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58)
로판 속 공무원 358화(359/451)
빙의 전 세계에 있던 일화 중 그런 일화가 있었다. 자신이 섬기는 주군이 영 미덥지 못하여 외부에서 새로운 주군을 영입하려던 모 책사의 이야기. 그 책사는 자신의 이상에 맞는 주군을 발견하고, 그 새로운 주군을 위해 지도를 바쳤다고 한다. 이게 정사인지 야사인지는 가물가물한데 아무튼 그런 일화가 있었다.
아무튼 이 일화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지도의 중요성? 난세에서는 주군을 갈아타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
맞긴 하지만 아니다. 진짜 교훈은 따로 있다.
“이곳, 이곳, 마지막으로 이곳에 거주하는 부족들도 악적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움직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과연, 그렇군요.”
바로 팔아먹을 거면 화끈하게 팔아먹어야 공신이 된다는 교훈이다.마지막에 합류하면 밑바닥이지만, 가장 먼저 양손 무겁게 합류하면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끌어들이면 등급이 올라간다.
카이타나 부족장─ 아니, 카이타나 백작은 북방을 배경으로 다단계 사업을 펼치고 있는 거다.
‘될 놈이다.’
그런 카이타나 백작을 보며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이 인간은 아무리 봐도 될 놈이다. 황제가 포섭이 아닌 절멸을 택했어도 어떻게든 살아남았을, 만약 지난 전쟁에서 카간이 승리했어도 어떻게든 입지를 마련했을 양반이다.
골치 아프지만 조건만 맞으면 편한 유형이기도 하다. 이 사람의 권리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면 온갖 물건을 들고 탈주하겠지만, 반대로 욕망을 채워줄 수 있으면 누구보다 충직하고 현명한 조력자가 된다. 그 욕망을 평생 충족하기 위해 고용주를 지키려 할 테니.
‘좋은데?’
단일 세력으로 3천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부족의 수장, 누구보다 먼저 제국에 숙인 족장. 제법 수완이 있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으나 이건 생각 이상이다.
아무래도 열세 번째 후작에 제일 근접한 사람은 카이타나 백작이 될 것 같다. 아직 접촉한 부족이 카이타나밖에 없기는 하다만, 이 인간을 능가할 사람이 나올 것 같지는 않으니까.
게다가 이런 사람이 한 시대에 여럿이 있는 세계는 조금 슬프지 않나. 앞잡이 배틀도 아니고.
‘우리 앞잡이라 다행이다.’
남의 앞잡이였으면 뒷목 잡았을 거야.
“그런데, 실례가 아니라면 위리디아 백작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아, 예. 편히 말씀하십시오.”
한창 지도를 짚으며 설명하던 카이타나 백작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국의 백작은 너무나 영광된 자리라 그 가신들도 귀족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카이타나 백작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예, 맞습니다. 보통 백작이 자신을 충실히 섬길 것 같은 가신들에게 작위를 수여하고, 최종적으로 폐하께서 승인하는 형태입니다.”
그렇기에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자 카이타나 백작은 눈동자를 바쁘게 굴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말에 헛웃음을 흘릴 뻔했다.
“굳이 제 부족이 아니더라도 서로의 합의만 있다면 된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흡족한 표정을 지은 카이타나 백작을 보니 이제는 경이로움까지 느껴졌다.
작위 수여 방식에 대해 묻고, 꼭 자기 부족 소속이 아니어도 된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는 다른 부족 휘하 씨족이나 씨족 규모로 떠도는 방랑자들이 카이타나 부족 소속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카이타나 백작의 세력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
‘작위 얘기를 듣자마자 거기까지 생각한다고?’
혹시 조상 중에 정주민이 있나?
카이타나 백작의 열렬한 배웅을 받으며 주둔지로 복귀하는 길.
“저기, 주인님.”
“응?”
무언가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던 4과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른 유목민들도 저렇습니까?”
의아함이 가득한 질문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면 내 상식을 부정하는 것 같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카이타나 백작의 존재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
칼 군이 카이타나 부족으로 떠난 시점부터 유목민의 공세가 더욱 거세졌다.이미 전선에서 활동 중인 유목민은 마치 싸우다 죽겠다는 듯 움직였고, 호전적인 기세를 보이는 부족들도 하나둘 전선에 출현했다.
각 전선에서 들려오는 공세 소식. 전쟁 중에, 그것도 유목민을 상대로 저돌적인 공세가 펼쳐지는 건 당연한 일이나─
‘전부 따로 노는군.’
전선에 있는 모든 부족이 공세를 펼치는 건 아니다. 카이타나 부족처럼 제국에 투항할 의사를 보이는 부족들은 여전히 잠잠하다.
이상한 일이다. 유목민의 공세가 거세졌다면 칸을 자칭한 역도에게서 지시가 내려왔다는 의미. 아군의 전선을 압박하고 피해를 강요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일 터.
허나 수적으로 우위인 제국군에게 피해를 강요하려면 유목민도 전력을 다해 공세를 펼쳐야 한다. 누구는 싸우고, 누구는 구경하는 기이한 전선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배신자부터 정리하는 게 정상이다.’
전선에서 자리만 잡아먹는 부족들에게 귀환 명령을 내리거나, 아니면 토벌하는 것이 정상이다. 언제 제국 진영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부족들을 전선에 방치하면 공세를 펼치는 부족들이 포위당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러나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공세를 펼치는 부족들은 잠잠한 부족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물론 전선에서 물러난 변절 부족들도 있었다만, 호전적인 부족의 눈치를 봐서 물러나기보다는 카이타나 부족처럼 자신의 영역으로 와달라는 듯 과시하며 물러났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게 당당한 배신자가 있었나.’
혼란스럽다. 이번 전쟁 중에 상식이 몇 번이나 무너지는지 모르겠다.적의 내분? 있을 수 있다. 강한 항복 의사 표현? 그 역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부 배신자가 당당히 돌아다니는 것과 그러한 배신자를 방치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혹시 다른 놈이 칸인가?’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우데스르 도르곤은 진작에 죽고 다른 야심가가 도르곤을 사칭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게 아니라면 이 기괴한 단합력과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 도르곤은 역천자의 유일한 혈육이자 후계자. 유목민을 규합할 상징이 되기에 충분한 위상과 능력을 가진 존재다. 제국도 그 위험도를 높게 평가하여 3년이나 추격했는데, 그런 위험 분자의 능력이 고작 이 정도라고?
차라리 지난 전쟁에서 도르곤이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면 모를까─ 도르곤은 서로 반목하던 반제국 부족 사이를 중재했다. 유능과 무능을 따지면 유능에 가까운 존재다.
만약 하늘이 찢어지는 걸 보지 못했다면 진지하게 도르곤이 아닌 자가 칸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각하. 감찰관이 복귀했습니다.”
혼란을 애써 억누르며 전선 상황을 갱신하던 중, 막사 안으로 들어온 기사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기사의 반응을 보니 칼 군이 어디 잘못돼서 돌아온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카이타나 부족과의 협상이 수월하게 끝났다는 거겠지.
그리고 칼 군이 가져온 지도를 보자마자 어지간히 수월했던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지도에 표시된 지역이 투항을 고려하는 부족의 영역입니다.”
“그렇군.”
많다. 모든 부족이 카이타나처럼 수천 규모는 아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많다.
“또한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족들도 많은데, 그중 제사장 역할을 수행하던 부족도 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아직 중립 진영이 남아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항복 의사가 뚜렷한 부족의 숫자도 상당한데, 이것보다 많은 부족들이 투항할 수도 있다고?
‘제사장?’
게다가 중립 진영에 제사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유목민의 2차 결집을 막기 위해 유목민이 믿던 이교는 철저한 소탕 대상이었다. 대제사장을 겸한 역천자는 물론 다른 제사장들도 추적 끝에 사살했고, 무수히 많은 신전도 파괴했다. 그만큼 제국은 이교를 짓밟았다.
그런데 짓밟힌 신앙의 제사장이 중립이라고 한다.
‘애매하군.’
제사장이 신앙이 짓밟힌 것에 대한 원망으로 주전파거나 모든 것을 잃어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반전파였다면 납득했을 거다.
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중립 진영이라는 건 그 부족 나름대로 고민할 것이 많다는 거겠지.
“이름은 바란디가 부족. 규모가 큰 것은 아니나, 역사가 길며 과거 역천자를 따르지 않은 부족들의 대표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칼 군의 말에 더욱 고민했다. 모든 제사장이 죽은 시점이니 유일한 신앙의 구심점, 유구한 역사, 역천자를 거부한 전적.
이 정도면 설령 주전파였어도 접촉했어야 할 부족이다. 단순한 유목민 토벌이 아닌 정복과 유지를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면 더더욱.
허나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이교를 인정해야 한다.’
신앙의 구심점을 포섭하면서 그 신앙을 버리라고 할 수는 없다. 바란디가 부족을 품에 안는 것은 그 영향력만 품는 것이 아닌 이교 전체를 품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어찌 천명을 받든 제국이 이교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쟁에 나선 장수는 군주의 명도 듣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물론 정말로 듣지 않으면 역적이나, 현장에서 활동 중인 지휘관이 후방의 군주보다 더욱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의 말이다. 그렇기에 제국군은 현장에 있는 사령관, 지휘관의 판단을 존중하는 편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이 정도 사안을 내 독단으로 결정하는 건 아무리 공작이어도 분수에 맞지 않은 일이다.
“귀한 정보를 가져왔군. 수고 많았다. 따로 호출하기 전까지는 쉬고 있도록.”
“예, 각하.”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는 칼 군을 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탐스러운 성배가 손에 들어왔거늘, 그 성배 안에 독까지 들어있다.
‘…폐하께 보고해야겠군.’
애석하게도 이건 현장에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
전승공의 보고가 올라왔다.
이미 수천 단위의 병력을 운용하는 부족이 투항했고, 그 외 여러 부족이 투항 의사를 보인다고 한다.
게다가 전부 죽은 줄 알았던 이교의 제사장이 명맥을 잇고 있으며, 주전도 반전도 아닌 애매한 입장을 표하고 있다고 한다.
…
‘이건 대체.’
무심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북방의 상황이… 이 정도로 개판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