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85)
로판 속 공무원 385화(386/451)
어머니를 보자마자 포옹을 하며 늦은 방문에 대해 사과했다. 함께 종군한 아버지, 빠르게 자백한 연인들에 비해 어머니에게는 통신구로 연락을 드린 게 전부였다.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지만 불타는 효자나 다름없었지.
하지만 어머니가 어깨를 쓰다듬을 때는 그런 죄책감과 효심마저 움찔하고 말았다.이 세계에도 신체 보험이 있었다면 리틀 황금공이 되었을 정도로 혹사당한 부위가 어깨였으니까. 최근에는 혹사를 넘어 산재 사망을 당하기도 했고.
그래서 어머니의 손길에 잠깐 놀라기는 했으나 금방 긴장을 풀었다. 어머니한테는 부상에 대해 말한 적이 없으니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
“괜찮단다. 다친 몸으로 무리하게 오는 것보다 치료가 중요하잖니.”
…아니구나. 예민이 아니라 본능이 경고한 거였네.
무심코 침을 삼키고 말았다. 어머니는 부드럽게 말했지만 정작 듣는 입장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분명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혼란스럽다. 알아서는 안 될 진실을 몰라야 할 사람이 알고 있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아버지에게 생각이 뻗었다. 아버지가 쫓겨난 이유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명예와 존엄을 위해 묻지 않았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추측할 수 있었다.
‘들키셨네.’
직접 전선에서 싸우다 오른팔이 잘리고 왼팔이 움직이지 않게 된 유쾌하지 못한 사건. 그 사건에 대해 나와 아버지는 ‘최대한 숨기다가 적당한 때 말하자.’ 라는 결론을 내렸다. 종전 직후에는 무사 귀환에 대한 기쁨만 누리고, 적당히 시간이 흘렀을 때 진실을 밝히자고.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광속으로 들켜버렸고, 어머니의 분노로 인해 추방령을 당한 것 같다. 확실하다.
‘살았다.’
안타까움과 동시에 안도감이 몰려왔다. 다행히 나는 연인들에게 자백했다. 어머니를 통해 내 부상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입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다. 아버지처럼 왜 숨겼냐고 털릴 위험이 없다.
문제가 있다면 어머니가 내 입이 아닌 다른 루트를 통해 진실을 접했다는 건데, 이건 아카데미에서 그런 것처럼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하려 했다는 명분이 있다. 실제로 얼굴을 직접 본 연인들에게는 사실대로 말했으니 설득력도 있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지금은 멀쩡합니다.”
그렇기에 최대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이 일을 함구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말하려 했다는 듯이, 찔리는 것이 없다는 듯이.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효과가 있었는지 어머니는 조금 물기가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셨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 정도인데, 막 부상에 대해 알게 됐을 때는 얼마나 속이 타들어갔을까. 그럼에도 나한테 연락을 거는 일 없이 지금까지 기다리신 거다.
“어머니를 빨리 뵙고 싶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빨리 회복되더군요. 다 어머니 덕입니다.”
사실 마법사에게 치료를 받은 순간부터 완치되었지만, 아무튼 어머니 덕분이다. 오늘부터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흐뭇한 눈으로 보는 유모의 시선을 애써 모른 척하며 다짐했다.
“부인. 오랜만에 칼을 봐서 반가운 건 알지만, 다른 아이들도 왔으니 이제 들어가는 게 어떻겠소.”
그 와중에 등 뒤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잠깐, 아주 잠깐 침묵하셨다.
그런데 기분 탓인가. 분명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식은땀을 흘리는 아버지와 말없이 째려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연상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뒤통수에도 눈이 생긴 것 같다. 아니면 견문색을 깨우쳤거나.
“그렇군요. 귀한 손님이 왔는데 생각이 짧았어요.”
영겁 같은 침묵을 깨고 입을 연 어머니는 조심스레 내 품에서 벗어났다.
“빌리. 주인은 손님들 옆에 있는 것이 아닌 반겨야 하는 사람입니다.”
“내 생각이 짧아 실수를 했군. 미안하오.”
그러고는 아버지를 향해 구박같은 말을 했지만, 추방령이 끝났다는 선고나 마찬가지기에 아버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머니 옆으로 향했다.
‘아버지…’
이제는 슬슬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집 밖에서는 황제의 신임을 받는 제국백에 강인한 무인, 그러나 집 안에서는 아내에게 한없이 약한 애처가. 너무 극과 극인 이미지 아닌가.
게다가 부인이 한 명인 아버지도 저런 판국인데, 여섯인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비밀 별장이라도 하나 사야 하나.’
하필 부인들 거주지도 다 제각각이라 도피할 곳도 마땅하지 않다.
성의 분위기는 종군 직전에 방문했을 때와 달리 가볍고 활기찼다.
당연한 일이다. 그때는 가주와 후계자, 영지의 사병이 전쟁터로 떠나는 것을 배웅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지금은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상황이니까. 심지어 사병 피해도 적었다고 하니 거리낌 없이 축하할 수 있다.
“작위 귀족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제 소가주님이 아니라 각하라고 해야겠군요.”
“그냥 소가주라고 불러라. 내가 크라시우스 가문인 건 변하지 않았으니.”
그리고 집사장의 뒤늦은 축하 인사에 픽 웃음이 나왔다.
이미 작위를 가진 귀족이 새로 작위를 겸임하는 것과 일개 자제가 작위를 받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후자는 가문의 영광이나 다름없는 일이나, 종군에 묻혀서 축하는커녕 언급도 되지 않았다. 덕분에 작위를 받은 지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축하를 받게 된 거고.
그래서인지 나도 내가 받은 작위가 낯설다. 풀네임을 쓸 때도 칼 크라시우스 오브 위리디아가 아니라 칼 크라시우스라고 쓰게 되더라.
“다행이군요. 혹시 작위를 받으셔서 방계로 빠지겠다 하시는 건 아닌가, 걱정이 많았습니다.”
“후계자가 방계는 무슨.”
“하하, 그건 그렇군요. 제가 실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슬쩍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진심으로 걱정했던 모양이다.
뭐지? 방계로 나갈 생각이 없기는 하지만, 사실 후계자가 변해도 집사장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인데? 집사장은 크라시우스 백작가 가주인 아버지를 섬기는 거지 나를 섬기는 게 아니니까.
그런 의아함이 담긴 시선을 눈치챘는지 집사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비록 소가주님이 제도에 주로 계신다지만, 소가주님이 처리하시는 영지 업무도 적은 양이 아닙니다. 그리고 소가주님이 이탈하시면 그 공백을 제가 채워야 합니다.”
끔찍하고도 납득이 되는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물론 내가 탈주한 자리는 에리히가 채우면 되지만, 에리히가 후계자 교육을 받아 1인분을 하기 전까지는 집사장 홀로 눈물의 원맨쇼를 해야 한다. 실로 끔찍한 일이다.
“…타일글레헨 백작위도 내가 받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거 참 든든하군요. 감사합니다.”
“만약 내가 집사장과 헤어지는 날이 온다면, 집사장에게 위리디아 백작령의 집사장도─”
순간 집사장이 진심으로 정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 나름 농담이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선 넘은 농담이었네.
***
칼이 뒤로 빠져 타일글레헨 백작령의 집사장과 대화를 하는 사이, 우리는 아버님과 어머님을 모시며 복도를 걷고 있었다.
“저번 전쟁은 2년이나 이어졌으니, 이번에도 그렇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단다. 하지만 괜히 입에 담으면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동요할 것 같아 참았지.”
“이해해요, 어머님. 저도 그랬거든요.”
그리고 어머님이 뒤늦게 꺼내는 진심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 나도 칼이 북방으로 떠날 때 그런 생각을 했었으니까. 혹시 이번에도 몇 년이나 전쟁이 이어지지는 않을까, 내가 졸업한 이후로도 칼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무서웠었다.
“그래, 마르도 무가에서 태어났으니 내 마음을 알겠구나.”
따뜻한 눈빛으로 말하던 어머님은 슬쩍 고개를 돌려 아버님을 쳐다보셨다.
그러자 분명 따뜻했던 눈빛에 아주 미세한 냉기가 감돌았다.
“무인들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른단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당사자들을 원망할 수는 없지만, 조금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하더구나.”
대놓고 욕을 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말에 아버님은 슬며시 시선을 내리셨다.
난감하다. 며느리로서 시부모님의 다툼을 말려야 하지만, 어머님의 마음이 너무 이해가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인들이 무뚝뚝하고 투박한 건 바렌티도 마찬가지라 더더욱.
“죄, 죄송합니다, 어머님.”
이 난감한 냉전을 끝낸 건 페넬리아 언니였다. 칼의 연인이자 함께 종군한 페넬리아 언니의 말에 어머님도 아차 싶은 얼굴로 황급히 언니를 달랬다.
“아니란다. 네가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아는데, 네 잘못이 어디 있겠니.”
“아닙니다. 제가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부상을 입으셨…”
씁쓸한 자책이 이어지자 어머님은 언니를 부드럽게 끌어안으셨다. 이런 분위기에 할 생각은 아니지만, 마치 딸을 위로하는 것 같은 모습이라 조금 부러웠다.
“그런 말은 하지 마려무나. 최선을 다해서 움직인 사람을 탓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단다. 설령 자기 자신이라도.”
그렇게 말씀하신 어머니는 작게 한숨을 쉬셨다.
“남편과 아들의 입은 무겁지만, 그나마 며느리가 성실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 말에 나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저 입이 무겁다는 말처럼 공감이 가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칼과 아버님을 옹호해야 한다. 통신구를 통해 바로 말하지 않은 건 그만한 생각이 있어서였으니까. 통신구를 통한 통보가 아닌 직접 대면해서 말하고 싶다고 했었으니까.
“칼은 직접 얼굴을 보고 할 말이라 비밀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먼저 말할 생각이었다고 하니, 어머님이 이해해 주세요.”
“먼저?”
고개를 갸웃거린 어머님의 시선이 다시 아버님에게 향했다.
“빌리. 이게 무슨 말이죠? 제가 들은 것과는 다른데요.”
?
“이미 지난 일을 언급해서 걱정 끼칠 수 없으니, 시간이 지나고 자연스레 말한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이게 지금 무슨 말이지?
분명, 분명 칼은 우리를 보자마자 사실대로 말할 생각이었다고 했고, 실제로 있는 그대로 말했는데?
“…아가도 다른 마음을 품었었구나.”
어머님이 아버님을 추궁하는 사이, 베아트릭스 언니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원래는 우리에게 쭉 숨길 생각이었지만, 숨겨봤자 들킬 걸 알고 급히 마음을 바꾼 거겠지.”
“아…”
나도 모르게 집사장과 뒤따라오고 있던 칼에게 시선이 향했다.
비록 사실대로 말하기는 했지만, 잠시나마 그런 중요한 사실을 숨기기로 마음 먹었었다는 것에 괘씸함이 몰려왔다.
***
와.
‘개판이네.’
본능적으로 든 생각이다. 어머니에게 추궁을 당하는 가주님, 예비 형수들에게 둘러싸여 청문회 아닌 청문회를 당하는 형.
가관이다. 어떻게 저런 상황이 같은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경이로울 지경이다.
“크라시우스 남자들은 저주라도 받았나…”
무심코 중얼거리자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세라였다.
“왜 그래?”
“…아니, 그냥. 저주가 있다면 조금 강한 것 같아서.”
“그렇지?”
외부인이 보기에도 같은 생각이었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