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7)
제 37화
싱글벙글 박람회 – 4
역겨운 식감을 참으며 종이를 삼키자, 옆에서 두 눈을 꿈뻑이며 쳐다보는 1과장의 시선이 느껴졌다.
“왜, 할 말 있어?”
“정보부에요?”
언제나 해맑은 녀석이 드물게 인상을 쓰며 물었다. 아, 얘도 정보부하고 접선한 적이 좀 있지.
이 기괴한 전통의 피해자는 다방면으로 퍼져 있다. 감찰부도 예외는 없기에 간부들이 정보부와 접촉할 일이 있으면 기를 쓰고 정보부로 찾아가려고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정보부 요원이 찾아 온다.
정보부로 찾아가기 전에 요원이 직접 오면 뭐, 방금 나처럼 종이 삼키고 증거 없애야지.
“그래.”
“으, 걔네는 왜 아직도 그래요? 그냥 통신구 쓰면 되는 걸.”
“그거 정보부한테 대놓고 묻지는 마라. 우리보다 더 싫어하던데.”
옛날에 참다 참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세상 모든 슬픔을 담은 눈으로 말없이 쳐다봐서 조용히 돌아갔다. 그런 눈을 보고 항의하는 사람은 마음이 없는 자다.
“우린 그런 전통 없는데, 정보부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전통 기억하는 사람이 죄다 사라졌잖아.”
1과장의 넋두리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감찰부를 포함한 재무성은 2년 전에 정말 화려하게 뒤엎어지며 전통의 대다수가 사라졌다. 악습도 꽤 있다고는 들었는데, 정작 그 악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니 상관없다.
내 말에 1과장이 그때의 일이 떠오르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도 그때를 생각하면 치가 떨리니 이해한다. 몇 번이나 눈 앞에 밧줄이 아른거리던지. 심할 때는 독이 든 수통을 챙기고 다녔을 정도였다. 다행히 쓸 일은 없었지만.
“부장님만 가시면 되는 거죠?”
“너도 갈래?”
1과장은 정보부 사람과 만나는 게 꺼려지는지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보부 생각하는 수준으로 부장을 어렵게 대해주면 정말 좋겠는데. 절반 정도라도 좋으니까.
“걔네 부장님 앞에서만 고분고분하지, 우리한테는 엄청 깐깐하다고요.”
“그게 인덕의 차이 아닐까?”
“와…”
조용히 시선을 돌리는 1과장의 모습은 많이 괘씸했다.
정보부에서 온 사람이 마지막 손님이어서 본관에 갈 여유는 충분히 있었다. 애초에 그 시간을 노리고 찾아온 거겠지.
“잠깐 자리 좀 비운다.”
지금 출발하면 딱 약속 시간에 본관에 도착한다. 괜히 일찍 갔다가 본관에 오래 머무는 모습을 보이면 의심만 살 테니, 시간에 맞춰서 가는 게 편하지.
“어? 오라버니, 무슨 일 있으세요?”
반죽을 새로 하던 루이제가 쪼르르 달려왔다. 순간 교장이나 교감을 팔까 싶었지만, 괜히 입을 맞추지 않고 팔았다가 걸리면 골치 아프다.
“그냥 바람이나 쐬려고. 인사도 계속 하니 피곤하네.”
“확실히 오라버니 보러 많이 오신 것 같더라고요.”
내 말에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루이제. 네가 보기에도 많긴 했지? 준전설 포켓몬을 노리는 트레이너가 이렇게 많단다.
“금방 다녀올게. 걱정하지 말고.”
“느긋하게 오셔도 돼요.”
“다들 고생하는데 나 혼자 쉬기는 그렇지. 아, 쟤 잘 감시하고.”
“부장님, 혹시 노동법이라고 아세요?”
“아하하…”
투덜거리는 1과장과 어색하게 웃는 루이제를 보다가 빌라르에게 다가갔다. 내가 불러서 왔는데 정작 내가 말없이 자리를 비우면 예의 없고 민망한 일이다.
“제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최대한 빠르게 복귀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복귀하시는 동안 수습에 집중하겠습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빌라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등을 돌렸다. 이 정도면 충분하니 이제 본관으로 가면 되겠지.
***
빌라르는 멀어져 가는 감찰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일이 터지긴 하겠군.’
감찰관의 부하라는 여인의 등장, 그 후 제국 귀족들의 미묘한 반응, 마지막으로 갑자기 자리를 비우는 감찰관. 모든 정황이 곧 사건이 터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감찰관의 말로는 부하가 아카데미 졸업생이라 박람회를 즐기러 왔다지만, 당연히 믿을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감찰부장인 감찰관을 서슴없이 대할 수 있는 고위직이 단순히 놀러 아카데미에 왔다? 말도 안되는 소리.
‘신경 끄라는 말이지.’
아무튼 우연히 아카데미에 온 것이니, 삼국에서는 신경 쓸 것이 없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더 노골적이고 거칠게 표현한다면 ‘닥치고 제국의 일에 관심 꺼라.’ 라는 말. 어쩌겠는가, 제국이 그렇게 나온다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제국 영토, 제국의 교육 기관에 제국 귀족들이 몰려 있는 상황. 아무리 삼국과의 협상으로 제국 전력 일부가 아카데미에서 철수했다지만, 이런 특이 상황에서도 제국의 움직임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위험 부담이 크다. 까딱 잘못하면 내정 간섭이니.
삼국이 감찰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는 건 감찰관도 알 것이다. 믿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 알 것이고.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명분을 쌓아준 대화에 불과하다.
감찰관의 말을 떠올리던 빌라르의 시선이 백발 여인에게 향했다. 기사로서 평생을 살아왔고, 그 능력과 경험을 인정 받아 왕실 기사단에 입단했다. 그렇기에 상대의 역량과 분위기를 파악하는 작은 재주를 가질 수 있었다.
‘끔찍하다.’
그리고 빌라르의 감각은 부하라는 여인이 위험한 존재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지독한 피냄새가 풍기는 것 같은 기분. 붉은 눈마저 피가 고여서 생긴 웅덩이처럼 보였다. 저런 사람이 아카데미에 오다니, 대체 얼마나 지독한 일이 생기려고.
‘…딱히 새삼스럽지도 않군.’
위험한 존재의 등장에 경계를 하려다가도, 더욱 위험한 상위 존재에 생각이 닿으니 부질없이 느껴졌다.
빌라르의 시선이 감찰관이 사라진 쪽으로 향했다. 누구보다 위험한 존재가 아카데미에 머물고 있는데, 너무 새삼스러운 걱정을 한 것 같다.
지독한 피냄새? 피가 고여서 생긴 웅덩이? 그 정도는 차라리 애교다. 감찰관은 그것보다 더한 존재니까. 처음 감찰관과 대면했을 때 얼마나 기겁했는지. 아카데미에 저런 괴물이 오는 건 반칙 아니냐고 항의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나마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는 상대여서 다행이지. 심지어 직설적이고 솔직한 타입이라 더욱 그러했다. 속내를 숨기는 괴물만큼 재앙에 가까운 존재는 없으니까.
‘카간 살해자가 속내를 숨긴다라.’
제국의 천명을 지킨 괴물이며, 피웅덩이 수준이 아닌 시산혈해라는 말이 떠오르는 자. 그런 괴물이 속내를 숨기고 삼국을 농락하면 그야말로 재앙이겠지.
작게 한숨을 내쉰 빌라르가 상념을 떨쳐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감찰관은 그런 괴물이 아니다. 그걸로 충분하다. 적어도 그 칼날이 삼국으로 향하지는 않을 테니.
***
다들 박람회를 즐기러 나갔는지 본관은 꽤 한산했다. 2층까지 올라오면서 마주친 사람이 없을 정도. 그나마 사람이 남아있을 장소는 2층보다 더 위에 있으니, 은밀히 만나기에는 딱이다.
약속 장소인 2층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멀리서 중년 남성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종이 조각을 건네준 청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인물.
‘저거 그새 바꾸고 왔네.’
하지만 동일 인물이다. 외견을 수시로 바꿔대는 사람이라 1시간이면 다른 모습으로 변해서 오기 충분한 시간이다. 어차피 청년 모습도 변장한 모습이니 큰 의미도 없고. 나도 저 사람 진짜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정보부장은 본 적 있으려나?
“감찰부장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래. 1시간 만에 보는군. 정보차장도 잘 지냈나?”
극한의 인도어파인 정보부장과 달리, 극한의 아웃도어파인 정보부 차장. 정보부장과 더불어 무퇴근 기록을 수시로 갱신하는 역전의 공무원이다.
“저야 늘 같지요.”
그 말에는 ‘늘 안 좋다.’ 라는 뜻이 담겨 있다.
보통 차장은 부장의 업무를 보좌하며 부서를 조율하는 2인자지만, 정보차장은 첩보에 특화된 능력을 가졌다는 죄로 미친듯이 외부를 떠도는 방랑자다. 당연히 잘 지냈을 리 없지. 알지만 예의상 물어봤다.
“바쁘실 테니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지. 무슨 일인가?”
“내일 오후 5시경에 시체가 나타날 겁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올 놈들이기에 딱히 놀랍지는 않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기도 하고.
“지원은?”
“장관 각하께서 묵광대를 파견하셨습니다.”
“오.”
나도 모르게 짧은 탄성을 내고 말았다. 특무성 장관이 특별히 엄선한다는 말을 들어 예상은 했지만, 정말 묵광대를 보내줄 줄은 몰랐다. 특무성 소속 부대 중에서도 꽤 상위권에 위치한 부대라 이런 일에 보내기에는 아까운 면이 조금 있는데.
“각하께서 신경을 많이 써주셨군.”
“그야 묵광대가 부장님과 함께 움직이기 딱이지 않습니까.”
“그걸 알면서도 특무성에서 가져갔나?”
“하하, 죄송합니다. 하지만 개편이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황실의 명을 저희가 거부할 수는 없지요.”
정보차장의 너스레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건 나도 잘 안다. 나도 황실의 명이라는 가불기 때문에 묵광대를 특무성에 보내줘야 했으니까.
“묵광대에서 먼저 부장님께 연락을 보낼 겁니다. 물론 부장님께서 먼저 보내셔도 무방합니다. 부장님 연락이면 기쁘게 받을 테니.”
“그러도록 하지. 알려줘서 고맙네.”
“저야 이런 전령 역할이 업무지 않습니까.”
글쎄, 전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하는 일이 많은데.
아무튼 정보차장은 그 말을 끝으로 인사와 함께 사라졌고, 나도 다시 부스로 복귀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묵광대라.’
부스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이전보다 가벼워졌다. 아무래도 반가운 녀석들을 보게 되었으니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특무성 소속 부대 중 하나인 묵광대(墨光隊). 나에게 익숙한 이름으로 부르자면, 전(前) 감찰부 4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5월의 첫날이 밝았습니다. 독자님들이 따뜻하고 즐거운 5월을 보내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이면 본선 진출작이 발표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어떤 작품들이 선정되었을지 기대됩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나면추천누름님! 후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