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94)
로판 속 공무원 394화(395/451)
형이 무언가 사고를 치거나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면 나도 덩달아 주목을 받는다. 아니, 사실 형보다 많이 받는다. 형한테 직접 말을 걸 수 있는 용맹한 자는 극히 드무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일이나, 아카데미에 입학한 후부터 심심치 않게 겪은 일이기도 해서 요즘은 별 감흥도 들지 않는다. 솔직히 나였어도 말 걸기 무서운 형보다 상대적으로 만만한 동생에게 시선이 갔을 테니.
오히려 이제는 이 관심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지에 올랐다. 나는 누구나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는 포근하고 선량한 인상인 거라고. 가주님과 형이 나란히 딱딱한 인상이니 나라도 정상인 게 좋지, 아무렴.
하지만 지금 상황은 웃어 넘길 수 없을 것 같다.
‘따갑다.’
며칠 전부터 수도 없이 꽂히는 시선 때문에 뒤통수를 긁을 뻔했다. 단순한 시선으로도 이렇게 부담스러울 수 있구나.
‘차라리 말이라도 걸었으면.’
그리고 적극적인 질문보다 무언의 시선이 더 부담스럽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사건은 소문에 민감한 귀족 자제들 입장에서도 함부로 입을 열기 곤란하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대부에 장관이라.’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오고 말았다.
아카데미 학생들은 거물의 등장에 예민한 귀족의 습성, 호기심 많은 10대의 특성을 동시에 갖춘 존재다.그런 학생들이 눈치만 보고 있다? 그만큼 이번 사안은 일개 귀족이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이해한다. 아무리 정계와 사교계를 달구는 유명인이라도 그 인사의 격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감히 입에 담기도 두려워진다. 대표적으로 황족과 공작들이 그렇다. 혹시 자신의 사소한 한 마디로 그 고귀한 존재의 심기를 거스르지는 않을까 극도로 조심하게 된다.
애석하게도 지금의 형이 그렇다. 전쟁 영웅이자 황태손의 대부, 최연소 장관 내정자. 일생의 한 번 얻기도 힘든 명예를 동시에 손에 넣은 형은─ 잠시나마 공작과 비등한 수준의 존재가 된 것이다.
‘일단 피하자.’
짧은 고민 끝에 몸을 일으켰다. 나 스스로를 ‘말 걸기 편한 동생’이 아닌 ‘공작과 비등한 존재의 동생’이라고 생각하니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미안해졌다.실제로 갑작스레 몸을 일으키자 근처에 있던 학생들이 거리를 벌릴 정도였다.
역시 지금은 피하는 게 옳은 선택이다. 소문이 좀 잠잠해질 때까지는 최대한 혼자 있자.
아카데미에서 가장 안전하고 한적한 곳에 도착했다.
“…그래서 여기 온 거라고?”
“응.”
단호한 대답에 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뭐. 부원이 동아리실에 있는 게 이상한 건 아니지. 편히 있다 가라.”
주인의 허락에 마음이 놓였다. 혹시 ‘동아리실은 동아리 시간에만 개방한다.’ 라는 이유로 쫓아내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그래, 애초에 너무 과한 걱정이었다. 형이 표정이 딱딱한 거지 인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잖아. 심지어 다른 이유도 아닌 본인 때문에 방랑자가 된 동생을 쫓아낼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
“그런데 어땠길래 도망까지 온 거냐?”
“평생 받을 시선은 다 받은 것 같아.”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 형에게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듣는 사람은 과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진심이다. 시선에도 물리력이 있었다면 내 머리에는 이미 구멍이 났을 거다.
“저런.”
그러나 형에게 내 진심이 닿았는지, 형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측은한 시선을 보냈다.
고마운데 뭔가 열받는다. 유일한 이해자가 사건의 원흉이라니, 대체 뭔데.
“그래도 미리 시선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다. 의원이 되면 이래저래 관심받을 일이 많다고 하던데.”
“그게 형이 할 말이야?”
조언을 가장한 저주에 나도 모르게 격한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형도 뒤늦게 아차 싶었는지 슬쩍 시선을 돌렸고.
그런 형을 원망스레 보다가 힘없이 천장을 올려다 봤다.
‘의원 대리.’
한숨이 나왔다. 대부와 장관에 묻혀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형은 조만간 타일글레헨 백작위도 물려받을 예정이다. 제국에 서른 명밖에 없는 제국백 중 하나가 되는 것이고, 제노비아 누나를 제외하면 현 제국백 중 가장 젊은 제국백이 되는 거다.
문제는 곧 제국백이 될 형이 행정부의 고위 관료라는 점이다. 제국백의 권리이자 의무인 제국의회 의원직을 맡을 수 없는 입장인 것.덕분에 가주님이 의원 대리로 활동하신다고 하는데, 은퇴한 가주님이 평생 대리로 활동할 수는 없지 않나.
‘졸업하자마자 의원 대리.’
원망스럽다. 본인이 의원직을 수행하지 않고 나에게 떠넘기는 형이 원망스럽다.
사실 행정부에서 구르고 있는 형의 잘못은 없다고 보는 게 옳지만 아무튼 원망스럽다. 이 감정이 커지면 작위를 물려준 가주님도 원망스러울 것 같다.
‘내 인생…’
찔끔 눈물이 나올 뻔했다. 형이 행정부 고위 관료니 언젠가는 내가 의원으로 활동할 미래를 각오했으나, 아무리 빨라도 20년 후일 줄 알았지. 그 20년 동안 하고 싶은 거 하고, 산도 가르고 다 하고 싶었는데.
지금이라도 동생이 생기기를 바라는 건 너무 양심 없는 생각이겠지? 차라리 형이 자식을 낳아서 그 자식이 대리를 하는 게 더 빨─
“아.”
형의 목소리가 상념을 끊었다.
“그러고 보니 호르펠트 백작이 안부 좀 전해 달라고 하더라.”
“누나가?”
“어. 그리고 의원 대리 일로 고민이 많으면 상담해 줄 테니 연락 달라고─”
그 뒤로 형이 하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제노비아 누나의 마음씨에 감동하여 귀가 막히고 말았다.
누나가 동아리 박람회에 방문한 이후로는 틈틈이 연락을 주고 받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잊지 않고 안부 겸 축하 인사를 했었다. 게오르크 아저씨가 무사히 귀환했으니 소꿉친구로서 당연히 할 일이었지. 아저씨가 호르펠트 백작령이 아닌 제도에서 방황하는 게 의아해서 겸사겸사 물어보기도 했고.
아무튼 그렇게 연락을 주고 받았음에도 의원 대리에 관한 말은 누나에게 하지 않았다. 너무 최근 일이기도 하고, 현직 의원에게 ‘의원 대리 하기 싫어.’ 같은 말을 하는 게 민망하기도 했고.
‘누나…’
그럼에도 제노비아 누나는 나를 먼저 걱정해주고 안부를 건네줬다. 무거운 짐을 넘긴 친형과 너무 대조적이다.
그렇기에 홀린 듯이 품 속의 통신구를 꺼냈다.
이 감동을 표현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
잠시 펜을 놓고 기지개를 켰다. 아침부터 책상 앞에 앉아있었더니 몸이 뻐근하다.
문득 뼛속까지 무인인 아버지가 어떻게 이런 사무를 보신 건지 의문이 들었다. 조금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시는 분인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십 년이 넘게 이러셨다고?
‘그동안 많이 참으신 거네.’
홀로 머리를 굴리다가 도달한 결론에 픽 웃음이 나왔다. 제국백으로서 십 년이 넘는 세월을 참으셨으니, 이제야 쉬지 않고 밖을 돌아다니시는 거겠지.
그 활기 때문에 직접 전선에 서신 건 분통이 터지는 일이지만─
– 친구가 직접 싸우는데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느냐. 그것도 사돈이 될 수도 있는 친구인데.
“…….”
– 물론 약속을 어긴 건 내 잘못이 맞다. 그러니 장담하마. 앞으로는 나도 그 녀석도 절대, 절대 전선에 설 일이 없을 거다.
아버지의 사정을 들어보니 납득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 그러고 보니 제도에서 아저씨도 봤어. 전쟁도 끝났는데 고생이 많으신 것 같아.
에리히가 은근히 아버지를 옹호하기도 했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에리히가 그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애초에 아버지에게 화난 것은 맞지만, 화가 난 이유도 직접 싸우다 잘못될 뻔했기 때문 아닌가.
아버지를 위해 화낸 것이니 아버지를 위해 화를 거둔다. 당연한 이치다.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시겠지.’
그리고 솔직히, 아버지가 앞으로 내 말만 듣고 얌전히 지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냥 당분간이라도 조용히 지내시면 그걸로 족하다. 딸에게 쫓겨난 경험을 생각하면 몇 달 정도는 자중하실 테니.
‘…자중하시겠지?’
스멀스멀 불안감이 차오르려는 찰나, 책상에 둔 통신구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순간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지인들은 이 시간에 업무 중인 걸 아니 연락을 하지 않고, 에리히와는 주말에 대화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자동적으로 업무 관련 연락이겠지.
“호르펠트 백작입니다.”
– 누나, 나야.
이윽고 보이는 얼굴에 통신구를 든 채로 굳어버렸다.
– 미안해. 업무 중에 귀찮게 했지?
머쓱한 듯 웃는 에리히의 모습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마침 쉬고 있었거든.”
– 다행이네.
동시에 머리를 굴렸다.
뭐지? 에리히가 평일에 연락한 적은 거의 없는데? 게다가 지금은 수업 시간 아닌가? 아, 혹시 쉬는 시간? 아니, 그래도 오늘은 평일이잖아.
– 방금 형한테 얘기 들어서 연락했어.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칼 오빠가 감찰성 장관으로 내정되고 타일글레헨 백작이 되는 것이 반쯤 확정된 날, 오빠에게 축하 인사를 보냈었다. 오빠를 대신해서 의원 역할을 수행할 에리히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과 함께.
내후년이면 에리히랑 같은 곳에서 지낼 수 있다는 기쁨에 보낸 거였는데, 오빠가 잊지 않고 전해줬구나. 감동이다.
“우리 사이잖아. 그리고 의원 선배로서 후배를 걱정하는 건 당연하고.”
하지만 최대한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 너무 기쁜 티를 내면 의원 대리라는 중임을 맡아 부담스러울 에리히에게 압박을 주는 꼴이다.
지금은 에리히에게 위안을 주면 된다. 나를 의지할 수 있는 상대로 생각하게 만들면 된다.
‘좋아.’
실제로 내 선택이 옳았는지 에리히는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이렇게 마음 속에 자리 잡으면─
– 누나가 가족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시 몸이 굳고 말았다.
이성은 에리히가 말하는 가족과 내가 생각하는 가족이 다르다고 외쳤지만, 가슴은 저절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
에리히와 호르펠트 백작이 대화하는 걸 말없이 바라봤다.
‘어떻게든 되겠지.’
이윽고 그런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든 될 거라고.
가족(아내)가 될 생각이 가득한 호르펠트 백작에게 가족(누나) 운운하는 건 내가 커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저러다 2등분이 된다면 살인 사건이 아니라 자연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할 만큼 했다. 호르펠트 백작에 비해 배경이 부족한 세라를 위해, 물리적 거리가 먼 호르펠트 백작을 위해 여러 조언과 도움을 줬다. 에리히와 세라가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리거나, 호르펠트 백작과 대화하는 시간을 늘리거나─ 아무튼 누구 하나가 일방적으로 털릴 상황은 최대한 피하고자 했다.
‘힘내라.’
이제 남은 건 하늘과 당사자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통신구로 돌렸다. 사실 에리히가 에ㄹ/ㅣ히로 변할 미래의 가능성보다 지금 닥친 현실을 이겨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방금 전, 베아트릭스가 보낸 문자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우리 루이제… 원작 주인공이라 그런지 패기가 엄청나구나…
[ 나도 학창 시절에는 4인전을 즐겁게 보낸 기억이 있지.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 중이란다. 마법부 학생들에게 자극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이어지는 문장에는 무심코 눈을 감고 말았다.
베아트릭스 말처럼 마법부가 좋아할 것 같기는 하지만, 애들 잔치에 최종 보스가 난입하려고 하면 어떡해.
사제가 나란히 폭주하고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