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70)
로판 속 공무원 370화(371/451)
미친 새끼의 미친 발언에 헛웃음을 흘리다가 도로 표정을 가다듬었다. 도르곤 레이드 계획이 시작부터 꼬였고, 그 녀석들이 죽은 끔찍한 곳에 오게 된 상황이지만─ 이상하게 불쾌감보다는 후련함이 더 컸다.
‘나도 이런 걸 바란 건가.’
사적 감정을 내세워 나라의 일을 그르칠 수 없다. 그렇게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사실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 혼자, 우리 일곱 중 홀로 죽지 못한 나 혼자서 이 악몽을 끝내고 싶었다. 카간의 잔재를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다.
그저 2년 동안 번번이 도르곤을 놓쳤던 기억이, 3년이나 잡지 못했던 굴욕이, 다시금 봉기하여 전쟁이 터진 고통이 떠올라 애써 억누르고 있었다.
‘이젠 아니야.’
허나 이제 억누를 필요가 없다. 내 고집이 아닌 도르곤의 전략으로 인해 일대일 구도가 이루어졌다. 어쩔 수 없이 나 홀로 전투에 임해야 한다.
“역시.”
그런 나를 보던 도르곤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도 좋아할 줄 알았다.”
그 말을 들으니 웃음이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계속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결과가 어떻든 기념으로 삼기는 좋겠어.”
“패자여도 승자의 기억에, 대륙의 역사에 영원히 남겠지. 멋진 일이지 않나?”
이번에도 정상이 아닌 대꾸를 한 도르곤이 말에서 내리기에 나 역시 말에서 내렸다.
어차피 일대일로 붙으면 상대의 말부터 죽일 거다. 그렇다면 승자가 돌아가기 편하게 말은 살려둬야 하지 않겠나. 기묘한 곳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우데스르 씨족의 주인이자 가아르 칸국의 칸, 가아르 우데스르 도르곤이다.”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오는 도르곤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뜬금없는 소개다. 우리 사이에 이리 평온하게 소개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크라시우스 가문의 후계자이자 크펠로펜 제국의 백작, 칼 크라시우스 오브 위리디아.”
하지만 어울려줬다. 이 역시 이유는 모르겠다.
“백작이었나? 칸을 상대할 용사치고는 너무 낮은데.”
“칸은 하늘 아래 오직 황제 폐하뿐. 너는 일개 부족장에 불과하다.”
“크흐, 평생 초원에 발을 디디지도 않았을 자가 칸이라. 재미있군.”
연신 낄낄 거린 도르곤은 서서히 웃음을 거둬들었다. 검을 앞으로 내세우고 자세를 잡는 것이 당장이라도 달려올 것 같았다.
“악연은 5년으로 충분하겠지.”
“네가 도망치지만 않았어도 2년으로 끝났어.”
이윽고 나와 도르곤은 동시에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갔다.
– ■■■■■■■■──!!!
검이 맞부딪히자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땅이 갈라졌다.
이제는 나나 저 새끼의 뼈가 터지는 소리만 날 거다.
이 육체의 원주인은 크라시우스 가문의 검술을 익혔다. 그렇기에 빙의하는 과정에서 검술에 대한 기억을 같이 얻었고, 빙의 후에도 수련을 멈추지 않아 빙의자인 나도 그럭저럭 크라시우스의 검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검술은 내가 처음부터 쌓아 올린 것이 아닌 남의 기억을 물려받은 것이다. 내가 직접 몸을 움직이며 기초부터 몸에 익힌 것이 아니다. 아무리 기억과 습관이 남아있어도 그것을 온전히 끌어내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다른 빙의자들은 없던 능력도 생기던데 왜 나는 있던 능력도 사라지는 건지 억울할 정도였다.
아무튼 애매한 반쪽 검술을 익힌 놈은 5년 전, 제국의 존망이 걸렸던 지옥 같은 전장에 내던져졌다. 그 지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크라시우스고 나발이고 내 몸에 맞는 검술을 터득하는 수밖에 없었고.
‘이걸 검술이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반쪽짜리 무인은 발버둥 끝에 실전 위주의 검술을, 솔직히 말하면 근본 없는 잡탕을 익혔다. 형이나 태는 버린 지 오래다. 단지 적보다 빠르게, 적보다 강하게, 적보다 많이 휘두르는 법을 배웠다.
심지어 검뿐만 아닌 창이나 활, 단검에 대해서도 배웠으니 끔찍한 혼종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인지 어디 가서 검사라고는 해도 도저히 검술을 익혔다고는 못하겠더라. 그게 최후의 양심이야.
그런데 기이하게도 잡탕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약육강식의 초원에서 살아남은, 카간이 모은 10만 유목민 군세의 2인자나 마찬가지였던 개새끼도 근본은 찾아볼 수 없는 잡종 무술을 선보였다.
당연하게도─ 그 개새끼는 도르곤이다.
‘망할.’
명치에 도르곤의 검이 꽂혀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곧바로 칼자루를 턱에 꽂아 넣었다. 행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깊게 박히지는 않았으나 검을 도로 빼내는데 딜레이가 걸릴 정도로는 박혔다. 그 사이에 베는 건 무리여도 패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나에게 상처를 주는 대가로 본인도 처맞은 도르곤은 빠르게 몸을 뒤로 물리며 입안에 고인 피를 뱉었다.
‘하.’
생각보다 멀쩡하다. 제대로 힘을 주지는 못했지만 강냉이 정도는 몇 개 털 줄 알았는데.
“약쟁이 새끼가 따로 없군.”
“네가 할 말이냐.”
피를 뱉고 피식 웃음을 흘린 도르곤의 말에 본능적으로 대꾸를 했다. 물론 강화 마법과 성법만이 아니라 물약도 대량으로 마시고 왔으니 약쟁이인 건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걸 같은 약쟁이 새끼에게 듣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도르곤과 수십, 수백합은 맞붙었다. 그 과정에서 도르곤의 복부에 칼을 꽂아 넣기도, 어깨를 탈골시키기도, 무릎을 부수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더라. 저 새끼도 온갖 강화 주술에 물약까지 퍼마시고 온 게 아닌 이상 그럴 수 없다.
‘하여간 빌어먹을 새끼.’
이래서 저 새끼가 싫다. 기준이 없는 잡탕 무술의 소유자라 어디서 무슨 공격이 날아올지 모르겠고, 자존심보다 목숨을 먼저 챙기는 타입이라 도핑을 태연하게 하고 온다. 미러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특징을 가진 놈과 싸우는 건 썩 달가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 새끼와는 너무 자주 붙었다. 둘 중 누가 죽지도 못한 채 수시로 충돌했고, 그만큼 상대의 특징이나 성향을 파악한 채 물러났다.
그럴수록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줄어들었다. 내가 저놈을 아는 만큼 저놈도 나를 아니까. 어디서 공격이 날아오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 뻔하니까.
‘장기전은 무리인데.’
뼈가 빠졌는지 흐느적거리는 왼팔을 억지로 끼워 맞추며 머리를 굴렸다. 풀도핑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짓이라 장시간 전투를 지속하는 건 무리다. 과하게 굴리면 몸이 버티지도 못하고, 애초에 강화 자체가 풀릴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도 도핑 약쟁이다. 아무리 패도 멀쩡하고, 어딘가를 부러뜨려도 도로 붙으니 단기전으로 끝낼 수 없다. 이건 내가 탈라에게 괴물 새끼가 따로 없다고 극찬을 들은 것이니 확실하다.
‘미치겠군.’
다시 덤벼드는 도르곤의 칼을 쳐내며 과거의 악몽을 떠올렸다. 이 새끼와 맞붙는 회수가 늘어날수록 다음 전투 때는 반드시 죽이자고 다짐했었다. 실제로 전력을 다해서 싸웠고.
그럼에도 이 새끼와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결판이 나지 않았다. 혹시 이번에도 그 지랄맞은 상황이 지속되는 게 아닐까 두려워졌다. 이렇게 마지막 전투인 것처럼 싸워놓고 결판이 나지 않아서 ‘다음에 보자.’ 라며 헤어지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지 않나.
마침 도르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검격이 더욱 흉폭해졌다. 애비가 죽은 장소에서 숙적과의 마지막 전투를 각오했는데, 서로 멀쩡히 돌아가는 건 많이 심각한 일이다.
‘어쩔 수 없지.’
허리를 뒤로 젖히며 피하려던 검격을 몸으로 맞았다. 가슴팍이 베이며 피가 솟구쳤지만 그만큼 도르곤과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어차피 죽지만 않으면 돼.’
중상도 각오하자. 방어나 회피를 포기하고 무조건 공세로 나선다. 도르곤의 내구도도 나와 비슷하지만, 그나마 공세 일변도로 나서야 죽일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간다.
만약 놈이 피하면 자세가 흐트러지고, 맞으면 충격이 누적된다.어느 쪽이든 손해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며 내지른 검을 도르곤이 입으로 막았다.
정확히는 이빨로 날을 깨물어서 막았다.
“이 개새끼가.”
그 기행에 참지 못하고 육성으로 내뱉고 말았다.
진짜 짐승 새끼가 따로 없네.
허리가 반쯤 베였지만 금방 지혈됐다. 도르곤의 무릎을 부쉈지만 다시 붙었다. 귀가 찢어졌지만 금세 자라났다. 도르곤의 입가를 잘랐으나 도로 아물었다.
분명 서로가 서로에게 꾸준히 대미지를 주고 있으나 서로를 압도할 수 없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이 지지부진한 대치를 끝내려면 적의 사지 정도는 잘라야 가능할 터.
‘못 잘라서 문제지.’
안 그래도 마나를 다루는 무인은 육체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데, 그 상태에서 온갖 강화까지 둘렀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피부나 근육을 손상시킬지언정 사지 전체는 자를 수 없다.
물론 하늘 베기를 사람을 향해 쏘면 강화고 도핑이고 전부 뚫어버리지만, 도르곤이 머저리도 아니고 필살기를 준비하는데 보고만 있겠나. 당연히 그 사이에 덤벼들어 심장이라도 찌르겠지. 아무리 강화 중이어도 대놓고 심장을 찔리면 죽─
‘…아.’
순간 탈라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크라시우스 칼, 나와 너는 호각이다! 차라리 서로에게 최강의 일격을 날리고 마무리 짓는 게 어떠한가?”
상대가 방해하는 것이 걱정된다면 방해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면 되는 거였다. 간단하고도 명확한 해결책이지만, 범인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
“도르곤!”
내 외침에도 도르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입을 열 시간에 검을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겠다는 듯이.
당연한 반응이다. 사실 이전까지 불꽃 패드립을 주고 받은 것이 이상한 거지, 적을 상대로 침묵을 지키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뒤이은 말에는 도르곤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너는 호각이다! 3년 전의 일을 반복하느니, 차라리 서로에게 최강의 일격을 날리고 마무리하자!”
“…뭐?”
최강의 일격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도르곤도 안다. 카간이 멸세를 보인 이후부터, 이 북방에서 최강의 일격이란 오직 그것만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니까.
그야 하늘을 베고 대지를 요동치게 만드는 기술이 최강이 아니면 무엇이 최강이라 할 수 있을까.
***
혼란스럽다. 지금 저놈이 뭐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처럼 싸우면 결국 누구도 죽지 않은 채 돌아가겠지. 기껏 망자들 앞에서 죽음을 각오했는데, 둘 다 명을 이어가는 거다.”
허나 이상하게 심장은 뜨겁게 타올랐다.
“최강이라.”
애써 그 열기를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 단어를 경솔하게 입에 담은 것 같지는 않은데.”
만약 저 제안이 속임수라면 허무하게 전투가 끝나버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분명 머리로는 의심하고 꺼리고 있다. 상식적으로 1초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전투에서 저런 제안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헌데 마음만은 수락하라고 외치고 있다.
“탈라를 떠올려라.”
그 말에 픽 웃음이 나왔다.
이 시대에는 미친 새끼가 왜 이리 많은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