라는 말이 괜히 있겠나.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흥분을 못 이기고 미친 짓을 하는 것들이 보이는 법이다.이번에는 그런 것들이 나오지 않아 다행이지.
“유목민의 선공도 없었고 대기 기간 중 통제도 원활히 이루어졌다. 원정군은 즉각 국경을 넘어도 부족함이 없는 사기를 유지 중이다.”
전승공의 말에 고개를 숙였던 북부 방면군 사령관도, 탁자에 놓인 지도를 보던 수뇌부도 전승공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찰 결과, 무스카르 부족의 영역에서 유목민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국경을 넘으면 곧바로 무스카르 부족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그 말에 지휘관과 참모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북방을 기준으로 최남부, 즉 제국과 인접한 곳에 위치한 무스카르 부족의 영역. 지난 대토벌 전쟁에서 제국의 손에 가장 먼저 토벌된 부족의 땅이며, 2년 동안 제국군이 알차게 사용한 주둔지기도 하다.
대군이 주둔할 정도의 평야도 충분하고, 근처에 강과 언덕이 있어서 방어도 편하고, 식수 확보에도 용이하다. 오히려 주둔지로 쓰지 않으면 실례일 정도의 입지다.
“무스카르 부족의 영역을 확보하면 이전처럼 정화 마법을 펼치도록.”
“예, 각하.”
전승공의 지시에 마법사를 대표하여 참가한 백금 마법사단장이 고개를 숙였다.
무스카르 부족의 영역이 주둔지로 쓰기 용이하다는 건 북방이 더 잘 아는 사실이다. 땅이나 물에 장난질을 쳤을 수도 있으니 도착하자마자 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발.’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주 주술이 걸린 물을 잘못 마셨다가 며칠을 고생했는지.
“주둔지를 설치하면 동쪽의 수티오 부족, 북쪽의 바키르아 부족, 북서쪽의 히트라 부족의 영역을 점거한다.”
“서쪽의 나를란 부족은 어쩌시겠습니까?”
“제외한다. 과도한 점거보다는 최소한의 영역을 확보 후, 정찰을 위주로 활동한다.”
빠르게 지도를 짚으며 말하는 전승공과 전승공의 발언을 받아 적는 참모.
전승공이 언급한 부족과 2군단장이 말한 나를란 부족 역시 무스카르 부족처럼 지난 전쟁 중 토벌된 부족이다. 제국군이 여유롭게 장악할 수 있는 공백지이며, 설령 다른 부족이 거주 중이라도 그 규모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 작은 영역.
“유목민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으나, 굳이 그들이 원하는 조건에서 싸울 필요는 없지.”
괜히 평야를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다 이리저리 찔릴 바에는 주둔지를 중심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겠다는 말.
흔히 말하는 ‘네가 와.’ 전법이지만 썩 나쁜 방법은 아니다. 아무렴 평야에서 수만의 기병과 싸울 바에는 조금이라도 요새화가 가능한 주둔지에서 싸우는 게 낫지.
게다가 황제가 원하는 북방 정복은 군사를 갈아 넣어서 피로 이룩하는 정복이 아니다. 적당히 제국의 질서를 따를 부족들을 포섭하여 최대한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 그런 점을 생각하면 전승공의 존버가 적절하다.
“지금으로서는 각 부족의 정확한 위치와 균형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특무성 전력을 정찰에 동원하여─”
“충돌을 지양하더라도 무력 시위는 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마법사단이 허공이나 산을 향해 마법을 발사하면─”
그 뒤로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솔직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나는 전략과 거리가 머니까. 애초에 감찰관이니 전략에 관여할 입장도 아니고.
내가 만약 군부 소속이라면 열심히 했겠는데, 황태자가 군부로 런하는 걸 막았다. 아무튼 그 새끼 때문이다.
무스카르 부족의 영역에 도착하자 이변이 생겼다.
근방에 매복한 유목민이 없다는 정보를 들고 돌아온 기사들, 구석구석 정화 마법을 펼치는 마법사들, 막사를 세우고 배수로를 파는 병사들, 가장 먼저 세워진 전승공의 막사로 모이는 수뇌부.
그렇게 각자 다른 업무를 수행하던 모든 인원이 일제히 이변을 느끼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걸 다시 보는군.”
짜증 섞인 전승공의 말에 공감하는지 한숨을 내쉬는 자들도 있었고, 저번 전쟁에 참전하지 못했는지 넋이 나간 자들도 있었다.
그래도 넋이 나간 정도면 양호한 반응이다. 저번에는 하필 전투 중에 목격해서 멘탈이 깨진 사람들도 많았지. 지금은 다행히 전쟁터가 아닌 주둔지여서 충격이 덜한 모양.
물론 어디까지나 저번보다 덜하다는 거지, 충격이 없다는 건 아니다.
“하늘 베기…”
북부 방면군 사령관의 중얼거림에 상대적으로 젊은 참모가 흠칫 떠는 것이 보였다. 그래, 기록에서나 보던 재앙을 실제로 보게 됐으니 얼마나 가슴 떨리겠나.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바라봤지만,속으로는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저렇게 하늘을 찢을 수 있는 건 나 아니면 그 새끼뿐이니까.
‘개새끼.’
꼴에 주인이라고 화려하게 반기네.
‘일단 근처에는 없고.’
주인이 먼저 반겨줬으니 손님도 인사를 하는 게 도리지만─ 하늘이 찢어진 크기를 보니 제법 거리가 있는 곳에서 인사를 날린 것 같다. 답례 인사를 하기는 무리겠어.
하긴, 일개 유목민 병사도 보이지 않는 판국에 칸이라는 놈이 가까이 오면 그게 더 이상하지.
‘네가 맞구나.’
그리고 찢어진 하늘을 보다 보니 결국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실 북방에 오기 전까지 조금 걱정했었다. 개털이 된 유목민을 다시 규합한 수완을 보면 네가 맞는 것 같지만, 혹시 야망이 가득한 유목민 한 놈이 네 이름을 빌린 건 아닌가 걱정했다. 너는 이미 죽었거나 어디 외진 곳에 박혀있고, 나도 모르는 엉뚱한 놈이 네 이름을 내세워 칸을 자칭한 게 아닌가 걱정했다.
다행히 아니었다. 그래, 고작 남의 이름을 빌리는 애송이 따위가 하늘을 벨 리가 없지. 저 미친 짓을 하는 건 하늘 아래 나 아니면 너밖에 없지.
‘고맙다.’
살아있어줘서, 내 앞에 기어 나와줘서 고맙다. 이제 널 죽이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런 마음을 담아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았다. 갑자기 검을 뽑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움찔했지만, 이윽고 내가 할 행동을 눈치챘는지 살며시 거리를 벌려줬다.
‘받았으니 돌려줘야지.’
비록 주인이 먼 곳에 있어서 어렴풋이 보일 답례일지라도.
마나를 폭발시켰다. 아카데미에서 했던 야매 방식이 아닌, 과거 북방에서 썼던 방식으로 마나를 이끌었다.
심장을 중심으로 거칠게 요동친 마나는 내 몸 구석구석에 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을 든 오른팔에도 대량의 마나가 모였다.
‘좋아.’
완벽하다. 상처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오른팔만 혹사할 필요도 없다. 하늘을 벤 반동을 몸 전체에 분산할 수 있다.
그렇기에 검을 휘둘렀다. 아래에서 위로, 단순한 올려치기 같은 동작으로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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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늘을 갈랐다.
***
하늘을 베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하늘이 갈라졌다.
“과연.”
상당한 거리가 있음에도 육안으로 보이는 상흔. 하늘을 처참하게 찢은 흉터.
분명 위압감을 느껴야 할 모습이지만 오히려 만족감이 들었다.
“네놈도 왔는가.”
웃음이 나왔다. 이 하늘 아래, 감히 하늘을 벨 수 있는 건 오직 둘뿐이다.
둘 중 하나는 나다. 그리고 방금 베인 하늘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니 누가 베었는지 뻔하지 않나.
“크라시우스 칼.”
북방의 총의를 꺾은 자, 위대한 그분의 질주를 끝낸 자.
“그래, 네놈이라면 올 줄 알았다.”
내가 네놈을 원하는 것처럼 네놈도 나를 원하겠지. 그렇다면 당연히 북방으로 올 것이라 믿었다.
실로 다행이다. 이 지겨운 인연을 드디어 마무리 지을 수 있을 테니.
‘내 끝은 네놈만이 맺을 수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크라시우스 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