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72)
로판 속 공무원 372화(373/451)
어지러웠던 머리가 어느 순간부터 맑아졌다. 흐릿했던 시야도, 가파졌던 호흡도 멀쩡해졌다.물론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은 아니다. 하반신이 사라지고 양팔이 잘린 부상이 어찌 회복되겠는가.
이건 마지막 불꽃에 지나지 않다. 불이 꺼지기 직전 가장 밝게 타오르듯, 내 몸도 잠시 타오르는 것이다.
‘야박할 정도로 질기군.’
한참을 웃다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무리 강화 주술을 걸었다고 하지만 멸세끼리 충돌한 충격을 받고도 즉사를 피했다. 덕분에 저놈에게 민망한 이야기를 떠들게 되지 않았나. 내 명줄이 질긴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아무 말도 없이 죽으려고 했으면서 정작 털어놓으니 후련하기 짝이 없다. 나에게 최후를 선사한 숙적이, 내가 걸어온 길을 기억할 것이라 생각하니 기쁠 정도다.
“너를 따르는 부족들은 전부 같은 생각인가?”
그 말에 시선을 크라시우스 칼에게 돌렸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그래. 전부 나처럼 죽음을 각오한, 제국과 공존할 수 없는 녀석들이다.”
살고 싶으면 제국에게 가라는 말에도 고개를 젓고, 하다못해 잠적하라는 말도 거절한 미치광이들. 제국과 같은 하늘 아래 살 바에는 유목민으로서 죽겠다던 멍청이들.그리고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사라져야 할 쓰레기들.
나는 그 쓰레기들의 수장으로서 그 녀석들을 이끌었다. 그 녀석들이 품은 울분을 마지막으로 터뜨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은 것들이라 고집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투항해도 된다고 하면 나보고 먼저 투항하라고 할 정도니까.”
내가 투항하든 말든 싸우다 죽을 녀석들이 그런 말을 해서 얼마나 웃기던지.
“제국은 투항자에게 관대하다.”
“알고 있다. 아니까 이런 짓을 했지.’
나지막한 목소리에 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방금 한 말은 크라시우스 칼의 배려다. 만약, 아주 만약 그 녀석들이 내가 죽었다는 소식에 동요해서─ 고집을 꺾고 제국에 투항한다면 대우를 해주겠다는 말이니.
“투항할 바에는 자결을 할 것 같다만, 구멍을 열어줘서 고맙다.”
그렇기에 솔직하게 말했다. 제국에 대한 원한이 깊어 고개를 숙일 바에는 목을 꺾을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살 길을 열어줘서 고맙다고.
동시에 답답하다. 조금만 고개를 숙이면 안전은 물론 권세도 보장되는데, 왜 그러지를 못하는 거지?
‘내가 할 말은 아니군.’
생각해 보니 나부터 제국과 싸우다 죽기를 원하는 상황이다. 그런 주제에 다른 녀석들이 투항하기를 바라는 건 양심이 없는 거겠지. 내가 한을 품은 것처럼 그것들도 각자의 한을 품었을 테니.
‘한이라.’
크라시우스 칼에게 향했던 시선을 다시 하늘로 돌렸다. 내가 싸운 것은 그분을 따라 우리의 이상을 이루기 위함도 있으나, 내가 품은 한을 풀기 위해서도 있다.
무너진 이상은 나와 그 녀석들의 목숨을 대가로 어설프게나마 이루었다. 우리의 나라는 만들지 못했으나, 적어도 제국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한은? 우리의 이상이 아닌, 내가 품은 한은 해소가 됐나?
‘실패했지.’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그러지 못했다. 내 한은 결국 내 죽음과 함께 사라지게 됐다.
부끄러운 일이다. 동포니 총의니 떠든 놈이 정작 개인의 일은 처리하지 못했다. 아니, 차라리 나 개인의 일이면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넘어갔을 거다.
‘어머니를 무슨 낯으로 봬야 하나.’
그러나 개인의 일이 아니다. 아들로서 어머니의 원한을 갚지 못한 것은 가벼이 넘길 수 없다.
유목민을 벌레처럼 짓밟던 제국군, 그런 제국군에게 치욕을 입은 어머니, 저주받아 마땅한 생명인 나에게 사랑을 알려주신 분.
그리고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뜨자 조카에 불과했던 나를 친아들처럼 여기며 돌봐주신 그분까지.
‘이거 참.’
엉망이다. 어머니를 능욕한 제국을 징벌하지도, 나를 아들로 여겨주신 그분의 꿈을 이루지도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모든 후회와 미련을 털어낸 줄 알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애초에 미련이 가득했고, 그 미련 때문에 살아가고 있었다. 그저 풀지 못할 한이기에 애써 외면한 것이다.
그분이 쓰러진 이후부터, 동포들이 희망을 잃은 순간부터 제국을 징벌한다는 목표는 영원히 이루지 못할 목표가 되었으니까. 나로서는 어머니의 원한을 갚을 수 없으니까.
아마 그래서 더욱 이상에 고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축복받지 못한 탄생,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을 보필하지 못한 삶, 동포들의 총의에 부응하지 못한 무능.
이 모든 것을 외면하기 위해, 언젠가 만날 어머니에게 조금이나마 변명하기 위해 달린 것이다.
“크라시우스 칼.”
“왜.”
“그대가 보기에 나는 어땠나?”
난데없는 질문에 크라시우스 칼의 표정이 구겨지는 것이 보였다.이해한다. 다 죽어가는 수괴가 홀로 뜬구름 잡는 말을 하면 얼마나 어이가 없겠나. 심지어 보기에 어땠냐니, 당연히 개새끼였겠지.
하지만 듣고 싶다. 내 곁에 있는 것이 저놈뿐이기도 하지만, 질긴 악연이자 숙적이 본 나는─ 그 어떤 사람의 시선보다도 정확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호랑이 애비에 개새끼라는 말이 있던데.”
거기까지 말한 크라시우스 칼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짜증난다는 듯 내뱉었다.
“늑대도 개새끼기는 하지.”
“하.”
웃음이 터졌다.
“극찬이로군.”
그 말에 더욱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칼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말할 것은 전부 말했고, 듣고 싶은 것도 전부 들었다. 내 생명도 마지막 불꽃을 태웠으니 이제 떠날 시간이지.
막상 죽게 되니 궁금하다. 과연 사후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이왕이면 천국도 지옥도 없는 하나의 세계면 좋겠다. 나뉘어있다면 어머니는 천국, 나는 지옥으로 갈 테니.
만약 나누어져 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사후세계가 하나뿐이고
그곳에서 어머니를 보게 된다면
당신의 원한은 갚지 못했지만 노력했다고
어떻게든 노력해서 동포들의 안전은 지켰다고 말하리라
그러니 부디 이 부족한 아들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혼자 힘냈다고
한 번만─
***
눈을 감은 도르곤은 다시 뜨지 않았다.
그 와중에 얼굴에는 미세한 미소가 남은 것이 좋은 꿈이라도 꾸면서 간 건가 싶다.
– 끝났어?
‘예.’
도르곤의 얼굴을 보다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에 대답했다.
‘끝났습니다.’
– …응, 그러네.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영원한 푸른 하늘은 한참이 지나고서야 다시 말을 걸었다.
– 난 옛날에 유일신이나 다름없었어. 정주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까지 대륙의 모든 종족은 유목 생활을 했고, 난 그들이 섬기는 하늘 신이었지.
갑작스러운 자기 자랑이지만 묵묵히 들어줬다. 단순히 자랑을 위한 말은 아닐 테니까.
– 시간이 흐르며 정주민이 생기니, 유목민의 숫자와 영역이 줄어들더라. 그럴수록 내 힘은 자연스레 약해졌고.
그건 알고 있다. 처음 영원한 푸른 하늘을 만났을 때 ‘정주민의 등장으로 인해 유목민 신의 영락은 시간문제’ 라고 말하기도 했고, 그 후로도 나에게 칭얼거리며 한탄을 했다.
– 약해지고 약해진 나지만, 그럼에도 유목민들은 나를 섬겼어. 그 아이들은 나를 섬기는 유일한 존재였고, 내가 응답해주는 유일한 존재도 그 아이들이야.
평소라면 ‘이제 유목민도 안 섬기는 것 같던데요.’ 라고 말했겠지만 침묵을 지켰다. 어느새 영원한 푸른 하늘의 목소리는 가라앉은 수준을 넘어 물기가 섞여 있었으니.
– 이 아이들이 잘했다는 건 아니야. 이 아이들이 정주민에게 피해를 입은 것처럼, 정주민들도 피해를 입었겠지. 누가 먼저 핍박을 가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긴 세월 동안 피를 흘렸으니까.
그건 그렇다. 이제 와서 누가 먼저 선공을 가했느냐를 따지기에는 정주민과 유목민의 분쟁사가 너무 길다. 이 대륙에 나라라는 것이 생기기 전부터 싸웠겠지.
– …그래도 나까지 이 아이들을 외면하면 누구도 보듬지 않을 테니까…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예, 말씀하십쇼.’
– 가능하면, 이 아이의 시신을 태워줄래? 유목민들도 화장을 좋아해서…
‘그렇군요.’
– 아, 그, 화장하기 전에는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 유목민 사이에서도 적의 시신으로 선전하는 건 잦았거든.
혹시 내가 거절할까 봐 황급히 덧붙이는 영원한 푸른 하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부탁은 아니다. 제국도 매장이 아닌 화장을 선호하니 부탁이 없었어도 마지막에는 불에 태웠을 터.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쇼.’
– 으응, 고마워.
조금 안심한 듯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계속 도르곤의 시신을 쳐다봤다.
적의 시신으로 선전을 하는 건 흔한 일이다. 반역자의 목을 잘라 효수하는 것처럼 권위에 대항한 말로를 보이는 가장 빠른 방법이니.
하지만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 않다. 그냥 평범하게 도르곤의 시체를 태우고 싶다.
‘동정?’
아니, 그건 아니다. ‘이 녀석도 사실 좋은 녀석이었어.’ 라며 미화할 생각은 없다. 사정이 어떻든 도르곤은 명백한 제국의 적이었다.
다만 더 이상 증오할 생각도 사라졌다. 도르곤은 자신의 인연이 죽음으로서, 내 손에 죽음으로서 대가를 치렀고, 그 덕분에 내 미련도 사라졌다. 도르곤을 옹호할 생각은 없으나 미워할 이유도 없다.
‘내가 저렇게 될 수도 있었겠지.’
그렇게 옹호도 증오도 없으니 객관적인 시야만 남았다. 도르곤의 최후가 내 최후가 될 수 있었다고. 내가 조금만 틀어졌어도 저런 모습이었을 거라고.그렇게 생각하니 아무 소란 없이 보내주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게 동정 아닌가?
‘쯧.’
그럼 동정한다고 치자. 어차피 죽은 새끼인데 승자로서 그 정도도 못해줄까.
살짝 한숨을 내쉬며 몸 속의 마나를 전부 배출했다. 전투도 끝났으니 복귀해야 하는데 어느새 말들이 죽어있었다. 아마 하늘 베기에 휘말려 죽은 모양이지.
그러니 내 마나를 내뱉으며 신호를 보냈다. 허허벌판에 갑자기 대량의 마나가 움직이면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지 않나. 저쪽도 전투가 끝났다면 사람을 보낼 거다.
‘끝났네.’
그러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이제 정말 끝이다.
5년의 악연이, 3년을 이어진 미련이 끝났다. 그 녀석들이 염원하던 평화가 찾아왔다.
‘끝났어.’
살며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두 명의 하늘 베기가 충돌했기 때문인지, 십자 모양으로 찢어진 하늘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