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
제 4화
파견을 갑니다 – 1
[ …재무성 소속 감찰부장, 칼 크라시우스를 긴급 감찰관으로서 제국 아카데미에 파견한다. ] [ …긴급 감찰관으로서 제국 아카데미에 파견한다.] [ …제국 아카데미에… ]“진짜 어디서 돌연사 했으면 좋겠다.”
장관의 흉악한 술수로 인해 찰나의 시간 동안 극락과 나락을 동시에 맛 본 나는 집무실로 복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은 서류를 대충 서랍에 쑤셔박았다.
지금 기분으로는 도저히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다. 와, 줬다 뺏는 게 제일 나쁜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물론 장관은 한 번도 나에게 은퇴를 허락해준다고 한 적이 없다.
“나 먼저 퇴근한다.”
“예? 아니, 아직 퇴근 시간도 안됐는데 어딜 가십니까?”
“너희도 퇴근해.”
“융통성 있는 근무 시간이 중요하긴 하죠.”
과장들의 반발은 조기 퇴근이라는 당근을 던져주니 빠르게 가라앉았다. 칼퇴근도 감히 꿈도 꾸지 못하다가 갑자기 조기 퇴근을 받으니 얼마나 기쁠까.
특히 2과장이 희희낙락하며 가장 먼저 나갔다. 저 새끼는 좀 자야 하는데, 또 이상한 길로 빠지는 거 아니냐. 도로 붙잡을까 하는 마음이 잠깐 솟았지만 금방 시선을 돌렸다. 잡으면 나도 남아야 하는데 그거 싫지.
감찰부의 역사적인 조기 퇴근 다음날.
“축하합니다.”
“축하해요.”
“축하드립니다.”
내가 집무실 문을 열고 출근하자마자 간부들이 모여 박수를 치며 나를 반겼다. 뭐지? 신종 괴롭힘?
“너네 뭐하냐?”
“다 들었습니다. 소원 이루셨다며요?”
“뭔 개소리야.”
그 소원 지옥 용암에 불타버린 게 어제 일인데.
시큰둥하게 쳐다보니 뒤에서 슬그머니 차장이 다가와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허공을 가리키는 손가락. 차장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리고,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 경 ☆ 축 ! 부장님 아카데미행 확정! ] [ 아! 너무너무 부럽다! 꽃다운 20대의 아카데미 생활! ]엿같은 플랜카드 2개가 휘황찬란한 자태를 뽐내며 걸려 있었다.
“이 시발…”
“부장님, 혹시 감동하셨습니까?”
“헤헤, 어제 뒤늦게 알고 급하게 준비했어요.”
“이런 일이 있었다면 먼저 말씀하셔야죠. 즐거운 일 아닙니까.”
차례대로 2개새끼, 1개새끼, 3개새끼의 개소리다. 뒤에 있는 차장을 슬쩍 바라보니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피했다. 미처 말리지 못해 송구스럽다는 듯이. 그래, 너도 난데없는 참사였겠지. 내가 너밖에 믿을 놈이 없다.
“…5과장은 어딨어?”
“어제 부장님 축하 파티 열자고 말했는데, 그 뒤로 연락이 안 닿아요.”
“아직 출근도 안 했습니다. 이거 이거, 오늘 같이 기쁜 날에 빠져가지고.”
좋아, 5과장도 믿을 놈에 포함해도 되겠다. 혼자 과장 셋을 말리기는 무리니 잠수를 선택한 모양이지. 나름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웃었다. 2과장도 따라 웃었다. 1과장과 3과장도 웃으며 더 빠르게 박수를 쳤다. 차장은 조용히 집무실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차장이 문을 닫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뜯어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 3개가 바닥에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끝났습니까?”
점점 장관과 닮아가는 우렁찬 외침을 문 너머로 듣는 차장에게 5과장이 다가왔다. 이렇게 금방 오는 것을 보면 근처에서 대기하면서 상황을 지켜봤을 것이다. 감찰부의 과장으로서 실로 훌륭한 처세라고 할 수 있다. 그 처세를 부장에게 살아남기를 찍으며 쓰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방금 시작했다.”
“흠,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니. 소식 듣고 급하게 달려오느라.”
“그럼 지금이라도 하시죠. 1시간은 걸릴 겁니다.”
굳게 닫힌 문을 흘끗 바라 본 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번에는 짧게 끝날 것 같지 않으니. 5과장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는 차장의 등 뒤로 지옥에서 읊조리는 듯한 쌍욕이 울려퍼졌다.
“느그가 씨발 사람이야아아아!”
1시간이 아니라 2시간 정도인가. 차장은 과장들의 명복을 빌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감찰부는 세 과장의 활약으로 기운찬 아침을 보낼 수 있었고, 나는 2시간 내내 격한 감동을 육성으로 표현한 덕분에 뻣뻣해진 뒷목을 주무르고 있었다. 내 은퇴가 먼저일까, 홧병으로 쓰러지는 게 먼저일까. 정말 치열한 치킨 레이스다… 가슴이 절로 옹졸해지네.
한숨을 내쉬던 내 눈 앞에 통신구가 파란빛을 내며 발광하고 있었다. 파란빛… 장관 직통 연락이다. 다시 한숨이 나온다. 한숨 쉬면 복 나간다던데, 이미 난 복 압류 상태가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는 내 인생 꼬라지가 이럴 수가 없다. 교회에 가서 축복이라도 받을까. 헌금 좀 많이 내면 내 팔자가 풀리지 않을까?
“예… 감찰부장입니다.”
– 허, 웬일로 바로 받냐?
통신구에 손을 대자 그 위에 장관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마탑도 너무하지. 적당히 목소리만 들리는 물건으로 만들지 뭘 굳이 얼굴까지 보여주는 걸 만들어서. 빙의 전에도 영상통화는 거의 안 했는데.
“예, 뭐. 마침 하던 일이 끝나서 쉬고 있었습니다.”
과장과의 주기적인 서열 정리는 부장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 그래? 마침 잘됐군. 장관실로 와라. 급한 일이다.
“어제 그런 짬을 던지셨으면서 또 급한 일이라고요? 인성을 북방에 던지고 오셨나.
– 어제 일 관련이니까 닥치고 와.
그리고 일방적으로 끊기는 통신구. 직급이 깡패지, 직급이 깡패야.
‘나도 다른 곳에서 의전 서열로는 안 밀리는데.’
장관에게 숨 쉬듯 쪼인트를 까여서 스스로도 가물가물하지만, 부장이면 어딜 가도 대우 받는 직급이다. 심지어 제국 행정부서 중 2위에 빛나는 재무성의 부장이면 더더욱. 그런데 하필 상대가 장관이네, 개같은 거.
“나 잠깐 다녀온다.”
업무를 보고 있던 차장에게 언질을 주고 장관실로 향했다. 요즘 장관실 출석 빈도가 점점 잦아지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은 아니리라. 매번 갈 때마다 우락부락한 근육 장관만 보이는 곳이 뭐 좋다고 이렇게 끌려 다니는지.
“오, 감찰부장. 오랜만일세.”
그렇다고 다른 사람도 보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외무성 장관 각하? 아니, 여기는 무슨 일이십니까?”
장관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던 후덕한 인상의 중년, 외무성 장관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칼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장관을 노려보았다. 다른 장관이 있다면 있다고 미리 얘기라도 해줬어야지.
그런 나의 시선에 장관은 뭐 어쩌라는 듯이 입에 대고 있던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번 파견 업무를 가기 전에 중요한 전달 사항이 있어서 오셨다. 너 때문에 귀한 발걸음을 옮기신 분이니 감사하게 들어.”
“하하, 제국을 위해 먼 길을 떠나는 감찰부장을 위한 일인데 제가 감사를 받을 게 뭐가 있습니까?”
“너무 금칠 해주지 마십쇼. 저거 금방 기고만장 해져서는 맞먹으려 듭니다.”
“호, 경험담이십니까? 참고하겠습니다.”
피식 웃은 외무성 장관이 다시 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래, 감찰부장. 이번에 아카데미 파견 감찰관으로 임명됐지?”
“예에, 그렇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관례적으로 아카데미에 파견하던 감찰관은 과장급이면 충분했네. 굳이 부장을 보낸다는 건 그만한 일이 터졌기 때문이지. 재무성 장관에게 어느정도 설명은 들었겠지만.”
‘아뇨,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요.’
자연스레 내 눈동자가 장관을 향해 움직였다. 어제 저 양반과 바락바락 소리만 지르다 끝나서 들은 것이 쥐뿔도 없다.
장관도 그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지 조용히 차를 마시며 시선을 피했다. 상관과 부하의 어색한 시선 교환을 못 봤는지, 외무성 장관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이번 아카데미 신입생에 문제가 많아.”
“문제가 많다니요? 평민 비율이 과반수를 차지하기라도 했습니까?”
“그런 거면 문제라고 할 수 없지. 직접 보게.”
그러고는 외무성 장관이 계속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나에게 건넸다.
“이번 신입생 중 요주의 인물을 정리한 명단일세.”
“대체 누구길래 각하께서 요주의라고 표하십니까?”
외무성 장관의 말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는 제국 제일의 교육기관이자 예비 사교의 장이기에 고위 신분의 자제들이 흔히 입학한다. 황실도 아카데미에 재학한 경우가 잦았고, 그 아래 5대 공작가도 마찬가지다.
자신 같은 특이케이스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제국의 푸른 피는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그런데 외무성 장관이 친히 재무성까지 찾아오고, 요주의라고 하는 인물들. 그럴만한 인물이… 있나?
명단을 빠르게 읽으려던 내 눈동자가 곧바로 멈췄다. 맨 위에 올려진 이름부터가 비범하기 짝이 없었다.
1. 류티스 로벤스
잠시 말을 잃은 내가 외무성 장관을 쳐다봤다.
“그… 아니죠?”
“자네가 생각하는 그 류티스 맞네.”
내 미간이 급격히 찌푸려졌다.
“아니, 아르메인 왕자가 왜 아카데미로 기어 들어온답니까?”
“그걸 내가 알면 이러고 있겠나? 외무성도 뒤집어지고 난리가 아니었네. 아르메인 측에도 이게 무슨 일이냐고 타진해봤는데, 그쪽도 왕자의 의지가 너무 단호해 당혹스럽다더군.”
딱히 도움 안되는 대답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으며 류티스라는 이름을 내려다보았다. 대륙에서 제국 다음 가는 국력을 자랑하는 아르메인 왕국의 제3왕자.
아카데미에 외국 학생이 입학한 전례가 없지는 않으나, 고위급 인사가 입학한 경우는 없었다. 본인들 국가에도 교육기관이 있는데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제국까지 오겠는가.
“환장하겠군요.”
“벌써 그러면 곤란하네. 아직 많이 남았지 않은가?”
1번 타자의 임팩트가 강렬해서 그렇지, 아직 뒤에 줄줄이 남아있었다. 뒤늦게 남은 이름을 전부 확인한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2. 라테르 오스티아
3. 타니안 에네스
차례대로 유벤 연합왕국의 2왕자, 신성교국의 유력 성자 후보다.
어이가 가출한 내 모습을 바라보던 외무성 장관이 조용한 목소리로, 그러나 고막을 꿰뚫을 것 같은 내용의 말을 덧붙였다.
“국외 인사는 그 셋일세. 국내에는 3황자 전하가 이번에 입학하신 것 정도는 기억할테고.”
“예… 압니다.”
그래서 더 미칠 노릇이다. 제국의 황자, 2위 국가의 왕자, 그 다음가는 연합왕국의 왕자와 영토는 적어도 그 위상은 무시할 수 없는 신성교국의 성자 후보가 한 자리에 모인다. 여기에 테러 하나만 제대로 꽂히면 대륙 전체가 미쳐 날뛰겠지.
“아.”
그래서 내가 가는 건가.
아까부터 침묵을 지키던 장관을 쳐다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다.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라는 듯이.
“아카데미는 명목상 절대 중립이라지만, 애초에 제국 영토 한가운데에 있고 재학생 대부분도 제국인이니 유명무실한 조항이지. 그렇기에 아카데미 경비는 제국군이 담당하고 있었지만, 이 셋이 입학하면서 곤란해졌네.”
입학생을 보낸 삼국에서 아카데미의 중립성에 의문을 표했다. 아카데미를 하늘에 띄울 수는 없으니 제국 영토에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경비 담당이 철저하게 제국인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물론 제국 아카데미를 제국인이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삼국도 그건 알지만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었다. 최선은 애초에 제국 아카데미로 자국의 중요 인사를 보내지 않는 것이지만, 뭘 잘못 처먹었는지 아득바득 우기며 기어코 입학했단다. 그렇다면 최대한 중요 인사를 위협할 요소들을 줄이는 것이 외교관들의 임무.
처음에는 삼국에서도 아카데미에 경비 인력을 보내 상호 견제를 이루자고 제의했으나 제국은 지랄하지 말라며 단호히 거절했다. 제국이 미치지 않고서야 자국 영토에 외국군을 들이고 싶지 않을테니.
결국 이런저런 실랑이 끝에 입학생들을 호위할 소수 전력 허용, 전력 명단 제출, 아카데미 내 제국 인력은 필요 인원을 제외하면 전원 철수로 합의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정말 손을 뗄 수는 없지 않은가. 아카데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국의 위신이 땅에 처박히게 되네.”
“그리고 마침 아카데미에 감찰관을 파견할 시기가 됐지. 이번 신입생들이 화려해서 기부금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와 부장급 인사가 나설 명분은 세워졌고.”
외무성 장관과 장관의 원투펀치에 나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이해는 갔다. 필요성도 알겠고. 그걸 내가 하게 되서 문제지.
‘이거 아카데미물이었나.’
남자, 남자, 남자가 국경을 넘어 어거지로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것도 같은 해에. 그렇다면 아카데미가 주무대라는 말. 보이지 않는 창조주의 손길이 주연들을 아카데미에 몰아넣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시발, 무료분에는 아카데미 얘기가 없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어릴 때 모습만 나오던 무료분을 보고 아카데미로 갈지 누가 알겠냐고.
속으로 시발시발 욕을 내뱉는 내게 장관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부담 갖지 마라. 뭐, 문제 터져봐야 전쟁밖에 더 나겠냐?”
와, 그거 참 안심되네.
이후 나는 쫓기듯 아카데미 파견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빙의는 했는데 회귀는 없나? 딱 4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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