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96)
로판 속 공무원 396화(397/451)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난 류티스. 그리고 그런 류티스가 한 제안을 듣고 정신이 나가버렸다.
‘미친놈이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 내 앞에 있었다.
아니, 미친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꿈인가?’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류티스를 쳐다봤다. 난데없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을 때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끼기는 했지만, 언제나 좋지 않은 의미로 상식을 깨는 놈이다.
“진심이냐?”
잠시 침묵한 끝에 슬며시 입을 열었다. 농담이라는 대답을 바라며, 내가 잘못 들은 것이기를 바라며 입을 열었다.
“진심이다. 마법부에서 저렇게 나오니 검술부도 질 수 없지!”
‘미친.’
애석하게도 내가 들은 건 틀리지 않았고, 저놈도 농담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질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인데. 언제부터 검술부랑 마법부가 대결을 시작한 건데. 물론 나도 마법부에서 둘째 형수를 모셔왔으니 검술부도 거물을 모셔오는 걸 기대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바란 건 아니다.
‘형을 포섭하자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형을 4인전에 초대하자는 제안. 도대체 무슨 약을 해야 그런 발상을 하는지 모르겠다. 작년에 형을 4인전에 초대한 놈이 할 생각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
‘…형 말고 없기는 하지만.’
사실 이 대륙에서 검술의 정점을 고르라면 형이기는 하다. 마법의 정점인 둘째 형수와 맞먹을 존재는 하늘을 베는 검사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저번에 아카데미에서 하늘 베기를 시전하다가 팔이 잘린 이후로, 전쟁에 가서 직접 싸운 이후로 형은 검을 든 적이 없다. 애초에 검을 들 일이 없기도 했지만, 들었다 하면 부상을 입고 돌아오는 형 때문에 형수들의 눈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안 돼.’
소름이 돋았다. 만약 류티스의 말에 홀려 형을 4인전에 초대하면 그날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다.
둘째 형수는 4인전에 참가했으면서 왜 형은 안되냐는 항변 따위 통하지 않는다. 둘째 형수는 다친 적이 없고, 형은 다쳤다. 그것보다 확실한 명분은 없다.
“난 형수들하고 오래 살고 싶어.”
그렇기에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다소 뜬구름 잡는 듯한 말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는지, 류티스도 잠깐 주춤했다.
그래, 너도 양심이 있으면 더 나서지는 못하겠지.넌 졸업하고 귀국하면 끝이지만 나는 수십 년 동안 형수들을 보고 살아야 한다고.
그러니 괜한 말을 꺼내서 형수들에게 밉보이는 건 곤란하다. 내가 다른 국가로 망명하는 것이 아닌 이상 더더욱.
“고문 선생이 4인전에서 다칠 일은 없지 않나? 하늘만 베지 않으면 괜찮을 텐데?”
“다칠 일 없다 생각하고 종군하는 거 배웅해줬잖아.”
미련을 놓지 못하던 류티스도 그 말에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고 말았다.
형은 다칠 일이 없다고 생각한 일에도 다치고 돌아온 사람이다. 막말로 4인전에 참가했다가 ‘학생들의 열의가 뜨거워서 팔을 주고 왔다.’ 라고 할 줄 누가 알겠나.
“어쩔 수 없군.”
씁쓸한 듯 중얼거리는 류티스를 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올 뻔했다. 저 미치광이도 납득한 모양이니 다행─
“내가 희생하겠다.”
…
?
“희생?”
“그래. 네 말대로 네가 고문 선생을 설득하기에는 곤란하겠지. 하지만 내가 나서면 후환이 덜 할 거다.”
혼란스럽다. 그, 확실히 왕족에다 졸업하면 사라질 놈이니 맞는 말이기는 한데.
“일개 부원보다는 동생의 설득이 더 좋을 것 같지만, 동생이 나설 수 없다면 나라도 나서야 하는 게 맞지!”
그 말을 듣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단순히 듣기만 하면 험한 일을 왕족이 직접 행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만, 사정을 알고 보면 재앙을 자초하는 걸로 보인다.
아니, 대체 왜? 왜 형수들의 눈초리를 감수하면서까지 형을 초대하려고 안달인 거지?
“너도 알겠지만, 기사와 마법사의 관계가 썩 좋지 않은 건 역사적으로도 유명하지.”
그런 의문이 가득한 시선을 느꼈는지, 류티스는 픽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르메인은 기사의 나라고, 유벤은 마법사의 나라.”
‘아.’
거기까지 듣고 나서야 미친놈 류티스가 아닌 아르메인의 왕자 류티스가 보였다.
올해 입학생 중에는 자국의 왕자를 보필하기 위해 제법 많은 수의 타국인이 입학했다. 이는 아카데미 내에 검을 추종하는 아르메인 파벌과 마법을 추종하는 유벤 파벌이 생겼다는 의미.
이 중 유벤 파벌─ 즉 마법사들은 마종공이라는 희대의 거물을 4인전에 영입하는 것에 성공했다. 솔직히 그 과정에서 유벤의 왕자인 라테르가 한 것은 없지만, 아르메인의 왕자인 류티스가 움직여야 할 이유로는 충분하다.
‘고생 많네.’
결국 일국의 왕자로서 파벌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 그 피곤하고도 안쓰러운 이유에 류티스를 향한 동정심이 생겼다.
물론 동정심과 도와주는 건 별개다. 난 살고 싶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동아리 시간.
“안 돼.”
‘역시나.’
류티스에게 4인전 초대를 권유 받은 형은 단칼에 거절했다.
“작년이 이상했던 거지, 난 아카데미를 감찰하러 온 입장이다. 아무리 외부 인사를 영입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빼는 게 맞아.”
“그렇습니까?”
당사자의 단호한 거절을 받은 후에야 류티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게다가부부가 싸우는 건 조금 그렇지 않나.”
그 말이 결정타였다. 단순히 검과 마법의 대결이 아닌 부부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류티스도 완전히 단념했다.
하긴. 류티스도 어디까지나 파벌을 위해 예의상 노력한 거지, 진심으로 형의 참가를 원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상황에서 부부 싸움이라는 말까지 듣고 강요할 이유는 없지.
“무리한 부탁을 해서 죄송합니다. 확실히 곧 장관이 될 입장인데, 괜히 골치 아픈 일에 연관되면 곤란하기만 하겠죠.”
웃음을 터뜨리며 사과하는 모습에 류티스를 은근히 째려보던 형수들도 다소 누그러든 눈빛을 보냈다. 무리한 제안을 한 사람이 사과도 하고, 형도 거절을 했으니 더 이상 문제 삼을 건 없─
“대신.”
형의 목소리가 류티스의 웃음을 끊었다.
그러고는 무언가 고민하는 것처럼 천장을 보던 형은 거칠게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4인전 참가는 무리지만 다른 방식으로 참여할 수는 있다.”
“예?”
순간 동아리실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류티스는 기대도 하지 않았던 기회를 잡았기에, 형수들은 갑자기 형이 기행을 펼칠 거라는 불안감에.
내가 느끼는 감정도 후자에 가까웠다.
‘뭔데.’
이번에는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는 건데.
***
류티스가 4인전 참가를 요청했을 때는 빡침보다 허탈감이 먼저 느껴졌다.
‘이게 이렇게 흐르네.’
아니기를 바랐던 일이 그대로 실행되는 막막함. 그 막막함을 애써 억누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감찰성 장관. 마종공이 아카데미 행사에 참가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예, 전하. 그렇습니다.”
어제, 베아트릭스가 4인전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접한 황태자는 나에게 직접 연락을 걸었었다.
그 와중에 감찰부장이 아닌 감찰성 장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원통했지만, 황태자의 표정이 나름 진지하기에 넘어갔다. 적어도 장난을 치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 마종공이 나선다면 마법사들은 열광하겠지. 허나 그만큼 검사들도 자극받을 터.
듣기만 해도 귀찮고 끔찍한 말이었다. 마법사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검사들도 난리를 칠 거라는 말 아닌가.
그러나 듣기 싫은 말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다. 부정적인 예측은 언제나 들어맞는 법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행복 회로는 빗나가도 절망 회로는 적중한다.
– 그렇다고 마종공의 참가를 막기에는 장관이 아카데미 행사에 참가한 전례가 있다.
“…송구하옵니다.”
‘네가 작년에 사고만 치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라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질책에 고개를 숙였었다. 황태자 말처럼 빌미를 제공한 건 나니까.
아니, 정확히는 에리히가 제공했지만 아무튼 내가 원인이기는 하다. 차라리 그때 에리히를 기절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참여하면 안 됐다.
– 그러니 마종공에 대항하기 위해
검사들은 장관의 재참여를 원하겠지.
“소신이 지금이라도 마종공을 설득하여─”
– 아니. 이제 와서 번복한다면 마법사들의 불만만 커질 것이다.
그렇게 말한 황태자는 나지막히 선고했었다.
– 올해는 제국의 천명이 굳건함을 보인 해이다. 길고 긴 세월 동안 대립한 유목민이 마침내 제국의 품에 안긴, 실로 기쁜 해다.
“예, 전하. 천명이 제국에 있음을 온 대륙에 보였습니다.”
– 그렇기에 그 위업을 기념하며 제국의 위엄을 더욱 드높일 것이다.
그 말에 이상함을 느꼈었다. 분명 4인전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왜 천명이니 위업이니 위엄이니 같은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 제국에는 모든 마법사가 존경하고 경배하는 마법사가 있으니, 온 대륙은 그 대마법사가 제국의 기둥임을 안다.
“예, 실로 제국의 홍복입니다.”
– 또한 모든 검사가 존경하고 경배하는 자가 나타났으니, 이제 온 대륙은 그 검사가 제국의 기둥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의아함은 점점 불안함으로 변했었다. 정황상 분명 나를 말하는 것인데, 기둥임을 알게 될 것이라는 건 대체 무슨 말인가. 마치 지금은 모른다는 말이지 않나. 내가 개처럼 구르는 걸 보면 모를 리가 없는데.
– 장관은 행사에 참가하지 말되, 그 행사를 축하하라. 만인 앞에서 그대의 위용을, 검사들 앞에서 그들이 갈망할 지고의 경지를 보여라.
그러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황태자는 나에게 퍼포먼스를 바라는 거였다. 어차피 베아트릭스의 참여를 물릴 수 없으면 그냥 화려하게 과시하자고. 나와 베아트릭스가 나란히 4인전에 나섰다가 누군가 다치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나는 개회식이나 폐회식 때 하늘이나 가르라고.
미친 짓이다. 하지만 베아트릭스의 참전으로 반 대항전에 대륙의 이목이 쏠렸을 때, 제국의 검사가 하늘을 벤다면 제국의 위엄과 권위는 더욱 상승한다. 제국에는 대마법사에 이어 대륙 제일의 검사도 있다는 과시가 가능하다.
‘개새끼.’
원망스럽다. 다시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반 대항전에 관여하게 생겼다.
그나마 4인전에 참가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싫다.
‘제발…’
기쁨의 웃음을 터뜨리는 류티스를 보며 홀로 기도했다.
제발 황태자 유병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