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95)
로판 속 공무원 395화(396/451)
반 대항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4인전. 그 4인전에 참가할 것을 암시하는 베아트릭스의 문자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아니, 이 문자는 암시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그냥 참가하겠다는 의지를 직설적으로 표현했잖아.
그렇기에 몇 번이나 문자를 읽다가 조용히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날씨는 맑지만 내 가슴에서는 눈물이 장마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왜?’
이윽고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왜, 왜 베아트릭스가 애들 노는 곳에 끼어든단 말인가. 그리고 루이제는 왜 베아트릭스를 초대했단 말인가.
일단 백 번 양보해서 베아트릭스의 참전은 이해할 수 있다. 본인이 먼저 참가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유일한 제자의 제안이었고, 베아트릭스가 나서면 마법부 학생들이 신을 영접한 것처럼 오열하고 환호할 것이 뻔하다. 소란은 있겠지만 가르치는 자로서 학생들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긍정적 소란이다.
소란은 있겠지만.
‘왜 초대한 거지?’
그러나 루이제의 난데없는 최종 보스 초대,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차라리 루이제가 생각이 짧고 막 나가는 애면 이해하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애초에 루이제는 작년 4인전 때 있던 일을 가장 가까이서 본 인물이다. 아카데미에 전설로 남을 왕족 폭행, 그로 인한 근무지 근신이라는 희대의 사태를 실시간으로 관람한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게다가 에리히가 나를 4인전 외부 인사로 지목했을 때부터 미안해했고, 내가 근신을 당할 때는 진심으로 슬퍼했다. 그런 루이제가 이런 대형 사고를 아무 이유 없이 일으켰을 리 없다. 77년도 시즌 부원들이면 모를까 절대 루이제는 그럴 리 없다.
‘당사자한테 확인해야겠네.’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며 베아트릭스에게 답장을 보냈다. 자세한 건 동아리 시간에 얘기하자고.
이 문제는 루이제, 베아트릭스와 삼자 대면을 하는 수밖에 없다.
동아리 시간이 되자 사고를 친 개의 표정을 지으며 들어온 루이제를 자리에 앉혔다. 다행히 본인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 것 같으니 대화는 편할 거다.
그 옆에는 당연히 베아트릭스를 앉혔다. 백 번 양보해서 베아트릭스의 4인전 참가를 이해한다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지지한다는 말은 아니다. 제자가 이상한 제안을 하면 스승으로서 타일러야지, 그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왜 이러는지 알지?”
“네, 네…”
많은 걸 내포한 말에 루이제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끄덕임과 대답에서 다소 시무룩한 기색이 느껴졌기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만약 에르제베트처럼 뻔뻔함으로 무장했다면 입술을 잡아당겼겠지만, 본인의 잘못을 아는 사람을 너무 심하게 쪼고 싶지는 않다.
“화가 난 건 아니야. 그냥 조금 당황스러워서 그래.”
부드러운 목소리에 루이제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진지하게 지켜보던 부원들도 평온한 낯으로 구경하기 시작했고.
“사정이 있던 거지?”
“그, 네, 맞아요.”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루이제의 모습에 서서히 마음이 풀렸다.
그래, 루이제가 아무 생각 없이 그럴 리가 없지. 분명 피치 못할 사정이 있던 거였겠지.
“그게, 마법부 학생들이 너무 강하게 부탁해서요.”
“마법부에서?”
강한 부탁이라는 말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법부 학생들이 베아트릭스에게 홀린 광인들이기는 하지만, 감히 그 제자에게 압박을 가할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마법사의 광기를 너무 과소평가한 건가?
“아, 정말 부탁이었어요. 다른 압박은 없었고요.”
내 의문을 눈치챘는지 루이제가 황급히 덧붙였다.
그나마 압박이 아니라는 건 다행이다만, 오직 부탁만으로 루이제가 움직일 정도면 대체 얼마나 처절하게 부탁을 한 거지?
“매주 수업도 듣고 있으면서 욕심이 과하네.”
불쾌하다. 마종공의 가르침이라는 일생의 둘도 없을 행운을 누리는 주제에 너무 과한 욕심을 부렸다.수업으로 만족할 것이지 내 셋째 부인을 괴롭혀서 둘째 부인을 움직이게 해? 괘씸하기 짝이 없─
“그, 오라버니. 사실 최근 수업에 조금 문제가 생겼어요.”
“응?”
그 말에 고개를 기울이고 말았다. 수업에 문제가 생겨?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 베아트릭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베아트릭스의 수업에 문제가 생길 수가 있나? 마법 최고 권위자가 직접, 정성을 다해 가르치는 건데?
‘진짜네.’
하지만 민망한 듯 시선을 내리 까는 베아트릭스의 모습을 보니 도리어 확신이 생겼다. 진짜 무슨 문제가 있다.
‘대충 가르치는 건가?’
이상한 결론이지만 동시에 가능성 높은 일이다.
일생에 다시없을 수업을 듣고 있는 마법부 학생들이 ‘4인전에 마종공 각하를 내보내줘!’ 라고 할 정도로 새로운 가르침(실기)를 바라고 있다. 이건 기존에 듣고 있던 수업이 더 이상 학생들의 갈망을 채울 수 없다는 의미 아닌가.
만약, 만약 남을 가르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베아트릭스가 권태로움을 느끼고 설렁설렁하는 거라면? 그렇다면 마법부 학생들의 이 기괴한 부탁도 이해가 간다.
“혹시 애들이 수업을 못 따라오고 있어?”
그러나 베아트릭스에게 ‘일 대충하는 거야?’ 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다른 말을 꺼냈다. 수준 높은 베아트릭스의 가르침을 학생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거냐고.
그런데 말하고 나니 이게 더 가능성 높은 것 같다. 지식이 많은 것과 가르치는 건 별개의 문제지 않나. 게다가 빙의 전 세계에서도 학부생이 교수의 가르침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게─”
잠시 망설이던 베아트릭스가 입을 열기 시작하자 헛웃음이 나왔다.
베아트릭스의 가르침에는 문제가 없었다. ‘천재는 범인의 마음을 모른다.’ 라는 말이 있지만, 베아트릭스는 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고 자세히 알려줬다. 그 자비로운 은총에 마법부 학생들이 광분한 건 당연한 일.
덕분에 베아트릭스의 일방적 가르침 외에도 학생들의 무수한 질문이 있었는데, 이조차 수업 시간 내라면 베아트릭스는 기꺼이 답해줬다.
그렇게 1학기 동안 베아트릭스는 마법부 학생들의 열정과 수준을 완벽히 파악했다.
그리고 재앙은 2학기부터 시작됐다.
“아이들의 수준은 파악했으니 2학기부터는 더 심화적인 수업을 하려고 했단다. 발표와 토론을 중심으로 계획을 짰었지.”
물론 열정과 광기 사이에서 탭댄스를 추는 마법부 학생들이 발표, 토론이라는 장벽에 막힌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존경하는 권위자 앞에서 자기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딱 1주만.
“인상적인 발표구나. 기존 마법을 새로운 시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 것이 느껴졌어.”
“가, 감사합니다!”
“마침 그 마법이 내가 70년 전에 만든 마법이구나.”
“…….”
애석하게도 살아있는 학계의 전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라는 원리에 따라 새로운 마도구를 만들었습니다.”
“훌륭하구나. 사소하지만 상당히 중요한 발상이야.”
“감사합니다!”
“나도 30년 전에 같은 마도구를 만들었단다. 결함이 발견돼서 상용화는 실패했지만, 혼자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게 중요하지.”
“…….”
심지어 그 전설은 단순히 지식에서 그치지 않고 활용법에도 극에 이른 하늘 위의 존재였다.
마법 연구와 마도구 제작은 베아트릭스가 걸어온 길이다. 덕분에 무슨 말을 꺼내도 학생들은 까마득한 경험으로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학생들은 ‘오히려 좋아.’ 상태였으나─
“아, 그 이론은 내 부친께서 정립하셨단다. 내가 개인적으로 손 본 내용도 있는데, 잘 됐구나.”
그날을 기점으로 모든 학생들은 침묵했다.
‘와.’
민망해하는 베아트릭스에게는 미안하지만 탄식을 내뱉을 뻔했다.마종공의 부친은 ‘탐명공’이라 불릴 정도로 마법에 몰두한 인물이다. 당대 제국 최고의 마법사라고 불린 존재로, 무수히 많은 마법과 논문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으니 그 위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는 학생들이 준비한 발표 대부분이 탐명공의 논문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고, 부친의 유산이 언급된 것에 기뻤던 베아트릭스는 기꺼이 세세한 피드백을 해줬다.
그래, 너무도 세세한 피드백이었다.
‘100년 전 이론을 피드백이라.’
끔찍하다. 탐명공은 100년 전에 세상을 떠났기에 그의 이론도 100년 전에 멈췄다.
더 이상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성역화 된 이론. 이는 발표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재료이나, 유감스럽게도 탐명공의 딸은 홀로 부친의 이론을 갱신하고 있었다. 마법계에는 발표하지 않고, 홀로.
그러니 어쩌겠나. 더 이상 마법부 학생들은 베아트릭스 앞에서 발표를 할 용기를 잃고, 2학기 수업은 그렇게 활력을 잃고 말았다.
…
“교장한테는 내가 잘 말해둘게.”
“그, 그래. 고맙구나…”
이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 절망한 마법부 학생들은 이론이 아닌 실기로라도 베아트릭스의 가르침을 보고 싶어 루이제에게 사정한 것이다. 졸지에 학생들을 전멸시킨 베아트릭스는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고 응한 것이고.
‘너도 당했구나.’
지금 보니 라테르의 표정도 어느 순간부터 씁쓸하게 변해 있었다.
실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
둘째 형수님이 4인전에 참가한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둘째 형수님은 공정성 문제로 ‘다른 반과 일대일 상황이 되면 기권하겠다.’ 라는 제한을 걸었지만, 마법부 학생들은 애초에 공정성은 신경 쓰지 않았는지 그저 참가에 환호했다.
‘저렇게 좋을까.’
웃음 가득한 얼굴로 떠드는 마법부 학생들을 보니 신기할 정도다.
이해할 수 없다. 저걸 우리 검술부로 치면 형이 4인전에 참가하여 하늘 베기를 보여주는─
‘최고네.’
바로 이해했다. 나라도 기뻐했을 거다.
그렇기에 이제는 미약한 질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법부는 저렇게 행복한데, 무려 마법의 정점이 참가했는데, 우리 검술부에서도 거물을 모셔와야 하지 않나?
“에리히.”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누군가 어깨를 흔들며 말을 걸었다.
“류티스?”
뒤를 돌아보자 무언가 큰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을 지은 류티스가 보였다.
너무 비장한 표정이라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