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9)
제 39화
순리를 거스르는 시체 – 2
세번째 영광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사용하는 아펠스 부흥군. 이 시체들의 아카데미 접근을 차단하는 것은 현재 아카데미에 머물고 있는 귀족들의 안전을 위한 당연한 조치지만, 동시에 제국의 위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아펠스는 이미 300여 년 전에 멸망한 국가로, 부흥군은 물론 부흥 운동의 중심이 될만한 인사들도 제국이 작정하고 작살내버린 역사가 존재한다. 그런데 시대를 뛰어넘어 다시 아펠스 부흥군이 등장한다?
‘개망신이지.’
그 부흥군의 규모나 역량이 어느정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제국의 통치에 반발하고, 까마득한 과거에 멸망한 국가를 그리워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으로도 제국의 위신은 타격을 입는 것이니까. 타국이 그 소식을 들으면 뒤에서 꽤나 비웃을 것이다. 오죽 못났으면 그런 역적들이 등장했냐고.
그러니 세번째 영광은 단 한 마리라도 놓치면 안된다. 전원 사살하거나 생포해야 하는 것이 이번 디펜스의 승리 조건. 만일 하나라도 놓쳐서 세번째 영광- 아펠스 부흥군의 존재가 외부로, 특히 삼국 전력에 퍼진다면 내 통신구는 영롱한 보랏빛으로 물들 것이다.
그건 안된다, 정말 안된다. 이미 아인테르 관련으로 궁내성 장관을 거친 황태자의 지시가 떨어졌는데, 내가 머물고 있는 장소에서 제국 위신에 타격을 입는 일이 터지면 최소가 황태자 직통 연락이다. 최악은 그 윗선이고, 시발.
‘돌아버리겠네.’
몰려오는 불쾌감에 미간을 슬쩍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다른 단체면 이렇게 이 악물고 보안을 유지하며 소탕할 필요는 없는데, 하필 들키면 조리돌림 확정인 아펠스 부흥군이다. 세번째 영광인지, 세번째 지랄인지, 아무튼 하나라도 생포하면 1과장 특급 코스로 보내버릴 거다.
그래서 내일 일도 의논할 겸 1과장을 불렀다.
“부장님. 밤에 부르는 건 진짜 아니죠.”
혹시 4과장과 연락 중일까봐 조금 뜸들이고 연락하는 세심함도 보였지만, 눈 앞의 과장은 부장의 그런 배려를 몰라준다. 눈치 없이 입술을 삐죽 내미는 1과장을 무시하고 아카데미와 인근 지역이 그려진 지도를 펼쳤다.
“자, 오랜만에 루트나 짜보자.”
“와아아…”
그래도 일 관련이니 어기적어기적 다가오기는 한다. 그런 1과장을 슬쩍 바라보다가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세번째 영광은 내일 오후 5시경에 아카데미 근처에서 나타난다. 이건 정보부에서 전달한 정보니 틀릴 일은 없겠지. 그러니 우리는 그것들이 아카데미에 도달하기 전에 요격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디서 요격할지 미리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머리가 있으면 은밀하게 오긴 하겠죠?”
“그렇기는 한데, 해가 지지도 않은 5시에 나타나는 것들이니 방심을 못하겠네.”
세상에 어느 습격자가 날도 밝은 시간에 당당하게 오냐고. 사람이 많은 시간을 노려서 습격하는 거라면 이해하겠지만, 정작 습격하기 전에 발각되면 의미가 없지 않나?
사실 이해 하려고 하는 것이 손해일지도 모른다. 300년 전 국가를 부활시키려는 그 뚝심과 집착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광기의 집대성이니까.
애초에 이것들, 원작에서 주연들 위기 조성을 위해 등장한 단체니 그리 작정하고 습격하는 놈들은 아닐 것 같다. 처음 등장한다는 건 튜토리얼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거니까. 아마 이것들만 이리 개판이겠지. 다른 네 단체는 나름 역사와 전통이 있는 개새끼들이니 방심할 수 없다.
“나라면 이 방향으로 올 것 같은데.”
“그렇죠? 여기밖에 없긴 하네요.”
감찰부장이 된 이후로 방어전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다. 북방에서는 종종 겪었지만 그건 지휘관 아래에서 구른 정도였지. 그래서 어느 방향을 주시하며 세번째 영광을 기다려야 할지 고민이지만, 우리가 공격자라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답이 나온다.
내가 세번째 영광이면 대충 이 루트로 올 것 같다, 라는 곳만 찾아서 그곳을 막으면 되니까. 원래 때려본 놈이 어디를 맞아야 아픈지 아는 법이다. 딱히 알고 싶어서 알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1과장과 머리를 맞대며 아카데미 북서쪽의 작은 숲을 지목했다. 기다리면 이쪽으로 오겠네.
“묵광대하고도 여기서 합류하면 되겠다.”
미리 만나서 느긋하게 시체들의 행진을 구경하면 딱이다.
박람회 둘째날 점심 무렵. 잠시 부스에서 벗어나 인적 없는 곳으로 향한 나는 4과장에게 연락을 걸었다.
“여기서 만나자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통신구 쪽으로 지도를 들이밀어 1과장과 정한 접선 겸 요격 포인트를 4과장에게 보여줬다.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헤매지 않고 잘 찾아올 것이다.
– 알겠습니다. 빠르게 가도록 하겠습니다.
“4시까지만 오면 돼. 나도 그때 맞춰서 갈 테니.”
– 예, 부장님.
“그래. 오랜만이니 빨리 보고 싶네.”
– 영광입니다.
웃음기 섞인 내 말에 4과장은 고개를 숙이며 연락을 종료했다. 업무 문제로 합류하는 전 부하에게 너무 사적인 말을 한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보면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나에게는 그 사람이 4과장이다 보니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말도 덧붙이게 된다. 묵광대가 아직 4과였을 때, 2과장이 너무 4과장을 편애하는 거 아니냐고 불평을 하기도 했었지.
물론 말한 새끼가 2과장이라 무시했다. 차장이나 5과장이 말했다면 모를까, 2과장은 나한테 그딴 말을 하면 안돼.
‘아직 시간은 남았네.’
아카데미에서 접선 지역까지 거리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4시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다. 일단은 부스에 머물다가 적당히 1과장하고 빠져야지.
***
부장님과의 연락을 끊은 나는 조심스레 통신구를 매만졌다. 부장님과의 대화는 언제나 영광스럽고, 긴장되는 일이었으니까.
– 그래. 오랜만이니 빨리 보고 싶네.
부장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떠올리니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역시 그 분은 나를 잊지 않으셨다. 언제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신다.
“대장.”
뒤에서 들려오는 부대장의 말에 입꼬리를 다시 내리고 뒤를 돌아봤다. 부장님과의 연락이라고 하니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알아서 거리를 벌린 모습. 부장님의 은혜를 받은 묵광대라면, 4과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부장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 분과 합류하기로 했다. 4시까지 A-1 숲으로 향한다.”
“예, 대장.”
경례를 하며 다른 대원들에게로 향하는 부대장. A-1 숲, 아카데미에 가장 가까운 숲이기에 임시로 붙인 지명. 움직이기 전에 임시 지명은 전부 공유했으니 알아들었을 거다.
부대장의 지시에 대원들이 이전보다 적극적인 발걸음으로 내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부장님을 오랫동안 뵙지 못한 것은 모두 마찬가지니까.
4과의 영웅이시며, 무너진 4과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밑바닥 버러지 인생으로 살아갔을 우리를 구원하신 분을 뵈러 가는 길인데, 감히 누가 뭉그적거릴까? 그런 배은망덕한 녀석은 내 손에 죽기 전에 대원들이 처리할 것이다.
“순리를 거스르는 어리석은 시체들이 부장님께 향하고 있다.”
그 말에 대원들의 시선이 모였다.
“감히 제국을 능멸하고, 천명을 부정하며, 부장님께 더러운 송곳니를 드러내는 놈들이다.”
대원들은 고요한 분노를 눈동자에 담았다. 공적으로는 반역자를 향한 특무성 대원으로서의 분노요, 사적으로는 은인을 해하려는 자를 향한 분노를.
“부장님을 뵙는 자리에 빈 손으로 갈 건방진 녀석이 있는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타오르는 눈빛으로 말없이 부정할 뿐.
“부장님께서 직접 나서실 필요도 없다. 우리는 놈들의 앞을 막지 않고 배후를 친다. 전원 생포하여 부장님께 바친다.”
이리저리 꼬아서 이동하고 있지만, 그래봤자 허술하고 나약한 일개 부흥군에 불과하다. 대의는 물론 물자나 병력조차 바닥을 기는 버러지 같은 반군. 위치를 파악하여 뒤를 잡는 것 정도는 간단하다.
사실상의 공격 명령을 듣고 빠르게 흩어지며 임시 숙영지를 철거하는 대원들을 보며 특무성 장관의 지시를 떠올렸다.
“세번째 영광, 실속에 비해 거창한 이름이군. 분명 쉽게 소탕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배후나 협력자가 존재할 수 있다. 최대한 생포하도록.”
부장님을 돕기 위해 출발하기 전, 특무성 장관과 대담하였다. 얼굴에 셀 수 없이 많은 상흔과 몇 겹을 꿰맸는지 모를 자국이 남은 중년의 남성. 마법과 신성력의 힘으로 충분히 지울 수 있음에도, 자신의 부족함을 잊지 않기 위해 방치한다는 황제의 충견.
“그리고 감찰부장이 나서는 일은 없게 하도록. 우리가 필요한 것은 정보를 토할 인질이지, 터진 시체가 아니다.”
그 말에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생포가 목적인 작전에 부장님이 나서시면 조금 곤란하니까. 물론 특무성 장관의 지시가 없었어도 부장님이 친히 나설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경애하는 부장님께서 버러지 같은 것들 때문에 친히 움직이실 필요는 없다. 비록 그 분의 곁을 떠나 특무성으로 왔지만, 4과는 그 분을 위한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제국의 충신이신 부장님의 뜻을 받들어 제국에 헌신하며, 우리의 은인이신 그 분을 따른다.
“경애하는 부장님을 위해.”
스스로 다짐을 하기 위해 조용히 읊조리듯 하는 말. 그러나 제국의 관료이기에 입에 담을 수 없는, 그 분을 곤란하게 할 수 있어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말을 조용히 떠올렸다.
경애하는 주인님을 위해.
***
세번째 영광인지 지랄인지는 하나라도 놓치면 곤란한 거지, 소탕 자체는 일도 아니다. 정보부장도 최근에 알 정도의 신생 반군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나. 그런 것들은 여러 개가 우르르 몰려와도 묵광대에 흠집도 내지 못한다.
나와 1과장, 묵광대면 압도적인 우위로 찍어누를 수 있지. 원래 싸우기도 전에 승리를 확정 짓는 것이 유능한 장수라던데, 역시 나는 엿같은 감찰부가 아닌 군부에 있어야 할 인재가 아니었을까?
“부장님, 여기요.”
“그래.”
1과장이 건네주는 단검을 받아 날을 확인했다. 아직 아카데미에 있어서 눈에 띄는 무기를 소지하기는 곤란하고, 숲에서 교전이 벌어질 것 같으니 짧은 무기가 편하기는 하다. 이건 너무 짧은 것 같긴 하지만.
“현장에서 뛰시는 건 오랜만이네요?”
“내가 나설 일이 있어야 말이지.”
부장 짬에 아카데미에 상주하고 팔자에도 없는 던전 솔로잉 격파를 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교전에 참가하는 건 오랜만이다. 내가 싸우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리는 미친 놈도 아니니 일부러 참가할 필요도 없었고.
그래도 오랜만에 몸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니 색다른 기분이기는 하다. 너무 몸을 쓰지 않으면 굳어버릴 수도 있으니, 4과장한테는 적당히 포위만 유지하라고 해야겠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격스럽게도 본선 진출 50작 중 하나로 선발되었습니다. 비록 예선 심사는 100% 노벨피아 내부에서 이루어졌지만, 독자님들의 열렬하고 과분한 성원은 노벨피아 내부 심사관님들이 제 작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요인이라 감히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 후기를 통하여 독자님들께 다시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늘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독자님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3900여 개에 이르는 공모전 작품을 살피고 평가하신 심사관님들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