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76)
로판 속 공무원 376화(377/451)
만세 소리는 한참이나 울려 퍼졌다. 제국의 우환이었던 북방을 정복하고, 황제가 유목민의 군주를 겸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영웅이 탄생했다. 심지어 황실의 이름을 허락받은 고귀한 영웅이 여섯이나 탄생한 것이다.
물론 만세를 외치는 사람 대부분은 여섯 영웅이 누군지도 모를 거다. 대토벌 전쟁은 제국이 이기는 것이 당연한 전쟁으로 인식되어 있고, 그 녀석들은 귀족이 아닌 평민에 불과했다. 대토벌 전쟁을 이끈 사람이 전승공인 건 알겠지만 6검이라는 이름은 모를 터. 최근 개정된 교과서를 본 것이 아닌 이상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만세는 영웅의 희생이 보답받은 것에 대한 축하가 아닌, 새로운 영웅이 만들어진 것에 대한 흥미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날 이후로 모든 시민들, 모든 제국인들 머리에 그 녀석들의 이름이 남을 테니. 세상이 나를 잊을지언정 너희는 잊지 않을 테니.
“황제 폐하 만세!”
몇 번인지 모를 만세를 다시 외쳤다. 하늘 위에 있을 너희들에게, 황궁에 있을 황제에게 닿을 정도로.
“황제 폐하 만세! 여섯 영웅 만세!”
내 근처에 있던 페넬리아와 묵광대도 함께 외쳤다. 이 녀석들은 6검이라는 이름을 알고, 내가 그 녀석들과 무슨 관계인지도 아니까.
그 모습을 보니 더욱 웃음이 나왔다. 내가 기른 감찰부 4과가, 우리의 후배나 다름없는 녀석들이 너희를 향해 경의를 표하고 있다.
오늘은 기쁜 날이다.
“리브노만 만세!”
실로 기쁜 날이다.
개선식이 끝난 후, 페넬리아가 쭈뼛쭈뼛 건네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 울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눈이 뜨겁더라.
“고마워.”
애써 민망함을 밀어내고 페넬리아를 끌어안자 페넬리아도 마주 안아줬다.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묵광대를 보니 머쓱했지만 포옹을 풀지는 않았다.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박수까지 치라는 건 아니다. 아무리 떳떳해도 다른 사람들 시선까지 쏠리는 건 좀 그래.
“이제 특무성에 보고만 하면 되는 거지?”
“예. 복귀 신고를 마치면 당분간은 대기 명령을 받을 겁니다. 사실상 휴가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튼 껴안은 상태에서 페넬리아에게 묻자 원하던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아무리 제국이 공무원들을 빡빡하게 굴려도 막 전장에서 돌아온 사람을 굴릴 정도는 아니다. 당분간 묵광대 전원이 여유롭게 쉴 수 있겠지. 애초에 도르곤이 죽은 이상 특무성 전력이 과도하게 갈릴 일도 없고.
“신고 마치면 애들이랑 같이 저택에 가있어.”
그 말에 페넬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묵광대가 종군한다는 소식에 저택의 사용인들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히 아무도 죽지 않고 복귀했으니, 다 같이 식사도 하고 하룻밤 자는 게 좋겠지.
“그러면 주인님은─”
“나도 갈 곳이 있어서. 해가 지기 전에는 끝날 테니 걱정 마.”
“아, 네. 알겠습니다…”
잠시 떨어져야 한다는 말에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페넬리아를 보니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다.
제도에 입성하기 직전, 통신구를 통해 황제의 호출 문자가 날아왔었다. 개선식이 끝나면 입궁하라는 명령이었지. 다른 사람도 아닌 황제가 호출한 상황이라 무조건 가야 한다.
게다가 황제에게 큰 선물을 받았으니 부르지 않았어도 먼저 찾아가 감사의 그랜절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내가 아무리 일 시키는 상사를 싫어하지만, 사람 새끼라면 은인을 향한 감사 정도는 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럼 가볼게. 만약 나 없는 사이에 아버지가 오시면 나도 곧 올 거라 말씀드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행동지침도 남기고 가자 페넬리아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아버지가 오지 않으면 직접 모시고 올 것 같은 표정이지만 모른 척했다.
***
황궁까지 어렴풋이 들리던 만세 소리가 겨우 가라앉았다. 확실히 여섯이나 되는 인원에게 리브노만 백작위를 하사한 덕분인지 개선식의 열기는 상당히 오래 지속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찰부장이 왔다.
“황제 폐하 만세. 폐하의 은혜를 받은 종, 칼 크라시우스가 존귀하고 위대하신 제국의 태양을 뵙나이다.”
집무실에 들어온 감찰부장은 곧바로 엎드리며 예를 표했다. 평소보다 더욱 정중한 모습을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리라.
역시 그들에게 리브노만 백작위를 하사한 건 옳은 선택이었다. 아마 감찰부장 본인에게 작위나 영지를 주는 것보다 이 선물이 효과적이었을 터.
“일어나라. 누구보다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신하가 그리도 낮은 모습을 보이면 짐의 마음이 편치 않다.”
“송구하옵나이다.”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 감찰부장은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일어나라는 허락은 받았지만 고개를 들라는 명은 받지 못했으니 감히 황제의 존안을 볼 수 없다는 것처럼.
이 정도로 효과가 확실하니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다. 일어나도 좋다고 했으니 어련히 고개도 들어도 된다는 의미인데, 어쩌다 이리도 보수적인 신하가 되었는가.
‘부친의 피가 흐르기는 하는군.’
문득 타일글레헨 백작이 떠오르자 입꼬리가 올라갈 뻔했다. 그래, 백작의 아들이니 이런 모습을 보일만하다. 역시 피는 속이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지. 감찰부장도 타일글레헨 백작처럼 대하는 수밖에.
“명할 것이 있으니 고개를 들라.”
“예, 폐하.”
그제야 고개를 든 감찰부장 앞에서 탁자를 가리키자, 내 손가락을 따라 탁자로 시선을 돌린 감찰부장의 눈이 잠시 커졌다.
“리브노만의 이름을 신하에게 허락하는 것은, 그 신하의 공로와 헌신이 실로 황실의 기둥이라 부르기에 부족함 없기 때문이다. 오늘 짐이 리브노만 백작위를 하사한 여섯 영웅이 그러했다.”
“실로 하늘과도 같은 은혜에 그들도 기뻐할 것입니다.”
내가 입을 열자마자 빠르게 대답한 감찰부장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짐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니다. 그들이 황실에 은혜를 베푼 것이다.”
“폐, 폐하.”
감찰부장이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살아있는 신하에게 과도한 명예를 주는 것은 위험하나, 황실과 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추악하다. 제국이 제국답기 위해서는 헌신과 희생을 중히 여겨야 한다.
어떠한 헌신도 당연하지 않고, 어떠한 희생도 가볍지 않다. 그것이 천명을 바로 세운 대제의 뜻.
“리브노만 백작위를 받은 자들에게는 황제가 술을 하사하며 그 공로를 치하한다. 이는 대제 때부터 이어진 아름다운 관례이니, 짐 역시 따를 것이다.”
그 말에 감찰부장의 시선이 다시 탁자로 향했다. 그 위에 놓인 일곱 개의 가죽 부대가 여섯 리브노만 백작에게 내릴 술이니.
“허나 고인이 리브노만 백작위를 받았을 경우, 그 유족이 대신하여 술을 받는 것 또한 관례이다.”
그렇게 말한 뒤 탁자를 향해 걸어갔다. 탁자 위에 놓인 부대 하나를 잡아 감찰부장에게 내밀었다.
“짐은 그들을 대신할 자로는 경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경은 영웅들을 대신하여 마땅히 받으라.”
잠시 말이 없던 감찰부장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쥐어짜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폐하의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겠나이다.”
“기대하겠노라.”
본래 받아야 할 주인에게는 감찰부장이 알아서 전달할 것이다.
***
하루에 두 번이나 눈이 뜨거워졌다.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부끄럽게.’
대충 눈가를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진짜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곤란하지. 기쁜 소식을 전달하러 온 놈이 추하게 울고 있으면 놀림이나 당할 테니까.
“나 또 왔다.”
잠깐 헛기침을 한 뒤 입을 열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여섯 명에게, 개선식의 진정한 주인공인 영웅들에게.
“제도 전체가 시끄러웠으니까 너희도 알지? 이기고 돌아왔다. 이번에는 완벽하게 이겼어.”
정말 완벽하게 이겼다. 제국에 반기를 들던 세력은 전부 사라졌다. 북방은 제국의 품에 안기고, 황제는 칸으로서 유목민을 지배할 권리를 손에 얻었다. 이 눈부신 성과를 얻느라 흘린 피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적었다.
“도르곤도 죽었어. 내 손으로 죽여서 그런지 여한이 없더라.”
존재 자체가 불안정한 평화를 상징하던 도르곤. 비록 도르곤의 죽음은 자살이나 다름없었으나─ 이번 전쟁에서 그 녀석을 죽이며 불안정한 평화는 완전한 평화가 됐다.
너희가 원하던, 우리가 꿈꾸던 평화가 찾아왔다.
“…이제 너희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것 같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너희가 죽고 도르곤이 잠적한 이후, 나는 반쪽짜리로 살았다. 외래종 주제에 남의 육체를 차지했으면서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한 반쪽으로.
그런데 이제는 반쪽짜리가 아닌 당당한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외래종이 아닌 이 세계의 주민이 된 것 같다.
“그래서 기념할 겸 좋은 거 가져왔다. 폐하께서 하사한 거니 부담 가지면서 마시고.”
그렇게 말한 뒤 가죽 부대에 담긴 술을 묘비에 부었다.
“이거 보야르 와인보다 귀한 거니 천천히 마셔라, 이 술쟁이 새끼야.”
먼저 제라드 바트나 오브 리브노만 백작에게.
“술 별로 안 마시는 건 아는데, 이건 좋은 거니 봐줘.”
그 다음은 올리버 크로비엔 오브 리브노만 백작에게.
“너는 최대한 맛 느끼면서 마시고. 취하면 맛도 모르잖아.”
그 다음은 드레이크 쉴러 오브 리브노만 백작에게.
“인당 하나니까 혼자 멍하니 있지 말고 같이 마시자.”
그 다음은 발터 프레나즈 오브 리브노만 백작에게.
“거기서도 고생 중이면 마시고 힘내라.”
그 다음은 이드리드 레덴 오브 리브노만 백작에게.
“사랑해. 다음 생에도 만나면 그때도 내가 먼저 고백할게.”
마지막으로 헤카테 라리드 오브 리브노만 백작에게.
하나하나 어사주를 나누어준 뒤 묘비 앞에 주저앉았다. 황제가 일곱 개나 줘서 내가 마실 것도 있으니 건배라도 해야지.
“잘 지내라. 앞으로 여기 와서 징징거리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생각해 보면 나도 얘네한테 민폐를 제법 끼쳤다. 한밤중에 술에 취해서 찾아오지를 않나, 그 상태로 잠에 들어 노숙을 하지 않나.
혼자 남은 놈, 심지어 막내인 놈이 그 진상을 피워댔으니 난감하고 걱정했겠지. 미안할 따름이다.
“…나도 잘 지낼게. 보란 듯이 행복하게.”
그러니 진심을 다해 말했다.
이제는 너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행복하게 지내겠다고.
그 다짐을 담아 부대를 앞으로 내밀었다.
내 앞에 그 녀석들이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