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0)
제 40화
순리를 거스르는 시체 – 3
위대하고 고귀한 황금의 제국 아펠스, 드넓은 대륙을 호령하며 홀로 우뚝 선 아름다운 제국. 이 대륙에 세번째로 군림한 제국인 아펠스는 실로 위대한 나라였다.
아펠스의 제도는 불이 꺼지지 않았고, 대륙의 모든 물자가 제도에 모였다. 근엄한 신사들과 아름다운 숙녀들은 대륙의 모두가 경외하는 제도를 거닐며 문화를 선도하였다. 또한 귀족은 실로 고고하여 어리석은 평민을 이끄는 이상적인 세상이었다.
대륙의 열국이 고개를 숙이니, 그것이 황금의 제국이라 불리는 아펠스였다. 그러나 감히 황금을 탐하며 고개를 든 죄인이 있었으니, 그 저주스럽고 경멸 받아 마땅한 이름은 크펠로펜이었다.
황금의 제국을 무너뜨린 역적, 천명을 빼앗은 도적, 거짓으로 가득한 자칭 제국. 순리를 따르는 자라면 마땅히 거짓된 국가를 무너뜨리고 다시 아펠스를 세워야 한다. 이 대륙을 찬란하게 비추었던 세번째 영광을 바로 세워야 한다.
“기만과 가식으로 쌓아올린 크펠로펜을 부수고, 우리는 찬란했던 그 시대로 돌아간다.”
세번째 영광을 창설하던 날, 단장님이 외쳤던 그 말은 아직도 가슴을 울리고 있다. 유목민 따위에 2년이나 발목이 잡힌 나라가 어찌 제국이란 말인가? 아펠스다. 오직 아펠스만이 진정한 제국이다.
그렇게 굳게 믿은 나는 동지들과 함께 아카데미로 향했다. 과거 아펠스가 세웠던 찬란한 유산이며, 아펠스의 제도였던 곳으로. 그곳을 탈환하고 감히 아펠스의 유산을 짓밟은 크펠로펜의 죄인들을 죽여 아펠스의 부활을 선언하기 위하여.
우리라면 할 수 있다. 아펠스를 우리의 손으로 다시 세울 수 있다. 분명 그럴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인데…
‘에넨이시여, 에넨이시여, 에넨이시여, 에넨이시여…!’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위대한 부활을 위한 발걸음은 어느새 신을 찾으며 도망치는 발놀림이 되었다. 이럴 리가 없다. 나는 분명 아펠스를 다시 세울 영웅이다. 고작 크펠로펜의 개에게 등을 보일 사람이 아니다.
“으아아아!”
옆에 있던 동지가 갈고리에 걸려 나무 위로 끌려 올라갔다.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지만 누구도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이미 몇 명이나 저 갈고리에 걸렸고, 그 뒤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수없이 많은 동지들이 쓰러졌다. 아펠스 부흥을 위한 영웅들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럴 수는 없다. 대의는 우리에게 있는데, 올바른 대륙을 위해 우리가 승리해야 하는데.
“버러지가 발만 빨라서는.”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와 함께 내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내 눈 앞에 보이는 무언가는 내 마음을 꺾어버렸다.
“다리 정도는 없어도 괜찮겠지?”
“1과장님 기분에 따라 다르겠지.”
어느새 나를 둘러싼 두 사내. 아무런 무늬도 없는 회색의 가면을 쓴 사내들은 자신들이 시장에 있는 것처럼 태평하게 말했다. 하지만 내 시선은 여전히 눈 앞의 무언가에 향했다.
“아아악! 다, 다리…! 내 다리…!”
뒤늦게 몰려오는 고통에 꿈틀거렸지만, 곧바로 등을 짓밟혀 그조차 해낼 수 없었다.
“대가리는?”
“대장님이 추격 중이다.”
“끝났네.”
얼마 후, 회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마녀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 끌려오는 단장님이 보였다. 죽었는지, 기절한 것인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로.
끝났다. 우리의 대의가 허무히 끝나버렸다.
***
슬슬 숲으로 향할 때가 돼서 1과장과 몸을 뺐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잠시 다녀온다는, 사실이면서도 허술한 명분으로 가는 것이니 최대한 빠르게 일을 끝내고 복귀해야 한다.
1과장 속도에 맞추면 속도가 느려서 1과장을 업고 달리기를 잠시, 묵광대와 합류하기로 한 숲에 도착했다.
“우리가 먼저 왔네.”
“그러게요. 웬일이지?”
아직 약속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지만, 4과장은 놀라울 정도로 성실한 녀석이다. 약속 시간보다 훨씬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지. 감찰부 회의 때도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내 책상을 닦는 걸 보고 얼마나 감동했었는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는데도 드물게 고집을 부려 계속 맡겼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아니, 별일 아니다.”
순간 1과장과 4과장을 트레이드 하자고 하면 특무성 장관이 받아줄까, 라는 생각이 떠올라 1과장에게 시선이 향했다. 하지만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털어냈다. 아무리 1과장이 원수 같아도 얘를 대체할 사람을 찾으라면 없긴 하거든.
4과장은 솔직히 심성을 대체할 사람은 없지만, 맡은 역할은 3과장과 5과장이 나눠 가져가서 공백을 크게 느낄 문제는 없었다. 물론 감찰부는 4과 업무를 분담해서 맡는 것보다 완전체일 때가 좋았지.
“기다리자고. 늦을 애는 아니니까.”
둘이 앉을 수 있을만한 적당한 그루터기를 만들고, 1과장에게 받은 단검의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방금 나무를 베어보니 썩 괜찮은 품질이다. 하긴, 싸구려를 들고 다닐 녀석은 아니니 당연하지만. 이 수준이면 뼈를 베어도 망가지지는 않겠지. 만족스럽다.
“아, 부장님. 저기 오는 것 같아요.”
은근슬쩍 내 등을 의자 등받이처럼 사용하고 있던 1과장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역시 늦는 애가 아니라니까. 금방 도착했네.
“뭐야 저거.”
“어라?”
서서히 다가오는 묵광대를 보는 나와 1과장이 동시에 의문을 내뱉었다. 등에 무언가 들쳐업거나, 손으로 대충 잡아 질질 끌고 오는 모습.
“사람… 같은데요?”
“…….”
그러게. 사지 중에 없는 부위가 조금 보이지만 아무튼 사람이기는 하네. 설마 오는 길에 사고가 터져 부상자가 생겼나 싶었지만, 부상자를 저렇게 짐처럼 끌고 올리는 없다. 애초에 묵광대 복장도 아니고.
도대체 뭔가 싶어서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선두에 있던 4과장이 나에게 다가와 경례를 했다.
“부장님을 뵙습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대원들도 등에 업던 것과 손에 쥔 것을 땅에 던지고 일제히 경례를 했다. 그, 막 던져도 되는 거 맞지?
“그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
하지만 기껏 날 돕기 위해 온 애들에게 시작부터 잔소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 여기까지 저런 걸 가져온 것을 보면 필요해서 가져왔겠지. 자리에서 일어나 4과장의 경례를 받아주자 그제서야 경례를 풀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보는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4과장이 바로 입을 열었다.
“세번째 영광입니다. 이동 중 조우하였고, 전원 생포했습니다.”
“와아…”
4과장의 말에 1과장이 작게 감탄사를 흘렸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고. 잡아왔다고? 전부 다? 나는 여기 앉아서 쉬고만 있었는데 이렇게 끝난 건가?
“정말 수고 많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무표정 속에서 은근히 무언가 바라는 듯한 4과장의 눈을 보자 캐물을 마음이 사라졌다. 그래, 과정이 조금 이상해도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지.
어깨를 토닥여주며 치하하자 4과장의 눈빛이 반짝 빛났고, 내 허리춤에 찬 단검도 처량하게 빛났다. 기껏 빌렸는데 나무만 베고 끝났다. 어차피 이럴거면 다음부터는 도끼나 들고 다닐까.
세번째 영광을 전원 생포에 성공하면서 나와 묵광대의 역할은 끝났다. 나는 정말 숨만 쉬고 있어서 역할 운운하는 것도 많이 민망하지만.
할 일이 사라진 묵광대는 본래라면 교전이 벌어졌을 숲에 임시 숙영지를 설치했다. 아무리 허약한 상대라지만, 교전을 벌이며 힘을 소비하기는 해서 쉬기는 쉬어야지. 서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물을 나눠 마시는 것이 화목해 보였다.
“부장님, 저도 물 좀 주세요.”
1과장 쪽으로 수통을 하나 던지자 가볍게 받더니, 누군가의 얼굴을 향해 부었다. 본인이 마시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양보하기 위해 물을 요청한 것. 심지어 급하게 마시면 체할까봐 한번 걸러 마시라고 얼굴 위에 천까지 덮어뒀다.
“──! ──!!”
“헤헤, 너도 목말랐지?”
묵광대원에게 양팔을 잡히고 머리채를 붙잡혀 고개가 뒤로 젖혀진 세번째 영광의 단장. 1과장의 배려에 감동했는지 버둥거리며 감사를 표하지만, 1과장은 그 감사에 더욱 감동했는지 계속 물을 부었다.
“조금만 더 젖혀줄래?”
“예, 과장님.”
1과장의 말에 단장… 단장이라는 말도 아깝네. 대가리의 머리채를 붙잡고 있던 묵광대원이 더 뒤로 잡아당겼다.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이는 1과장의 모습을 보고 시선을 돌렸다.
‘알아서 잘하겠지.’
손톱부터 뽑고 시작하는 녀석치고는 웬일로 소소한 시작이지만, 맡겨두면 알아서 정보를 토하게 만들 거다. 전문가에게 맡기고 기다리면 결과는 알아서 나오니까.
적당히 4과장과 잡담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으나 대가리의 입은 생각보다 굳건했다. 1과장이 작정하면 10분도 버티기 힘들 텐데, 저딴 반군의 수장도 꼴에 우두머리라고 입이 가볍지는 않은 모양이다.
4과장과 함께 1과장 쪽으로 다가가 고문 상황을 확인하니, 일단 손과 발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나머지는 아직 건들지도 않았고.
‘뭐야.’
입이 무거워서 버틴 게 아니다. 진행 과정이 평소보다 느려서 아직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아펠스 부흥군 얘기 듣고 업적 본능 터질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보니 좀 열받네.
“왜 이리 느려. 빨리 안해?”
“밖에서 저 혼자 하는 거라 급하게 하면 죽을 수도 있어요. 정보는 뱉게 해야죠.”
헤헤 웃으며 하는 말이 하필 틀린 말은 아니라 뭐라 탓하지도 못하겠다. 급하게 고문을 진행하다가 쇼크로 죽어버리면 곤란하니까. 여기는 1과장을 도울 다른 1과 소속이나 전문 장비도 없으니.
문제는 작정하고 고문을 하면 그런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를 녀석이 아닌데, 그걸 핑계로 느긋하게 진행한다는 것.
‘이 새끼가 짬이 차면서 요령만 늘어가지고.’
인상을 찌푸리자 1과장이 머쓱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 양심이 아직 남아있기는 하구나.
“계속 그러면 다음 사람으로 넘어갈 거야. 그게 싫으면 이제 말하고. 동료를 소중히 생각해야지.”
내 따가운 시선에 1과장이 기괴한 타협안을 꺼냈다. 대가리가 저 말에 넘어가 정보를 불면 일단 감찰부로 보내서 다음에 가지고 놀고, 계속 입을 다물면 그제서야 제대로 고문을 시작하겠지. 하여간 괴상한 취미를 가져가지고.
하지만 세번째 영광의 대가리는 1과장의 말에 화를 내거나 무시하지도 않고, 낮게 웃음을 흘렸다.
“크흐흐…”
“뭐냐. 너 쟤 머리도 만졌어?”
“아뇨. 머리는 야외에서 함부로 만지면 위험해서 안 건드리는데요?”
1과장이 범인이 아니라면 고문의 충격에 스스로 미친 모양이다. 벌써 정신을 놓으면 곤란한데. 그런 내 걱정과는 별개로 한참을 끅끅거리며 웃던 대가리가 갑자기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핏발 선 눈으로 노려봤다.
“동료? 동료 핏값으로 출세한 놈이 저기 있는데, 개소리를─”
─뻐억!
대가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4과장이 순식간에 달려가 턱을 걷어찼다. 순식간에 목이 뒤로 젖혀지며 쓰러지는 것이 꽤 강하게 걷어찬 모양이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내려 앉았다. 뛰쳐나간 4과장도, 무슨 말을 하나 보고 있던 1과장도, 대가리의 양팔을 잡고 있던 묵광대원들도 아무런 말 없이 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하.”
작은 한숨과 함께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대체 얼마나 퍼진 건지, 이런 버러지 새끼한테 그 얘기가 나오네.
‘좆같은 새끼가.’
정보고 나발이고 그냥 다 죽여버릴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대륙의 모든 물자가 제도에 모였다. = 자국의 지방은 물론 대륙 전체를 수탈함.
제도를 거닐며 문화를 선도하였다. = 제도 외 지역이 굶주리든 말든 제도 상류층은 신경도 안씀.
귀족은 실로 고고하여 어리석은 평민을 이끄는 이상적인 세상이었다. = 평민이 아무리 유능해도 신분 이동은 절대 불가능함.
와! 위대하고 고귀한 황금의 제국! 정말 멋지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렌지주스님! 후원 감사합니다!