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88)
로판 속 공무원 388화(389/451)
코르부스 에이만카 리브노만 오브 크펠로펜, 통칭 에이만카 16세.크펠로펜 제국의 현 황제이자 망국을 눈앞에 두었던 제국을 다시 번영의 길로 이끌어 올린 희대의 명군.
일부 귀족들은 오직 에이만카 1세에게만 허락되었던 대제의 호칭을 현 황제에게도 바치고, 이후 황제들의 미들 네임을 ‘에이만카’에서 ‘코르부스’로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논의를 할 정도니 그 위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허나 그런 황제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크펠로펜 최초의 방계 황제라는 것이다.
‘좀 먼 방계기는 했지.’
솔직히 현 황제는 황위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존재였다. 본인도 황족이라는 정체성보다는 귀족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황위를 둔직계들의 권모술수 난무, 외상에는 강하나 병에는 약했던 의술로 인한 높은 영유아 사망률, 애초에 낮았던 황실의 출산율 등이 겹치며 리브노만의 직계는 화려하게 멸망했다. 일개 백작이었던 현 황제가 황위에 올랐을 정도로.
그렇게 정통성 문제를 달고 수십 년을 황위에 있었던 황제는 자기 후계자만이라도 적장자로 삼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황제의 적장자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것 같은 2황자였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도대체 황제 아래에서 어떻게 그런 새끼가.
‘황태자가 적장자여야 했는데.’
덕분에 황실은 2연속 정통성 부족이라는 희대의 사태를 맞이했고, 황제는 치밀어 오르는 쌍욕을 참으며 2황자파를 숙청했으나─ 오늘을 기점으로 황실은 고질적인 약점에서 벗어나 광명을 찾게 되었다.
[ 에넨의 가호와 대제의 보우하심에 고귀하신 황손께서 태어나셨으니, 리브노만을 섬기는 뭇 신료들은 마땅히 리브노만의 적통이 이 세상에 임하셨음에 기뻐하라. ]통신구로 날아온 단체 문자를 다시 눈에 담았다.
황제 생전에 황태자와 황태자비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났다. 이미 여황제가 즉위한 선례가 있는 크펠로펜이니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첫째인 것이 중요하다.
아마 황제는 이 황손을 황태손으로 임명하며 정통성을 굳힐 거다. 그리고 황태자가 양위를 받으면 황태손은 황태자, 혹은 황태녀가 되는 거고. 누구도 태클을 걸 수 없는 미친 후계 구도가 완성되는 거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사람 새끼 같지 않았던 황태자가 자식을 본 건 둘째 치고,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계승 분쟁이 극심하던 황실에 정통성 만렙이 태어났다. 계승 분쟁을 겪은 공무원이라면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말년은 편하겠다.’
제발 내 근무 기간 중에는 대형 사고가 터지지 않았으면 하는 공무원의 간절함.
그건 빙의 전 세상이든 이 세계든 다를 것이 없었다.
다음날 새벽 즈음에 아카데미 3일 휴교령이 떨어졌다. 고귀한 황손이 탄생하였으니 잠시 학업을 뒤로하고 축하하자는 의미의 휴교령이었다.
게다가 황손의 탄생에 황제 폐하도 크게 기쁘셨는지, 아카데미 학생들뿐만 아니라 행정부의 공무원들에게도 3일 휴가령이 떨어졌다. 역시 황제 폐하께서는 현명하고도 자비로우신 분이다.
그래, 실로 현명하고 자비로운 분이신데…
“황손께는 무슨 선물을 드려야 합니까?”
“비단이라도 드려. 날이 갈수록 크실 테니 옷도 금방금방 바꿔 입으시겠지.”
“그건 그렇네요.”
공무원 칼은 휴가를 받았어도 위리디아 백작 칼은 정상근무 중이다.
‘망할.’
어제와는 다른 의미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나도 휴가고 연인들도 휴교니 오붓한 데이트라도 해야 하는데, 차마 작위 귀족이자 제국백 후계자로서 황손의 탄생을 무시할 수 없었다.
덕분에 아침이 되자마자 급하게 제도로 이동하여 장관과 머리를 맞대게 되었다. 황손께는 무슨 선물을 드려야 할까─ 라는 지극히 사교적인 논의를 위해.
“아, 태자비 전하를 닮아 어여쁜 따님이라고 하시니 푸른 비단이면 될 거다. 뉘렌 공작가도 푸른 옷을 즐겨 입으니까.”
“그나마 색은 정해져서 다행이군요.”
비단이라는 대분류와 푸른색이라는 소분류까지 정해지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선물은 무엇을 주느냐 고민하는 게 문제지, 정해지기만 하면 편하니까.
‘태자비를 닮았다라.’
그리고 장관의 말에 재무성 청사로 오는 길에 봤던 총사령부가 떠올랐다. 어쩐지 아침부터 폭죽을 쏘아 올리더라. 전승공도 딸을 닮은 외손녀의 탄생에 고무된 듯하다.
사실 고무될 일이기는 하다. 공적으로는 황실의 안정도가 상승한 것이고, 사적으로는 귀여운 외손녀가 탄생한 것이니.
“네 번째 여황제가 되시겠군요.”
“그렇겠지.”
내 말에 장관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에이만카 대제 이후로 지금까지, 크펠로펜에는 무려 세 명의 여황제가 즉위했다. 이미 선례가 넘치니 ‘여자가 어찌 황위에!’ 같은 태클을 걸 귀족도 없다.
애초에 현 공작 다섯 중 둘이 여자기도 하고. 그런 상황에서 여성의 계승을 반대하는 건 사교계에서 자살하겠다는 우회적 발언이나 마찬가지지.
“뭐, 선물은 푸른색 계통의 비단과 작은 티아라도 곁들─”
슬슬 논의를 정리하려는 찰나, 갑자기 품 속의 통신구가 진동했다.
불안하다. 단순한 업무 보고나 사적 문자일 수도 있으나 이 타이밍에 오는 문자니 본능적으로 불안해진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짧게 양해를 구하며 새로운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눈을 질끈 감을 뻔했다.
[ 감찰부장과 논할 것이 있으니 황태자궁으로 오라. ]개 같은 놈. 딸이 태어났으면 감동의 눈물이나 흘리고 있을 것이지, 왜 애꿎은 부하를 부르고 난리야.
***
천국이 있다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싶다.
“비, 보이시오? 저 작은 녀석에게도 손가락이 전부 달려있구려.”
그 말에 비도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 누워있는 우리 딸을 바라봤다. 곤히 잠든 채 꼼지락거리는 딸을 쳐다봤다.
천사다. 천사가 날개를 떼고 우리 부부의 품에 안긴 거다. 그게 아니라면 저 귀여움과 우아함을 설명할 수 없다.
“소란스럽게 굴지 마라.”
그렇게 극상의 행복을 느끼며 딸을 바라보는 사이, 부황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흠칫 떨고 말았다.딸에게 홀려 부황의 존재를 잠시 잊었다.
“그러다 황손이 깨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러나 자세히 보니 부황의 시선도 우리 딸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표정은 평소처럼 냉랭하기 그지없었으나, 내 호들갑에도 품위를 지키라 타박하는 것이 아닌 황손의 수면을 걱정하셨다.
“송구하옵니다, 부황 폐하.”
의례적인 사과에 부황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셨다. 시선은 여전히 한곳을 향한 채로.
그 모습에 비는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아마 우리만 있었다면 웃음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부황과 함께 온 궁내성 장관도 웃는 얼굴이었으니, 이 아이의 탄생은 실로 황실과 제국의 홍복이다.
– 똑똑
그러던 중 문을 작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혹시 저 소리 때문에 이 천사가 잠에서 깨면 어쩌지? 만일 울음을 터뜨리며 잠에서 깬다면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
“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 감찰부장입니다.”
이윽고 들려오는 황실 기사단장의 보고에 저절로 부황을 쳐다보고 말았다.
감찰부장을 호출한 것은 맞으나 부황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올 줄 알았다. 이렇게 부황과 감찰부장을 대면하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들어오게 하라.”
“예, 폐하.”
부황께서도 감찰부장의 방문이 의외였는지 슬쩍 문으로 시선을 돌리셨으나, 금방 고개를 끄덕이시며 감찰부장의 입장을 허하셨다.
“태자. 태자가 부른 것인가?”
“예, 부황 폐하. 논할 것이 있어서 불렀나이다.”
“그런가.”
잠시 침묵하신 부황께서는 다시 입을 여셨다.
“감찰부장이 황손의 대부가 된다면 실로 든든할 것이다.”
속을 꿰뚫어본 듯한 말에 절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역시 내가 부황 생전에 부황의 발끝에라도 닿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
방에 들어가자마자 문워크로 퇴장할 뻔했다.
‘이런 미친.’
황태자와 태자비가 있는 건 당연히 예상했지만, 설마 황제와 궁내성 장관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 제국의 주인과 공무원의 정점이 반기고 있다니. 이건 너무한 조합 아니냐고.
“황제 폐하 만─”
“되었다. 황손이 자고 있으니 생략하여도 좋다.”
“예, 폐하.”
아무튼 황제를 향해 빠르게 인사를 올리려고 하자 황제는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
황제를 향한 인사가 생략해도 좋은 절차였나 싶지만, 황손이 자고 있다고 하니 납득했다. 살면서 지겹게 들었을 인사보다는 소중한 황손의 수면이 더 중요할 터.
“태자의 부름을 받고 온 것인가?”
“그러하옵니다, 폐하.”
“허면 짐은 신경 쓰지 말라. 황실이 감찰부장과 논하고자 하는 것은 태자가 말할 터이니.”
“…예, 폐하.”
그 말에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으나 겨우 대답했다.
황제가 눈앞에 있는데 신경 쓰지 말라는 말도 그렇지만, ‘황실’이 논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말은 더욱 심상치 않았다. 단순히 황태자의 사적 호출이 아닌 황실의 뜻이라는 말이니까.
‘뭐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장소와 시기를 생각하면 황손과 관련된 문제인 것은 확실하나, 굳이 나를 불러서 논할 것이 있나?
만약 황손 앞에 나를 세우고 ‘얘가 네가 부릴 노비란다.’ 같은 말을 한다면 진지하게 울 자신이 있다. 그런데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게 그건데, 진짜 무슨 일이지?
“어서 오게, 감찰부장. 이 기쁜 날에 감찰부장을 보니 더욱 반갑군.”
“과찬이십니다, 전하.”
도저히 떠오르는 것이 없기에 일단은 고개를 숙였다.
“하하, 과찬이라니. 감찰부장이 황실을 위해 세운 공을 생각하면 어떤 치하도 과하지 않지.”
숙였던 고개를 더욱 숙였다. 이 새끼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빌드업을 그렇게 하냐.
“앞으로 황손의 대부가 될 충신이니 더더욱.”
“…예?”
갑작스러운 발언이라 나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지금, 뭐라고?
‘대부?’
황태자가 미친 것이 아닌 이상 마피아의 대부를 말하는 건 아닐 테고, 당연히 종교적인 대부를 말하는 걸 거다.
‘내가?’
대부, 친부모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을 대비하여 세우는 후견인. 이 세계에서 여명 교단이 가지는 위상을 생각하면 빙의 전 세계보다 더욱 의미 깊은 존재.
‘왜?’
그런데 그걸 대체 내가 왜…?
웃는 얼굴을 하는 황태자를 보니 혼란이 더욱 가중됐다.
지금 보니 다른 사람들도 웃거나 평온한 표정이었다.
‘뭔데.’
나도 납득할 수 있게 설명 좀 해줘. 이게 무슨 상황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