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82)
로판 속 공무원 382화(383/451)
갑자기 아카데미가 소란스러워졌다. 아침에 등교할 때만 해도 평소랑 다를 게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학생, 교직원 가리지 않고 무언가 수군거리기 바빴다.
무슨 일이지? 쉬는 시간에 잠깐 눈을 붙이기는 했는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설마.’
애써 고개를 저으며 끔찍한 가정을 털어냈다. 자느라 소식을 놓친 귀족이라는 불명예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게다가 자세히 보니 수군거리는 인원은 소수. 아직 전부 아는 단계가 아닌 조금씩 소문이 퍼지는 단계인 것 같다.
그래서 뭔데. 무슨 소문이 퍼지는 건데. 같이 좀 알자.
“에리히!”
차라리 직접 물어볼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찰나, 뒤에서 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급히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이는 세라가 보였다. 아니, 아직 썩 건강한 편도 아닌 애가 무리해서 뛰면 어쩌자는 거야.
“그러다 쓰러지겠다.”
작게 한숨을 쉬며 등을 토닥이자 세라의 호흡이 점차 안정됐다. 그러고는 배시시 웃는 걸 보니 도저히 잔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거동도 불편하던 세라가 단순히 운동 부족 일반인 수준의 체력으로 올라온 것 아닌가. 오히려 이렇게 뛰다 보면 언젠가는 정상 체력에 도달할 것이다.
“무슨 일이야? 학부 수업 중인데 여기까지 오고.”
아무튼 세라의 안색이 밝아졌으니 용건을 물었다. 검술부가 실기 연습 중인 훈련장까지 올 정도면 어지간히 급한 용무인 것 같으니까.
“카, 칼 오빠가 돌아왔어.”
“형이?”
아직 완전히 숨을 고른 건 아니었는지 잠깐 말을 더듬기는 했으나, 듣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진짜 급한 용무였네.
그건 그렇고 의외다. 어제 형이 오늘이나 내일 중에 복귀할 예정이라는 연락을 하기는 했지만, 막 북방에서 돌아왔으니 바쁠 거라 생각했다. 오늘은 제도에서 구르고 내일 올 줄 알았지.
‘빨리 끝낸 건가?’
아니면 내 예상과 달리 일이 없는 걸 수도 있고.
물론 바빴든 아니든 나쁜 일은 아니다. 가족이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온 것이니, 반기면 반겼지 꺼려할 일은 아니지 않나.
‘어쩐지.’
그리고 형이 왔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이 소란스러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이번 전쟁으로 인해 제국의 우환이었던 북방이 제국의 품에 안겼고, 형이 북방의 역도를 처리한 건 퍼질 만큼 퍼진 소식이다. 전쟁의 1등 공신이 아카데미에 돌아왔다고 하니 소란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
…그러면 아까부터 은근한 시선이 느껴진 건 기분 탓이 아닌 모양이다. 형한테 직접 말을 걸 수는 없으니 상대적으로 만만한 나한테 시선을 돌리는 것. 아카데미 입학 때부터 겪었던 익숙한 일이다.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별 감흥도 없어.
“알려줘서 고마워.”
아직도 따가운 것 같은 뒤통수를 매만지다가 세라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미리 듣지 못했으면 형이 동아리실에 있는 걸 보고 놀랄 뻔했네. 형제의 재회치고는 많이 추한 모습이다.
“그냥 편하게 통신구로 알려줬어도 됐는데.”
대신 소소한 의문도 덧붙여서 말했다. 인간에게는 통신구라는 좋은 연락 수단이 있는데 굳이 달려올 필요가 있었나?
그 합당한 지적에 세라가 흠칫 몸을 떨었지만,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라도 움직여야 건강해지지.”
“그건 그렇네.”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라 납득했다.
동아리 시간이 되자마자 루이제와 이리나는 모습을 감췄다.얼마 전까지는 형 걱정을 하느라 우울한 얼굴로 돌아다녔는데,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애들이었구나.
그렇게 바람처럼 사라진 둘은 당연히 동아리실에서 발견됐다.그것도 평범한 모습이 아닌 다소 기묘한 모습으로.
‘뭐야.’
동아리실 문을 여니 서로 다른 색의 머리 3개가 한곳에 모여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성서에 나오는 머리 셋 달린 파수꾼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확실히 세 쌍의 눈이 동시에 한 사람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위협적이기는 하겠다.
물론 머리 셋 파수꾼이 아니라 평범하게 루이제와 이리나가 형의 무릎에 앉은 거지만.
‘…평범 맞나?’
정작 앉아있는 사람들은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데.
“아, 에리히.”
그 와중에 홀로 당당한 형은 손을 흔들며 반겨줬다. 분명 몇 달 만에 보는 상황인데, 어째 어제도 만난 것 같은 반응이다.
“잘 지냈냐?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평온한 인사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걱정을 받아야 할 사람이 도리어 안부를 묻고 있다. 누가 보면 내가 전쟁 다녀온 줄 알겠어.
그래도 저 뒤바뀐 안부 인사가 내가 아는 형의 모습이라 기꺼울 정도다. 만약 형이 호들갑을 떨며 반갑다고 했으면 오히려 낯설었을 터.게다가 평소처럼 덤덤하니 무사히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나야 잘 지냈지. 형도 다친 곳은 없나 봐?”
그렇게 말하며 형의 무릎을 쳐다봤다. 무릎 하나당 사람 하나의 무게를 감당하는 걸 보니 건강한 모양이다.
“오라버니, 저 이제 내려도 괜찮─”
“안 돼. 방금 막 앉은 거잖아.”
하지만 내 시선에 루이제가 움찔하며 애절한 목소리로 형에게 사정했다. 제발 내려가게 해달라고.
부끄러우면서 스스로 내려가면 될 텐데, 지금 보니 형이 허리를 잡고 있구나. 형이 잡고 있으면 자력으로는 못 벗어나겠지.
“이리나는 얌전히 있잖아. 너도 즐겨.”
슬쩍 이리나에게 시선을 돌리자 이리나는 루이제와 달리 해탈한 듯 그저 옅은 미소만 짓고 있었다. 어쩌면 단순히 이 상황이 마음에 드는 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리나의 수치심을 루이제가 흡수했는지, 루이제는 계속해서 형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기는 좀…”
“이미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있었잖아.”
그 말과 함께 형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네 명의 예비 형수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몰랐다. 들어오자마자 보인 세 머리 파수꾼에 관심이 쏠려서 이제야 알았다.
“어, 언니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가족이잖아요!”
“나랑 결혼하면 에리히도 가족이야.”
순간 할 말이 없었는지 루이제는 입을 닫고 말았다. 이제는 보는 입장에서도 흥미진진할 정도의 가슴 옹졸한 말다툼이다.
그런데 아무리 가족이라도 동생 앞에서 애정을 과시하는 형은 좀 그렇지 않나. 심지어 형수가 동생의 첫사랑인데.
딱히 미련이 남은 건 아니지만 기분이 좀 묘하다. 형이 아니라 동생이었으면 명치에 주먹 한방 꽂았을 정도로.
***
에리히와 세라를 시작으로 다른 부원들도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루이제의 얼굴이 새빨개지며 더욱 거세게 버둥거렸지만, 당연히 놓아주지 않았다. 연인끼리 스킨십을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오히려 못해준 만큼 더 해야지.
“안부 인사를 드릴 필요는 없겠군요.”
그 광경을 본 타니안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자마자 애정을 과시하는 꼴을 보니 멀쩡한가 보구나.’ 라는 말을 부드럽게 포장해서.
“형제님의 활약은 잘 들었습니다. 실로 에넨께서 형제님을 보우하심이니, 조만간 헌금이라도 두둑하게 내시는 건 어떻습니까?”
“에넨께서는 헌금보다 너를 돌봐주는 걸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
“이런, 그도 그렇군요.”
농담 가득한 제안을 농담으로 거절하자 타니안도 픽 웃음을 흘렸다.
아니, 사실 반쯤은 진심이다. 에넨도 양심이 있다면 금화 가득한 주머니를 헌금으로 내는 것보다 77년도 시즌 타니안을 보살핀 것을 고마워할 거다.
“확실히 에넨께서도 그깟 돈보다는 성자를 더 귀히 여기시겠군요.”
옆에 있던 류티스도 공감하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웃지 마 새끼야.’
이거 주어를 에넨이 아닌 아르메인으로 바꾸면 너도 마찬가지야.
“아무튼 무사 귀환 축하드립니다, 고문 선생.”
“그래, 고맙다.”
그래도 류티스의 축하에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던 쌍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제국인인 에리히와 아인테르, 대륙 반대편에서 사는 라테르, 제국과 친한 타니안과 달리 류티스는 이번 전쟁을 순수하게 축하하기 애매한 입장이다.
제국이 강해진다면 그만큼 아르메인에게 위협이 될 것이고, 제국이 유목민을 경계하기 위해 배치하던 군단 다수가 아르메인 전선으로 이동할 것이다. 아르메인의 왕자 류티스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겠지.
그럼에도 류티스는 동아리 부원으로서 축하를 해줬다. 그러니 나도 77년도의 고통을 잠시 잊어두는 수밖에.
“그런데 무릎은 괜찮습니까? 아무리 레이디들이 깃털처럼 가볍다지만, 너무 오래 앉혀두시는 것 같은데요.”
“깃털이니까 괜찮다.”
“크흐, 알겠습니다.”
그 와중에 사족을 덧붙여 루이제가 더욱 붉어지는 일이 있었으나, 귀여우니 넘어가기로 했다.
***
고문 선생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한 발자국 물러났다. 제국의 번영은 아르메인의 왕자로서 경계해야 할 일이나, 2년 가까이 알고 지낸 고문 선생과 연관된 일이니 어쩌겠나. 지인이 무사히 돌아온 것은, 무인이 큰 공을 세운 것은 축하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신기한 일이군.’
그리고 어제와 달리 시끌벅적한 동아리실을 둘러보다 슬쩍 미소를 지었다.
고문 선생이 오니 밝아진 사람들, 고문 선생을 따라 동아리실에 온 외부인들, 그 요란함에 휘말려 같이 웃는 부원들. 그저 한 사람이 돌아온 것뿐인데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울타리가 왔으니 당연한 건가?’
울타리. 그래, 그 단어만큼 고문 선생과 어울리는 단어는 없다.
물론 제과 동아리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루이제다. 우리도 루이제를 보고 동아리에 가입했으니, 루이제가 동아리의 기둥이나 다름없겠지.
그러나 그런 우리를 동아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제어해 준 건 고문 선생이다. 루이제에게 차인 이후로도, 다른 부원들이 들어온 이후로도 울타리로 남았다. 그런 울타리가 사라졌으니 울타리 안의 양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나, 다시금 울타리가 생겨 한곳에 모인 것이다.
‘고문 선생만 가능한 일이지.’
문득 임시 감찰관으로 왔던 에르제베트 영애에게 시선이 갔다. 동시에 임시 고문으로서 있던 날들을 떠올렸다.
…
과연, 고문 선생은 평소에도 저런 부하 겸 연인을 두고 있으니 강인했던 건가.
‘대단한 일이야.’
하지만 부럽지는 않다. 원래 영웅적인 위업은 멀리서 볼 때만 대단한 것이다.
“아, 잠깐만.”
그렇게 고문 선생을 향한 기묘한 존경심이 자라날 무렵, 여전히 무릎에 루이제와 이리나를 앉히고 있던 고문 선생이 품 속에서 통신구를 꺼냈다.
그러면서도 이리나의 허리를 잡고 있던 손으로 꺼내는 섬세함에 감탄이 나왔다. 루이제를 붙잡고 있던 손으로 꺼냈다면 도망쳤겠지.
“감찰부장, 칼 크라시우스입니다.”
– 칼.
“아, 아버지.”
자연스레 연락을 받은 고문 선생. 딱히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대화 소리도 들렸고─
‘아버지?’
정겨운 호칭에 잠깐 놀라고 말았다. 분명 고문 선생과 에리히는 부친과 다소 어색한 관계인 걸로 아는데?
‘싸우기만 한 건 아니었나.’
이윽고 고문 선생의 부친도 종군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색했던 부자의 관계가 진전됐나 보다.
– 영지에는 언제쯤 올 생각이더냐.
“이번 주말에 갈 생각인데… 무슨 일 있으십니까?”
– 네가 와야 나도 영지에 갈 수 있다.
“예?”
– 네 엄마한테 쫓겨났다.
“예?”
…다소 과하게 진전된 것 같았지만, 어색한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