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97)
로판 속 공무원 397화(398/451)
류티스에게 4인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반 대항전에 참여한다고 밝힌 이후, 판이 급속도로 커져 버렸다.
이미 베아트릭스의 참전으로 제국을 넘어 대륙의 시선이 아카데미에 쏠린 상황이었는데, 검으로 최종 콘텐츠를 찍은 석유까지 합세한다? 당연히 그 여파는 화끈했다. 대륙의 시선이 몰렸던 만큼 소문이 퍼지는 것도 빨랐고.
“이번 반 대항전은 동아리 박람회처럼 진행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동아리 박람회처럼, 말입니까?”
“예. 박람회 때와 같이 외부인에게 아카데미를 개방하고자 합니다.”
그 결과가 이거다. 단순한 애들 놀이에 어른들이 끼지 못해 안달인 상황이 발생했다.
‘환장하겠네.’
덤덤하게 차를 마시는 교장을 보니 외부인에게 아카데미를 개방하는 건 사실상 확정이다. 아카데미 최고 책임자가 감찰관 앞에서 의견 운운하는 건 그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의미니까.
애초에 이게 확정된 일이니까 교장이 덤덤할 수 있는 거겠지. 갑작스러운 아카데미 개방으로 인해 생길 혼란과 귀찮음을 생각하면 교장은 어떻게든 개방 의견을 기각하고 싶었을 거다. 그걸 포기했다는 건 교장 선에서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일 터.
‘작정했구나.’
원흉은 대충 짐작이 간다. 분명 황태자의 작품일 거다. 황태자가 교육성 장관에게 친히 지시를 내렸다면 교장도 방법이 없다.
황태자 정도 되는 인물이 고작 아카데미 행사에 관여하는 것이 우습지만, 나와 베아트릭스가 동시에 대중 앞에서 무력을 과시하는 상황 아닌가. 이왕 이렇게 된 거 관람객을 최대한 늘려 최대의 효과를 보려고 하는 것 같다.
‘개새끼.’
천명이니 뭐니 떠들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설마 이 정도로 진심일 줄은 몰랐지.
그나마 이 광대놀음이 올해로 끝날 단발성 이벤트라서 다행이다. 이런 이벤트를 너무 자주 하면 그건 그거대로 격이 떨어지는 법이니.
“…교장께서 노고가 많으시겠습니다.”
씁쓸한 심정을 억누르며 교장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막말로 나는 검만 쓱 휘두르면 끝이지만, 교장은 무수한 외부인들을 관리하느라 고생할 거다. 아카데미에서 소란이 생기면 결국 교장이 책임져야 하잖아.
“괜찮습니다. 교장으로서 아카데미의 위광을 떨칠 수 있으니 기쁜 일이지요.”
허나 그 와중에도 희미한 미소를 짓는 교장을 보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작년도 작년이지만, 올해도 교장에게 있어 격동의 해였다. 베아트릭스가 아카데미에 오면서 무수히 많은 마법사들이 입학 신청서를 내고, 동아리 박람회에 방문하고, 내가 하늘을 가르니 아르메인에서도 학생들이 오고… 고작 1년 사이에 터졌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사건들이었다.
그만큼 제국 아카데미의 위상이 드높아지기는 하겠으나─ 늙은 교장이 개처럼 구른 것도 사실이다. 편안한 말년은 찬란한 빛을 내며 사라진 거다.
“분명 아카데미에 둘도 없을 교장으로 기억되실 겁니다.”
그렇기에 조심스레 위로의 말을 꺼냈다.
내 말이 이 늙은 공무원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군요. 고맙습니다, 장관.”
장관이라는 말에 잠시 움찔했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고작 호칭 따위에 마음 상하기에는 교장이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우니.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있어 반 대항전은 대충 몸 좀 움직이다 느긋하게 구경하는 것이 관례인 행사였다. 열심히 해봤자 3학년 학생 중 가장 고귀한 신분을 가진 학생의 반이 최종 우승을 하는 게 반 대항전이니까.
비록 작년에는 압도적 고귀함을 지닌 학생들이 1학년에 포진하여 그 관례가 잠깐 무너지기는 했으나, 사실 소수의 1학년을 제외하면 피해자가 없었다. 고귀한 학생의 승리를 위해 굴러야 하는 건 그 반 학생들이지, 다른 반과 학년의 학생들이 아니지 않나.
그러나 올해는 모두가 피해자가 됐다. 1, 2, 3학년 가리지 않고 굴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아카데미만의 행사일 때는 관례대로 움직여도 문제없지만, 대륙 곳곳에서 올 외부인들은 관례를 모르니까요. 귀족으로서 불성실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죠.”
마르의 친절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 곳곳에서 몰려올 외부인들, 심지어 고위직이거나 명망 높은 검사, 마법사일 확률이 높은 외부인들. 그런 자들 앞에서 설렁설렁 행동하는 건 본인의 명성을 깎는 행동이자 외부인들을 향한 모욕이다. 덕분에 모든 학생들은 지금까지의 관례를 벗어던지고 광전사가 되었을 정도.
그리고 광전사가 된 학생들을 통제해야 할 학생회가 골치를 앓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괜히 마르가 난처한 듯 어색한 미소 짓는 게 아니지.
“괜히 저 때문에 마르가 귀찮아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아니에요.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 대가로 칼의 명성이 높아지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배시시 미소를 짓는 마르의 모습에 불구덩이 속에서 타는 것 같던 마음이 평온해졌다.황태자가 초벌하고 마르가 감싸주다니, 온도 차가 너무 극심한 거 아니냐.
“베아트릭스가 들으면 조금 서운해하겠군요.”
아무튼 그런 마르를 보며 슬쩍 농담을 건네자─
“언니의 명성은 더 오를 곳도 없잖아요? 이해해 줄 거예요.”
마찬가지로 농담 가득한 대답이 돌아와 나도 마르도 잠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 베아트릭스는 더 이상 오를 명성도 없다. 1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한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살았으니 당연한 일. 게임으로 치면 이미 99999에서 고정된 상태지 않을까?
“그도 그렇군요. 그럼 제가 베아트릭스의 몫까지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명성 최대치를 찍은 베아트릭스의 몫까지 명성을 올리겠다는 소소한 다짐. 그 다짐에 마르도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공작은 아니라 마종공과 한 세트를 이루는 검종공으로 불릴 일은 없으나, 그래도 이번 일을 계기로 검성 같은 칭호 정도는 얻지 않을까 싶다. 물론 검왕, 검황 칭호는 줘도 안 받는다. 많이 역적 같으니까.
그 뒤로도 마르와 반 대항전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 회장실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르, 나란다. 들어가도 되겠니?”
‘오.’
마침 대화 주제였던 베아트릭스가 등장했다.
“네, 언니. 들어오세요.”
마르도 본인 얘기를 하기 무섭게 베아트릭스가 온 것이 신기했는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마르의 허락이 떨어지자 들어온 베아트릭스는 나를 보더니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아가도 여기 있었구나.”
“나야 뭐, 갈 곳이 거기서 거기지.”
일단 자연스레 대답하기는 했지만 뭔가 이상하다. 방금 베아트릭스의 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닌 마침 잘 만났다는 듯한 뉘앙스였으니까.
뭐지, 베아트릭스가 날 찾을 일이 있나? 하고 싶은 말은 매일매일 오붓하게 나누는 편이라 딱히 없을 텐데?
“먼저 마르와 논의하고 얘기하려고 했지만, 이왕 모였으니 바로 얘기하자꾸나.”
내가 멍하니 눈만 깜빡이는 걸 본 베아트릭스는 내 옆자리에 앉더니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가, 폐회식 때 하늘을 벤다고 했었지?”
“아, 응. 그 전에 쓰면 사람들이 경기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아서.”
비록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판이 커진 반 대항전이지만 그 본질은 아카데미 학생들을 위한 행사다. 언제 하늘을 베든 어그로를 끌 수밖에 없다면 학생들의 일정이 다 끝난 후에 하는 것이 옳을 터.
베아트릭스도 그 생각에 공감하는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게 어떻겠니? 4인전 이후라면 나도 여유가 있으니까.”
“같이?”
“그래, 같이.”
그리고 이윽고 이어지는 말─ 폐회식 때 나와 베아트릭스가 선보일 합동 퍼포먼스 내용에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어, 언니, 진심이세요?”
심지어 마르조차 말을 더듬으며 재확인했다. 아마 상대가 베아트릭스가 아니라면 미쳤냐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그럴 정도로 기상천외한 제안이었다. 평범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발상.
“안전상 문제는 없단다. 겉으로 보기에 이보다 화려할 수도 없고.”
그러나 마르의 눈앞에 있는 존재는 평범과 거리가 먼 마종공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정상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하늘 위의 존재.
어쨌든 베아트릭스의 단호한 대답에 눈동자를 떨던 마르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제발 나라도 말려달라는 듯이.
“…….”
“칼…?”
그런 마르의 시선을 은근히 피하고 말았다.
‘그게 된다고?’
그만큼 베아트릭스의 제안은 흥미를 끄는 제안이었다. 나도 다른 사람이 한 말이라면 바로 미쳤냐는 말을 했을 텐데, 다른 사람이 아닌 베아트릭스가 ‘안전상 문제 없다.’ 라고 공인하지 않았나. 게다가 장담한 것처럼 그것보다 화려한 퍼포먼스는 없을 거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딱히 광대가 되고 싶지는 않으나, 황태자가 깐 판에서 굴러야 한다면 정말 미친 퍼포먼스를 보이고 싶다. 그래야 황태자가 기겁하고 다시는 이런 일을 시키지 않을 테니.
“진짜 안전한 거 맞지?”
“칼!?”
마르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야수의 심장과 두뇌가 되겠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원한 건 애초에 황태자였다.
***
반 대항전이 끝났다.이제 겨우 두 번째로 경험한 반 대항전이지만, 그런 나도 올해 반 대항전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올리비아, 통제 끝났어!”
“응! 다들 고생 많았어!”
지금은 졸업한 선배들에게 들었던 선도부의 업무보다 더욱 고달팠으니까. 선배들이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으니, 그 선배들도 경험하지 못한 규모인 거겠지.
“으, 힘들어…”
허벅지를 주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체력에 자신 있는 나도 피곤할 정도로 선도부는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도 동시에 미소가 지어졌다. 반 대항전이 진행되는 며칠 동안 바쁘게 움직였으나, 그만큼 보람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렸음에도 사고가 나지 않았으니까.
‘히히.’
뿌듯하다. 처음 선도부가 되었을 때는 낯선 게 많았지만─ 이제 나도 어엿한 베테랑 선도부다. 언니도 칭찬해줬다고!
“4인전은 못 봐서 아쉽다. 마종공께서 싸우는 걸 어디서 보겠어.”
“녹화는 했다니까 그거라도 보자.”
그 와중에 다른 선도부원들의 얘기를 듣고 정신이 들었다.
‘폐회식!’
잠깐 잊고 있었다. 마종공께서 4인전에 참가한 것 말고도 중요한 소식이 더 있었다.
‘하늘 베기!’
저절로 발걸음이 폐회식장으로 향했다. 마종공께서 직접 4인전에 참가하신 것처럼, 감찰부장님도 폐회식 때 하늘을 베는 기술을 보여준다고 하셨다.
나도 나름 검을 쓰는 사람이니 꼭 보고 싶었는데, 지금이라도 생각나서 다행이야!
이미 폐회식장에는 사람이 빽빽하게 차있었다.
아쉽다. 이왕이면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었는데.
‘…어차피 찢어지는 건 하늘이니 상관 없나?’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니 아쉬움이 가라앉았다. 응, 멀면 뭐 어때. 하늘이 찢어지는 걸 보기만 하면 되는 거지.
“귀한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모여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사이, 감찰부장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단상 위에 올라선 감찰부장님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일 정도지만 괜찮다. 이 자리에 계시다는 것만 알면 충분해.
“반 대항전 기간 동안 제국, 더 나아가 대륙을 이끌어갈 미래의 인재들이 각자의 기량을 보이며 우호적인 경쟁을 하였습니다. 이들이 나아갈 길을 먼저 걷는 선배로서 기쁠 따름입니다.”
‘선배?’
무심코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감찰부장님은 우리 선배 아니지 않나?
“그렇기에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후배들을 위하여 선배가 작은 선물을 주고자 합니다. 후배들이 걷는 길 끝에 존재하는 경지를, 멈추지 않고 나아가면 언젠가 닿을 수 있는 경지를.”
아무렴 어때! 좋은 거 보여주면 다 선배님이지!
점점 본론으로 들어가는 말에 나도, 주변 사람들도 기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는 제국의 위대한 공작이신 마종공께서도 같은 생각이십니다. 4인전에서 전부 보이지 못한 마법의 끝을, 이 자리에서 보여주시고자 합니다.”
술렁거림이 커졌다. 솔직히 마법은 관심 없지만, 내가 하늘 베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다른 마법부 학생들도 마종공의 마법을 기대하겠지? 그럼 기쁠만하네!
“아, 그리고 지금부터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안전성이 증명된 일이니 동요하지 말고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상한 말이다. 안전성? 동요? 지금까지 감찰부장님이 아카데미에서 보인 하늘 베기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고, 아무리 강력한 마법도 허공에 쏘면 아무 일도 없는데? 굳이 안전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나?
아, 무인이 아닌 일반인 손님도 많으니 배려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 같다. 역시 감찰부장님은 마음이 좋─
으…?
“어?”
하늘을 올려다보자 보이는 광경에 멍한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돌?’
아니, 저걸 돌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괜찮을까?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위가 하늘에 나타났다. 불길한 검붉은 색깔의 암석이, 갑자기 하늘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암석은 우리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
“──! ───!”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지만, 아무튼 시끄러웠다.
하지만 나는 홀린 듯 암석을─ 운석을 쳐다봤다. 지금 보니 하나가 아니다. 둘, 셋, 넷, 어쩌면 그 이상.
“다시 말씀드리지만 안전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멍해지던 정신은 감찰부장님의 목소리에 다시 돌아왔다.
“여러분께 닿을 일은 없으니 말입니다.”
그 말과 함께 운석이 반으로 갈라졌다.갈라진 운석은 점차 실금이 가더니 마치 꽃잎처럼 흩어져 사라져갔다.
찢어진 하늘 아래 가루처럼 사라져갔다.
***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메테오를 보니 절로 뿌듯해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마종공이 만들어낸 메테오, 그걸 하늘 베기로 가르면 마종공이 마법을 캔슬해서 가루로 만드는 고도의 작업.
내가 생각해도 존나 미친 짓이지만 후회는 없다.
‘개쩌네.’
솔직히 멋지기는 하잖아.
메테오 쓰는 마법사랑 메테오를 부수는 검사. 이런 걸 어디서 보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