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6)
제 36화
싱글벙글 박람회 – 3
칼 오라버니는 자신의 부하니 편하게 대하라고 하셨지만 처음 보는 분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심지어 칼 오라버니의 부탁으로 도움을 주러 오신 외국 분들과 달리, 이 분은 지나가다가 붙잡혀 오신 것 같아서 더욱 난감했다.
그래서 부하, 라는 언니에게 슬쩍 편하게 쉬고 있으라고 귓속말을 드렸다. 그러자 감동한 것처럼 고개를 연신 끄덕이더니, 오라버니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안고 있던 봉투에서 꼬치 하나를 꺼냈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이 약간은 부담스러웠다.
“이거 먹을래?”
“괜찮아요. 저도 이것저것 만들면서 조금 먹었거든요.”
“그래? 맛있는데.”
“그럼 내가 먹는다.”
어느새 언니 뒤로 다가온 칼 오라버니는 언니가 들고 있던 꼬치가 아닌 봉투를 통째로 가져가셨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품 속을 떠나가는 봉투를 바라보는 언니의 모습은, 솔직히 조금 딱해보였다.
“일하라고 데려왔더니 뭐하는 거야?”
“부장님. 업무 외 지시는 정말 나쁜 일이라고 생각해요.”
“꼬우면 네가 나보다 먼저 승진했어야지.”
“히잉…”
풀이 죽은 언니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오라버니는 오히려 한 손으로 언니의 머리를 잡으며 꾹꾹 눌렀다. 그럴 수록 언니는 표정이 녹아내리며 몸을 벌벌 떨었고.
“아, 아파, 아파요오오…”
“루이제. 봐주지 말고 부담 없이 시켜. 가만히 놔두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
“알았어요, 오라버니.”
오라버니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 내 대답을 듣고, 믿던 사람에게 배신 당한 것처럼 처량하게 쳐다보는 언니의 눈빛에 조금 마음이 아팠다.
‘우리 오늘 처음 봤는데…’
처음 본 나와 언제 저런 신뢰감을 형성했는지는 의문이지만.
“네가 부리기 어려우면 내가 쓸게. 괜찮을까?”
“네, 물론이에요. 오라버니가 데려오신 분이잖아요.”
그러면서 언니를 잡아 구석으로 향하는 오라버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쉬지 않고 구박하는 오라버니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언니.
‘친해보여.’
동시에 둘 사이에는 깊은 친밀감이 보였다. 오라버니가 겉으로는 인상을 쓰며 구박하지만, 그 속에는 편안함이 보였다. 동아리에서 보이지 않았던 막역한 모습. 언니 역시 울상 너머로 장난기와 친근함이 보였다.
저런 오라버니의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오라버니는 동아리에서 친절하고 자상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래도 약간의 절제와 선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절제와 선을 치우고, 있는 그대로의 오라버니를 보이는 것 같았다.
저게 오라버니의 진짜 모습. 나한테는 보여주지 않는 모습.
‘처음 봐.’
살짝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정말 고마운 사람을, 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졌다.
얼마 전 공녀님과 만났을 때도 그랬다. 오라버니는 공녀님에게 조금 선을 긋는 것 같았지만, 적어도 공녀님은 오라버니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카데미에 오기 전의 오라버니는 나와 달리 높으신 분이었으니 공녀님과도 친해진 거겠지.
내가 모르는 오라버니의 모습이 더 있다고 생각하니 답답함이 조금씩 커져 갔다. 오라버니는 정말 고마운 사람인데, 동아리의 소중한 고문인데, 나만의…
“아.”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는 생각을 머리를 흔들며 털어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오라버니에게 친한 분이 있는 건 당연하잖아. 나한테 모든 걸 알려주실 의무도 없잖아.
오라버니에게 받은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오라버니가 나에게 의지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잠시 이상한 생각을 했다.
‘정말… 이상해.’
어째서일까. 답답함은 욱신거림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애써 오라버니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
내가 생각해도 1과장을 평소보다 심하게 갈구고 있었지만, 상사와 부하 사이의 기강을 잡는 것은 부장의 의무. 내가 감찰부를 떠난 사이에 과장들이 해이해졌을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
애초에 내가 뭐라고 말하든 절반은 제대로 듣지 않고 흘리는 녀석이다. 그러니 100을 주입하려면 200을 박아야 본전이지.
“저기, 부장님.”
“왜 또.”
1과장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난 이제 얘가 나를 부르기만 해도 불안하다. 아까는 3황자 얘기를 하더니 이번에는 뭔데.
“쟤 누구예요? 기억에 없는 애인데.”
1과장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니 빌라르에게 빵을 잘라 건네주는 루이제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 동아리 부장.”
“그건 저도 알죠. 그런데 부원들에 비해 너무 평범한 애잖아요.”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는 1과장의 의문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부원 중 최약체인 에리히마저 제국 백작가의 차남. 감찰부 간부로서 간단한 신상명세 정도는 파악해두는 위치다.
반면 부장인 루이제는 정작 흔하디 흔한 말단 남작가의 영애. 아무리 감찰부여도 남작가 영애까지 파악하는 건 힘들다. 나도 원작 아니었으면 나이어드 남작가가 있는지도 몰랐을 거다.
“평범한 애 맞아. 털어도 별거 없으니 신경 꺼.”
“제가 2과장도 아닌데 그런 짓을 왜 해요.”
내가 볼 때는 그 새끼나 너나 거기서 거기야.
그러나 내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1과장은 슬쩍슬쩍 루이제를 바라보며 탄성을 흘렸다.
“와, 그런데 진짜 예쁘다. 저 분홍머리는 처음 봐요.”
“흔한 색은 아니지.”
“그래도 빨간색하고는 별로 안 어울리겠다.”
“…….”
그 말에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아버렸다. 이 새끼는 남의 머리색을 보고 떠올린다는 게 그거냐. 착잡한 심정을 이겨내고 다시 눈을 뜨자 여전히 루이제를 쳐다보는 1과장이 보였다.
“더 가까이 와 봐.”
“넹?”
200이 아닌 400의 잔소리를 쏟아부었다.
1과장을 계도하는 사이 2차 러시가 시작되었다. 2차 러시라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아까처럼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정도지.
단지 유일하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1과장이 내 옆에 토템처럼 버티고 있다는 것.
“보기 드문 분들을 여기서 뵙는군요.”
“하하, 저도 아카데미에서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와 악수를 나누는 귀족의 시선이 내 옆에 있는 1과장에게 향했다. 방긋방긋 웃고 있지만 그래도 입을 열지는 않는 1과장. 내가 절대 한 마디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신신당부를 했더니, 그래도 따라주기는 한다.
1과장을 옆에 세워둔 것은 일종의 예고다. 감찰부장이 아카데미에 있는 것은 이미 그 이유가 퍼질만큼 퍼졌으니 이상하지 않지만, 아카데미가 개방된 날에 1과장이 감찰부장과 함께 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다.
감찰부장과 1과장이 나란히 있는 것을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교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저 나란히 서있는 것으로도 귀족들에게는 무슨 일이 터질 것이라는 예고이자 경고가 되기에 충분하다.
‘알아서 조심하겠지.’
만약에, 아주 만약에 세번째 영광 요격에 실패하여 놈들이 아카데미 진입에 성공해도, 이미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 짐작한 귀족들은 호위를 강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귀족들에게 돌릴 시선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지.
일단 세번째 영광이 아카데미에 접근 중이라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밝히기 곤란한 일이다. 괜히 정보가 새어나갔다가는 세번째 영광이 잠적할 수 있고, 아카데미는 아카데미대로 혼란스러워지고, 덤으로 삼국 측에서 난리를 칠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러니 이런 번거로운 우회 예고를 해야지.
마침 1과장이 실제로 아카데미 졸업생이라, 1과장은 공적 업무가 아닌 박람회를 즐기러 왔다는 명분도 존재한다. 아무튼 대외적 명분은 단순 축제 참가니 두려워 할 것 없다.
그리고 이 명분은 실제로 빌라르를 비롯한 삼국 측에 먹혔다. 딱히 노린 건 아니지만,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며 철없이 걸어오는 1과장의 모습이 결정적이었다. 정말 놀러왔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었으니까.
‘고맙다, 빌라르.’
당신이 이리저리 꼬아서 생각하지 않는 우직한 기사라 정말 다행이야. 속이는 것 같아 조금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공무원은 의리보다 자국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눈 앞의 상대가 바뀌었다. 이제 돌아간 귀족은 다른 귀족들에게 1과장이 왔음을 알려주겠고, 그 소식은 귀족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겠지. 귀족의 입은 가장 무거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가벼운 것이기도 하다. 이럴 때는 보통 후자더라고.
“아, 오랜만입니다. 의회에서 뵌 이후로 처음이군요.”
이 양반도 돌아가면 알아서 잘 퍼뜨려 줄 것이다.
웃는 얼굴로 나와 악수 한 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1과장 쳐다보기 한 번. 전부 같은 반응을 보인 귀족들을 돌려보내고 마지막 한 명이 남았다.
‘누구지?’
그런데 정말 처음 보는 사람이 나와버렸다. 얼굴, 이름, 전부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다. 초면이라면 상관 없는데, 지나가다 인사라도 나눈 사이면 정말 어색한 상황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대가 먼저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부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지난번 카페에서 뵈고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아, 너구나.
카페라는 말에 딱 떠오르는 것이 있어 마음이 놓였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도 남부의 카페였지요? 정말 좋았습니다.”
“하하. 거기 케이크가 썩 괜찮았지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들리고 싶습니다. 이거 원, 시간이 없으니.”
“부장님께서 시간이 되실 때에 제가 맞춰야지요. 편할 때 말씀 주십시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악수 후 작별 인사. 돌아가는 청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악수를 한 손을 내려다봤다. 어느새 내 손바닥에 자리 잡은 작은 종이쪼가리. 그 종이에는 작게 글씨가 적혀 있었다.
[ 1시간 후, 본관 2층. ]카페, 제도 남부, 케이크, 시간이 없다, 시간을 맞추다. 주기적으로 변하는 일종의 암호였다. 정보부가 누군가와 접선할 때 주고 받는 암호.
‘얘네는 언제까지 이러고 다니려나.’
시대가 변했는데도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 가끔은 측은할 정도다. 얘네도 이러고 다니는 거 번거로울 텐데, 정보부가 어지간히 보수적인 집단이어야지 원.
심지어 정보부는 아직까지 눈 뜨고 살아있는 원로 인사가 많아서, 정보부장조차 전통을 함부로 없앨 수는 없다. 그것이 아무리 번거로운 전통이라도 말이다.
‘가엾게도.’
하여간 죽어나가는 건 언제나 정보부장이지. 정보부장을 향한 애도와 함께 손에 쥔 종이 조각을 자연스럽게 입에 넣어 삼켰다.
물론 정보부 전통에 시달리는 건 접선 상대도 마찬가지다. 정보부장이 악습 타파에 성공해야 나도 이런 짓거리 그만할 텐데.
‘식감 더럽네.’
적어도 종이는 좀 좋은 거 써라 제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느덧 4월의 마지막날입니다. 새해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에 돌입하기 직전이군요.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번 4월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공모전에 몰두하느라 어느 때보다 바쁘고 빠르게 지나갔으니까요.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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