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91)
로판 속 공무원 391화(392/451)
무려 20대의 나이로 황태손의 대부가 된 실세 중의 실세. 차차기 황제를 (물리적으로) 등에 업을 예정인 정계의 거물.하루아침에 어마어마한 타이틀을 달게 됐으나 딱히 일상에 변화가 오지는 않았다.
그야명성이 오른 것을 실감하려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나는 아카데미에 처박혀서 늘 보는 사람만 보고 있지 않나. 심지어 사교계에 관심도 없었으니 누가 먼저 친한 척 말을 걸어오는 일도 없다.
‘별거 없네.’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대부라는 이름에 짓눌린 건 황태자의 통보를 받은 날부터 황태손 임명식이 있던 날까지였고, 정작 임명식이 끝나니 놀라울 정도로 평온하다.
차라리 내가 황궁에서 황태손을 보살피면 또 모르겠지만, 생후 1주인 아기를 비숙련자가 관리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황태자비도 노련한 시녀들의 허락이 있어야 겨우 만지고 안을 수 있을 정도니까.
‘아기라.’
무심코 시선을 내리깔았다. 대부 발표 때 황태손을 잠깐 안았던 손, 그 손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아─”
아직도 황태손의 옹알이가 귓가에 맴도는 기분이다. 그 어떤 소리보다도 작은 소리였지만 이상할 정도로 머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던 아기가, 손가락을 겨우 꼼지락거리던 아기가 왜 이리 크게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아기가 가지는 귀여움에 홀린 건가?
“벌써 옹알이를 하다니, 영특하구나!”
물론 아무리 홀렸어도 황태자보다는 덜 홀렸을 거다. 임명식이 끝난 후, 뒤늦게 황태손의 옹알이를 들은 황태자는 입이 찢어지도록 웃으며 기뻐했었지.
사실 황태자 입장에서는 첫 자식이니 당연한 반응이기는 하겠지만. 그걸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이상한 건가?
‘…대녀한테 정이 붙으면 좋은 거지.’
짧은 고민 끝에 간단한 결론을 내리며 침대에 몸을 뉘었다.
어차피 맺은 대부-대녀 관계라면 애정으로 보살피는 것이 맞다.이왕 이렇게 된 거 미래에 생길 자식들을 미리 기른다 생각하는 것도 좋을 테고.
‘좋은 대부가 되자.’
목표는 황태손의 입에서 ‘아바마마보다 대부님이 더 좋아요.’ 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거다.
그때 황태자가 지을 표정을 상상하니 절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
요즘 들어 죽음이 두려워졌다.
인간이 사후에 겪는 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덕을 쌓은 자가 죽으면 에넨이 계시는 천상으로, 죄가 많으면 지옥으로 간다는 설.
그 설이 사실이라면 나는 제국의 황태자로서 황실과 제국, 신민을 위해 노력했으니 천상으로 갈 확률이 높은데─
‘가봤자 실망만 할 것 같군.’
이미 천상을 경험하고 있는 상황이라 죽은 뒤에 겪을 공허와 실망이 두렵다. 사후세계도 현생과 똑같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나.
허나 어쩔 수 없다. 이는 천사를 실수로 지상에 내려보낸 에넨의 잘못이니.
“아아─”
“후후, 엄마는 여기 있단다.”
황태손의 옹알이에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는 황태자비. 그 아름다운 광경에 나도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2황자라는 인세의 악마에게 시달린 나를 위해 에넨이 인세의 천사를 보낸 거라고. 그것도 비와 황태손, 무려 둘이나.
그렇게 두 천사를 보는 사이, 품 속의 통신구가 짧게 진동했다. 잠시 시간을 내서 자리를 비운 것이지 지금은 엄연한 업무 시간이었다.
‘이런.’
그렇기에 슬쩍 구석으로 물러나 통신구를 확인하자 부황께서 보낸 안타까운 내용의 문자가 있었다.
[ 디트리히 덴나르 오브 안트라흐 남작, 궁내성 장관직 사임. ]부황의 파트너이자 심복으로서 수십 년을 활약한 궁내성 장관의 사임. 그 내용을 보자마자 탄식을 내뱉을 뻔했다.
궁내성 장관은 부황을 도와 혼란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제국을 재건한 1등 공신이다. 비록 부황보다도 나이가 많지만, 사실 부황보다 연장자인 관료는 제법 많다. 그러니 그 능력을 살려 더욱 일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그러나 차마 말릴 수 없었다. 장관의 사임을 부황께서 최종 승인하신 것도 있으나, 궁내성 장관이라는 자리는 오직 한 명의 황제만을 섬기는 자리다.
‘어차피 내가 즉위하면 교체될 자리지.’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새로운 황제와 새로운 궁내성 장관이 이끌어가는 행정부, 그것이 제국의 관례니까.
‘당분간 재무성 장관이 행정부를 이끌어야겠어.’
문득 떠오른 생각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부황께서 새로운 궁내성 장관을 임명하면 현 장관이 사임한 의미가 없고, 그렇다고 내 측근을 임명하기에는 아직 즉위하지 못했다.
이 필연적인 공백을 재무성 장관이 재무성 업무와 함께 감당해야 한다.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음?’
속으로 재무성 장관을 향해 애도를 표하며 부황께서 보낸 문자를 계속 확인하니, 상당히 인상 깊은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하.”
그리고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부황께서는 양위 직전까지도 화려한 행보를 보이시는구나.
***
조직이 있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계급이 있고, 계급이 있다면 승진을 비롯한 인사이동이 있는 법이다.
이는 제국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제국은 국가를 아우르는 거대한 관료제를 유지하고 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갈망하고 주시하는 인사이동이 이루어진다.
구체적으로는 반기마다 이루어지는 정기 인사이동, 당장 공백을 채우지 않으면 곤란할 때 이루어지는 긴급 인사이동, 마지막으로 제국의 경사가 있을 때 이루어지는 특별 인사이동. 이렇게 세 가지 경우가 있다.
‘황태손 임명이면 제국의 경사로 충분하지.’
그리고 임명식이 이루어지고 닷새 후인 오늘, 그 세 가지 경우의 수 중 맨 마지막 경우의 수가 발동됐다.
‘…이번에도 별일 없겠지?’
나도 모르게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오늘 특별 인사이동 발표가 있을 거라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계속 이랬다.
다행히 올해 있는 두 차례의 정기 인사이동을 무사히 넘겼다. 심지어 전쟁 피해도 크지 않아 긴급 인사이동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황태손이라는 깜짝 변수가 등장했다.
미칠 노릇이다. 셋 중 정기 인사이동은 발표 전부터 이동 당사자에게 귀띔을 주지만, 긴급 인사이동과 특별 인사이동은 그런 거 없다. 나도 긴급 인사이동 때문에 자고 일어나니 감찰부장이 되지 않았던가.
두렵다. 솔직히 장관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이상 내가 승진할 가능성은 존나게 존나 낮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세운 공도 그렇고, 황태손의 대부라는 명예도 그렇고, 승진할 명분이 너무 덕지덕지 붙고 말았다.
‘괜찮을 거야.’
그럼에도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괜찮을 거다. 내가 올라갈 곳은 재무성 장관 자리밖에 없고, 그 자리는 장관이 묵묵히 지키고 있다. 나 승진시키자고 장관을 퇴직시킬 정도로 황실이 자비롭지는 않다.
‘떴다.’
끊임없는 자기 암시를 하는 사이, 통신구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왔다. 이 빌어처먹을 인사이동, 낙인 같이 끔찍한 인사이동 결과가 나왔다.
“제발!”
나도 모르게 간절함을 담아 육성으로 외치고 말았다. 감찰관 숙소에 홀로 있어서 망정이지, 근처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딱한 눈으로 봤을 거다.
물론 딱한 시선을 받고 감찰부장직 유지면 남는 장사다. 황제 폐하, 부디 저를 가엽게 여겨주십쇼…!
[ 에넨의 가호와 대제의 보우하심에 황실은 큰 복을 얻었나니, 이에 황실은 그 기쁨과 영광을 기념하며─ ]일단 의례적인 서두는 빠르게 넘겼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미친 듯이 내용을 넘겼다. 에넨의 은총이니 뭐니, 대제의 덕이니 뭐니, 황실의 홍복이니 뭐니, 그런 미사여구는 나에게 닿지 않는다.
[ ─궁내성 장관은 공석으로 둔다. 궁내성 장관의 업무는 황실부장이 대행하며, 행정부의 책임자는 재무성 장관이 맡도록 한다. ]그러던 중 궁내성 장관직이 공석이 됐다는 내용에 잠깐 움찔하고 말았다.
‘사임했네.’
자신을 임명한 황제의 재위를 함께하는 것이 궁내성 장관의 의무. 그렇기에 궁내성 장관이 조만간 물러날 것은 예상했지만, 설마 양위 전에 물러날 줄은 몰랐다.
오늘만큼 궁내성 장관─ 아니, 전대 궁내성 장관이 부러운 적은 없었다. 나보다 오래 일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부럽다.
‘…일단 재무성 장관은 공석이 아니다.’
그렇게 다소 추한 부러움과 질시를 마치고 다시 통신구로 시선을 돌렸다.
행정부의 책임자는 재무성 장관이 맡는다는 말을 볼 때, 재무성 장관직도 누군가 채우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그게 지금 장관일지, 깜짝 승진을 한 나일지가 관건이다.
‘제발.’
몇 번째일지 모르는 기도를 올리며 다음 내용을 확인했다. 만약 ‘재무성 장관은 칼 크라시우스 오브 위리디아가 맡는다.’ 같은 문장이 나오면 혀를 깨물 자신도 있다.
[ 재무성 장관은 현 장관, 데베르 브리아드 오브 블로첸 백작이 유임한다. ]그리고 하늘은 내 간절함에 응답했다.
마음으로 울었다.
재무성 장관이 그대로라는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통신구를 내던질 뻔했다. 내가 승진한 것만 아니면 그 외는 알 바 아니니까. 솔직히 내가 잘리거나 강등됐을 일은 없잖아.
하지만 사회생활의 기본은 경조사를 함께 하는 것이다. 업무적으로 알던 사람이 승진한다면 축하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 그렇기에 급격히 온화해진 마음으로 다음 내용들을 계속 확인했다.
‘뭐야 시발.’
그러던 중 끔찍한 내용을 발견하고 말았다.
행정부 장관 인사에 대한 문단 맨 마지막에 적힌 내용. 실로 짧고 간결했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 재무성 소속 감찰부, 특무성 소속 정보부, 특무성 소속 묵광대, 특무성 소속 청산대, 특무성 소속 염화 마법사단을 통합하여 감찰성을 조직한다. ]순간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뭘… 통합해? 뭘 만든다고?
[ 새로 조직될 감찰성 창립 위원장은 현 감찰부장 칼 크라시우스 오브 위리디아 백작이 맡으며, 이후 초대 감찰성 장관 역시 칼 크라시우스 오브 위리디아 백작이 맡는다. ]…
“시발.”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욕밖에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