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98)
로판 속 공무원 398화(399/451)
‘그’ 사건의 여파는 대륙을 뒤흔들었다.
황태자의 바람대로 제국의 무력을 선보이고, 그 무력이 천명을 지탱하고 있음을 과시한 희대의 사건. 세상에 둘도 없을 퍼포먼스였던지라 아카데미에 있던 전원이 넋이 나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넋이 나갔던 사람들이 대륙 곳곳에 소문을 퍼뜨린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고.
그리고 소문을 접한 대륙은 단체로 패닉에 빠졌으니 실로 완벽한 퍼포먼스였다.
‘그걸 듣고도 태연할 수는 없겠지.’
마른하늘에 나타난 운석, 운석을 갈라버린 참격. 솔직히 듣기만 해도 미친 상황이 아니던가. 허무맹랑한 개소리라 생각하면서도 괜히 듣고 싶은 소리인데, 놀랍게도 개소리조차 아니다. 무수히 많은 증인과 무수히 많은 녹화 영상이 입증하는 진실이다.
심지어 그 광경을 직관한 증인, 현장을 녹화한 사람 대부분은 우리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이다. 아무리 아카데미를 외부인에게 개방했다지만, 어지간한 열정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제국 아카데미까지 행차하는 건 힘든 일. 그럼에도 그들은 아카데미에 모였다. 검과 마법에 환장한 양반들이라는 거다.
덕분에 당시 아카데미에 있던 외부인 대다수가 넋이 나간 것과 별개로 퍼포먼스에 열광했다. 본인들 위에 메테오가 생기고, 그 메테오가 부서지는 모든 과정을─ ‘본인들의 안위를 위협한 무력 행위’가 아닌 ‘개쩌는 무의 극치’로 여겼다.
당연히 모두 미친 사람만 모인 건 아니기에 위협을 느낀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다수가 환호하니 분위기에 휩쓸려 문제 제기를 하지는 못했을 거다. 다들 기뻐하는데 혼자 정색하면 눈치 없는 놈이 되는 거잖아.
‘아무튼 결과는 좋았다.’
그렇게 우리에게 우호적인 자들이 퍼뜨리는 소문은 우리, 더 나아가 제국에 이로울 수밖에 없었다. 퍼포먼스 내용을 듣고 뒷목을 잡았던 황태자도 외교 채널이 잠잠한 걸 확인한 뒤 곧바로 대대적 홍보에 나섰다고 할 정도니까.
사실 외교 채널이 폭주했어도 문제가 없을 것 같기는 해. 막말로 타국에서 이번 일을 ‘제국의 끔찍한 도발 행위’로 인식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것들이 제국에 제재를 가하겠냐, 아니면 전쟁을 일으키겠냐.
막 계승 분쟁이 끝난 직후의 제국이면 모를까, 북방까지 집어삼킨 제국은 고작 동방 왕국들의 반발에 휘청거릴 나라가 아니다.
“그러니 용서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
“안 돼요.”
안 되는구나.
단호한 마르의 모습에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마르가 용서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
‘무사히 넘어갈 줄 알았는데.’
씁쓸하다. 황태자가 바란 것 이상으로 과시한 무력, 온 대륙에 퍼진 제국의 위엄, 결국 순순히 이번 사태를 치하하고 넘어간 황태자까지. 정말 완벽하게 마무리 된 사건이었다.
물론 과잉 행위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기에 그에 대한 징계가 있을 수도 있었지만, 이번 사건에 대륙 전체가 열광하면서 그 가능성조차 사라졌다. 이번 사건을 이유로 나에게 징계를 먹이면 ‘아카데미에 있었던 사태는 황실의 의도가 아닌 신하들의 돌발 행위다.’ 라고 인정하는 꼴이지 않나.
즉, 징계를 먹이는 건 황실이 나와 베아트릭스의 무력을 통제할 수 없다고 시인하는 꼴이다. 그러니 나도 베아트릭스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공적으로는 말이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일이 잘못 풀렸으면 칼과 언니가 원망을 받을 수도 있었어요.”
사적으로는 넘어가지 못했다.
“해석하기에 따라 타국 인사들을 위협한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잖아요. 선의로 한 행동이 악의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고요.”
“미안합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기에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마르의 말처럼 지금은 놀라울 정도로 일이 잘 풀린 상황이다. 나도 베아트릭스도 당시에는 둘도 없을 기회에 홀려 기행을 저질렀지만, 이성을 되찾고 생각해 보면 문제의 소지가 많은 행동이었으니까.
만약 누군가 머리 위에 나타난 메테오에 기겁을 하고 정식으로 항의를 했다면 귀찮아질 수밖에 없다. 무력 과시라는 목적은 달성했겠지만, 소란에 대한 책임과 기행에 대한 악명을 짊어졌으리라.
“그, 아가도 반성하는 것 같으니 이제 봐주는 건 어떻겠니? 나도 아가도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란다.”
그 와중에 마르의 옆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베아트릭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원래라면 베아트릭스도 나와 나란히 무릎을 꿇고 마르의 질책을 들어야 하는 입장이나─
“미안하구나. 그 마법은 부친께서 끝내 완성하지 못한 마법이라, 언젠가는 꼭 써보고 싶었단다.”
난데없이 부녀의 추억이 언급되자 마르는 베아트릭스를 패싱하고나만 쪼게 되었다. 부친이 완성하지 못한 마법을 대신 완성한 딸이 사람들 앞에서 보이고 싶었다는데, 여기서 질책을 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되고 만다.
“반성이요?”
그리고 마르의 시선이 베아트릭스에게 향했다.
기분 탓인가. 순간 베아트릭스가 움츠러든 것 같았는데.
“언니도 반성하시는 거 맞죠?”
“그, 그럼. 물론이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는 베아트릭스를 보던 마르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잘못이 있다면 마지막까지 말리지 못한 제 잘못도 있고, 황실에서도 기뻐했으니 제가 뭐라고 할 자격은 없겠죠.”
“아닙니다, 마르. 마르 덕분에 제 경솔함을 깨달았습니다.”
다소 추할 정도로 저자세의 발언을 하자 마르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다행이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큰 사고여서 당분간 얼굴도 안 보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슬쩍 시선을 베아트릭스에게 돌렸다. 내 시선을 받은 베아트릭스도 마음이 놓인 표정으로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하나만 떨굴 걸 그랬어.’
사실 마르가 화를 내는 건 사람들 위에서 메테오를 썼기 때문이 아니다. 그 행동 자체는 방금 말한 것처럼 마르도 동의한 일이니까.
문제는 떨구기로 한 운석 개수를 속였다. 회장실에서는 하나만 떨구겠다고 약속했지만, 하나만 하는 건 재미 없을 것 같아 폐회식 직전에 여러 개를 떨구기로 베아트릭스와 비밀 합의를 봤었다.
미친 짓이었지. 야수의 두뇌로 지내는 건 사람으로서 못할 짓이다.
앞으로 서프라이즈는 최대한 지양하자.
반 대항전이라는 2학기 대표 일정이 끝나자 시간은 무난히 흘러갔다. 애초에 아카데미 일정은 동아리 박람회, 수학여행, 반 대항전을 제외하면 특별한 게 없다.
대신 아카데미가 고요하니 아카데미 밖에서 사건이 터졌다.
“축하한다.”
– 크흐, 감사합니다.
다행히 부정적인 사건이 아닌 긍정적인 사건이었지만.
‘세상 참.’
연신 히죽거리는 2과장을 보니 인지부조화가 올 것 같다.
‘저놈이… 아빠?’
오늘 아침, 에르제베트에게서 2과장의 자식이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2과장에게 연락을 걸었다. 황태자가 아빠가 된 것도 신기한데 2과장도 한 아이의 아빠가 되다니. 도대체 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물론 사람 새끼가 아닌 2과장과 달리 부인인 크리스티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자식이 생길 수도 있지만, 가족 관계에 ‘부친: 2과장’이라는 글자를 적을 아이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아들이라고 했나?”
– 예, 저랑 크리스티나를 반반씩 닮아서 예쁜 아들입니다. 크면 여자 여럿 울릴 것 같더라고요.
“하필 애비한테는 안 좋은 걸 물려 받았네.”
나름 진심을 담은 말이다. 저 새끼가 결혼하기 전까지 제도에서 카사노바로 활동한 걸 생각하면 아이의 미래가 걱정된다. 제발 외모만 닮고 성격은 닮지 말아야 할 텐데.
허나 2과장은 내 말을 그냥 농담으로 들었는지 낄낄거리기만 했다.
‘이 새끼.’
원래도 말로 대미지를 주기 힘든 놈이었는데 요즘은 더 강해졌어. 가장이 돼서 그런가?
그렇게 한참이나 웃던 2과장은 뒤늦게 무언가 떠올렸는지 말을 이었다.
– 아, 그리고 크리스티나가 몸을 좀 추스르면 연회라도 열려고 하는데, 시간 되십니까?
그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우나 고우나 어쨌든 부하 직원이 자식을 본 건데 바빠도 얼굴은 비추는 것이 도리다.
“날짜 정해지면 말해. 바로 갈 테니까.”
– 이거 참, 감찰성 장관께서 재무성 장관과 함께 자리를 빛내주신다니 영광입니다.
“개새끼가.”
자연스레 치명타를 먹이는 2과장의 모습에 절로 쌍욕이 나왔다. 아직 장관 아니라고. 내정자라고.
‘망할 새끼.’
원통하다. 원치 않은 승진 때문에 부하에게 놀림이나 받다니, 대체 이 고통을 누구와 나눠야 하─
…
‘저 새끼도 올려버릴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감찰부장인 나는 장관 내정자고, 차장은 내가 장관 비서로 데려갈 예정이다. 2과장 위에 있는 자리는 전부 공석이 되는 거다.
저 새끼한테 부장을 주는 건 무리지만, 적어도 차장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좋네.’
마음이 평온해졌다. 앞으로 내 장관 승진을 웃으며 축하해 주는 부하가 있다면 나 역시 승진으로 보답해 주리라.
그런 다짐을 하며 옅은 미소를 짓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는지, 2과장은 급하게 연락을 마무리했다.
– 그럼 연회 때 제도에서 뵙겠습니다.
“그래.”
선물로 승진 소식 들고 갈 테니 기대해라.
다음날 아침, 보랏빛을 내며 진동하는 통신구를 보자마자 직감했다.아무래도 2과장은 연회 때 보는 게 아니라 오늘 볼 것 같다고.
[ 황제 폐하 양위 선언. 부장급 이상 고위 관로는 즉시 황궁ㅇㅡ로 모일것. ]그리고 불안한 느낌은 언제나 맞는 법이기에, 통신구로 날아온 문자는 당장 제도로 가야 할 이유를 담고 있었다.
‘하.’
양위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조만간 양위 파동이 터질 건 각오했지만 이왕이면 내년에 하기를 바랐는데.
‘…나만 놀란 게 아니구나.’
자세히 보니 짧은 문장 안에 오타가 제법 보인다. 문자를 보낸 사람도 꽤나 당황한 모양.
공석인 궁내성 장관을 대신하여 급하게 움직이고 있을 황실부장을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