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8)
제 38화
순리를 거스르는 시체 – 1
지금은 묵광대라는 이름이 붙으며 특무성으로 소속이 옮겨진 감찰부 4과. 감찰부 다섯 개의 과 중에서도 가장 무력에 특화된 과이자, 장관과 내가 속해있었던 과다. 4년 전에 가주가 나를 위해 마련했다는 자리도 4과였지. 너무 무력에 올인한 과여서 전쟁에도 투입될 정도였다.
‘애초에 가주가 정상적인 자리를 마련했을 리가 없었는데.’
그 골수 황제파가 편히 꿀을 빨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을 리 없다. 그때는 그걸 생각 못했었지. 아무튼 감찰부, 그중에서도 4과, 마지막으로 내 관운은 더럽게 꼬이고도 꼬인 편이다. 내가 악에 받쳐서 하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태생부터 기괴하게 꼬였다.
감찰부는 설립부터 현재까지 공공연하게 황제의 사냥개 취급을 받았다. 왜 저런 부서가 황제 직속 부서가 모인 특무성 소속이 아닌 재무성 소속인지 의문의 눈초리를 받을 정도로.
황제 직속이라면서 황제와 부서 사이에 특무성 장관이 끼어 있는 건 무슨 개족보인가 싶지만, 감찰부는 그 특성상 재무성이 아닌 특무성에 있어야 마땅한 부서였다. 하지만 감찰부는 첫 단추를 조금 잘못 끼웠다.
감찰부가 설립된 것이 대략 100년 전.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황권이 신권을 압도적으로 짓누르는 상황이 아니었다. 덕분에 귀족들은 황제가 수족처럼 다루는 특무성의 확대를 경계하였고, 당대 황제는 자신의 작고 소중한 무기를 재무성에 숨겼다.
‘예산 관련으로 제재를 가하는 부서가 필요하기는 했지.’
그것이 감찰부의 설립 명분이었고, 그런 부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이전부터 존재하였기에 감찰부는 성공적으로 출범하였다. 그리고 황제는 감찰부를 ‘돈의 흐름을 감시’가 아니라 ‘제재’에 몰빵한 무력 부대로 만들었다.
황제의 작고 소중한 불빠따에 뚝배기가 깨진 귀족들은 그제서야 ‘이 시발 황제 저 새끼 또 지랄이네.’ 라며 치를 떨었으나, 부서는 새롭게 설립하는 것보다 없애는 것이 배로 힘든 법. 감찰부는 지금까지 존속되어 황제의 무기로 애용되었다.
감찰부는 누가 봐도 황제가 귀족들을 박살내기 위해 만든 부서였고, 그 성격도 무력에 특화되었다. 덕분에 그 위상과는 별개로 재무성 내에서 비주류로 통했다. 돈을 만지며 인텔리로 통하는 재무성 주류 라인이 보기에 감찰부는 피비린내 나는 것들이었거든.
그렇기에 감찰부 소속 공무원은 감찰부장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거나 특무성, 전쟁성, 군부로 빠지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불과 2년 전에 그 관례가 무너져버렸다. 황태자 책봉 직후, 황태자는 4과장이었던 장관과 4과 소속 팀장이었던 나를 각각 감찰부장과 4과장으로 올렸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장관은 감찰부장 커리어를 마지막으로 은퇴할 생각에 은근히 기뻐했고, 나는 군부로 탈주할 생각으로 가득 차서 마음은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있었으니까. 전승공이 몸만 오면 받아준다고 했었거든.
‘황태자 그 개새끼.’
문제는 황태자가 2황자파에 대한 숙청을 시작하면서 터졌다. 재무성과 감찰부를 장악하고자 했던 황태자는 자신의 수족을 요직에 꽂아 넣으려고 했고, 그 수족이 나와 장관이었다. 우리 둘은 승진하고 보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승진하는 참사를 겪어버렸다.
유례없는 고속 승진, 유례없는 감찰부 계열의 재무성 장악. 당연히 재무성 기존 주류 라인은 물론 감찰부 내에서도 소란이 일어났고, 나는 밖으로는 2황자파, 안으로는 재무성 주류 세력 및 감찰부 내 반발 세력과 싸우며 처절한 공무원 생활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유독 아낀 것이 4과였다. 원래 내가 속한 과이기도 했지만, 북방에서 거의 괴멸 상태가 된 것을 직접 재편해서 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껏 잘 키운 4과는 특무성으로 팔려갔다. 재무성에 계속 두기에는 그 무력이 너무 아깝다나?
“시발.”
그때의 생각이 나 욕이 흘러 나왔다. 그럴거면 감찰부 전체를 가져갈 것이지, 왜 4과만 정확히 가져갔는지 의문이다. 1년 전에 4과가 팔려간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원통하던지. 심지어 4과장도 싫어할 정도였다. 걔가 나를 많이 따르기는 했지.
정보차장에게 묵광대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아련하고 개같았던 기억이 솟아버렸다. 슬픈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라던데, 솔직히 이 기억은 절대 추억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난의 기억이었다.
부스로 복귀하는 사이에 빌라르에게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다행히 그 찰나에 무슨 일이 터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 형. 왔어?”
“어. 고생 많다.”
부스에 가까워지자 마침 우유를 들고 지나가던 에리히가 보이길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고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동아리에서 같이 지낸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예전과 달리 인사 정도는 자연스럽게 주고 받을 정도로 친해졌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그 정도 뿐이지만. 하긴, 어색하게 지낸 시간이 몇 년인데 순식간에 사이가 좋아지기를 바라는 건 양심이 없지.
“부장님도 오셨으니 다음은 제가 좀 놀다 와도 될까요?”
“내가 놀다 왔냐.”
은근슬쩍 다가온 1과장의 개소리에 입술을 잡고 흔들어줬다. 얘가 분명 수인족이 아니라 인간인데, 왜 입을 열면 개소리가 나올까. 너는 제발 나하고 몇 년 정도 어색하게 지내자.
“으브으으으읍─!”
버둥거리며 입술을 잡은 내 팔을 치길래 더 꽉 잡아줬다. 이번에는 조금 아팠는지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역시 1과장은 우는 얼굴이…
“오라버니, 너무 괴롭히진 마세요. 언니도 일을 많이 하셔서 조금 쉬고 싶은 것 같아요.”
버둥거리는 1과장의 뒤로 루이제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1과장은 입술이 잡힌 상태에서도 자신을 변호해주는 루이제를 감동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이런, 조금 소란스러웠나.
입술을 놓아주자 1과장은 빠르게 루이제의 등 뒤로 숨었다. 그러면서 고개만 빼꼼 내미는 모습은 많이 추했다. 25살이나 되는 녀석이 이제 17살인 애 뒤에 숨어…? 내 언짢은 시선에 1과장은 오히려 뾰로통하게 나를 쳐다봤다.
“부장님은 귀여운 부하를 더 소중하게 여기실 필요가 있어요.”
본능적으로 아가리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하다가 루이제가 바로 앞에 있길래 겨우 참았다. 그런 내 반응에 1과장이 히죽 웃으며 루이제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봤지? 부장님이 너한테 약한 것 같다니까.”
“헤헤…”
루이제는 1과장의 말에 머쓱한 듯 볼을 긁적였다. 미안하다, 괜히 나하고 저거 사이에 끼어서 고생하는 것 같네.
“한참 어린 동생 뒤에 숨지 말고 나와.”
“싫어요.”
“루이제, 잠깐만 비켜줄래?”
“아, 네.”
“어…?”
망설임 없이 1과장의 앞에서 벗어나 내 옆으로 이동한 루이제. 1과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떠나가는 루이제를 바라보았다. 루이제가 나하고 더 친할까, 너하고 더 친할까. 이런 간단한 계산도 하지 못한 너의 패배다.
1과장의 3분 반란을 진압한 후, 루이제가 한 말이 신경 쓰여 쉬는 시간을 주기는 했다. 그래, 굴렸으면 조금 쉬게는 해줘야겠지. 대신 부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에서만.
“일터에서 쉬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이 있을까요.”
투덜거리지만 그래도 부스 구석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할 필요가 없는 말을 수시로 덧붙이는 것도 재능이기는 한데.
“그런데 부장님, 까마귀가 뭐래요?”
슬쩍 주변을 살피던 1과장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까마귀, 외부에서 활동하는 정보부 요원을 지칭하는 은어. 이 역시 정보부의 수없이 많은 전통 중 하나다. 남들한테 까마귀라고 불리다니, 내가 그런 이상한 이름으로 불렸다면 혀 깨물었을 텐데.
“너 내일 나하고 일 좀 해야겠다. 묵광대도 온다던데.”
“와, 진짜요?”
묵광대란 말에 심드렁하던 1과장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얘도 오랜만에 4과를 본다고 하니 반갑겠지. 특히 4과장하고 친한 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무슨 일이길래 묵광대가 와요?”
“내일 아펠스 부흥군이 아카데미에 온다.”
“…누구요?”
“아펠스 부흥군.”
아펠스 부흥군이라는 말에 1과장은 자신을 책임져주겠다는 담당 교수가 은퇴한다는 소식을 들은 대학원생의 표정으로 넋이 나갔다. 어이없는 소식이기는 하지. 나도 정보부장도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가만히 1과장의 정신이 돌아오는 걸 기다리고 있으니, 갑자기 1과장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저 새끼 또 업적 본능 터졌네.’
아펠스 부흥군의 최근 활동은 못해도 200년 전이다. 당연히 1과장은 본 적이 없고, 고문을 해본 적도 없다. 고문을 해본 경험이 없는 새로운 반동분자? 1과장의 업적 본능을 자극하기에 딱이다.
“히히힛…”
무슨 생각에 도달했는지 웃음을 흘리길래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박람회의 첫날이 끝났다. 분명 첫날인데 정신적 피로도는 이미 3, 4일은 지난 것 같은 기분이라 서글프다.
“1과장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이번에도 난리 피울 것 같다.”
– 그래도 1과장이 일은 잘하지 않습니까.
“일도 못했으면 내가 옆에 두고 지냈을까?”
통신구를 손에 든 채 침대에 걸터앉아 묵광대장… 영 입에 안 붙네, 4과장과 근황을 주고 받았다. 마침 숙소에 복귀하자마자 딱 연락이 오더라고.
“그나마 네가 있어서 편했는데, 사라지니까 미친 것들이 날뛴다. 빈 자리가 너무 커.”
– 과분한 말씀입니다.
내 말에 4과장이 고개를 숙였다. 긴 회색 머리도 숙여지는 고개를 따라 부드럽게 쏟아져 내렸다.
“뭐, 내일 다시 연락하자고. 점심 정도에 괜찮나?”
– 편할 때 연락주십시오. 언제라도 받겠습니다.
“그래. 아, 1과장도 보고 싶어하니까 여유 있으면 연락해보고.”
– 알겠습니다.
4과장이 특무성으로 팔려갈 때 나 다음으로 슬퍼한 것이 1과장이었다. 감찰부 간부 중에 여자는 1과장과 4과장 밖에 없어서인지 친하게 지냈으니까. 4과장이 떠나면 여자가 자기 혼자라고 난리를 쳤었지.
– 그러면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다시 합을 맞추게 되어 영광입니다, 부장님.
다시 고개를 숙이고 연락을 끊은 4과장. 정말 시간이 지날수록 그립다. 얘만큼 깍듯하고 예의 바른 애도 보기 힘든데.
현재 감찰부 간부로 남아있는 개노답 1, 2, 3을 떠올리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미친 것들 셋에 맞서서 정상인도 셋이니 다행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무려 38화 만에 감찰부에 대한 설정이 조금 풀리고, 간부들 성별도 전부 공개되었습니다. 이렇게 꽁꽁 싸맬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지금까지 흘러왔네요.
1. 19살에 부장이 되는 게 말이 되나? = 이런저런 이유가 있어서 납득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동시에 당시에도 말이 많았던 파격적 승진이긴 했음.
2. 새파란 부장을 대하는 주변 반응이 너무 담담한데? = 담담하지 못했던 반발 세력은 있었는데 없어짐.(물리)
칼에 대한 2대 미스터리를 조금이나마 설명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드디어 본선 시작날이 되었습니다. 결과는 12시간 후에 나오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저는 내일도 독자님들께 찾아오겠습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