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77)
로판 속 공무원 377화(378/451)
작게 자른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넣자마자 감탄사가 나올 뻔했다. 누렁이 입맛인 나조차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 정도로 뛰어난 맛이었으니까. 물론 이전까지 저택에서 먹었던 요리가 별로라는 건 아니나, 지금 식탁에 올라와 있는 요리는 하나하나가 훌륭했다.
“좋은 주방장을 두었구나.”
맞은편에 앉아 식사 중이시던 아버지의 말에 빠르게 스테이크를 삼켰다.
“매일 실력이 발전하는 훌륭한 주방장입니다.”
“그건 부러울 정도구나. 네가 부리는 주방장이 아니었다면 내가 데려갔을 거다.”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아버지는 다시 스테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아무래도 나와 페넬리아뿐만 아니라 아버지까지 식사를 한다는 소식에 주방장이 각성한 모양이다.
‘많이 놀랐겠지.’
주방장 입장에서 나와 페넬리아까지는 예상한 참석자지만, 아버지가 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다. 실제로 아버지가 내 개인 저택에 방문한 회수는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니.
그러나 이제 아버지와 어색했던 관계도 제법 풀은 상태라, 더 이상 아버지가 내 저택에 찾아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이번 방문도페넬리아가 강제로 모셔온 게 아니라 직접 오셨다. 앞으로도 저택에서 아버지를 맞이할 일이 잦을 터.
앞으로도 고생할 주방장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며 와인을 마셨다. 기분 탓인가, 어째 와인 맛도 평소보다 좋은 것 같은데.
“크으, 확실히 실력이 좋긴 좋군. 우리 가문의 주방장과 좋은 승부를 하겠어.”
호탕한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슬쩍 시선을 돌렸다. 사실 주방장을 각성시킨 서프라이즈 손님은 아버지뿐만이 아니다.
“영지에 가지도 못하는 놈이 그리 말하니 안쓰럽군.”
“꼭 그렇게 말해야겠나?”
아버지가 툭 뱉은 말에 서럽다는 듯 중얼거리는 전대 호르펠트 백작을 보니 픽 웃음이 나왔다.
그 녀석들 묘비에서 한잔하고 저택에 돌아오니, 아버지는 전대 호르펠트 백작과 함께 쉬고 계셨다. 아버지와 전대 호르펠트 백작의 친분을 생각하면 두 분이 같이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나, 전쟁이 끝난 마당에 본인 집이 아닌 친구 아들 집에 왔다는 것이 의아했다.
“이 녀석이 종군하는 조건이 직접 싸우지 않는 거였는데, 제노비아에게 들켰더구나. 그래서 영지에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한 소리 들은 참이다.”
“저런.”
그 이유를 알자마자 납득했지만. 그냥 딸을 걱정시킨 대가로 쫓겨난 평범한 아비였다.
그러니 어쩌겠나. 모르는 사람도 아닌 같은 전장에서 구른 사람이, 딸의 눈물 섞인 구박을 듣고 갈 곳을 잃었다고 하니 머무를 곳 정도는 제공하는 수밖에.어차피 식사가 끝나면 아버지와 함께 크라시우스 가문의 저택에 간다고 했으니 큰 문제는 없다.
‘…나도 도피처 하나 만들어야 하나?’
그리고 전대 호르펠트 백작의 모습에서 내 미래가 어렴풋이 보여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나도 직접 싸운 게 들키면 저거보다 더한 처분을 받을 거다. 난 구박할 사람만 여섯이니까.
‘망할.’
벌써부터 눈물이 덜덜 떨리는 기분이다.
저녁 식사를 마친 아버지와 전대 호르펠트 백작을 배웅한 뒤 정원으로 이동했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부장님.”
특히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쪽으로 향하자 화려하게 바비큐를 즐기던 사용인들과 묵광대가 반겨줬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다 보니 정원이 아니면 다 같이 먹기는 힘들지.
그 와중에 귀족 저택 정원 한가운데에서 고기를 굽는 모습이 뭔가 기묘하지만, 아무튼 입과 위만 즐거우면 그만 아닐까 싶다.
“주인님! 언니! 오신 김에 같이 먹어요!”
너도나도 인사를 하자 그릴 앞에서 떠날 줄 모르던 유리스까지 쪼르르 달려왔다. 그 뒤로 유리스가 떠넘긴 접시를 양손 가득 든 소피아도 허둥지둥 따라오는 것이 위태롭기 짝이 없─
“으앗!”
“느에엑!”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정말 넘어져 버렸다. 심지어 양손에 든 접시는 클레이모어처럼 흩어져 앞서가던 유리스의 뒤통수에 적중했다.
“유리스! 소피아!”
동생 같은 두 하녀가 달려오는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보던 페넬리아였지만, 난데없는 봉변에 기겁해서 달려갔다.
그나마 소피아는 잔디에 넘어져서 다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머리 괜찮나?’
바닥에 엎어져 허우적거리는 유리스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통신구를 꺼냈다. 저 작은 머리에 접시가 처박혔으니 분명 큰 상처가 생겼을 거다.
“주인님 앞에서 무슨 소란이니. 괜히 뛰어다니니까 다치기만 하잖아.”
말로는 꾸짖는 페넬리아였지만 표정과 손짓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넘어진 소피아를 일으켜 세우고 유리스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피가 나지는 않나 확인하는 모습은 언니를 넘어 엄마처럼 보일 수준이었다.
그리고 두 하녀가 일으킨 소란에 주변의 시선이 하나둘 쏠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흥을 깬 노여움보다는 마스코트인 꼬마들을 향한 걱정의 시선이었지만.
“…혹만 생겼네.”
막 마탑에 치료 마법사 요청 문자를 보내니, 한참을 확인하던 페넬리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행히 접시가 깨질 정도의 습격을 당했으면서 혹으로 끝났다.
우리 유리스, 많이 튼튼한 아이였구나… 아니, 튼튼한 건 알고 있었지만 머리도 튼튼할 줄은 몰랐네.
“유, 유리스, 괜찮아? 미안해, 나 때문에…”
“괜찮아! 조금 아프기는 했는데 언니 말처럼 혹만 났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소피아의 말에 유리스는 히히 웃으며 답했다.
아름다운 모습이기는 한데, 애초에 소피아가 넘어진 것이 유리스의 떠넘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뭔가 묘하다. 뿌린 씨가 너무 빨리 돌아온 거 아니냐고.
“괜찮으면 둘 다 주인님께 죄송하다고 하렴. 북방에서 막 돌아온 주인님 앞에서 소란을 피운 건 무례한 일이야.”
그 말에 서로 토닥이던 유리스와 소피아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괜찮았지만, 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페넬리아를 보니 입이 열리지 않았다. 동생들을 교육하는 언니라고 생각하면 차마 방해할 수 없다.
“죄송해요 주인님. 주인님도 오랜만이지마아안… 언니도 오랜만에 보는 거라, 너무 반가워서…”
“죄, 죄송해요, 오랜만에 오셨는데, 저희가 소란이나 피우고…”
그 명령 아닌 명령에 시무룩한 기색으로 사과를 하자 페넬리아의 표정도 풀렸다.그래, 애들 훈육에는 사과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중요하기는 하지.
그렇기에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들의 사과를 받았다면 용서와 위로를 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다.
“다치지 않았으면 됐어. 그래도 이따 마법사 오면 검사 좀 받고. 방금 불렀으니까.”
“헤헤, 괜찮아요. 그냥 혹인데.”
머쓱하게 웃는 유리스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눈으로 보기에는 혹으로 끝났다지만, 혹시 뼈에 금이 가거나 뇌에 문제가 생겼을지 누가 알겠나. 머리는 사소한 충격을 받았어도 확실히 확인해야 한다.
게다가 굶어죽어가던 아이를 주워서 키웠는데, 그 아이의 최후가 ‘파티 중 접시에 맞아 사망’이면 보호자로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 귀족의 사용인 학대 사연 중 하나로 실릴 정도의 사건이다.
“부른 김에 받아. 기껏 부르고 취소하는 것도 실례야.”
단호한 요구에 그제야 유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이 아이들이 페넬리아를 너무 그리워했나 봅니다. 하긴, 페넬리아가 저택에 머물면 같이 잘 정도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사태가 훈훈히 끝난 것을 확인한 집사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넘어지고 뒤통수에 혹이 난 우당탕탕 대소동을 페넬리아를 향한 애정으로 수습하기 위해.
그런데 같이 자다니, 그건 나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페넬리아가 저택에 온 경우도 있었나?
“유감이네. 페넬리아는 오늘 나랑 잘 건데.”
마주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다.
집사는 웃던 얼굴 그대로 굳었고, 서서히 시선을 거두던 사용인들과 묵광대의 시선이 다시 꽂혔다.
‘…아.’
뒤늦게 오해할 소지가 충분한 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공식적인 결혼만 하지 않았지 부부나 다름없는 사이라 같이 자자고 한 거다. 절대 그 너머를 암시하며 한 말이 아니다.
하지만 조심스레 시선을 돌리니,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만 뻐끔거리는 페넬리아가 보였다.
내 업보다. 말을 이상하게 해서 페넬리아의 마음만 뒤흔들고 말았다.
***
아가가 북방으로 향한 날부터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혹시 전쟁이 년 단위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아가가 어디 잘못되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 지옥 같은 나날 속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내가 공작이자 마탑주인 덕분이었다. 공작이라는 최고위 인사로서, 마탑주라는 종군 마법사들의 최고 책임자로서 원정군이 보고하는 내용에 접근할 권한이 있었다.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는 없으나 대략적인 상황은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북방 부족들의 결집이 상상 이하였다거나, 전쟁이 빠르게 끝날 것 같다거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을 것 같다거나─
아가가 직접 싸웠다거나.
‘매정하구나.’
다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사실 아가가 싸울 거라는 건 각오하고 있었다. 폐하께서 아가를 종군 감찰관으로 임명하신 건 아가가 싸우는 상황을 염두에 두신 것일 테니.
그러나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지금이 바로 그렇다.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기나 하고.’
일단 아가가 시아버님을 구하기 위해 전선에 간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칸을 자칭한 악적을 직접 죽이겠다고 선봉에 선 것, 그래놓고 악적의 술수에 휘말려 일대일 전투를 한 것은 참을 수 없다.
그래도 만약, 아주 만약 아가가 스스로 그런 사실을 밝히고 미안하다고 했다면 용서했을 수도 있다. 전쟁 중에 이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마지막까지 숨겼지.’
제도에서 개선식이 이루어진 오늘, 아가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그동안 잘 지냈냐는 안부, 자기는 무사하다는 위로, 곧 아카데미에 가겠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허나 애석하게도 그 말 중 전선에 섰다는 말은 없었다.
안타깝다. 연인 사이에 숨길 일은 없어야 하는데, 어차피 들킬 일이라면 먼저 말해줬으면 하는데.
‘…아가도 각오한 일이겠지.’
그렇기에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아가가 자백이 아닌 추궁 끝의 실토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자고.
…물론 아카데미에 오면 먼저 고생했다고 안아주자. 아무리 서운해도 아가를 반기는 것보다 앞설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