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87)
로판 속 공무원 387화(388/451)
무사 귀환 기념 연회는 밝은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오직 가족, 혹은 예비 가족만 참석한 연회였기에 다른 손님들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가문과 백작령을 위해 헌신한 사용인들도 연회를 즐길 수 있었으니 성 전체가 거대한 연회장이나 다름없었다.
사소한 오점이 있다면 연회 직전에 밝혀져서는 안 되는 진실이 발각된 것이나, 그 오점을 제외하면 아무런 소란도 없었다. 그마저도 나름 정상참작되어 말로만 혼났고.
“마음 같아서는 일주일 내내 축하하고 싶었는데.”
“아쉽군요. 방학이었다면 느긋하게 즐겼을 겁니다.”
그렇게 연회가 끝나고 아카데미로 복귀하기 직전, 내 손을 잡으며 말하는 어머니에게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그 말에 어머니도 희미하게 남아있던 아쉬움을 지우고 마주 미소를 지으셨다. 장난스러운 대답이었지만 이번에 즐긴 연회에 만족했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이번 겨울에는 꼭 그러자꾸나.”
“예, 물론입니다.”
은근슬쩍 덧붙인 말씀에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겨울이라면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 내내 연회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
‘기념할 날이기는 하지.’
이번에 맞이할 겨울은 단순히 눈이 오는 계절이 아니다. 마르가 아카데미 3년 생활을 마치고 졸업하는 기념비적인 시기이며,다르게 말하면 나와 마르가 혼인을 맺는 날이기도 하다.
실로 경사스러운 날이다. 사적으로는 가족이 늘어나는 것이고, 공적으로는 크라시우스 가문이 공작가와 공식적인 인연을 맺는 날이지 않나. 어머니가 가문의 금고를 개방하셔도 납득할 수 있다.
“다음에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을 때 보면 좋겠구나.”
“네, 어머님!”
웃는 얼굴로 나와 작별 포옹을 한 어머니는 어느새 마르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당연하게도, 그 노골적인 덕담에 마르는 어느 때보다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하얀 드레스라.’
평소 붉은 드레스를 즐겨 입는 마르가 하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정말 어울리겠지만 마르가 하얀 드레스를 입는 건 이번 겨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마지막이 아니면 곤란하니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카데미에 복귀한 후로는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정규 수업 시간에는 회장실에 가서 마르와 노닥거리고, 베아트릭스가 공강이면 같이 놀고, 동아리 시간이 되면 루이제와 이리나가 합류하는 일상. 몸도 정신도 흐물흐물 녹아내리기에 충분한 일상이었다.
“마르, 향수 바꿨습니까?”
“아, 네. 혹시 이상한가요…?”
“그럴 리가요. 무슨 향기든 마르와 잘 어울립니다.”
지금도 업무를 보는 마르를 내 무릎에 앉힌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던 마르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졌는지, 업무를 보다가 피곤하면 그대로 내 가슴에 기대서 눈을 붙이기도 하더라. 고양이가 품에 안겨서 고롱거리는 것 같아서 귀여웠다.
물론 남들이 보기에는 눈꼴 시린 커플처럼 보이겠지만, 이 합체 앉기에도 나름 장점이 있다.
“참, 칼. 잠깐 이것 좀 봐줄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마르의 업무를 바로바로 도울 수 있다는 훌륭한 장점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납득하고 이해할 장점이다.
“곧 반 대항전이 열릴 예정인데, 올해는 작년보다 학생들의 열의가 크거든요. 예산 편성안을 다시 확인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마르가 서류를 건네주며 하는 말에 잠시 몸이 굳고 말았다.
“…확실히 작년보다 지출 목록이 많군요.”
“그렇죠? 왕자 저하들과 베아트릭스 언니를 보고 입학한 신입생들이 많아서 그런지, 열정이 넘치더라고요.”
굳은 몸을 일깨우며 애써 입을 열자 마르가 피곤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카데미 2학기 공식 일정 중 하나인 반 대항전. 아카데미 감찰관으로서 아카데미 공식 일정은 전부 꿰고 있으나, 반 대항전만큼은 감찰관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람 새끼라면 절대 잊을 수 없다. 힘 조절에 실패하여 고귀한 왕족이 피를 토하게 만들고, 근무지 근신이라는 희대의 처벌을 받은 씁쓸한 추억이 있으니까.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게 아닌 이상 내가 반 대항전을 잊을 일은 없다.
아무튼 반 대항전은 2학기 일정 중에서도 다소 이르게 시작하는 편인데─
‘벌써 코앞이구나.’
이번에는 더욱 빨리 시작하는 느낌이다. 아카데미에 복귀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벤트가 터지냐. 기계도 쉬지 않고 돌리면 망가지는데 사람은 오죽하겠나.
물론 아카데미는 일정을 미루거나 당기지 않고 정상 운행 중이다. 내가 2학기 초반을 전쟁 때문에 날려 먹어서 체감상 이른 시작을 하는 느낌인 거지.
‘…이번에는 작년 같은 일 없겠지.’
작년의 악몽이 빠르게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진행되다가 마지막 경기에서 터진 대형 사고. 갑자기 루이제 반 소속 외부 인사가 탈주하여 그 공백을 내가 채워야 했던 처절한 기억.
아직도 자다가 이불을 찰 정도로 트라우마로 남은 일이지만, 올해는 그런 참사가 터지지 않을 것이다.
‘변수는 없다.’
작년에는 북방의 소란 때문에 마탑의 모든 마법사들이 소환령을 받았다. 그 소환령 때문에 루이제 반 소속 외부 인사도 불려갔었지.하지만 올해는 북방을 평정했고, 동부는 수십 년째 잠잠하다. 마탑이 긴급 소환령을 내릴 정도의 사건이 터질 리가 없다.
만약, 아주 만약 북방도 동부도 아닌 곳에서 긴급한 일이 터지면 사태가 어떻게 굴러갈지 장담할 수 없으나, 설마 그런 일이 터지겠나.
애초에 그런 사건이 터지면 마탑만 소환령이 터지는 게 아니라 나도 제도로 끌려갈 거다.
***
복도를 하염없이 서성거렸다. 이런 무력감과 초조함은 황태자가 된 이후로 처음 느낀다.
미칠 것 같다. 차라리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다면, 최상의 결과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면 이런 감정은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내 노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면 감정보다 이성에 집중했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오직 남의 손에, 하늘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제발.’
그렇기에 천상의 에넨과 제국을 보우하는 대제께 기도를 올렸다. 부디 가호를 내려달라고, 부디 무사히 일이 끝나게 해달라고.
비가 무사히 아이를 낳고, 아이도 불편한 곳 없이 건강하게 해달라고.
‘제발 둘 다 건강하기를.’
비가 아이를 낳다가 잘못되는 것도, 아이가 잘못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 둘 중 하나라도 내 곁을 떠나는 미래는 받아들일 수 없다.
죽을 날만 기다리던 나에게 빛처럼 다가온 비다. 내가 황태자로서 나아갈 수 있게 지탱해 준 비다.
과도한 업무 속에서 겨우 가진 아이다. 이 황실과 제국을 위해서도 반드시 태어나야 할 아이다.
그러니 무엇도 잃을 수 없다. 무엇도 포기할 수 없다.
“──! ────!”
“───!”
‘망할.’
문 너머로 들리는 고성과 신음 소리에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지만 참았다. 내가 들어가 봤자 방해만 될 뿐, 비와 아이에게는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무사하겠지?’
어느새 가슴을 좀먹은 무력감과 초조함은 불안으로 변하고 있었다.사실 비의 출산 예정일은 오늘이 아니다.
물론 예정일에 다소의 오차가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 오차가 주 단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혹시 무언가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닐까, 아이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온갖 불안감이 몰려들게 된다.
그나마 미숙아라 분류될 조산은 아니라 다행이기는 하지만.
“전하, 심려치 마소서. 제국에서 제일가는 의료진이 모였으니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내 불안감이 타인에게도 느껴졌는지 호위기사인 헨드릭 경이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황태자로서 담담한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수하의 위로나 받는 건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황태자가 아닌 한 명의 아비로 있는 것인데 어찌 담담할 수 있겠는가.
“그래, 그렇겠지. 게다가 비는 평소에도 건강했으니.”
그러나 입은 마음과 달리 태연함을 가장했다. 그것이 황태자로서 마지막으로 남은 이성이었다.
“전하.”
“황실부장?”
그렇게 서성이는 걸 멈추고 나와 비를 가로막고 있는 문을 바라보는 사이, 황실부장이 찾아왔다.
“황실부장이 여기까지 어쩐 일인가?”
“황실의 적통께서 이 세상에 나타나실 터인데, 소신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이까.”
그 말에 아주 살짝 입꼬리가 올라갔다.
황실부장은 명칭 그대로 황실의 업무를 담당하며, 그 업무 중 하나는 황족 명단 갱신이다. 이는 비가 아이를 무사히 출산할 것이니 미리 왔다는 말.
헨드릭 경의 직설적인 위로와 황실부장의 우회적인 격려. 양쪽에서 토닥이는 조금은 마음이 풀리는 것 같─
“전하!”
갑자기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무사히 끝났습니다! 태자비 전하도 건강하시고, 어여쁜─”
그 뒤에 하는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본인의 건강을 과시하듯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으니까.
머리가 하얘졌다. 분명 간절히 바라던 소식이었음에도, 이 순간만을 기다렸음에도 이상하게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장관 각하, 황실부장입니다. 황손께서 태어나셨습니다. 태자비 전하도 건강하십니다.”
황실부장이 다급히 통신구를 꺼내 보고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몸이 움직였다.
그제야 침대에 누워 힘겨운 미소를 짓고 있는, 막 아이를 건네받은 비가 보였다.
“전하.”
내가 다가오는 것을 본 비가 여전히 힘겨운, 그러나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절 닮아 예쁜 딸이에요.”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다.
***
숙소에 도착해서 자려는 찰나, 통신구가 우렁찬 알람 소리를 내뱉었다.
저번 소집령 때의 불쾌한 경고음이 아닌 팡파르처럼 신명 나는 소리였지만, 딱히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통신구는 큰 소리를 낼수록 엄청난 문자가 날아왔다는 의미다.
시발, 심지어 저거 보랏빛이잖아. 황실 관련 내용이네.
‘와.’
그리고 통신구에 날아온 문자를 보자마자 잠이 달아났다.
[ 에넨의 가호와 대제의 보우하심에 고귀하신 황손께서 태어나셨으니, 리브노만을 섬기는 뭇 신료들은 마땅히 리브노만의 적통이 이 세상에 임하셨음에 기뻐하라. ]황태자와 황태자비 사이에서 태어난 첫 번째 자식.
현 황실의 유일한 약점을 끝장낼 정통성 끝판왕이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