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92)
로판 속 공무원 392화(393/451)
오늘 내 세상이 무너졌다. 아니, 어쩌면 어제.
그런데 어차피 무너진 세상이면 오늘이나 어제나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미래가 없다는 건 마찬가지이지 않나.
‘진정하자.’
잠깐의 절망 끝에 눈을 감으며 심호흡을 했다. 다시 생각하자. 한 사람의 세상이 무너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이 나에게 찾아올 리가 없다.
그래, 이건 악몽이다. 난 극도의 불안감 때문에 잠깐 기절한 거다. 눈을 뜨면 이런 끔찍한 악몽이 아닌 정상적인 인사이동 명령이 눈에 들어올 거다. 분명 그럴 것이다.
[ 새로 조직될 감찰성 창립 위원장은 현 감찰부장 칼 크라시우스 오브 위리디아 백작이 맡으며, 이후 초대 감찰성 장관 역시 칼 크라시우스 오브 위리디아 백작이 맡는다. ]“시발.”
허나 눈을 떠도 변하는 건 없었다. 오히려 눈을 쉬게 한 다음에 봐서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믿을 수 없다. 감찰부는 약 100년 전에 설립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철저히 ‘부’급 부서로 존속되었다. 비록 감찰부의 권한과 위상이 재무성 휘하 일개 부서로는 걸맞지 않는다는 평을 들었으나, 그렇다고 정말 ‘성’으로 올려버리는 건 별개의 문제다.
심지어 이름만 감찰성으로 바꾸는 게 아니다. 특무성 휘하의 조직도 여러 개 뜯어서 융합시켰다.
‘이러면 진짜 성급 부서 수준인데.’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부 시절의 체제를 가진 채 이름만 성으로 변한 거면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다. 의전 서열은 순식간에 오르겠지만 하는 일 자체는 그대로니까.
하지만 이 인사이동 명령에 따르면 곧 만들어질 감찰성은 다른 성에 비해 작을지언정, 확실히 성급 크기로 진화하게 생겼다. 그만큼 업무와 책임이 나란히 상승한다.
‘돌아버리겠네.’
결국 한숨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10대에는 최연소 부장이 됐는데 20대에는 최연소 장관이라고? 제국 역사가 아니라 대륙 역사를 뒤져봐라. 이런 전례가 있었나.
‘어쩌지 이거.’
망연히 통신구를 바라봤다. 미리 귀띔을 들어서 조절이 가능한 정기 인사이동이면 모를까, 긴급 인사이동과 특별 인사이동은 발표하면 그걸로 끝이다. 황제의 이름으로 모든 신료들에게 공표한 최종안이기에 무를 수 없다.
게다가 만약, 아주 만약 무를 기회가 있다고 해도 황제가 들어줬을 것 같지는 않다. 부를 성으로 승격하는 강수를 동원했는데 도로 물린다? 황제는 절대 그럴 성격이 아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승격을 언급하지 않을 사람이지.
망할, 혹시 내가 대부가 돼서 장관으로 올린 건가? 황태손의 대부가 일개 부장인 것이 거슬려서 격을 맞추기 위해 승진시킨 걸 수도 있다.
‘아.’
그렇게 합리적 의심을 하던 중, 갑작스레 통신구가 반짝여서 움찔하고 말았다.
본능적으로 손이 떨렸다. 이 연락을 받으면 속이 터질 미래가 어렴풋이 보였다.
“감찰부장입니다.”
그래도 아들의 승진 소식을 접한 아버지나, 난데없는 부서 승격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차장의 연락일 수도 있으니 받았다.
– 오, 받으셨군요. 축하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으실 줄 알았는데 다행입니다.
그리고 받자마자 후회했다.
–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오늘은 기쁜 날이지 않습니까?
누가 봐도 행복한 듯 미소 짓는 장관을 보니 미칠 것 같았다.
“…갑자기 왜 존대를…”
– 곧 장관이 되실 분에게 반말을 할 수는 없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본인도 본인이 한 말이 웃겼는지, 장관은 이제 웃음까지 터뜨리기 시작했다.
개새끼. 에넨은 저런 인간 안 잡아가고 뭐 하는 거지?
***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황태손 전하의 등장으로 황실의 후계 구도가 굳건해진 것은 신하로서 기쁜 일이나, 그 여파로 궁내성 장관이 조기에 사임한 것은 거슬리는 일이다. 궁내성 장관은 단순히 궁내성 업무만 처리하지 않고 장관 서열 1위로서 행정부 전체를 이끌어가니까.
다행히 궁내성 업무 자체는 황실부장이 대행하지만, 당분간 행정부의 1인자 역할은 재무성 장관인 내가 수행해야 한다. 탄식이 절로 나올 일이다.
그러나 그 탄식은 얼마 후, 어느 문장을 보자마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으하하핫!”
정말 진심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 건 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물론 기쁨의 웃음 정도는 몇 번 있었으나, 이건 그 성격이 다르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기쁨보다 희대의 광대를 본 듯한 유쾌함에 가깝다.한참이나 웃음을 터뜨리다 겨우 진정했을 정도로.
[ 새로 조직될 감찰성 창립 위원장은 현 감찰부장 칼 크라시우스 오브 위리디아 백작이 맡으며, 이후 초대 감찰성 장관 역시 칼 크라시우스 오브 위리디아 백작이 맡는다. ]“프흐─”
시선을 돌리자마자 보이는 문장 때문에 진정한 것이 무색하게 다시 웃음이 터졌다. 고작 한 문장에 이토록 강력한 힘이 있다니, 경이로울 정도다.
‘감찰성이라.’
아무튼 2차로 터진 웃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놈의 지인으로서 가지는 유쾌함과 재무성 장관으로서 해야 할 고민은 별개다.
일단 그놈이 장관이 되는 것, 장관이 되어 오열하고 광분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너무나 기뻐서 앞으로 10년은 기쁘게 일할 수 있을 정도다.
허나 휘하에 있던 감찰부가 독립적인 성이 되는 것, 유력한 차기 장관 후보라고 생각했던 놈이 다른 성의 장관이 되는 것은 상상도 못한 변수다. 안 그래도 궁내성 장관의 공백을 메워야 하는데 다른 문제까지 겹쳐버렸다.
‘…차기 장관이야 굳이 내가 정할 필요는 없지.’
그나마 차기 장관에 대한 걱정은 깊게 하지 않아도 된다. 고위 관료가 자신의 후임자를 추천하면 높은 확률로 황제 폐하께서 들어주시나, 의무는 아니다. 추천을 하지 않고 물러나면 황제 폐하가 원하는 인물을 내 후임자로 정하실 거다.
즉 그놈이 내 뒤를 잇지 않는 것이 아쉬울 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 수십 년 후에 놈이 장관이 되는 걸 보는 것보다는 지금 되는 걸 보는 게 낫지. 이건 웃으면서 넘어가자.
‘감찰부 없는 재무성.’
그렇다면 내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감찰부라는 부가 사라진 것이다. 재무성을 지탱하는 다섯 개의 부 중 하나가 이탈한 희대의 사태.
…
‘지장 없겠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없어도 괜찮다.
감찰부는 말만 재무성 휘하였지, 사실상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모든 부서에 관여하는 기이한 부서지 않았나.나도 감찰부 소속이었던 만큼 잘 알고 있고, 재무성 장관이 된 후로도 감찰부에게는 명목상 보고만 받고 있었다.
그런 결론을 내리니 다시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놀랍도록 이번 감찰성 창설 사태는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 감찰부장입니다.
그렇기에 기쁜 마음으로 연락을 걸었다. 이건 내가 반격당할 일 없이 일방적으로 놀릴 수 있는 사안이다.
“오, 받으셨군요. 축하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으실 줄 알았는데 다행입니다.”
그 말에 녀석의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오늘은 기쁜 날이지 않습니까?”
– …갑자기 왜 존대를…
“곧 장관이 되실 분에게 반말을 할 수는 없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더욱 일그러진 표정을 보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황제 폐하께서 양위 전에 큰 선물을 주고 가셨다.
***
온갖 쌍욕을 겨우겨우 억누르며 좋은 말을 내뱉었다.
“노망났습니까?”
내가 생각해도 신사적인 대답이다. 이 세상 누구도 이런 초인적인 인내와 자비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거다.
– 좋은 날에 성질 내기는.
장관도 그제야 소름 끼치는 존대를 거두고 평소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좋은 날은 개뿔이 좋은 날이야. 좆 된 날이면 인정하겠는데.
– 뭐, 아무튼 장관 된 거 축하한다. 사실 네가 장관이 되는 건 확정이지 않았냐? 언제 되느냐가 관건이었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20년은 지나서 될 줄 알았습니다! 20대 장관이 말이 됩니까!?”
진심 가득한 외침에 장관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저 양반도 마지막 양심이 있다면 내 처지를 가엽게─
– 내가 20년이나 장관직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이 시발, 마지막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네.
철저하게 자기 보신을 생각하는 장관의 모습에 할 말을 잃고 말았지만, 정작 장관은 갑자기 입꼬리를 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나는 20년 정도 일하겠지. 너는 60년 정도고.
“제발 나가서 뒤지십시오.”
순간 상관 살해면 감찰성 장관이고 나발이고 퇴직당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하늘 베기 한 방만 날리게 해줘.
그 뒤로 여러 대화가 오고 갔지만 내 멘탈만 일방적으로 망가졌다. 평소라면 장관에게 소소한 반격이라도 할 텐데, 도저히 반격할 수단이 떠오르지 않는다.
– 그래도 다행이지. 네가 아카데미에 있어도 차장이나 정보부장이 창립 위원장 역할을 할 거다. 애초에 감찰부 때도 사무는 차장이 다 했잖냐.
게다가 부정할 수 없는 팩트로 확인사살을 날리기까지 했다.
사실 창립 위원장 문제가 내 유일한 희망이었다. 무려 새로운 성급 부서를 창립하는 일인데, 그 위원장이 제도가 아닌 외부에 있다. 그렇다고 제도로 복귀하기에는 타국 왕족들을 관리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 중이다.
그러한 명분을 내세워서 창립 위원장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거나 최대한 감찰성 창립 일정을 연기하는 게 어떨까, 그런 소소한 희망을 잠깐 품었다.
장관이 바로 박살 냈지만.
‘…정보부장이 하면 잘할 텐데.’
자꾸 미련이 남는다. 솔직히 정보부장이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길잖아. 초대는 정보부장이 하고 그 후임을 내가 하면 안 되나? 내가 그것까지는 납득할 수 있다.
물론 헛된 미련이다. 이 인사이동은 내가 장관이 되어야 완성되는 판이다.
‘울지 마, 내 안의 사직서.’
슬슬 통신구에 쌓이기 시작하는 승진 축하 문자를 보며 속을 가라앉혔다. 개선식 때 황제에게 큰 선물을 받아서 참는 거지, 평소였으면 이 타이밍에 사직서 제출했다.
그렇게 차장, 정보부장, 에르제베트, 페넬리아, 2과장의 문자를 차례로 확인하는 사이, 아버지가 보낸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 장관 내정자가 된 것을 축하한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른 속도지만 그만큼 너의 능력과 충성이 인정 받았다는 것이니 아비로서 기쁠 따름이다. ]진심이 가득한 문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특히 장관 ‘내정자’ 라는 단어가 너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이윽고 이어지는 문장에 눈을 의심했다.
[ 작위 계승식은 너에게 여유가 생기면 하는 게 좋겠구나. 최대한 그때 맞출 터이니 시간이 되면 연락다오. ]…
작위 계승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