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60)
로판 속 공무원 360화(361/451)
유목민의 습격은 장병들에게 있어 재앙과 같은 일이다. 압도적인 기동력, 말에 올라타 일방적으로 내려다보는 위치, 일반적인 궁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정거리. 같은 기병이 아닌 이상─ 아니, 같은 기병이어도 상대하기 힘든 악마가 유목민이다.
기병 전력을 완전히 복구하지 못한 제국은 유목민에 대한 대책으로 기사와 마법사 같은 특수 전력을 동원하였으나, 애석하게도 모든 전투에 특수 전력을 투입할 수는 없다. 아무리 초인이어도 그 숫자와 체력은 한정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최대한 체력을 비축하며 결정적인 순간에만 투입해야 한다.
전술적으로는 옳은 일이다. 허나 반대로 말하면 결정적이지 않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전투 때는 특수 전력이라는 카운터가 없는 상황에서 유목민을 상대해야 한다는 의미. 장병들이 겪을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절망 속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발생한 전투. 전투가 끝나면 당연하다는 듯 보이는 머리를 잃은 시신. 심지어 말에 짓밟히기라도 했는지 사지조차 멀쩡하지 않았다.
“빌헬름.”
유목민이 물러난 전선을 둘러보는 사이, 게오르크의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다.
“자네, 이번에도 직접 싸웠군.”
추궁하는 듯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숨길 것도, 숨길 이유도 없는 일이니.
“지휘관으로서 장병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 이상한가?”
“일반 지휘관은 그럴 수 있지만 원수가 그러면 곤란하지.”
상식적인 말이지만 적어도 게오르크에게 들을 말은 아니다. 저놈도 지난 전쟁 때는 원수라는 직함을 달고 전선에서 싸운 놈이지 않나. 이제 와서 정상인인 척하는 꼴이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제노비아가 또 전선에서 싸울 거면 그냥 북방에서 죽으라고 하더군. 그러니 어쩌겠나, 작위도 없는 놈은 잠자코 따라야지.”
그런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게오르크는 헛기침을 하며 변명을 내뱉었다.
확실히 제노비아는 게오르크의 종군을 필사적으로 말렸었지. 겨우겨우 타협한 것이 종군은 하되, 지난번처럼 직접 싸우지는 말라는 것이었나. 저놈이 제노비아에게 작위만 물려준 것이 아니라 실권도 완전히 넘겼기에 생긴 일이다.
“자식한테 짐을 넘겼으니 휘둘리는 건 각오해야지.”
그 말에 차마 반박할 수 없었는지 게오르크도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
저놈이 은퇴에 성공한 것은 폐하의 의지이나, 결과적으로 딸에게 작위와 업무를 떠넘긴 건 맞다. 본인의 행동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다.
“아무튼 가장이라면 몸 좀 사리게. 안 그래도 부자가 나란히 종군 중이라 부인도 걱정이 많을 텐데, 자네가 다쳤다는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겠어.”
그 와중에 은근슬쩍 주제를 돌리려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틀린 말은 아니라 그저 미간만 찌푸렸다.지금도 어깨에 화살이 박혀있으니까.
“무인에게 부상은 일상이지 않나.”
“하, 부인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인정하겠네.”
피식 웃음을 흘리는 게오르크를 보며어깨에 박힌 화살을 뽑자 피가 울컥 쏟아졌다.
신경을 건드리기라도 했는지 팔의 감각이 이상해졌지만,이 정도 부상은 마법이나 신성력만 있으면 금방 치료할 수 있다. 팔이 잘려도 붙일 수 있는데 신경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아무것도 아니다. 유목민을 상대로 처절하게 발버둥 치다가 죽었을 장병들을 생각하면 이깟 부상은 아무런 문제도 될 수 없다. 목숨에 비하면 매우 가벼운 대가다.
‘그럴듯한 방어시설이라도 있었다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제국은 꾸준히 진군하며 전선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유목민들이 성이나 요새를 가지고 있을 리는 만무하기에, 아군이 다른 지역을 점거하면 말뚝이나 돌, 흙주머니를 쌓아 만든 임시 방어선 정도가 유일한 방어시설이었다. 그런 걸 끼고 유목민의 습격을 막으니 장병들이 죽어 나가는 건 당연한 일.
그 당연함을 막기 위해 직접 전선에 나섰다. 내가 비록 원수지만 지휘는 다른 귀족이 맡아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지휘는 지휘를 할 수 있는 귀족에게 맡기고, 나는 전선에서 하나라도 많은 장병들을 살리는 게 맞지 않겠나.
지휘로서 장병들을 살릴 수 있는 귀족이 있다면 무력으로 살릴 수 있는 귀족도 있는 법이다.
“역시 전선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가 않아.”
그리고 어느새 쓰러진 장병들에게 시선을 돌린 게오르크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지휘부에 있으면 유목민이 쳐들어왔다, 전선은 이상 없다, 적의 공세가 거세졌다, 반격에 성공했다─ 그 한마디로 상황이 정리된다네. 듣기만 하면 쉬운 전쟁이 따로 없지.”
그리 말한 게오르크는 아직 눈을 감지 못한 장병에게 다가가 직접 눈을 감겨주었다.
“그래서 정신이 나갈 것 같네. 그곳에서 수십, 수백의 죽음은 작은 피해야. 그 정도 피해로 적을 격퇴했으면 훌륭하다고 말하고 있어.”
감정적인 말이지만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전투에서 전사자가 발생하더라도 전체적인 전쟁을 총괄하는 지휘부 입장에서는 작은 충돌, 사소한 피해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전선의 치열함과 별개로 지휘부의 인식은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나도 그 괴리감을 느꼈을 때는 미치는 줄 알았다. 아니,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저 참는 법을 배운 것이지.
“그렇다고 지금처럼 전선까지 오지 말게. 딸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그러나.”
“무인이 전선에 오는 것이 이상하나?”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게오르크의 모습에 픽 웃음을 흘렸다.
그렇기에 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저 저돌적인 놈이 지휘부에 가만히 있기를 바라는 건 맹수에게 육식을 금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애초에 전투가 끝난 전선이라면 제노비아와의 약속을 어기는 것도 아니니 눈 감아줄 수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알려줄 것이 있어서 왔는데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군.”
막 몸을 돌리려던 게오르크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번에 바란디가 부족이 전선에 나타나지 않았나. 그 부족과의 협상을 위해 감찰관이 온다고 하네.”
“…그런가.”
감찰관, 칼이 전선으로 온다는 말에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전투가 아닌 협상을 위한 방문이지만 전선은 전선. 조금이라도 위험한 곳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자네, 아비로서 아들을 걱정하는 건 이해하지만 너무 과한 걱정이야. 솔직히 나와 자네가 동시에 덤벼도 그 아이를 이기지 못해.”
“누가 걱정했다고 그러나.”
“그야 자네지. 내가 하겠나?”
시큰둥한 대답에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의회로 돌아가면 제노비아에게 이놈이 전선에 기웃거린 횟수를 알려줘야겠다.
***
바란디가 부족이 사레이 전선에 모습을 보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하필 사레이.’
굉장히 익숙한 이름이라 흠칫했다. 탈라가 이끈 부족이 사레이 부족이었으니까.
지난 전쟁 때는 팔준마가 친히 이끄는 부족의 영역이라 오랜 기간 동안 점령하지 못한 곳인데, 지금은 제국군 점령지로서 전선을 유지하는 곳이다. 감회가 색다르다.
“사레이 전선은 유목민의 공세가 가장 격렬한 곳이었지만, 계속되는 전투로 유목민의 기세도 꺾였다더군. 이제는 관망하는 부족이 더 많을 정도라고 하니 감찰관이 직접 가도 무방하겠어.”
전승공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전투가 터질지 모르는 전선에서 협상을 하는 건 난감한 일이지만, 공세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면 못 할 것도 없다. 그것도 공세를 펼치는 부족보다 탈주각을 재고 있는 부족이 더 많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바란디가 부족이 투항한다면 다른 중립 부족들도 제국에 기울어질 터. 감찰관의 역할이 매우 크다.”
“예, 각하.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답하자 전승공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허나 이미 수많은 부족들이 제국에 투항할 의지를 보였으니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 무사 귀환을 최우선으로 하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카이타나 부족 때와 달리 전선에서 일어나는 협상이라 전승공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막말로 전선에서 협상을 하다가 근처에 있던 부족들이 일제히 협상장으로 달려들면 상당히 곤란한 일이니.
물론 전선에 있는 부족들은 예비 투항자, 혹은 중립 세력이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번에도 묵광대의 호위를 받으며 바란디가 부족의 주둔지로 향했다. 마침 가주가 사레이 전선에 있다고 해서 인사라도 할까 싶었지만, 지금은 공무 중이다. 인사는 협상을 마치고 해도 충분하겠지.
그리고 ‘협상을 하러 적진 한가운데로 갑니다.’ 라고 인사를 하는 것보다는 ‘하고 왔습니다.’ 라는 인사가 더 나을 것 같다. 적어도 가주에게 걱정을 끼칠 일은 없으니까.
‘협상이라.’
그건 그렇고 아직도 고민이다. 바란디가 부족과의 협상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는 것이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솔직히 카이타나 부족과의 협상은 협상이라고 하기도 민망했다. 이미 투항할 생각이 가득한 부족이었고, 백작이라는 선물을 꺼내자마자 앞잡이 모드로 돌변하며 온갖 정보를 자발적으로 바쳤다. 그걸 협상이라고 하는 건 양심이 없는 거지.
반면 바란디가는 항복 의지를 보이지도 않았고 원하는 것을 암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신앙이 짓밟힌 제사장 부족이면서 주전이 아닌 중립을 유지하는 애매함, 제사장 자리를 물려받았으면서 제사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기묘함을 보였다.
‘…공식적으로는 제사장이기는 한데.’
혹시 바란디가를 신앙의 구심점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글러먹은 전제인가 싶어서 여러 루트로 바란디가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다행히 바란디가 부족장이 3년 전에 제사장직을 계승한 건 맞다. 대외적으로도 알려진 사실인지 다른 부족들도 알고 있더라.
‘그런데 그 역할은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물론 겉모습은 제사장처럼 행동하고 있을 거다. 최소한의 행동은 하고 있으니 다른 부족들도 바란디가 부족장을 제사장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하지만 영원한 푸른 하늘은 제사장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신앙을 받는 신이 한 말이니 확실할 터.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실속은 없다…’
무심코 허리춤에 매인 검을 쳐다봤다.
덤으로 카간에게 베였던 부분을 매만졌다.
흐으으으으음.
‘계십니까?’
– 응? 나 불렀어?
속으로 영원한 푸른 하늘을 부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답변하는 영원한 푸른 하늘.
답변이 빨라서 다행이다. 협상 전까지 논의할 시간은 있겠어.
‘하나 여쭤볼 게 있습니다.’
나만 좋은 게 아니라 당신에게도 좋은 일이니 협조 좀 해줘.
***
멀리서부터 백기를 든 무리가 다가오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아마 제국의 사절이겠지.
‘환장하겠군.’
진지하게 군을 물릴까, 하는 충동이 치솟았다. 아직 제국과 접촉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지금 상태에서 사절과 만나봤자 최상의 조건을 이끌어낼 수 없다.그렇다고 사절의 방문을 거절하는 것도 끔찍한 일.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제국의 사절이 주둔지까지 도달했다.
“영원한 푸른 하늘의 성흔을 받고, 신물을 보유한 자가 왔으니 제사장은 손님으로서 맞이해주십시오!”
별 해괴한 소리와 함께.
‘뭔.’
저게 대체 무슨 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